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다낭/호이안/후에 여행
베트남의 다낭은 휴양지라고 하는데
여행을 갔다가 온 사람들에 의하면 둘로 양분되는데
좋았다고도 하는 분들이 있는 반면
바나산을 빼면 너무 볼 것이 없어 심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가서 보고 느껴보자 하고 떠나는 여행으로서
이왕 가는 길에 다낭에서 북쪽으로 차편으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응우옌 왕조의 수도이며 베트남 전쟁 당시에 치열한 격전지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여 있는 고도인
후에(Hue)도 방문하는 여행을 선택하여 가기 위하여 인천공항으로 간다
출국 수속을 마친 후 보딩(Boarding) 시간이 여유가 있어
28번 탑승구 옆에 있는 아시아나항공 라운지로 가
출출함을 달랜 후
시간을 맞추어 항공기에 오른다
인천공항에서 베트남 다낭까지 거리는 2981Km,
비행시간은 5시간 소요 될 예정이다
18:50에 이륙한 항공기는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의 창 밖으로 붉은 노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해외여행 시
항상 이코노미석이 지정석인데
항공사 배려로 모처럼 비지니스석에 앉게 되어
식사를 안심 테이크를 주문하였는데 정말 고급지게 나온다
(안심스테이크는 먹는 중에 순서적으로 나와 사진에 담지 못하였다)
식사 후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잠시 편히 취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깊은 숙면에 빠져 있었나 ???
벌써 창문 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비행기는 베트남에 도달해 다낭 시내 상공을 날고 있었다
다낭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심사대를 향해 가니
입국 심사대에는 여러 개가 있었으나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줄 지어서 있고
이들 중 대부분이 우리 한국인들이다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 뿐만 아니라
여러 대의 한국에서 오는 비행기들이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것 같았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입국 수속을 받고
짐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오니
우리랑 같이 여행할 일행들이 나오질 않아
베트남 현지인 가이드는
우리 보고 기둥 옆에 잠시만 대기하라고 하는데
또 한 참을 기다려야만 했다
저녁 21:40에 다낭 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고 나와서 일행을 기다려 버스에 오르니
밤 23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이번 여행으로 베트남에는 3번째 방문으로
2010년에 하노이를 처음 여행 왔었고 작년엔 호치민을 왔다가 갔었다
어제 자정이 다되어 호텔에 입실하여
늦은 취침에 들었으나
일정을 일찍부터 시작해야 하는 아침되었다
어제 밤에 들어 올 때는 컴컴해서 보지 못했던
우리가 3일 밤을 자야할 삼디 호텔(Samdi Hotel)이다
오늘의 첫 일정은 바나산(Bana Hills)로 가는 일정으로
버스는 바나산을 향해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강을 건너 간다
이 강의 이름은 한강(Han River)으로
우리 서울을 가로 질러 흐르는 한강과 이름이 같다
버스가 정차하더니 가이드가 내린다
달러를 환전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은행이 아니라 금은방이다
한국인이라 은행 거래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아침 시간이라 오토바이 타고 가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베트남에 올 때 마다
엄청나게 오토바이를 타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베트남은 대부분이 오토바이를 타는 일상화된 나라라고 보면 된다
다낭(Da Nang)은 베트남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인 직할시로서
인구는 약 107만명 정도 거주하는 도시라고 한다
베트남에서 외국인들에 대하여 모든 종교의 자유는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공산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외국인의 선교활동은 금지되어 있으며
외국인의 선교활동 발각 시
즉시 추방되거나 강력한 제재에 처해진다고 한다
베트남은 주변국들과 오랜 전쟁치른 나라이기 때문에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 매우 높다고 하며
농담으로라도
민족에 대해 폄하하거나 자존심에 상처주는 말을 하면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특히 공산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현 체재에 대한 비판은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 들이므로
체재에 대한 비판은 절대 삼가하여야 한다고 한다
바나산(Bana Hills) 입구가 보인다
호텔을 나선지 약 1시간 정도 소요되어서 이다
바나산으로 오르는 케이블카 탑승장이다
바나산에 오르는 케이블카 티켓팅 매표소는 2군데로 나뉘는데
횡단보도 건너가서
좌측 건물쪽 매표소는 개인적으로 티켓팅 하는 곳이고
우측 건물쪽 매표소는 여행자 단체 티켓팅 하는 곳이라고 한다
성문처럼 지어진
바나힐로 오르는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가는 입구 정문이다
입구로 들어가
2층으로 오르는 에스컬레이터에 탑승하여 오른다
2층에 올라 건물 밖으로 나가니
예쁘게 꾸며 놓은 정원이 펼쳐진다
여기 정원의 이름은
호이안 정원(Hoi An Garden)이라고 한다
정원 안에는 이쁜 붕어 떼들이 놀 수 있는
수로도 만들어
이 곳을 지나는 여행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조형물도 만들어 놓아
정원을 통과하여 케이블카 탑승장까지는 조금 걷는데
지루하지 않게 걷게 해 놓았다
케이블카 승강장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줄서서 탑승 대기를 하고 있었다
케이블카 승강장까지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나힐(Bana Hills)에 오르는 케이블카 탑승장은 3곳이 있는데
1코스는 호이안역(Hoi An Station)에서
마르세이유(Marseille)역까지 올라 파라다이스 정원의 골든 브리지를 건너 보고
보르도(Bordeaux)역으로 가서 다시 케이블카에 탑승하여
바나힐의 루브르(Louvre)역으로 오르는 방법과
2코스는 드림 스프링(Dream Spring)역에서 석가모니 부처상이 있는
바나(Ba Na)역으로 올라 데바이(Debay)역으로 가서
바나할의 모린(Morin)역으로 오르는 방법이 있으며
3코스는 톡티엔(Toc Tien)역에서 바나힐(Ba Na Hills)에 있는
엘 인도친(L'INDOCHINE)역으로 직접 오르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1번 코스를 선택하여
파라다이스 정원(Paradise Garden)과 골든 브리지(Golden Bridge)가 있는
마르세이유(Marseille)역으로 오르고 있다
건물 뒤로 보이는 골든 브리지를 받치고 있는
손 조형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호이안(Hoi An)역에서 케이블카에 탑승한지 20분만에
마르세이유(Marseille)역에 도착하여
계단을 오르니 넓은 돔(Dom) 안으로 이어진다
돔(Dom)에서 밖으로 나가니
두 손으로 받치고 있는 골든 브리지(Golden Bridge)가 있다
이 다리에서 포즈 좀 취하려 하니
사람들이 계속해서 지나쳐 가기에 셀카로 끝낸다
골든 브리지(Golden Bridge)에서 보는
석가모니 부처상이 있는 케이블카 바나(Ba Na)역 방향이다
골든 브리지(Golden Bridge)를 한바퀴 돌아
보르도(Bordeaux)역으로 가서
바나힐(Bana Hills)의 루브르(Louvre)역 오르는 케이블카에 오른다
보르도(Bordeaux)역에서
바나힐(Bana Hills)의 루브르(Louvre)역으로 가는 케이블카는
급경사를 오른다기 보다는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건너가듯 하며 약간 오르는 케이블카 였다
보르도(Bordeaux)역에서 케이븥카가 출발한 4분 만에
바나힐(Bana Hills)의 루브르(Louvre)역에 도착하여 역 밖으로 나오니
'독수리 동상'이 보인다
이 곳이 원래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프랑스인들의 피서지로 개발된 곳이라 그런가 한다
프랑스에서는 혁명 기간동안에는 닭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나폴레옹(Napol on)이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선포하면서
그는 닭에서 독수리로 프랑스의 상징을 바꾸었다고 한다
"닭은 힘이 없기에 그것은 프랑스와 같은 제국을 상징할 수 없다"라는 이유였다고 한다
계단을 오르니
원형 지붕의 성탑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중앙광장 주위로 둘러 세워져 있었다
위의 사진은 '클럽 레스토랑(Club Restaurant)'이다
오른쪽에 있는 건물은 '클럽 레스토랑(Club Restaurant)'이고
좌측에 있는 건물은 '판타지 파크(Fantasy Park)'이다
바나힐(Bana Hills)의 중앙의 광장으로 좀 더 걸으니 정면에
'메르쿠리우스 프렌치마을 호텔(Mercure French Village Hotel)'이 보인다
바나힐(Bana Hills)는
1920년대 프랑스 식민지 시대 때 프랑스인들의 인기 피서지로서
이 곳에 200채 이상의 빌라가 지어 졌었다고 한다
365일 무더운 기온의 다낭 시내에 비교하여
이 곳은 해발 1500m높이로 선선한 기온을 365일 유지하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에게는 아주 휼륭한 피서지 였다고 한다
바나힐(Bna Hills) 광장 중앙부에는
이 곳을 관리하고 있는 회사의 상징물로
워터블룸(Water Bloom)인 '썬월드(Sun World)' 지구본이 세워져 있었다
바나힐(Bana Hills)가 주목 받게 된 것은
2009년 운행을 시작한
총 길이 5042.6m의 케이블카가 운행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워터블룸(Water Bloom) 뒤로는
성 드니 교회(Saint Denis Church)가 보인다
성 드니 교회(Saint Denis Church) 입구에서 좌측으로 가면
불교 사찰이 있는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성 드니 교회(Saint Denis Church) 입구에서 우측으로 가면
꽃 가꾸는 화원 및 맥주 시음 코너가 있는데
우리는 불교 사찰이 있는 정상으로 간다
골목을 올라가 불교 사찰 쪽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는
새끼 돼지 바베규 요리 상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나힐(Bana Hills)에 올랐으니
정상까지 올라 가보기로 하고
게단을 오른다
여기서부터 종교 존(Spiritual Zone)이라 한다
계단을 올라 조금 걷자 정상 쪽에 9층 석탑이 있다
영풍보탑(靈風寶塔:Linh Phong Spiritual Tower)이라 한다
영풍보탑(靈風寶塔:Linh Phong Spiritual Tower)에서
뒤쪽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영봉선사(靈峯禪寺)라는 라마교 사원이 나온다
영봉선사(靈峯禪寺) 경내에서 바라보니
다낭 썬자 반도의 앞 바다가 보인다
영봉선사(靈峯禪寺)의 대웅보전 옆에 놓여져 있는 석상들이다
영봉선사(靈峯禪寺)의 정원이다
영봉선사(靈峯禪寺)를 한바퀴 둘러 보고
종교 존(Spiritual Zone)이 시작되었던 계단을 내려와
옆 쪽에 있는 휴식 공간에서 쉬어 가기로 한다
다시 성 드니 교회(Saint Denis Church) 앞 광장으로 내려와
입장할 때 맥주 무료시음 티켓을 받았기에
맥주 플라자(Beer Plaza)가 있는
성 드니 교회(Saint Denis Church)의 우측 길로 향한다
평지 길을 걸어 쭉 들어가니 꽃마차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꽃 가게(Fleuriste Flower Shop)가 있는 거리이다
꽃 마차 있는 광장 그 앞에는
커다란 돔(Dom)으로 맥주 플라자(Beer Plaza)가 있다
이 곳에 맥주시음 행사를 하나 하고
맥주 플라자(Beer Plaza) 돔(Dom) 안을 보니
사람들이 한 사람도 안 보인다
맥주 시음 행사로 맥주를 따라 주는 곳은
맥주 플라자(Beer Plaza) 옆에 있는 작은 건물에서 하고 있었는데
일반 맥주와 흑맥주를 행사하고 있었다
우리는 시음 쿠폰을 제출하고
흑맥주를 선택하여 목마름을 해소하는데
무덥던 날씨에 차가운 맥주라 온 몸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맥주 플라자(Beer Plaza) 옆의
파라솔에서 30분 정도 앉아 맥주를 시음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성 드니 교회(Saint Denis Church) 앞
워터 블룸(Water Bloom)이 있는 광장으로 다시 나오니
공연 복장을 한 무용수들이 우리 앞을 떼지어 지나간다
공연을 시작하려나 하고 발길을 멈추고 기다려 본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무용수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공연을 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가보질 않았던 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골목 끝에서 보니
바나힐(Bana Hills)를 더 크게 대규모 증축하고 있는
공사 현장이 보인다
바나힐(Bana Hills)에서 하산하는 케이블카를 탄다
바나힐(Bana Hills)에서 아래로 직접 하산하는 케이블카로
엘'인도친(L'INDOCHINE)역에서 톡티엔(Toc Tien)역으로 바로 내려오는
케이블카로 내려오는 도중 폭포도 보인다
그러나 톡티엔(Toc Tien)역은
바나힐 매표소가 있는 곳에서 최고로 멀리 있는 케이블카 탑승 역이기에
에스컬레이트도 여러번 갈아 타야 하고
드림 스프링(Dream Spring)역을 거쳐서 나오기 때문에
다른 역에 비교하여 걷기도 많이 걸어야
매표소가 있는 정문까지 도착한다
바나힐(Bana Hills)에서 나와 식사 후
약 1시간 정도 이동하여 호이안(Hoi An)으로 간다
호이안(Hoi An)은 인구 8만명 정도 되는 소도시로서
호이안에서 구시가지로 가기 전
베트남 고기잡이의 소형 어선으로 바구니 배인
틴퉁(투잉퉁:Thuyên Thúng)을 타러 선착장으로 간다
바구니배 틴퉁에서는 그늘이 없기 때문에
차에서 내릴 때
베트남 모자인 논라(Non La)를 하나씩 쓰고 가라고 선물로 준다
바구니 배라서 타기 전에는
중심이 안 맞으면 뒤집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불안한 마음도 있었으나
물이 새는 곳도 없고 의외로 안정되어
탈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들이 탑승을 완료하자
큰 앰프 스피카를 실은 틴퉁이 우리나라 트로트를 크게 틀고
좁은 수로에서 앞서 나가고
그 뒤로 우리가 탄 틴퉁이 줄을 지어 따른다
좁은 수로에서 들어오는 틴퉁들과 비껴나가며 얼마나 갔을까
강(江)인지 호수인지 큰 수로가 나온다
그 곳에서 각 일행들의 틴퉁(투잉퉁:Thuyên Thúng)들끼리
숲 한 구석에 자리들을 잡더니
앰프 스피커에서 나오는 트로트 음악의 볼륨을 더욱 키운다
뱃사공은
춤도 추고 따라 부르기도 하며 흥을 돋구며 한참을 논다
수로 한 가운데에 틴퉁(투잉퉁:Thuyên Thúng)들이 많이 모여 있다
우리도 그쪽을 향해 노저어 간다
틴퉁(투잉퉁:Thuyên Thúng)이 한 대 가운데 있고
관광객 틴퉁들이 빙둘러 구경하고 있었다
갑자기 서서히 틴퉁(투잉퉁:Thuyên Thúng)을
제자리에서 돌리기 시작하더니
세차게 돌리는데
틴퉁(투잉퉁:Thuyên Thúng)을 지그재그로
엄첨 빠르게 물에 빠질듯이 돌려댄다
대단한 틴퉁 타기에
주위에서 박수가 쏟아지고
팁(Tip)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주는 것 같다
우리가 그 곳을 빠져져 나오자
다른 틴퉁들이 그 곳으로 몰려들 든다
틴퉁(투잉퉁:Thuyên Thúng)을 약 40분 정도 타고
한바퀴 돌아 출발했던 선착장으로 되돌아 온다
틴퉁(투잉퉁:Thuyên Thúng) 타기를 마치고
도자기 마을로 향한다
도자기 마을은 호이안 시내를 흐르는 투본강(Sông Thu Bôn)에서 상류 쪽인
호이안 시내에서 떨어진 변두리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다
도자기 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전동카트(Electromotion Cart)가 대기하고 있었다
전동카트(Electromotion Cart)를 타고 골목길을 조금 들어가니
도자기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 작은 광장이 나온다
15세기 무렵 호이안은 다른 주변 국가들과 무역이 왕성하게 교역하던 지역으로
그 때 당시에 도자기 마을은 크게 번성했던 곳이라 한다
현재는 외국의 도자기에 밀리고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많이 축소되어지고 문을 닫은 곳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도자기 및 목공예 기념품 상점들과 도자기 공예 체험장 등이
운영되고 있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여행을 하면서 그 곳 방문 기억을 할 수 있도록
항상 조그마한 것으로 기념품을 사는 습관이 있어
도자기 기념품 가게로 들어 왔는데
적토 만든 도자기 기념품들을 빗어내기만 했지 유약 처리 및 구어내지 않아
손에 붉은 가루가 묻는 정도라서 기념품으로 구입하지는 않았다
도자기 마을에서 투본 강변으로 걸어 나와
유람선에 올라
투본강 투어(Thu Bon River Tour)에 들어간다
투본강(Thu Bon River) 투어는
도자기 마을에서 탑승하여 껌킴다리(Cău Căm Kim)를 지나
호이안 새벽시장 꿀망고가 있는 선착장까지
유람선을 타고 가는 코스이다
투본강(Sông Thu Bôn)은 꽝남성과 꽝응아이성의 경계에서 발원되어
계속 흘러 호이안을 거처 남중국해로 흘러 가는 강이다
투본강 계곡은
700년부터 1471년 베트남의 정복 때까지 참파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꾸어다이치엠은 호이안에 있는 강의 어귀에 위치한
참파의 항구였다고 한다
호이안에서 킴봉(Kim Bŏng)지역 섬으로 건너가는
껌킴다리(Cău Căm Kim)를 지나고 있다
투본강 투어는 유람선을 타고
호이안 시내 강변과 껌킴(Căm Kim)섬과 깜남(Căm Nam)섬의 강변의
아늑함을 보며 투어를 즐길 수 있다
우리가 타고 있는 유람선과 같은
유람선이우리가 왔던 방향으로 스쳐 거슬러 올라 가고 있다
호이안 새벽시장이 있는 선착장이 보인다
약 30분 정도 시간이 흘러 선착장에 도착하여
투본강 유람선 투어를 마친다
우리가 타고 온 유람선을 뒤로 하고
호이안 구시가지로 향한다
선착장 주변에는 시장으로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구시가지 골목으로 들어선다
호이안 구시가지는
참파 왕국에서 구엔왕조 시대를 거치는 동안
중국, 인도, 이슬람 세계를 연결하는 국제적인 무역항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16~17세기에는 일본인 상인들이 많이 드나들어
일본인 마을이 생겨나기도 하여
전성기에는 호이안(Hoi An)에 일본인이 1000명 이상이 살았으나
에도 막부 시대에 쇄국정책으로
일본인 마을이 쇠퇴하여
현재는 당시 모습이 거의 남아있지 않고
내원교(일본교)와 외곽에 일본인 묘지만인 그 역사를 전한다고 한다
'떤끼 고가(Nhā Cō Tān Kŷ)'로 들어 간다
19세기 초에 지어진 가옥으로
입구가 좁고 안쪽으로 긴 호이안의 전통적인 건축이라고 한다
베트남 전통가옥 형태에
게 껍질모양의 천장을 한 일본 건축기법과
곳곳에 쓰인 한자 등 중국 건축기법이 어우어진
호이안의 전통가옥이라 한다
떤끼 고가(Nhā Cō Tān Kŷ) 안에는
한쪽에는 각 국에서 온 여행자들의 많은 명함이 붙어 있고
노란 표시로 순차적으로 붙여 놓았는데
이 표시는 투본강이 홍수로 범람했을때 물에 잠겼던 표시라고 한다
떤끼 고가(Nhā Cō Tān Kŷ) 문 앞에서 쳐다보니
투본강이 바로 앞에서 흐르고 있다
'광조회관(廣肇會館:Hǭi Quán Quáng Dông)'으로 간다
1786년 광동성 출신 화교들이 관우를 모시기 위해 건립한
사당이자 집회 장소라고 한다
광조회관 안에는
삼국지에시 도원결의 형제인 유비, 관우, 장비의 그림이 걸려 있다
'내원교(內遠橋:Cȁu Lai Viḕn)'이다
일본인이 세운 목조 지붕 다리로서 일명 '일본교'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이 다리가 일본인 거리와
중국인 거리를 연결하는 다리 였다고 하며
입출구에 각각 원숭이 조각상과 개 조각상이 양쪽 다리를 지키고 있다
다리 가운데에는 항해의 안전을 기원한 까우 사원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머리는 인도, 몸통은 베트남, 꼬리는 일본에 둔
아주 큰 꾸(Cu)라는 괴물이 살았다고 하는데
이 괴물이 움직이면 홍수나 지진이 발생한다고 한다
꾸의 약점이 있는
이 곳에 내원교를 세웠다고 한다
내원교를 건너가니 '풍흥고가(Phung Hung Old House)'가 나온다
200년전에 풍흥이라는 거상이 지은 가옥이라 한다
풍흥고가 2층으로 올라가
작은 창문으로 바라보니 옛스러움이 가득 묻어있어 보인다
풍흥고가 2층의 모습이다
베트남, 중국, 일본의 건축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형태로 건축된 집이며
현재도 그의 후손이 살고있는 집이라고 한다
풍흥고가 2층의 베란다로 나와
거리의 모습을 본다
많은 관광객들이 거리를 왕래하고 있었다
다시 내원교(內遠橋)를 건넌다
저 투본강 건너편이 건물 사이가 호이안 야시장이 드러서는 곳이라 한다
호이안의 '쩐푸(Tran Phu)거리' 이다
호이안 야시장으로 가기 전 너무 무덥고 끈적거려
에어콘이 있는 저녁식사 장소로 미리 가서 쉬자고 이 길을 가는데
짚풀로서 엮어 올린 지붕의 좌판 기념품 상점들이
호이안의 구시가지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쩐푸(Tran Phu)거리'에는 자동차들의 운행을 통제하고 있다고 한다
운행 수단은 오토바이, 자전거, 씨클로 등으로
관광객들은 씨클로를 많이 탄다고 한다
'쩐푸(Tran Phu)거리'를 7~8분 걸어 저녁을 예약해 놓은 식당에 도착한다
베트 타운(Viet Town)이라는 베트남 음식 전통식당으로
정원에는 야경 촬영에 예쁘도록 꾸며 놓았다
시원할 줄 알았던 음식점도
넓은 공간에 에어콘은 약하고 선풍기는 고정되어 있어
생각보다 시원하지 않아
밖으로 나와 그늘 밑에 있는 것이 더 시원하였다
음식점에서 나와 다시 '쩐푸(Tran Phu)거리'를 걸어
내원교 앞을 지나
호이안 야시장으로 가기 위하여 '안호이(An Hoi)다리' 건너 간다
'안호이(An Hoi)다리'에서 바라보는 투본강(Thu Bon River)이다
나룻배를 타는 관광객들이 많이 보인다
'안호이(An Hoi)다리'를 건너오니
강변에는 파는 물건들을 깔아 놓고 관광객을 호객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여기가 투본강변 구시가지 관광을 하는
나룻배를 타는 선착장이다
나룻배도 여기서 쳐다보고 있는데 '타라'고 호객행위를 한다
아직 어둠이 깔리지 않았지만
길거리 좌판의 상점들이 하나둘씩 물이 켜지기 시작한다
호이안 야시장에 불이 하나둘씩 켜지니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며 길거리가 활기찬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호이안 야시장이 들어서는 길이는
300m 정도라고 한다
야시장에서 특별히 무엇을 살일은 없지만
이쪽 저쪽 기웃기웃 거리며 한바퀴를 돌아서 나오니
투본 강변에는 어둠이 깔리고
안호이 다리는 황금색 조명으로 강물에 비추어 멋을 더하고
호이안 야시장의 주변의 음식점들과 기념품 상가들이 밝혀 놓은 불들은
아름답고 화려한 거리를 만들고 있었고
많은 인파들이 오가는 거리는 활기차게 변하여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호이안(Hoi An)을 떠날 시간이 다되어
투본강(Thu Bon River)에 소원등을 띄우고 다낭(Da Nang)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호이안(Hoi An)에서 출발한지 1시간 정도 되어서
다낭(Da Nang)에 도착하여
한강(Han River)의 용다리(Dragon Bridgr)에 진입한다
호이안(Hoi An)에서 다낭(Da Nang)까지 거리는
약 30Km정도라고 한다
지난 밤에 호이안에서 돌아와
푹자고 일어나니 오늘 아침을 상쾌하게 맞이한다
오늘은 베트남의 최후의 왕조였던
응우옌 왕조의 수도이자
베트남 전쟁시 치역한 격전지였던 '후에(Hué)'를 여행하는 일정이다
다낭(Da Nang)에서 후에(Hué)는 북쪽으로 약 100Km 정도가 넘는 거리에 위치하며
버스로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다낭(Da Nang)에서 후에(Hué)로 가는 길은
근래에 뚫린 하이반 터널을 통과하여 가는 방법과
예전부터 있던 왕래하던 길인 하이반 고개를 넘어 가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하이반 고개(Hai Van Pass)를 넘어
후에(Hué)로 가는 것을 선택하여 고개를 오른다
아니 선택하였다기 보다는
우리의 예쁜 가이드가 멋진 길을 보여 주겠다고
이 하이반 고개(Hai Van Pass)로 데리고 가고 있는 것이다
하이반 고개(海雲岾:Hai Van Pass)는
베트남과 라오스와 국경을 나누며 남북 길게 1100Km 뻗어 있는
안남산맥(安南山脈)의 중부에서 동쪽의 바다까지 뻗어나가
하이반(Hai Van) 곶과 손챠 섬(Hòn Son Chà)을 형성하는 곳에서
베트남의 중부에 위치하여 남북으로 가르는 고개가
하이반 고개(Hai Van Pass)이다
하이반 고개(Hai Van Pass)를 오르다 보면
해안선 아름다운 풍경과
저 멀리 바다 건너편으로 다낭 시내를 볼 수 있다
하이반 고개(海雲岾:Hai Van Pass) 정상에 오르니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곳에 버스는 주차를 한다
찻길 건너편의 언덕 위에는 성문과 같은 누각이 보여
그 쪽으로 오른다
베트남이 남북으로 갈리어 전쟁하던 당시 포진지로서
고지 탈환을 위해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며 수시로 주인이 바뀌었던 진지였다고 한다
진지 위로 오르니 벙커(Bunker)도 보인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
이 곳을 어느쪽이 차지하느냐에 따라서
전쟁의 승패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되어 치열한 전투가
오랜기간 벌어진 전역지라고 한다
계속해서 여행자들이 몰려든다
하이반 고개(海雲岾:Hai Van Pass)는
내셔널지오 그래픽 트래블러에서 꼭 가보아야 할 50곳 중에
하나로 선정된 적이 있다고 한다
진지에서 내려와
후에(Hué)로 가기 위해 다시 버스에 오른다
하이반 고개(Hai Van Pass) 정상에서 북쪽에 있는 도시
후에(Hué)를 향해 내려 가며 보는 바다이다
베트남 국토에서 하이반 고개를 경계로
남북 베트남 간의 기후의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겨울 (11월 ~ 3월) 동안
하이반 고개의 남쪽은 기온이 높고 공기는 건조하지만
북쪽은 한랭하고, 습도가 높다고 한다
하이반 고개를 다 내려오니
백사장을 낀 아름다운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랑코베이(Lang Co Bay)이다
랑코베이(Lang Co Bay)가 있는 마을 옆에
고가도로가 보이는데
하이반 터널(Hai Van Tunnel)에서 나와 후에(Hué)로 가는 도로이다
아름다운 랑코베이(Lang Co Bay)는
해안 반도의 끝단인 안쿠(An Cu) 지역의 해변으로서
길게 늘어선 모래사장 해안 중에 일부이다
베트남(Viet Nam)에 대해서 알아보자
국토 면적이 331,210㎢로 우리 남북한이 합쳐진 한반도 면적(223,348㎢)보다
약 1.5배 큰 국토를 가진 국가이다
인구는 약 9650만명으로 1억명에 가까이 거주하고 있으며
민족 구성으로는 베킨족이 86%이며
나머지는 많은 여러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와 의회 형태는 1992년 개정된 헌법에 따라 사회주의 공화제이며
단원제로 베트남 공산당이다
국가 최고 권력기관은 국회로 5년 임기로 보통 선거를 통해 선출하며
국회에서 주석(主席)을 선출하며
주석은 국회에서 부주석과 최고인민재판소장을 임명과 해임권을 갖는다
가장 중요한 정치기구는 공산당이며 당원이 국회의원 후보를 선출하며
주요 정책은 전권을 가진 공산당 정치국이 결정한다
사회주의 체재를 가진 나라이나 종교의 자유는 가지는 나라로서
베트남의 국민은
불교 80%, 로마가톨릭 10% 정도를 믿고 있다고 한다
국가 GDP는 약 2603억 100만 달러(세계 45위)이고
1인당 GDP는 2551달러(세계 131위)로 현재는 가난한 국가이지만
경제발달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어 미래가 있는 국가이다
<대한민국: 국가GDP 1조6566억 달러(세계11위), 1인당 GDP 31,940달러(세계29위)>
수도는 하노이(Ha Noi)이며 공식 언어로는 베트남어를 사용하며
기후는 하이반 고개를 중심으로 하여
북쪽은 아열대성 기후이고
남쪽은 열대 몬순 기후라고 한다
다낭의 호텔에서 출발한지 2시간 50분 만에 후에(Hué)에 도착하여
식사부터 하러 음식점으로 간다
이 곳에서 후에(Hué) 현지식으로 먹다가
옆 테이블에서 똠양꿍(Tom Yum Kung)을 먹는 것을 보고
한 그릇 달라고 하여 먹는다
똠양꿍은 타이의 대표 음식 가운데 하나로, 새우와 채소, 레몬즙, 향신료 따위를
넣고 끓인 국물 요리로서
똠(Tom)은 끓이다, 양(Yum)은 새콤하다, 꿍(Kung)은 새우를 뜻한다고 한다
식사 후 씨클로(Xich Lo)에 올라 탄다
후에(Hué)는
'평화의 도시'라는 뜻의 '딴 호아(Than Hoa)'로 불렀다고 하며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1802~1945)의
수도가 된 이후부터 현재의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후에(Hué)에 거주하는 인구는 35만명 정도 거주한다고 하는데
베트남 전쟁 당시 남과 북의 최대 치열한 격전지로서
도시 전체가 대부분 포격으로 황폐하여 졌으나
후에의 가치을 알고 관광지로 개발하여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였다고 한다
후에(Hué)는
143년 동안 응우옌 왕조의 수도로서 역사는
1687년 후에에서 5Km 북동쪽에 바오 빈(Bao Vinh) 마을에
도시의 성곽이 건설된 이후
1744년 이후 응우옌(阮) 씨(氏) 가문이 이 곳을 지배하였으며
1802년 프랑스의 도움으로 응우옌 왕조(阮 王祖)를 건국한
가륭제가 후에(Hué)를 수도(首都)로 정하였다고 한다
1885년 프랑스는 통킹 지역에 대한 종주권을 왕실로부터 거부 당하자
후에를 포위하고
3일간 지속적으로 공격하여 왕궁 장서각을 파괴하고
귀중품을 탈취하였다고 한다
이후 응우옌 왕조 13대 마지막 왕인 바오다이(Bao Dai)가 다스리던
1945년까지 프랑스 등 여러나라의 국정간섭을 받으면서도
수도(首都)로서 명맥을 이어갔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1955~1975년) 당시에는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이 차례로 후에를 탈환하면서
무고한 국민들이 살해 당하는 살육현장이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후에(Hué)는
흐엉강(Sông Huöng)을 사이에 두고
왕궁이 있는 북쪽의 구시가지와
남쪽의 신시가지로 나뉘며
2개의 다리인 짱띠엔 다리와 푸쑤언 다리가 신,구시가지를 연결하고 있다
씨클로(Xich Lo)를 타고
푸쑤언 다리(Phu Xuan Bridge)를 건너
좌회전을 하여 한적한 길로 들어선다
조금 가다가 주차장으로 들어서니 씨클로(Xich Lo) 투어가 끝나고
그 곳에 대기하고 있던
전동카로 갈아타고 왕궁으로 향한다
전동카가 왕궁 길로 접어드니
우측으로 국기대가 보이고
앞쪽 매표소 좌측으로
응오문(왕궁문)이 보인다
프래그 타워(Flag Tower: Cǭt Cö)는
'왕의 기사(King's Knight)'라고 불리우는 37m의 국기 게양대이다
1809년 가륭제 때에 만들어졌고 1831년 태풍에 파괴된 후 다시 만들어졌으나
1947년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1967년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3층으로 만들어 졌는데
1층은 섭리, 2층은 인간세계, 3층은 천국을 상징한다고 한다
응오문(Cúa Ngo Món)이다
성벽의 동서남북에 4개의 문 중에 '왕궁의 정문'으로
남쪽에 있는 문이다
태양이 정상에 오는 남문을 정문으로 삼았기 때문에
영어로 정오(Noon)문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응오문(Cúa Ngo Món)은
1833년 민망 왕(Lăng Minh Mạng) 시기에 완성된 왕궁의 정문으로
들어가는 입구 문 5개 문 중에 노란색 가운데 문은 왕,
그 옆의 두문은 고관 대작, 사이드 쪽의 두문은 일반 신료들이 통행하는 문이라 한다
문의 누각인 푸 반 라우(Phu Van Lau)는 과거에 급제한 자들에게
왕이 상을 하사하던 장소 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문은 1945년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왕 바오다이(Bao Dai)가
종말을 고한 문이라고 한다
응오문(Cúa Ngo Món) 안으로 들어서니
패방(牌坊) 뒤로 태화전이 보인다
태화전(太和殿)은
1803년 응우옌 오앙조 초대 왕 가륭제가
중국 자금성을 모델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규모가 너무 작아 보인다
왕의 즉위식이나 국빈 영접이 이 곳에서 거행되었다고 한다
태화전(太和殿)은 길이는 43.3m로
두개의 당으로 나눠지는데 후방 중앙에 왕이 앉아던 옥좌가 있다
구엔 왕궁(Dại Nǭi)은
143년간 응우옌 왕조의 13대 왕에 걸쳐 이어진
왕조의 숨결이 깃든 왕궁이라 한다
베트남어로 '다이 노이(Dại Nǭi)'라고 부르는네
'커다란 궁전'이란 뜻이라고 한다
구엔 왕궁(Dại Nǭi)은
1803년 초대왕 가륭제의 명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하여
1833년 민망 왕(Lăng Minh Mạng) 때 완성 되었다고 한다
면적은 5.2㎢이며 프랑스 건축가 바우반(Vauban)이 설계하였으며
프랑스식과 베트남식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건축되었다고 한다
왕궁 안에는 총 5개의 사당이 있는데 그 중에
응우옌 왕조 왕들을 모시는 테 미에우(Thé Miéu) 사당으로 들어가는 입구
'응상문(應祥門)'이다
이 문을 들어가면 테 미에우(Thé Miéu) 사당이 있고
그 앞 광장 맞으편으로는 현임각(Hién Lăm Căc)이 보인다
'응상문(應祥門)'을 들어서니
나무들 뒤로 테 미에우(Thé Miéu) 사당이 보인다
테 미에우(Thé Miéu) 사당은
우리나라의 종묘(宗廟)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테 미에우(Thé Miéu) 사당에는
응우옌 왕조의 13대에 걸친 역대 왕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테 미에우(Thé Miéu) 사당의 광장 남쪽의 맞은 편에는
'현임각(Hién Lăm Căc)'이 있다
현임각은 응우옌 왕조를 창건하는데 공신(功臣)들을 기리는 곳이며
그 앞으로 뜰에
9개의 청동 '세발 솥'이 놓여져 있다
1835~1837년 주조된 높이 2m, 지름1m의 세발 솥은
왕조의 정통성과 부동성의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고, 인, 장, 영, 의 순, 선, 우, 현 이라 쓰여 있는데
세상의 만물을 지칭하는 것이라 한다
구엔 왕궁에서 나와 3Km 정도 떨어진 흐엉강(Sông Huöng) 언덕에 있는
티엔무 사원(Chúa Thién Mụ)으로 간다
티엔무 사원(天姥寺:Chúa Thién Mụ) 앞에 도착하니
7층 8각 석탑이 계단 위로 눈에 들어 온다
이 티엔무 사원(天姥寺:Chúa Thién Mụ)이 유명한 이유는
1963년 공산당 정권에서 불교 탄압에 저항하여 사이공에서 분신으로 소신공양한
틱꽝득(釋廣德) 스님이 주지로 있던 사원이라서라고 한다
티엔무 사원(天姥寺:Chúa Thién Mụ)은
1601년 최초의 광남국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당시의 투안호아(후에)의 호족이었던
응우옌 호앙이 세웠다고 한다
응우옌 가문은 당시 하논이를 후 레 왕조의 관리였지만
실제적으로는 베트남 중부의 독립적인 통치자나 다름이 없었다고 한다
사원이 세워진 전설에 의하면
응우옌 호앙이 여행으로 이 곳을 지나던 중에
빨간색과 파란색 옷을 입고 이 곳에 앉아서 빰을 문지르고 있던
천모(天姥)라는 노파가
"나라의 번영을 기원하기 이 언덕에 탑을 세울 것"을 예언하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응우옌 호앙은 이 곳에 사원을 지으라고 명령하여
천모사 즉 '티엔무 사원(天姥寺:Chúa Thién Mụ)'이 세워졌다고 한다
이 사원에 주지로 계시던 '틱꽝득(釋廣德:1901~1963) 스님'이
분신으로 소신공양을 하신 이유는
자국민의 불교도가 90%였던 남베트남에서
통치자였던 응오 딘 지엠(1901~1963)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가톨릭 신자들로서 매우 심한 불교도를 탄압하는 정책을 펼쳤다고 한다
이에 틱꽝득(釋廣德) 스님은 불교 탄압정책을 항의하는 뜻으로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호치민)의 미국 대사관 앞에서
1963년 분신 자살을 하였다
이 모습은 남,북 베트남 언론 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언론에 공개 되었는데
화염 속에서도 전혀 요동없이 정좌 자세로 죽음에 이르는 모습에
많은 세계인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남베트남의 응오딘 지엠(1901~1963)대통령은 독신이었기에
동생 응오딘 누의 부인이었던 마담 누(Madame Nhu)가 실제적인 영부인
역할을 하였다고 하는데
미국 언론과 인터뷰를 하며 이 사건을 "땡중의 바베큐 쇼"라고 망언을 하여
"드레곤 레이디"라는 악명을 얻었고
미국의 존 F.케네디 대통령이 분개하였으며
베트남의 국민들로부터 이 정권에 대해 등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대통령 '응오딘 지엠'과 동생 '응오딘 누'가 군부로부터 암살 당하였다고 한다
'틱꽝득(釋廣德) 스님'이 분신을 하며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본인의 시신이
"앞으로 쓰러지면 흉조로서 해외로 승려들을 대피시키고
뒤로 쓰러지면 우리의 투쟁은 승리하여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뒤로 쓰러지셨다고 한다
사건 뒤에 '틱꽝득(釋廣德) 스님'의 유해를 수습하여 화장을 하였는데
4000℃에서 6시간을 소각하였으나
심장은 타지 않고 멀쩡하게 남아 있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정권에서는 민중 반발의 활화산이 될 것을 두려워하여
비밀경찰청장인 쩜낌때웬을 파견하여 심장에 황산을 뿌렸으나 손상이 없어
강탈하려고 하였으나
스님들과 제자들이 스웨덴 은행에 맡겨 사수하였으며
지금은 하노이 국립은행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틱꽝득(釋廣德) 스님이 살아 생전에 타던 차라고 한다
티엔무 사원(天姥寺:Chúa Thién Mụ)을
한 바퀴 돌아서 나오다
큰 나무에 기생하듯 붙어서 꽃이 피워있는 모습을 본다
꽃이 떨어짐도 꽃잎이 한잎 한잎씩 떨어지지 않고
전체 꽃으로 떨어짐을 보고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 무궁화꽃을 닮았다
티엔무 사원을 빠져 나오며 보는
티엔무 사원(天姥寺:Chúa Thién Mụ)의 상징인
7층의 8각 탑이다
21m의 높이로 층마다 불상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티엔무 사원에서 버스를 타고
흐헝강(Huong River)의 다비엔 다리(Cău Dă Viên)를 건너
카이딘(Lăng Khải Dịnh) 황제릉으로 향한다
카이딘(Lăng Khải Dịnh) 황제릉은 후에 시내에서 1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카이딘(Lăng Khải Dịnh) 황제는 1916년에 즉위하여 1925년에 승하한
응우옌 왕조의 제12대 왕이다
이 릉(陵)은 1920년 공사를 시작하여 1931년까지 12년에 걸친 공사 끝에
완공되었으며
프랑스의 영향으로 유럽 양식과 베트남 양식이 혼재되어 건축되었다고 한다
왕릉 입구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 정문을 통과하여
용이 새겨진 난간 사이로 36계단이 있고 계단을 오르면
말, 코끼리와 문관과 무관 석상이 세워져 있는 광장에 도달한다
그 중앙에는 황제의 위엄을 기리는 2층 짜리 팔각형 사당이 있고
그 양쪽에는 응우옌 왕조의 위엄과 권위를 표현하는
유럽식 첨탑이 높게 세워져있다
또 계단을 오르면 핵심 전각으로
3개의 홀로 나눠진 천정궁(天定宮, Cung Thien Dinh)이 있다
천정궁 안에는 카이딘 왕의 시신이 잠들어 있는
계성전(啓成殿) 있고
그 방의 내부 벽과 천정과
시신이 안치된 온 방 안은 도자기와 유리로 색색이 섬세한
모자이크 장식으로 매우 화려하게 꾸며 놓은 것이
프랑스식으로 그 어떤 능(陵)보다 이색적으로 구별된다고 한다
시신이 안치된 관 위에 옥좌에는
청동에 금박을 입힌 1톤 무게의 카이딘(Lăng Khải Dịnh) 왕이 앉아 있다
카이딘(Lăng Khải Dịnh) 왕은
1916년에 즉위하여 1925년에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고 하며
죽을 때는 심한 아편 중독자였다고 한다
카이딘(Lăng Khải Dịnh) 왕은 자신이 재위 시절인
1920년에 자신의 왕릉을 건설하기 시작하여 1925년 그가 죽은 후
그의 아들이자 응웅옌 왕조의 제13대 마지막 왕인 바오다이(Bao Dai)가
1931년 카이딘 황제릉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바오다이(Bao Dai) 왕은 자신의 변변한 무덤조차 남기지 못하였다고 한다
카이딘(Lăng Khải Dịnh) 황제릉에서 나와
다낭(Da Nang)으로 약 100Km의 길을 다시 되돌아 간다
후에(Hué)를 떠나가며
남의 힘있는 강국의 힘을 빌려서 국가를 건국하여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비참한 일인지
후에의 마지막 왕조였던 응우옌 왕조의 143년의 13대에 걸친
서양의 강국들의 내정간섭과
제2차 세계대전의 일본의 수탈에서
힘 없는 왕조의 서글픔이 느껴지는 하루였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조선 말기의 비참함이 떠올랐다
국가에 힘이 없다 보니
왕비가 구중 궁궐에서 시해 당하고
왕이 궁궐을 떠나 다른 나라 대사관에 가서 숨어 살아야 했고
왕자와 공주가 일본으로 볼모로 끌려가고
그러한 국가의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살 길을 찾아 주변 나라로 떠나가던
우리나라의 비참하게 서글펐던 시대가 떠올랐다
공동묘지가 눈에들어 온다
묘마다 십자가가 있는 것으로 보아
기독교 공동묘지로 보인다
하이반 터널(Hai Van Tunnel) 입구에 도착한다
랑코베이(Lang Co Bay) 부근이다
깜박 졸았는데
버스가 이 곳에서 정차하는데 버스안 분위기가 이상하다
경찰이 차를 세웠다고 한다
무슨 일인지 주위에 물어보니
하이반 터널(Hai Van Tunnel) 안을 지나 올 때
과속과 넘지 말아야할 차선을 넘는 위반을 하였는데
경찰이 이 곳에서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버스 기사는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가서 한참을 있다가 온다
베트남에서 경찰은 공산 국가이다 보니
대단한 권력의 힘이 있다고 한다
고개 길을 내려가는 동안 버스 안은
알지 못하는 무거운 분위기가 흐른다
벌금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급료를 받는 운전기사에게는 굉장히 부담이 가는 벌금제라고 한다
다낭(Da Nang) 시내에는 2개의 강이 흐르고 있다
도심 중앙을 흐르고 있는 한강(Han River)와
도심 외곽을 흐르고 있는 쿠데강(Cu De River) 있는데
우리가 탄 차는 쿠데강(Cu De River)의 남오 다리(Càu Nam ô) 위를 지나
다낭 중심가로 향하고 있는 중 이다
다낭 앞바다 해안 도로를 지나
다낭 중심가를 흐르는 한강(Han River)에 놓인 다리 중
바다와 접한 맨 끝단의 다리인
투안 푸억 다리(Thuan Phuoc Bridge)에 진입한다
후에(Hué) 카이딘 황제릉에서 출발한지
하이반 터널 출구에서 대기 시간까지 포함하여 2시간 40분만에
다낭(Da Nang) 시내에 도착한다
저녁 식사를 한정식으로 마친 후
다낭시 한강(Han River) 변의 밤거리를 달려
다낭 한강(Sòng Hàn) 유람선 야경 투어를 하기 위하여
다낭 한강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한다
다낭 한강 유람선 선착장은
한강(Sòng Hàn) 하류쪽 투안 푸억 다리(Thuan Phuoc Bridge)와
한강 다리(Câu Sòng Hàn) 중간 부근인
노보텔 다낭 프리마어 한강 건물과 다낭시 인민 위원회 건물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잠시 대기하다가 유람선에 오른다
유람선은 그리 호화롭지는 않은 배로서
사방이 트여 난간만 있는 배였다
다낭 한강(Sòng Hàn) 유람선 야경 투어 시작하기 전
유람선 난간에 기대어 서서
한강 야경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긴다
강 물결에 흔들리는 불 빛!
한강(Sòng Hàn)변에는 높거나 호화스런 건물들은 없으나
강변으로 늘어서 있는 아담한 건물들에서 발하는 불빛은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발하고 있었다
한강 다리(Câu Sòng Hàn) 밑을 지나자
저 멀리에 용다리(Câu Rṍng)가
화려한 불 빛으로 발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강변 주변으로 늘어서 세워져 있는 광고 입간판도 총천연색으로
강물을 물들여 빛추며
다낭의 한강 야경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용다리(Câu Rṍng)에 유람선이 다가 갈수록
강물이 온통 아름다운 빛을 발하며 출렁거리고 있다
용다리(Câu Rṍng)를 지나치자
커다란 한강(Sòng Hàn) 유람선이 지나간다
저 유람선은 선상 뷔페를 즐기며 야경을 감상하는 유람선이라 한다
쩐티리 다리(Câu Trằn Thị Lý)와 그 뒤로는
아시아파크 대관람차가 보인다
우리가 탄 유람선은 쩐티리 다리에서 뱃길을 돌린다
리턴(Return)하여 선착장으로 가던 중 용다리(Câu Rṍng)를 지나자
다낭의 랜드마크인 '용 머리 분수'가 물을 뿜어 대고 있고
주위에는 분위기가 넘치는 카페 및 레스토랑이 많은
'사랑의 부두'가 보인다
노보텔 다낭 건물과 다낭시 인민 위원회 건물이 보이고
한강 유람선 선착장이 보인다
다낭(Da Nang) 한강(Sòng Hàn) 유람선 관광이 끝나 가고 있다
다낭(Da Nang) 한강(Sòng Hàn)의 야경 투어를 마치고
숙소인 삼디 호텔(Samdi Hotel)로 간다
다낭(Da Nang)에서 마지막 날이라 짐을 꾸리고 나와 버스에 오르니
커피 한잔 마시고 다낭 시내 투어를 하자고 하여
방문한 집이 손짜반도 가는 길의 '칼디 커피(Kaldi Coffee) 전문 직영점' 이었다
'칼디 커피(Kaldi Coffee)'는 본사는
하노이에 있다고 하는데
한국인이 베트남에서 경영이 어려웠던 '넘버원 커피 기업'을 과감히 인수하여
'칼디 커피 그룹(Kaldi Coffee Group)'으로 바꾸고
베트남에서 제일의 커피 전문 기업으로 만드려는 야망을 가진 기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연애인이 이 곳 매니저를 하고 있어
커피에 많은 것 들으며 배우면서 커피 시음을 하고 나온다
칼디 커피 전문점이 있는 손짜반도에서 나오며
첫번째 다리인 '만큐앙 다리(Câu Mân Quang)'이다
이 다리를 건너면 '투안 푸억 다리(Thuan Phuoc Bridge)'로 연결된다
'투안 푸억 다리(Thuan Phuoc Bridge)'를 건너
강변 도로를 달려 한강 다리(Sòng Hàn) 옆을 통과하여
'다낭 대성당'으로 향한다
'다낭 대성당(Nhà thò chính tòa Đà Nẫng)'은
1923년 프랑스 식민 통치 시기 다낭에 건축된 유일한 성당이라고 한다
이 성당은 1923년 2월에 사제 발레(Vallet)가 설계하여
1924년 3월10일까지 아주 짧은 기간에 건축되어 봉헌된 성당이라 한다
피뢰침이 있는 교회 지붕에는
풍향계로 돌아가는 닭 조각상을 만들어 놓았는데
현지인들은 이로 인해 '닭 성당'이라는 의미의
"찐 또아 꽁 가(Chinh Toa Con Ga)"라고 부른다고 한다
다낭 대성당에서 나와 까오다이교 사원으로
이동하던 중 가로수 줄기의 특이함을 보고 카메라에 담았다
'까오다이교(高臺敎:Đạo Cao Đài) 사원'이다
까오다이교는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유교, 도교에서 모티브를얻어 발전한
민간종교로 베트남에 100만명 정도 신도가 있다고 한다
1919년 프랑스 식민 관리로 일했던 응오민 찌에우(Ngo Minh Chieu)가
종교를 창건하여 1926년 공시적인 종교로 인정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 당국은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해 주었지만
감시는 소홀히 하였다고 한다
일본 세력이 진출해 베트남에 들어오자
1940년 프랑스는 주요 사원들을 폐쇄시키고 민족주의 성향의 지도자들을
아프리카 코모로 군도로 추방시켰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로 일본은 까오다이교를 1945년 패전 때까지
자신의 비호 아래 두기도 했다고 한다
'까오다이교(高臺敎:Đạo Cao Đài)'의 교리는
도교와 유교적 요소를 혼합한 대승 종교에서 기인 한다고 하며
최종 목적은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앞 단상 벽면에
사람의 한쪽 눈이 그려진 천안(天眼)이 신비스럽게 쳐다보고 있는데
US 1$ 지폐 뒷면에 그려진 피라미드 위의 빛나는 눈과 같다
천장 쪽에는 예수, 마호메트, 공자, 고타마 등이 함께 있는초상화가 있다
'까오다이교(高臺敎:Đạo Cao Đài)'사원을 나와 오행산으로 향한다
'오행산(五行山)'은
다낭(Da Nang)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12Km 정도이고
호이안(Hoi An)에서는 북쪽으로 약 18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오행산(五行山)은
산 전체가 대리석이기 때문에
'마블 마운틴(Mable Mountain)'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대리석과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라고 한다
오행산(五行山)은 5개 봉우리를 가진 산으로 각 봉우리 마다
금(金:Kim), 수(水:Thuy), 목(木: Mộc), 화(火:Hoa), 토(土:Tho)인
민간 신앙 깃든 자연계 이름으로 붙였다
이중에 수(水:Thuy) 봉우리만 개방되어 있다
오행산(五行山)에 오르는 방법은 가파른 계단으로 오르는 방법과
유료 엘리베이터로 봉우리로 오르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는 봉우리에 오르지 않고
후옌콩(玄空:Huyen Khong) 동굴로 들어 간다
후옌콩(玄空:Huyen Khong) 동굴은
사람이 죽은 뒤 사후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고 한다
죄의 판결을 받는 구역
죄를 정화하는 구역
천당으로 가는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후옌콩(玄空:Huyen Khong) 동굴 안은
구간구간에 불교 신앙으로 꾸며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키시티가르바 보살 왕좌(Ksitigarbha Bodhisattva Throne)가 보인다
키시티가르바 보살은 지장보살을 의미하며
불교의 여러 보살 중 하나로 석가모니 입멸 이후부터 미륵불이 올 때까지
지옥의 중생들을 구제하기로 서약한 보살을 말한다
지옥의 왕들의 궁정(The Court of the hell Kings)이다
죄의 무게를 다는 판결의 저울(Balance of judgement도 있다
천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밑 쪽에는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에 염라대왕이 있다
천당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위에는 구멍이 나 있고 올라가는 계단은 굉장히 가파르다
위에 구멍은 자연적으로 뚫려있는 것이 아니라
미군의 폭격으로 뚫린 구멍이라 한다
천당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부처님들이 있는 제단이 만들어 있는데
이 곳에서 못 볼꼴을 본다
누군가 시주해 놓은 돈이 제단에 놓여져 있었고
그 돈을 어떤 나이 먹은 여자가 손주인듯한 애를 안고 가리면서
슬쩍 가져가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현지인이라 말도 안통하고 해서 쳐다만 보고 있게된 사건이 있었다
'참 나 천당에 가는 길 목에서....'
천당으로 올라가는 길목의 제단 맞은 편에는
작으마한 불상들이 빼곡히 놓여있었다
후옌콩(玄空:Huyen Khong) 동굴 안은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 군인들이 숨어 전쟁을 하던 장소이기도 하여
베트남 전쟁 추모 비석도 있다
'오행산(五行山)'에서 나와 점심 식사 장소로 향한다
오행산에서 다낭 시내로 이동 중 미케 해변(Bâi biên Mŷ Khé)을 지나 간다
미케 해변(Bâi biên Mŷ Khé)은
다낭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해변으로서
포브스에서 선정한 세계 6대 해변 중의 하나로
푸른 바다와 청명한 하늘에 방갈로와 함께 고운 모래 사장이 길게 있고
주변에는 분위기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늘어서 있다
다낭 박물관으로 간다
다낭 박물관은 어제 저녁 한강 유람선 선착장 옆에 있었던
노보텔과 다낭시 인민위원회청사 옆에 위치하고 있다
다낭 박물관은
다낭의 역사 유물 및 문화를 전시해 놓은 곳이라고 하는데
다낭은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라서 어업 및 무역업을 뜻히는 것인지..
장례문화 풍습으로 보이고
서민들의 집에는 배가 있는 것 같은데
교통수단인지 고기잡이 배인지 알 수가 없고
서민들의 일반 생활상 등을 만들어 전시하여 놓았는데
설명을 해 주는 사람도 없고
실내는 왜 그렇게 더운지
대충 한바퀴 돌아서 밖으로 나온다
다낭 박물관에서 나와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다낭시 인민위원회청사' 옆으로 가니 버스기사가 많이 화가 나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청사 옆에 주차해 놓았다가 주차위반에 걸려 딱지를 발급받았다고 한다
'다낭시 인민위원회 청사' 에서 손짜반도(Bán dảo Sỏn Trà)에 있는
링엄사(靈應寺:Chùa Linh Ứng)로 가기 위하여
다시 '투안 푸억 다리(Thuan Phuoc Bridge)'를 건너 간다
손짜반도(Bán dảo Sỏn Trà)는 생김새가
반도 모양이 버섯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버스는 언덕을 올라
링엄사(靈應寺:Chùa Linh Ứng) 9층 석탑이 있는 광장의 주차창에 주차하며
우리는 차에서 내린다
대웅전이 있는 곳으로 가니
분재들로 광장에 줄지어 장식되어 있고
해수관음보살상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링엄사(靈應寺:Chùa Linh Ứng)로 들어가는 일주문으로서
중국풍 패루처럼 세워져 있는 것이 특색이다
해수관음보살상을 찍기 위하여는 스케일이 너무 크고 웅장하여
카메라 렌즈 안에 담기도 쉽지 않았다
해수관음보살 상은
65m 높이로 다낭 시내를 바라보게 세워져 있는데
다낭에 태풍이 년 중에 수시로 자주 몰려와 크게 피해를 주므로
태풍을 막아 달라고 다낭시와 시민들이 함께 세웠다고 한다
해수관음보살 상이 건립된 후로
해마다 몇번씩 오던 태풍이 이상하리 만큼 드물게 온다고 한다
다시 계단을 올라와 일주문을 통과하여 대웅보전이다
링엄사(Chùa Linh Ứng)는 한문으로는 영응사(靈應寺)로서
베트남 전쟁이 끝날 무렵
공산정권이 무서운 남베트남인들이
보트피플 난민들이 되어 세계 각지로 흩어지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이 슬픈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2003년 링엄사(靈應寺:Chùa Linh Ứng)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링엄사(靈應寺:Chùa Linh Ứng)를 건립하면서
18나한상(羅漢像)도 같이 제작하였다고 하며
대웅보전에서 소원을 빌 때는 절대 발설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발설하면은 소원이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링엄사(靈應寺:Chùa Linh Ứng) 9층 석탑은
약간 기울어진듯 있어 베트남의 '피사의 사탑'이라고 하는데
기울어진듯 한것은 부실공사로 인해 그렇다고 한다
링엄사(靈應寺:Chùa Linh Ứng)를 마지막으로
다낭(Da Nang)에서 모든 관광을 마치고
저녁식사로 아리랑 식당에서 한식요리로 베트남 여행 마지막 식사를 마친다
다낭 국제공항으로 향한다
다낭 공항에 도착하여 티켓팅하며 짐을 화물을 부치고
여권 심사를 마치고 게이트로 가서 잠시 대기하다가 비행기에 오른다
베트남 다낭공항에서 인천공항까지는 2981Km
현재시간은 밤 22:50분으로
비행기 출발시간은 23:30분(한국시간 01:30)으로 40분 후에 이륙할 예정이다
기다림 끝에 비행기는 이륙하여
다낭의 밤하늘 위로 날아 올라
인천공항으로 향한다
다낭 공항을 이륙한지 얼마 안되어 잠이 들어 깨어 밖을 내려다 보니
우리나라 제주시 위를 날고 있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6시25분으로
비행시간 4시간 55분 소요되어 인천공항에 도착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