중앙아시아에서 여행하기 안전하다고 하는
실크로드의 나라
우즈베키스탄을 여행지로 선정하여 떠난다
인천공항에서 오후 4시 3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4848Km를 7시간 30분을 날아와
우즈베키스탄(Uzbekistan)의 수도인
타슈겐트 국제공항(Tashkent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시각으로 저녁 8시4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한국시간 밤12:40 : 시차 4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줄을 서서 대기하다
입국심사장을 통과하여 짐을 찾은 후
세관 검사대로 가서 2부 작성하여 제출한 세관신고서 중 1부에 도장을 받아
공항 밖으로 나오니 밤 10시가 넘어 서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입국절차가 좀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여행을 신청하는데도
이 나라에서 초청장이 없으면 비자 발급이 안되어
여행을 올 수 없는 국가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은 든다
아침 식사를 하기 전 호텔 주변을 산책 겸 돌아 본다
로비에서 나와 호텔 뒷편으로 돌아가니
어제 밤에 늦도록 시끄러웠던 호텔 결혼예식장으로
이 나라의 결혼 문화는 모르겠지만
결혼 연회가 밤 늦게까지 있었던 것 같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관광을 나서기 전
호텔에서 환전부터 하라고 하여
공금으로 $400을 환전하니
우즈베키스탄 5000숨(cȳm, so'm) 지폐 200장과
1000숨(cȳm, so'm) 지폐 180장으로 환전하여 준다
($1 = 약 2950숨(cȳm, so'm)
몸에 지니고 다니기 불편한 정도였으나
이 나라에서는 US달러를 상가에서 대부분 취급하는 곳이 없으며
신용카드 취급점도 별로 없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감수하여야 하였다
차도로 나오니 도로에는
다니는 차들이 별로 보이지 않아
아침에 출근 시간인것 같은데 매우 한산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첫 일정으로
타슈켄트(Tashkend)에서 버스로 동북쪽 2시간 거리에 있는
침간산(Mt Chimgan)으로 향한다
우즈베키스탄(Uzbekistan)은
국토 면적이 우리 한반도 면적의 약 2배에 해당하는 447,400㎢로
동에서 서로 약 1,425Km
남에서 북으로 925Km 뻗어 있는 나라이다
또한 중앙아시아 중부에 위치하며
동쪽 국경은 키르기스탄과 타지키스탄, 남쪽은 아프가니스탄,
남서쪽은 투르크메니스탄, 서쪽에서 북쪽은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집 구조를 똑 같이 지어진 집들이 도로 변으로 보인다
정부에서 서민들에게 공급하는 주택이라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의
2015년도 국가GDP는 약 667억 9,700만 달러(45위)이며
1인당GDP는 약 2,130달러(143위)로서 그리 잘 사는 국가는 아니다
<대한민국 : 2015년 국가GDP 1조 4,351억 달러(11위), 1인당GDP 28,338달러(28위)>
인구는 약 2,919만명 거주하고 있으며
130여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 국가라고 한다
전체 인구 중 우즈벡 민족 80%, 타지키인 5%, 러시아인 3.7%,
카자흐인 3.6%, 타타르인 0.61%, 고려인 0.6%가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종교는 인구 88%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으며
그 중 70%가 수니파라고 한다
종교의 자유는 있으나 타 종교 선교활동과
과격 이슬람 원리주의자 활동을 철저히 단속하고 있어
기독교 선교인들은 강제 추방시키고 있다고 한다
언어는 우즈벡어가 공식어이나
민족간 소통을 위한 언어로는 러시아어를 보편적으로 사용하며
지방으로 가면 타지크어, 카자흐어, 투르크어 등
다민족 다언어를 사용하는 국가라고 한다
1시간 여를 넘게 달리다 허스름한 유료 화장실이 있는
비포장 넓은 공간에 정차하는데
한켠에 간이 좌판대가 일렬로 늘어서 있고
대부분 같은 물건들을 진열해 놓고 장사하고 있었다
대부분 치즈 종류로서
우리 입맛에 맞는 것이 어떤 것인가 가격을 물어 가며 이것 저것 맛을 본다
대부분이 너무 짜다거나 사어도 너무 시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그래도 이런 맛이구나 하고 맛을 보며 알 수 있도록
몇가지 골라 조금씩 사는데 가격이
한 움큼에 우리 돈으로 몇 백원 정도로 몇 가지를 5000숨(so'm),
한화로 환산하면 약 1,800원 정도로 굉장히 싸다
다시 버스에 올라 침간산을 향해 출발하는데
건너편 산으로 보이는 목장엔
많은 소떼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소고기와 양고기가 유명하며
가격도 저렴하다고 한다
버스는 산 길을 힘겹게 오르는데
양떼들이 몰려와 길을 막으며
맨 뒤에서 양떼를 몰고 내려 오는 목동은
풍만한 몸집으로 조그만 당나귀를 타고 있는 모습에서
당나귀가 주저 앉을 듯한
무언가 언바란스하게만 보인다
양떼가 지나가고 버스가 산 길을 조금 더 오르는데
이번에는 소떼들이 길을 막아 선다
산 중앙도로에서 옆으로 빠져 꼬불꼬불 가다보니
막다른 곳이 나오며
침간산에 오르는 리프트 타는 건물이 나타난다
침간산(Mt. Chimgan)에 오르는 것은 케이블카로 알고 왔으나
리프트를 타고 오른다고 한다
이 곳은 고지가 높아 버스에서 내리니 날씨가 쌀쌀하여
몸은 움추려 드는데
리프트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올라간다니
숙소에 두고 따뜻한 옷을 가져오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침간산(Mt. Chimgan)은
중국 서부에서부터 키르기스탄을 지나 3000Km가 넘게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천산산맥의 서쪽 끝자락에 위치하는 3,309m의 만년설산으로서
타슈켄트에 사는 우즈벡인들에게는 가장 인기있는 휴양지라고 한다
또한 '침간(Chimgan)'은
타지크어로 '푸른땅'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리프트를 타고 오르던 중 밑을 보니
원주민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말을 타고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리프트를 타고 약 30분 정도 올라 가야지
하차하는 종착지가 있다고 한다
바람을 피할 곳 없는 리프트에서 온전히 찬바람을 맞으니
추위에 떨면서 몸을 움추리고 올라 간다
중간 정도 올라 온 것 같은데 아직도 멀게 만 느껴지며
빨리 내리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종착지가 보인다
그런데 주위가 너무 황량하게 보인다
리프트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언덕쪽에 말 타는 곳이 보인다
갑자기 안개가 덮이기 시작하여 산 위쪽으로는
전망할 수가 없어
추위 속에 올라 왔는데 하는 아쉬움에 서운한 생각이 든다
몸은 한기를 느끼지만 그래도 침간산 인증샷은 필수!!!
너무 움츠려 보인다
순식간에 뒤덮힌 안개로 인해 시야는 가려지고
추위는 엄습해와 내려가기로 한다
뿌연 안개 속에 리프트를 타고 내려 가는 중
올라 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들도 우리처럼 실망하고 내려 갈거 같다
그래도 우리는 안개가 덮이기 전 언덕위의 말타는 곳이라도 보았는데...
서서히 내려가며
안개속을 벗어나기 시작하며
다시 아쉬움이 다가온다
천산산맥의 만년설산인 침간산의 3,309m의 봉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멀리서라도 보고 싶었는데 하는 아쉬움이다
리프트 다니는 길 옆의 바위들 생김새가 참 특이하게 보인다
사람 얼굴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가슴 부위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걸어가는 사람 옆모습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리프트 하산 종착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리프트에서 추위에 너무 많이 떨어 반가운 마음이 생긴다
침간산에서 다시 중앙도로와 합류하는 곳으로 나가는
꼬불꼬불한 도로 멀리 건물이 보인다
아직 공사 중에 있는 관광시설 건물로 보이는데
저 곳 옆을 지나야 중앙도로와 합류하는 곳이 나온다
침간산으로 가는 꼬불꼬불한 소로 길을 빠져나와
차르박(Charvak) 호수로 향하는데
아직은 침간산 입구 쪽이라 고지가 높다
고개를 넘어 침간(Chimgan)이라는 마을이 있는
내리막 길을 가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바위산 꼭대기에 구름이 걸처있다
침간(Chimgan) 마을을 지나는 중
과일을 파는 간이 상점이 줄지어 있어 차를 세우고
사과, 배, 산딸기를 사서 맛을 보는데
사과는 우리 사과보다 작으나 맛은 있었고
배는 작고 투박하고 약간 말랑말랑하나 단맛과 함께 베어 먹기는 좋았다
그러나 먹느라고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차르박(Charvak) 호수에 도착한다
차르박 호수는 1600m 고지에 위치한 인공호수로
천산산맥과 침간산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물을 막아 세운 호수라고 한다
이 지역은 1년 내내 비가 얼마 내리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어
생활용수와 농사철에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세운 호수라고 한다
차르박 호수는 우리나라 소양강 호수와 비교 되는데
호수가 커서 바다가 없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에게는 여름 국민피서지로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차르박 호수를 떠나 점심식사를 하러
댐 아래에 있는 차르박 지역으로 내려가며 창밖을 보는데
도로를 꼬불꼬불 한참을 내려 간다
차르박 호수가 상당히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꼬불꼬불 왔다갔다 내려갈 때
차르박 호수 댐이 웅장하게 나타난다
호수에서 내려와 차르박(Charvak) 지역의
파로본(Farovon)이라는 음식점으로
우즈벡 특선 요리인 샤슬릭(Shahslyk)을 먹으러 들어 간다
안으로 들어서니 분수대가 보이고
연회장까지 갖추고 있는 대형음식점 이였다
샤슬릭(Shahslyk)이란
중앙아시아, 중동, 몽골 등과 동유럽 일부 지역에서 즐겨 먹었던
유명한 꼬치구이 요리이며 케밥의 일종이라 한다.
샤슬릭은 원래 양고기로 만든 꼬치요리로서
우리는 먹었지만
지역과 종교법에 따라 염소고기나 쇠고기로 만들기도 한다고 한다
차르박 지역의 파로본(Farovon) 음식점에서 나와
다시 타슈켄트로 길을 향한다
양고기 꼬치구이인 샤슬릭을 먹으며
시간을 많이 흘려보내
타슈켄트에서 일정이 바쁘다고 '딜로롬'이 무척 서둘기에
2차로 즐기던 것을 포기하고 출발한 것이다
타슈켄트를 향해 버스는 달려간다
그런데 오전에 침간산을 향하여 갈 때는 독일 국기가 걸려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대한민국 국기로 바뀌어 있어
운전기사 뭐 좀 아는구나하는 뿌듯한 기분이 든다
버스에서 졸다보니 벌써 타슈켄트에 도착하여
중앙아시아에서 제일 높다는
우즈베키스탄 TV타워가 눈에 들어 온다
오늘 일정은 어두워지는 관계로 저녁식사 후 호텔로 들어간다
오늘은 사마르칸트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호텔을 나서 타슈켄트 역으로 간다
타슈켄트 역에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꺼내라고 한다
이 나라에서는 기차표와 함께 신분증 검사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기차역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의 간이 검문소에서 검사 후
여권을 가방에 집어 넣으려고 했더니
한번만 검사하는 것이 아니라
걸어서 건물 문을 통과하는 구간마다 총 3번을 검사를 한다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플랫폼으로 들어서자
우리가 사마르칸트로 타고 갈 기차가 대기하고 있는데
기차로 오르는 칸마다 깔끔한 차림의 복장을 하고 늘어선 승무원이
미소로 반겨주며 맞이하는 모습이 이색적이며 산뜻하게 느껴진다
기차는 남서쪽으로 약 375Km 거리에 있는 사마르칸트를 향해 출발하고
창밖을 쳐다보는데
한참을 지나도록 창밖의 배경이 도시의 변두리 모습으로
사진을 찍을마한 풍경이 보이질 않더니
탁 트인 평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멀리까지 보이는 풍경이 나오니
여행하는 기분이 산뜻함으로 들뜨기 시작하여 밝아지는것 같았다
우즈베키스탄 역사적 기원은
13세기경 징기스칸의 손자인 시바칸이
서쪽으로 우랄산맥과 동쪽으로는 이르티시 강 사이의 영토를
유산으로 받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즈벡 민족은
원래의 이곳에 살던 투르크 민족과 이들을 점령한 몽골 민족의
혼혈로 이루어진 민족이라고 한다
시바칸이 이끄는 몽골족은
황금 군단(Golden Horde)을 형성하여
중앙아시아의 100여개의 투르크 부족을 지배하면서
몽골족과 혼혈되어 우즈벡 민족 뿐만 아니라
여러 민족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달리는 기차 창 밖으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우(牛)시장으로 보인다
'우즈벡'라는 명칭은
황금 군단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 이 곳 유목 민족을 지배하던 칸
우즈벡(1312~1340년)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당시 14세기까지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을 '큽착인'이라고 하였는데
우즈벡 칸이 지배하며 이슬람을 강력히 전파하면서
'우즈벡'이라는 말은 무슬림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며 무슬림 세력이 점차 커지면서
'우즈벡'이라는 명칭은 왕조와 국가의 명칭으로 사용되다가
그리고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 경에 민족명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14세기 중엽 이후로 차가타이 칸국과 14세기 말 큽착왕국이 쇠락하며
중앙아시아에 힘의 균형이 깨져 공백 상태로 있다가
15세기 중반에 투르크계 장군이었던 압알하일이
큽착초원에 강력한 국가를 세우게 된다
이때 그를 따랐던 일족들과 사람들을 '우즈벡'이라고 부르게 되면서
민족명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6세기 초 무함마드 샤이바니 칸 때에
카자흐 족과 모굴리스탄 한국을 격파하고 티무르 왕조를 멸망시키면서
현 우즈베키스탄 일대인 트란속시아나를 장악하며
이란의 호라산 일대까지 진출하였으나
사파비 왕조와의 마르브 전투에서 패하면서 영토 확장이 중단되었으며
기존 점령하였던 영토에
우즈벡인들의 영구적인 고향으로서 현재의 영토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 후 정착하면서 부하라 한국, 히바 한국을 세웠으며
1709년에 코칸트 한국을 건국하였으나
19세기 남하 정책을 편 러시아제국의 침략을 받아
러시아 보호령이 되었으며
러시아제국이 멸망하고 소련이 탄생한 이 후
1920년 완전히 합병되어 소련의 지배 체재에 들어간다
70년을 넘는 소련의 지배 하에 있던 우즈벡 민족은
소련의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고 있음에 따라
1991년 12월 8일 독립 선언을 하며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하고
우즈베키스탄 공화국(Republic of Uzbekistan)을 건국하였으며
2012년에는 러시아와의 집단 안보조약기구에서도 탈퇴하였다
초대 대통령으로는
독립 당시 소비에트 연방에서 우즈베키스탄 공산당 서기장으로 있던
이슬람 카리모프가 대통령이 되어
2016년 9월 3일 향년 78세로 사망할 때까지 25년간 독재를 하였다고 한다
끝없이 넓게 보이는 초원에
소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게만 보인다
얼마전 사망한 카리모프 초대 대통령은
우즈벡 사람들에게는 많은 추앙을 받고 있는 느낌을 받았는데
국제사회로부터는
광범위한 반체제 인사에 대한 심한 고문과
특히 2005년 5월 13일 안디잔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에서
발포 명령을 내리며 강경진압으로 500명(추정)이 넘는 학살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고 한다
기차는 타슈켄트역에서 375Km를 2시간 30분을 달려와
사마르칸트(Samarkand)역에 도착한다
사마르칸트(Samarkand)는
2700여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동서양을 있는 실크로드의 거점지로서
인구 약 50만명이 거주하는
중앙아시아에서 옛모습이 남은 최고의 고(古)도시라고 한다
사마르칸트(Samarkand)는
BC 4세기경에 마라칸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BC 329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점령 당하였으며
AD 6세기에는 중앙아시아 투르크인,
8세기에는 아랍인
9~10세기는 이란의 사만 왕조
11~13세기에는 투르크계 종족들의 지배를 받다가
13세기 콰레즘 왕국에 합병되었으며
1220년에 몽골의 징기스칸에게 점령되었는데
이 후 1370년 티무르 제국의 수도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레기스탄 광장으로 이동 중
티무르 제국을 이룩한 아무르 티무르(Amir Temur) 동상이 보인다
여기에서 티무르(Temur)는 이름이고
아무르(Amir)는 '지휘관'이란 뜻 가지고 있다고 한다
몽골족 가문으로 태어난 티무르(Temur)는 제국을 세웠는데도
칸(Khan)의 호칭을 사용하지 못한 것은
칭기스칸 자손이 아닌 사람은 칸(Khan) 즉위에 오를 수 없어
칭기스칸의 후손을 허수아비 칸으로 세우고
최고의 권력자로 행하였다고 한다
티무르(Temur:1336~1405년)는
바를라스부의 소수의 하인을 거느린 몽골계 가문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에는 차가타이 한국의 동서분열로 혼란 틈에서
가축을 도적질을 일삼았지만
1360년 동 차가타이 한국의 투그르 티무르가 침공하자 그에게 복종하여
바를라스부의 영지를 하사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동 차가타이 한국을 배신하고
카라우나스부의 아미르 후사인과 결탁하여 세력을 확대하여
사마르칸트를 함락하여 본거지로 삼았는데
이 때 전투 중 다리 한쪽을 다쳐 '절름발이 티무르'라는 뜻의
'티무리 랑(Tīmūr-i Lang)'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그 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후사인과 대립하다가
1369년 후사인의 본거지인 발흐를 공격하여 후사인을 죽이고
1370년 후사인이 세운 칸(Khan)인 카불 샤를 처형하고
오고타이의 후손 슈르가드미슈 란 왕자를 칸(Khan)으로 옹립한다
또한 칭기스칸 후손의 공주이며 후사인의 부인이었던 과부를 부인으로 맞이하며
'칭기스칸 가문의 사위'라는 뜻의 '큐레겐'으로 자칭하며
칸의 곁에서 아미르 중의 최고의 권력자로서 위상을 펼치게 된다
최고의 권력을 잡은 티무르는 칭기스칸의 업적을 본 받아
세계 제국의 천하통일을 꿈꾸고
1380~1396년까지 잦은 대외 원정을 되풀이 하여
이란, 아프가니스탄, 아르메니아, 그루지아, 이라크, 시리아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지역에 있던 사라이 제국과 루시 제국까지 정복하였다
1398~1402년에는 인도 델리 술탄왕조를 격파하고
터키 앙카라까지 진군하여 오스만 제국을 격파하고 돌아와
칭기스칸이 세운 몽골 제국의 서쪽을 티무르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오게 만들었다
그러나 1404년 티무르는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원나라 옛 영지를 탈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중국 명(明)나라 원정 길에서
1405년 2월 18일 갑자기 병사하였다고 한다
레기스탄 광장 뒷 편에 있는 주차장에서 내려
건물 담벽을 끼고 한참을 걸으니
첨 탑과 함께 웅장한 건물 사이로 넓은 광장이 보인다
레기스탄(Registan) 광장은
사마르칸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로서
레기스탄은 '모래땅'이라는 의미로 옛날에는 모래 사막이었다고 한다
광장 입구에서 보면
우측의 건물은 쉬르도르 마드라사(Medrassa Sher Dor)이고
정면의 건물은 틸라카리 마드라사(Medrassa Tilla Kari),
좌측의 건물은 울루그벡 마드라사(Medrassa Ulugbek)이다
레기스탄 광장의 좌측에 있는
울루그벡 마드라사(Medrassa Ulugbek:1417~1420년)이다
레기스탄 광장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건축물로서 울루그벡 왕에 의해 세워졌으며
처음에는 100명이 생활하며 공부하는 이슬람 신학교였으나
나중에는 천문학, 철학, 수학, 과학 등을 연구하는 연구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울루그벡 왕은 학자로서도 유명하여 직접 수학, 철학 강의도 하였으며
천문학자로도 유명하여 마드라사 외관의 문양을 하늘의 푸른 별을 형상화하였다고 한다
울루그벡 마드라사(Medrassa Ulugbek) 안으로 들어서니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한쪽에서는 예비부부가 행복한 모습을 띠며
웨딩촬영을 하고 있었다
한쪽 있는 의자에 앉아 웨딩촬영 모습을 지켜보다가
울루그벡 마드라사를 나와
광장에서 마주보고 있는 쉬르도르 마드라사로 간다
쉬르도르 마드라사(Medrassa Sher Dor:1619~1636년)는
레기스탄 광장에서 2번째로 지어진 건축물로서
아치 위의 문양에 사자가 사슴을 쫓는 모습과
사자 등쪽에는 사람 얼굴 형상이 수 놓아져 있다
이슬람에서는 우상숭배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어 사람이나 동물의 문양이 있어
이슬람 건축물에는 금기시 하고 있다는 것에 특색이 있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당시 왕들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교리의 금기를 깨고 건축하였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서니
안쪽에는 화려한 이슬람 양식의 문양으로 수 놓아 있다
그런데 쉬르도르 마드라사를 설계하고 건축을 감독한 건축가는
이 건축물이 완공된 후
무슬림으로서 교리에 어긋난 건축을 한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으로
스스로 자살하였다는 안타까운 사연이다
쉬르도르 마드라사 안에도
기념품을 파는 상점과 가판대로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레기스탄 광장에서 마지막으로 지어진
틸라카리 마드라사(Medrassa Tilla Kari:1647~1660년)으로 간다
이 건축물 안으로는 안들어 가려고 하였으나
딜로롬(단비)이 이 건축물 안에는 금으로 장식된 사원이 있으므로
필히 관람해야 후회가 없다는 설득으로 안으로 들어 간다
안으로 들어가 푸른 돔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사원 내부는 금박으로 장식되어 있어
화려함의 황금빛으로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틸라카리 마드라사는
야한그도슈 바하도르 왕이 이슬람 교리에 어긋난 쉬르도르 마드라사를 건축한 후
무슬림들의 불만이 증폭되자
그들의 불만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이슬람 전통적인 양식으로 더욱더 화려하게 사원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천장에도 금박으로 장식되어
더욱더 금빛으로 화려하고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고
돔처럼 둥글게 보이나
세밀하게 표현된 평면이라고 한다
레기스탄 광장에서 나와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데
당나귀 끄는 마차가
차량들로 복잡한 도로에서 방울소리를 울리며 서서히 지나 가고 있다
사마르칸트(Samarkand)는
1365년 몽골 통치자들에 반발해 티무르(Temur)가 제국을 세우면서 수도가 된 후에
중앙아시아에서 경제, 문화 중심지가 되었지만
1500년 우즈벡인들에게 점령되어 부하라 칸국의 영토가 된 후 쇠퇴하면서
1720~1770년대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다고 한다
사마르칸트(SamarKand)가 다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887년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의거 보호령이 된 후
러시아제국의 지방 행정 중심지가 되고 철도가 들어서면서 경제가 회복되며
1924~1930년 소비에트 연방 우즈베키스탄 수도가 되기도 하였으며
1938년 이 후에는 사마르칸트 주도(州都)가 되었다고 한다
사자(死者)의 거리라고 하는 무덤들이 모여 있는
샤히진다(Shahi Jinda)로 간다
샤히진다는 아프로시압 남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마르칸트 제일의 성지로서
순례를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질 않는 곳이라고 한다
입구를 들어서니 계단이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데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고 한다
계단을 오르니
타일로 화려하게 수 놓은 건물들이 양켠으로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모두 영묘들이다
각 영묘들 마다 다양한 건축 양식과 모자이크 장식,
타일의 색채는 보는 방향에 다르게 빛을 발하고 있음은
이 곳을 찾는 사람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여기 안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은
티무르 왕족 사람들, 이슬람 종교지도자, 순교자 등으로
그들의 영묘라고 한다
영묘 건물 안을 기웃거리면서 계속해서 걷다보니
복잡함은 한산함으로 변한다
'샤히진다(Shahi Jinda)'는 '살아있는 왕'이라는 뜻으로
7세기 아랍의 침략을 받았을 때 생겨난 전설을 근원으로 한다고 한다
샤히진다 영묘 안 끝까지 들어오니 길을 막고 있는 영묘가 있으며
여기에는 '쿠산 이븐 앗바스의 영묘'가 있다
무하마드의 사촌형인 '쿠산 이븐 앗바스'가 포교를 위해
사마르칸트를 방문하여 이 곳에서 예배를 드리던 중
조로아스터 교주에게 습격을 받아 목을 잘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예배를 마칠 때까지 한치도 흔들림 없이 예배를 드린 후
자신의 목을 가지고 깊은 우물로 가서 넣고는
홀연히 사라졌다는 전설로서
무슬림들은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며
이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구원을 위해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샤히진다 영묘 주변에는
그리 오래되지 않아 보이는 묘 비석들이 많이 보인다
성스러운 영묘 주변에서 죽어서라도 편히 쉬고자 하는 이들이
잠들어 있는 묘들로 보인다
샤히진다에서 나와
사마르칸트의 재래시장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그런데 출발한지 1분 정도 되었나
차에서 내려 길을 건너 언덕길로 올라 상가단지를 지나
재래시장은 아프로시압 언덕의 남서쪽 끝단 찻길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재래시장 이름은 시압 시장(Siab Bazzar)으로서
그리 복잡하지는 않고 한산하였다
시장 갑판대는 사탕류 파는 곳...
견과류 파는 곳...
등으로 구역이 나누어져 있었고
재래시장 내 건물 밖의 아래쪽 길거리 좌판에서
물고기 튀김을 각 종류대로 몇 마리씩 사서 시장을 빠져나가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가려고
주위를 돌아보니
길거리 좌판 쪽에는 많은 인파로 붐비고 있었는데
여기 재래시장도 우리나라 어느 시장과 마찬가지로
선물, 의류, 견과류 등을 파는 곳 보다는
식생활에 관계된 것을 판매하는 곳에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시압(Siab) 재래시장을 빠져나와
버스가 주차 되어 있는 곳으로 향하는데
차도 건너편 아프로시압 언덕의 남서쪽 끝단에 있는
쿠자 키드르 모스크(Khuja Khidr Mosque)가 보인다
아프로시압 언덕에 있는 박물관으로 향한다
사마르칸트는 고대 호레즘 시대부터 '마라칸다'로 알려져 있었고
중국에서는 강국(康國)이라 하였으며
실크로드의 교역기지 중심으로 번창하였는데
1220년 징기스칸에 의해 패망하며 철저하게 파괴되였다고 한다
철저하게 파괴된 사마르칸트는
14세기 말부터 티무르 왕조에 의해 아프로시압 언덕 아래
재건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티무르(Temur)는 사마르칸트를 '동방의 로마'로 만들고자 하였으며
도시의 주요 모스크와 마드라사들을
유약을 발라 구워낸 푸른 타일 및 벽돌로 장식하여 건축하였기에
사마르칸트를 '푸른 도시'라고 하였다고 한다
아프로시압(Afrosiab) 박물관은
초기 사마르칸트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으로서
기원전 알렉산더 대왕시대의 동전부터 조로아스터교 제단과 우상과
7세기 바흐만(Bahman) 왕조 때 외국 사신단 모습의 벽화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여기의 유물들은
구 소련의 지배를 받을 당시 고고학자들이
옛 사마르칸트의 중심지였던 아프로시압 언덕을 발굴을 하여
이 박물관에 모아 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 벽화는 7세기 바흐만(Bahman) 왕때 사마르칸트를 방문한 각국 사신도로서
우측에 2명은 우리 고구려에서 온 사신들이라고 한다
이 벽화를 보면서 학창 시절에
세계 역사 속에서 우리 역사가 중국 외에 교류를 하였다는 것을
단 한차례도 들어 본 적이 없었는데
우리의 고구려가 그 옛날 이 먼 곳까지 진출하여 교류하며 살았다는
역사의 한 장면을 보며 우리의 조상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저녁식사를 한식 돼지 불고기로 마치고
타슈켄트에 있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사마르칸트 공항으로 간다
비행기는 사마르칸트 공항을 이륙한지
1시간이 지나지 않아
타슈켄트 공항에 착륙을 한다
타슈켄트 공항을 끝으로
오늘의 여행 일정을 마치고 숙소가 있는 호텔로 간다
오늘은
우즈베키스탄에서 마지막 날 여행 일정로서
타슈켄트 시내를 관광하는 여행이다
첫 관광지로서
국회의사당, 재무부 건물, 추모의 광장 등이 있는
무스타낄릭(Mustaqillik) 광장으로 간다
'무스타낄릭'이란 우리 말로 하면 '독립'이라는 뜻이라 한다
무스타낄릭 광장으로 들어와 걷다보면
좌측으로 '추모의 광장'이 나온다
'비애하는 어머니' 동상과
“당신은 항상 제 가슴 속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Ты всегда в моем сердце, родимый)”라는 글귀와 함께
원형 한 가운데에는 365일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4년 동안인 1417일의 낮과 밤을
전쟁의 포화 속에서 승리를 위해 싸우다 피를 흘리며 사라져간
수 많은 생명들을 추모하는 곳이었다
추모의 광장은
1999년 5월9일 추모의 날로 공포되며 축조되었다고 하며
우즈벡 전통양식으로 축조된 회랑에 있는 동판에는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이들의 수많은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하여
지역별, 종족별로 새기어 추모하고 있었다
무스타낄릭(Mustaqillik:독립광장) 광장은
소련에 속해있던 시대에 '붉은광장' 또는 '레닌광장'으로서
공산주의의 거대한 퍼레이드를 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여 세운 독립을 상징하는 구체이다
원래는 레닌의 거대한 동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동상을 헐어내고 다시 세웠다고 한다
독립 광장에는 하얀 건물로 보이는 국회의사당과
금빛 유리로 빛나는 재무부 건물이 있다
붉은 광장에서 무스타낄릭(Mustaqillik:독립광장)광장으로 조성하면서
독립한 해을 상징하는 1991개의 분수를 세웠으며
독립기념일 9월1일에는 대규모의 불꽃놀이와 함께 경축행사를 한다고 한다
두루미 3마리가 지구본 위에 세워져 있다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라면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두루미가 평화의 상징이라고 한다
무스타낄릭(Mustaqililik) 광장을 나와 시내를 걷던 중
한국 식당(Korean Food) 입간판이 보인다
'우즈베키스탄 수도'이자 '중앙아시아의 수도'라고 불리는
타슈켄트(Tashkent)에는
우즈베키스탄 수도로서 인구가 23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타슈켄트는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 중요 중심지로서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당나라 장수가 된 고선지 장군이 점령했을 때에는
석국(石國)이라고 하였는데
돌 원석을 가공하여 보석을 만드는 공예가 유명하여서 였다고 한다
11세기 경부터 타슈켄트라고 불리워지며
실크로드 중계점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후 13세기 몽골의 지배와 티무르제국의 시대를 거쳐
15세기말 16세기초에 샤이바니 왕조시대에 번성하기 시작하여
1809년 코칸트 칸국 지배에 들어가며 인구 10만의
25Km 성벽도시로 성장하였다고 한다
<사진들이 아이스크림 먹다가 살짝 묻었는지 빛 반사가 심함>
1865년 러시아에 함락되어 1867년 투르키스탄 총독부가 설치되어
행정중심지가 되면서 러시아 지배의 중심지로서 발전하였다
소련의 지배가 확립되면서 소비에트연방의
투르키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에서 분리되면서
1924년 우즈벡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수도로 사마르칸트로 옮겨 갔다가
1930년에 다시 타슈켄트가 수도의 지위를 넘겨 받았다고 한다
1966년 4월 26일 대지진이 발생되어 도시의 약 70%가 파괴되고
30만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되었으나
소련의 각지로부터 온 3만명 이상의 '혁명적 노동자'가 투입되어
2~3년만에 완전히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하였다고 한다
소련의 붕괴로 1991년9월1일 소비에트 연방 체재에서 독립하여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공식 수도가 되었다
타슈켄트에서 최고의 번화가라고 불리우던 '브로드웨이' 거리이다
우리나라 대학로 같은 거리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붐비지 않고 너무도 한산하여 썰렁하였다
음식점, 카페, 오락시설, 각종 기념품 상점들이 많이 있어
몇 년전까지는 굉장히 활기가 넘쳤던 젊음 거리이자 연인들이 몰려들었던
낭만이 있던 거리였는데
상점들이 하나 둘씩 빠져 나가면서 활기를 잃고
지금은 골동품, 기념품, 화가들만 나와서 길거리에 나열해 놓고
사람이 없는 한산한 거리에서 팔고 있었다
타슈켄트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영어권 미사 시간, 러시아권 미사 시간, 한국어권 미사 시간이 있다고 한다
예전 사할린 쪽에서 강제로 이주되어 온 많은 한국인이 정착하면서
생긴 현상이 아닌가 한다
타슈켄트의 시내는 차로 인해 정체되는 곳은
현재까지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차량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하며
타슈켄트 도로를 달리고 있는 대부분의 차들이 지금은 미국 GM사로 넘어간
예전의 우리 '대우자동차'라는 사실이 가슴이 아팟다
점심 식사를 우즈베키스탄 전통음식으로
고기와 야채와 쌀을 볶음밥 요리인 '비프 플로프 라이스'를 먹은 후
딜로롬이 가서 계산을 하는 것을 보니
가방에서 4덩어리 지폐를 건네주고
잔돈으로 더 세서 준다
이 곳에서 우리나라처럼 주머니에 들어가는 지갑 장사를 하다가는
폐가망신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버스에 올라
압둘카심세이흐 사원으로 향한다
압둘카심세이흐 사원(Abdul-Kasim Sheikh Medresse)은
2005년 유준상, 정재영, 수애가 출연하여
시골 노총각이 신부를 구하기 위하여 우즈벡으로 가서 좌충우돌 하는
'나의 결혼 원정기'라는 영화 촬영지로서
우리에게 알려진 사원이다
압둘카심세이흐 사원은
일종의 이슬람 종교의 복합단지라고 한다
이 사원이 유명한 것 중의 하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코란이 여기에 보관되어 있기에
성지 순례 코스로 생각하는 이슬람 신자들이
방문하기도 한다고 한다
압둘카심세이흐 사원 첨탑 옆 벽에 붙어 있는 시계이다
그런데 어느 나라를 가르키고 있는지
적혀 있으나 뜻을 전혀 모르겠다
압둘카심세이흐 사원은 16세기에 건축되었으며
19세기에는 우즈벡에서 유명한 이슬람신학교로서 알려 졌는데
그러나 현재은 신학교 기능은 없어지고
첨탑인 미나렛이 세워진 예배당 건물을 제외한
학생들이 사용하던 방(후쥐라)들은
우즈벡의 여러 종류 민속 공예품을 만드는 공방과
기념품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슬람 행사가 있을때
이 넓은 광장에는 예배당 모스크가 비좁아 못들어 간 신도들이
수십만명 몰려들어 성황을 이룬다고 한다
압둘카심세이흐 사원에서 공방을 하는 사람들은
공인된 장인들이기에 믿을 수 있다고 하여
이 곳에서 머플러를 3개를 저렴하게 흥정구입하여 나왔다
사원을 나와 재래시장으로 향한다
재래시장의 이름은
푸른 돔으로 되어 있는 '초르수 바자르(Чорсу базар)'로서
한국 사람들은 '철수 바자르'라고 한다고 하며
'초르수'는 4개의 길이 만나는 교차로 라는 뜻이라 한다
돔 안으로 들어서면
1층에는 신선한 야채, 과일, 생선, 고기류 등을 취급하고 있는
좌판들이 펼쳐져 있고
2층에는 견과류와 향신료 등을 취급하는 좌판들이 펼쳐져 있어
견과류를 파는 가게에서
껍질체 구워놓은 아몬드를 사서 나온다
돔 밖에는 먹거리 음식과 주방용품, 카페트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저녁식사로 삼겹살을 먹으러 갔는데
환송 저녁 파티를 해 준다고 한다
식당에서 우즈베키스탄를 여행하던
몇 명이 안되는 두 팀만 식사를 하고 있는 중 이었는데도
많은 무희들이 나와서 식당 한 가운데서 춤을 춘다
여행을 하면서 처음있는 일로서
이 많은 무희들이 나와서 일정에 없는 환송파티를 해 주는 것이 고마워
우즈베키스탄 남은 현금을 모두 이들에게 팁으로 나누워 주고
타슈켄트 공항으로 간다
타슈켄트 국제공항 청사로 들어가는
울타리 검문소 입구에서 '딜로롬'의 배웅 받고서
화물검색대 통과와 휴대품 검사와 여권을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가
항공권을 발급 받고
세관신고서를 작성과 신고서에 현재 가지고 있는 현금을 적은 후
우즈베키스탄 입국시 도장을 찍어 받았던 세관신고서와 함께 제출하면서 짐을 붙이고
출국심사를 받고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보딩 게이트로 간다
타슈켄트 공항에서 22:20 출발하여 4848Km를 6시간30분을 비행하여
아침 08:50 인천공항에 내린다 (시차 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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