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크로아티아 여행 2

천황봉 2019. 1. 24. 13:20

크로아티아(Croatia)는

2013년 9월에 여행하고 이번 2회째 방문하는 여행국이지만

첫번째 방문할 때에

두브로브니크와 스플리트를 못가보았기에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 곳을 가기에 설레임을 갖고 여행을 시작한다

 

크로아티아(Croatia)로 들어가기 위해

몬테네그로(Montenegro) Debeli Brijeg 국경검문소를 통과하는

대기 시간이 좀 길어졌는데

 

다시 크로아티아 Karasovici 국경 검문소에서도

통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크로아티아(Croatia) 국경 검문소를 통과할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출입국 심사가 다른 국가에 비하여 너무 기다리게 하는 것 같다

2013년도 9월에 처음 입국할 때도

우 기다리게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몬테네그로(Montenegro) 코토르(Kotor)에서

크로아티아(Croatia) 두브로브니크(Dubrovnik)까지는

100Km가 약간 넘는 약 2시간 거리이나

국경 검문소 통과시 여권심사 시간에 따라 늘어 난다고 한다

 

 

크로아티아로 들어와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길의

사이프러스(Cypress) 나무들과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배경이 보이는 구간이다

 

몬테네그로와 국경에서 출발한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그루다(Gruda) 지역을 지나고 있다

 

분지형 평야지대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산악지대와

아드리아 해안을 끼고 뻗쳐 있는 산악지대의 사이의

버스가 한참을 지나는 동안에도 끝나지 않는 분지형 평야지대로

길게 뻗쳐 있는 구간이다 ​

 

몬테네그로와 국경에서 출발하여

좌우편으로 산악지대가 보이는 분지형 평지를 도로를 달리다가

차브타트(Cavtat) 부근에 다달으니

아드리아 해(Adriatic Sea)가 보이는 해안도로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차브타트(Cavtat)'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7세 때의 행정에 따르면

이 지역이 에피다우름(Epidaurum)라고 불렀다고 하며

615경 아바르족(Avar)과 슬라브인(Slavs)들의 공격을 받아

생존자 일부가 북쪽으로 25Km 옮겨가

현재의 '두브로브니크(Dubrovnik)'의 전신인

'라구사(Ragusina)'라는 도시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지금부터는 아름다운

아드리아 해(Adriatic Sea)를 바라보며

두브로브니크(Dubrovnik)를 향해

해안 산악도로를 달려간다

 

두브로브니크(Dubrovnik)는

크로아티아(Croatia) 달마티아(Dalmatia)지방 남부지역의

아드리아 해(Adriatic Sea)에 접한

크로아티아의 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한다

 

두브로브니크(Dubrovnik)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네움(Neum)의 해안 21Km 구간을 사이에 두고

크로아티아 본토와 단절되어 있는 월경지(越境地)이다

 

두브로브니크(Dubrovnik)가

역사에 등장한 시기는

두브로브니크에서 25Km 남쪽 아드리아 해안에 있는

현재 지나쳐 온 차브타트(Cavtat)가 아바르족과 슬라브인들의 2번의 공격을 받아

656년 당시의 지명 에피다우름(Epidaurum)이 완전히 파괴되면서

이들의 공격을 피한 로마인들과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들을 포함한 슬라브인(Slavs)들이

현재의 두브로브니크 해안에 정착하며

'라구사(Ragusina)'라는 마을을 형성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라구사(Ragusina)에 사는

로마인들과 슬라브인들이 합쳐지며 2개의 문명으로 이어졌으며

로마가 멸망한 후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9~12세기 사이는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물리쳐 왔다고 한다

1205년~1358년에는 대부분의 독립권을 갖고도

베네치아(Venezia)의 지배를 받는 속국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두브로브니크(Dubrovnik)가

'라구사 공화국(Respublica Ragusina)'이라고 처음 언급된 것은

1385년이라고 하며

이 도시는 당시에

국적을 가리지 않고 모든 망명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여 주었다고 하며

그들 중에는 영국의 리처드 1세(RichardⅠ:1157~1199년)도 있었다고 하는데

제3차 십자군 원정 때에 베네치아와 독일로부터 갈등으로 인하여

원정 후 귀국하는 길에 피했던 곳이라고 한다

 

'라구사 공화국(Republica Ragusina)'은

두브로브니크(Dubrovink)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14세기부터 1808년까지 이어진 작은 공화국으로서

15, 16세기에는 해상무역으로 번성하였으나

1808년 나폴레옹의 정복활동으로 멸망하였다고 한다

 

두브로브니크(Dubrovnik)는 

나폴레옹에 의해 정복당하고 다시 퇴각한 이후 

1815년 빈(Vienna) 회의를 통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넘어갔으며 

1918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합병되었다고 한다 

1991년부터 1999년까지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인하여 

아름다운 도시가 많은 피해를 입게 되었는데 

당시 유럽의 많은 학자들이 두브로브니크로 달려와 

'인간 방패'의 역할을 함으로서 폐허가 되는 것을 막아내고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고 

유네스코와 국제 사회의 지원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두브로브니크(Dubrovnik) 시내가 

산등성이 뒤로 아드리아 해변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두브로브니크(Dubrovnik) 시가지 앞바다인

아드리아 바다에 

로크룸 섬(Lokrum island)이 보인다 

 

두브로브니크(Dubrovnik)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바다 쪽으로 툭 나온 구시가지가 보인다  

 

두브로브니크(Dubrovnik)에 도착하여 

점심 식사를 하며 바라보는 

반예 비치(Banje Beach)에 많은 파라솔이 보인다 

 

두브로브니크 선착장과 

성벽으로 둘러쌓인 두브로브니크 성벽의 끝단에 

성 이반 요새(Tvrđava Sv.Ivan)가 보인다 

 

레베린 요새(Tvrđava Revelin)의 

플로체 문(Ploce Gate)을 통해 두브로브니크 성안의 

구시가지로 들어간다 

 

육로로 두브로브니크(Dubrovnik) 성벽 안의 

구시가지로 들어 가는 문은 3곳으로 

우리는 '플로체 문(Ploce Gate)'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메인 출입구는 서문인 '필레 문(Pile Gate)'과 

레베린 요새(Tvrđava Revelin)와 민체타 요새(Tvrđava Minčeta) 사이에 있는 

북문인 '부자 문(Buža Gate)'이 있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첫 일정으로 

유람선을 타기 위하여 선착장을 향해 간다 

 

두브로브니크 성벽을 끼고 성안 길을 걷는데 

성벽 위에서 사람이 바라 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두브로브니크 성벽(Gradske Zidine)은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외부의 적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하여 

이중으로 된 성벽을 만들었다고 한다 

총 길이는 2Km에 달하고 

해안 쪽 성벽은 1.5~3m, 안쪽의 성벽은 최대 6m 정도의 두께로 

둘러싸여 있다고 한다 

 

두브로브니크(Dubrovnik) 성벽 안 길을 걸어

올드 포트(Old Port:구 항구) 선착장으로 나왔다

 

유람선을 타고

두브로브니크 앞 바다인 아드리아 해(Adriatic Sea) 유람을 떠난다

 

좌측으로 시청사의 시계탑인 종루(Bell Tower)가 보이고

우측 산쪽으로 도미니크 수도원(Dominican Monastery)의 종루가 보인다 

 

성벽 밖 아래 갯바위 위로 카페가 보인다 

살바토레 카페(Cafe-Bar Salvatore)라고 한다 

 

성벽 밖의  갯바위 위 카페로 나오는 

성벽 쪽문이 보인다 

 

여기도 성벽 밖의 갯바위 위에 카페가 보인다 

 부자 카페(Cafe Buža)이다 

 

두브로브니크(Dubrovnik)에 여행을 오면 

'구시가지 풍경'과 '아드리아 해 풍경'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필수 관광 코스라고 한다 

 

유람선은 바다 절벽의 성벽길을 따라 

성벽 끝 쪽을 향해 가고 있다

 

반원형의 요새인 보카르 요새(Tvrđava Bokar)가 보인다 

15세기 피렌체 건축가였던 

미켈로조  미켈로지(Michellozzo Michellozzi)가 건축한 것으로서 

성벽 안으로 들어가는 

필레 문(Pile Gate)을 지키는 요새라고 한다 

 

우측 위로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성벽 밖에 있는 요새인 

로브레나츠 요새(Tvrđava Lovrijenac)가 보인다 

유일하게 구시가지 성벽 밖에 세워진 요새로 

서쪽 해상과 육지를 지키는 요새라고 한다

 

로브레나츠 요새(Tvrđava Lovrijenac)가 있는 곳을 

조금 지나쳐 

유람선은 뱃머리를 돌린다

 

스르지 산(Mt. Srđ) 아래로 

좌측에 로브레나츠 요새(Tvrđava Lovrijenac)가 보이고 

우측으로 보카르 요새(Tvrđava Bokar)와 

두브로브니크 성벽이 보인다

 

로크룸 섬(Lokrum island) 앞 바다를 지나치고 있다

로크룸 섬(Lokrum island)은 

1023년 베네딕도회 수도원이 건설되면서 문헌에 처음 등장하였다고 하며 

이 섬 안에는 

오스트리아 대공이자 멕시코의 황제였던 

막시밀리아노 1세(MaximilianⅠ:1832~1867년)가 소유했던 

수도원과 식물원이 남아 있다고 하며 

로크롬 섬의 성(城)은 

프랑스에 의해 건설되었지만 

오스트리아인들은 

이 성을 '막시밀리안 탑(Maximilian Tower)'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로크룸 섬(Lokrum island) 끝단의 

바위로 이루어진 

메인 비치(Main Beach)가 보인다

 

로크룸 메인 비치(Lokrum Main Beach)에는 

완전 나체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 온다

 

가족 단위로 

카약(Kayak)을 즐기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유람선이 로크룸 섬 끝단을 돌아서니

HKK 비치(HKK Beach)라고 하는데 바위 절벽이다 

 

'HKK 비치(HKK Beach)'는 

연인(戀人)들과 개인들이 즐기는 누드비치(Nude Beach)인 것 같다 

갯바위 위쪽 곳곳에 

연인 또는 홀로 벗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유람선은 로크룸 섬 끝단에서 기수를 돌려  

다시 두브로브니크 성의 올드 포트(Old Port) 선착장으로 향한다 

 

 

'성 야곱 광장((Plaža Sveti Jakov)'이라고 부르는 

모래 해변에 보라빛 파라솔들이 보인다 

 

절벽의 동굴에 카누들이 몰려 있는 것이 보인다

동굴 모양이 해식 동굴처럼 보이지 않고 

인공 동굴처럼 각이져 있다 

 

기다란 고층 건물이 보인다 

두브로브니크 체육 고등학교(Dubrovnik Gymnasium)라고 한다

 

유람선을 타고 나간지 약 1시간 정도되어 

올드 포트(Old Port:구 항구) 선착장으로 돌아와 내린다 

 

유람선에서 내려 다음 일정으로 

'스르지 산(Mt. Srđ)'에 오르기 위해 

성 밖으로 발길을 향한다 

 

성 안으로 들어 올 때의 길을 걸어 되돌아 밖으로 나간다  

 

두브로브니크 성의  밖으로 나가는 '플로체 문(Ploce Gate)'을 통과하여

돌다리 난간에서 바라보는

'올드 포트(Old Port: 구 항구)'이다 

 

레베린 요새(Tvrđava Revelin) 앞에서 보는 

성벽 안으로 들어가는 '플로체 문(Ploce Gate)'으로 건너가는

다리(Bridge)이다 

 

레베린 요새(Tvrđava Revelin)의  

문 안쪽에서 인증샷을 하고 성문 밖으로 나간다 

 

'스르지 산(Mt. Srđ)'으로 짚차를 타고 오른다

도로는 교행이 안되는 아주 좁은 도로로

마주 오는 차량이 있으며

피해 줄 수 없어 올라오거나 내려오는 차량이 보이면

비껴 줄 수 있는 쪽에서 대기해 주어야 하는 좁은 도로이다 

 

'스르지 산(Mt. Srđ)'의 중간 전망대에서

두브로브니크(Dubrovnik) 시가지를 내려다 본다

 

성벽으로 둘러쌓여 있는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Dubrovnik Old City)의 모습이다​

 

'스르지 산(Mt. Srđ)' 중간 전망대에서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하고

스르지 산 정상으로 향해 간다​

 

'스르지 산(Mt. Srđ)' 중간 전망대에서 정상으로 오르다보면 

묘비가 보인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이 분열되면서 

발생한 내전에 

크로아티아 군대 163여단 소속으로 전투에 참여하여 전사한

19세 소년 '로베르트 이브지츠(Robert Ivusic:1973.5.3~1992.5.31)의

묘비석이라고 한다 

 

'스르지 산(Mt. Srđ)' 정상에 있는 십자가이다

1808년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가 점령하면서 기념으로

세운 십자가라고 한다 

 

 

'스르지 산(Mt. Srđ)'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두브로브니크 시가지(Dubrovnik City)이다

 

'스르지 산(Mt. Srđ)' 정상에서

아드리아 해(Adriatic Sea)의 반대 쪽인

동쪽 지역을 바라보는 풍경이다​

 

'스르지 산(Mt. Srđ)' 정상에는  

방송 송신탑이 우뚝 서 있다

 

 

'스르지 산(Mt. Srđ)'으로 좁은 도로를 오르고 있는 차들이 보인다

'스르지 산(Mt. Srđ)'은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산으로

해발 415m이며

걸어서 오른다면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

 

'스르지 산(Mt. Srđ)' 정상에 있는 '독립 전쟁 박물관'이다

원래 '임페리얼 요새(Fort Imperial)'로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이 점령한 후 1806년에 구축하기 시작하여

1812년 8월 15일 나폴레옹 생일에 완공한 요새라고 한다

 

'독립 전쟁 박물관'은 유료 입장이라고 하여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만 문 안쪽을 쳐다보고 발길을 돌렸는데​

 

'독립 전쟁 박물관'에는

1991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이 분열되면서

크로아티아(Croatia)가 독립를 위해 내전에 휘말리면서

1995년도까지 치열하게 전쟁을 치루었던 무기와 자료와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

독립 전쟁 박물관으로 쓰이는 요새에는

당시의 폭탄 및 총격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스르지 산(Mt. Srđ)'에서

다시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Dubrovnik Old City)'로 하산한다

하산(下山)하는 길도

좁은 길로서 꼬불꼬불하여 오르고 내리는 차로 인해

정차정차하면서 내려간다​

 

 

스르지 산(Mt. Srđ)에서 내려와

두브로브니크 성벽으로 들어가는 ​'부자 문(Buža Gate)' 앞에 선다

부자 문(Buža Gate)은

레베린 요새(Tvrđava Revelin)와 민체타 요세(Tvrđava Minčeta) 사이의 

성벽에 있는 문이다

 

'부자 문(Buža Gate)'을 통과하니 

한참을 내려가야 하는 좁은 계단 골목이다 

 

좁은 골목의 계단을 거의 다 내려오니 

길거리 레스토랑이다 

 

플라차 대로(Placa Stradun)의 끝단인 

루자 광장(Trg Luža)으로 향한다 

 

루자 광장(Trg Luža)의 

'성 블라호 성당(Crkva Sv.Vlaha)'라고 부르는 

'성 블라이세 성당(Church of St. Blaise)' 앞에 선다

성당 앞에서 찬양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성 블라이세 성당(Church of St. Blaise)'은 

두브로브니크(Dubrovnik)의 수호성인인 

'성 블라이세(St. Blaise)'를 기리기 위해 건축한 성당으로 

14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되었다고 하며 

17세기 대지진과 18세기 대형 화재로 큰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고 한다 

'성 블라이세(St. Blaise)'는 

10세기 베네치아 군함이 위장하고 쳐들어 올 때 이를 알고 

지도자에게 알려 두브로브니크를 지켜낼 수 있었으며

또한 어린 아이가 생선을 먹다 목에 걸린 가시를 제거하고 살려내 

'치유의 성인'으로도 알려져 있다고 한다 

 

루자 광장(Trg Luža)에서 성 블라이세 성당의 옆 골목으로 들어서면 

골목 끝단으로 

'두브로브니크 대성당(Katedrala Dubrovačka)'이 보인다 

 

'두브로브니크 대성당(Katedrala Dubrovačka)'은 

성 블라이세(St. Blaise)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으며 

'성모 승천 대성당'이라고 부르는 성당으로서 

12세기 영국의 리처드 1세(RichardⅠ)가 십자군 원정 후 돌아가던 길에

로크룸 섬(Lokrum island)에서 풍랑을 만나 난파되어 

이 곳 사람들에게 구조되었는데 

감사한 마음으로 봉헌한 헌금으로 원래 있던 교회를 증축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17세기 대지진으로 일부가 파괴되었는데 

바로크 양식으로 보수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박물관'에는 

성 브라이세(St. Blaise) 유물과 성물인 금 세공품들과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의 '성모 승천'과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의 '마돈나'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1725년 바로크 양식으로 완공된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Cathedral Saint Ignatius)' 앞의 광장이다 

성당 안에는 성모 발현지라는 알려진  

프랑스의 피레네 산맥의 루르드(Lourdes) 동굴의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성모 마리아 상이 모셔져 있다고 하며 

성당 앞에는 

'군둘리체바 폴야나 광장(Gundulićeva Poljana)'에서 이어지는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에서 

유일한 노천 시장 열리는 곳으로 

대부분 과일, 야채, 농산물 가공품 등을 판매한다고 한다  

 

유라 스트로스마예라(Ul. Josipa Jurja Strossmayera)라는

골목길이다

이 골목길에는 의류 , 가죽제품 등 

여러가지 매장들이 있는 모여 있는 골목이었다 

 

골목길을 걷다가 우측으로난 좁은 골목으로 돌아 

니콜레 보지다레비차(Ul. Nicole Božidarevića) 골목길로 접어드니

먹자 골목으로 피자(Pizza) 냄새가 

배고픔을 더하게 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골목길을 걷다보니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에서

제일 번화가라는

플라차 대로(Placa Stradun)가 나온다

 

성벽 밖에서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로 들어오는 

필레문(Pile Gate) 바로 옆에 있는

'성 사비오르 교회(Church of St. Saviour)'로

1520년 지진으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건의하여 

두브로브니크 의회 결정으로 

전면을 르레상스 스타일로 건축한 교회라고 한다

1667년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에 

피해가 전혀 없이 무사하였다고 한다 

 

플라차 대로(Placa Stradun)에 근위병들이 지나간다 

'성 사비오르 교회(Church of St. Saviour)'와 

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박물관(Franjevački Samostan & Muze) 사이에 

밝은 불빛이 비친다 

저 곳으로 들어가면 유럽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약국인 

'말라 브라체(Mala Braće)'라는 약국이 자리하고 있는데 

약을 제조하여 판매하는 것은 최초로 시작된 곳이라고 한다 

또 유명한 다른 이유는 

크림 종류의 화장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하는데 

'장미 크림'이 유명하다고 한다 

 

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박물관(Franjevački Samostan & Muze) 앞에서 

거리의 뮤지션들이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들 앞에 10유로를 놓고 

기념품으로 아담 사이즈한 목각의 USB 1개를 구입한다 

 

'플라차 대로(Placa Stradun)'이다 

필레 문(Pile Gate)을 들어서면 

'루자 광장(Trg Luža)'의 '종루(Bell Tower)'까지 이어진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에서 가장 붐비는 

길이 300m의 대로라고 한다

 

'플라차 대로(Placa Stradun)'를 서서히 걸어 

'루자 광장(Trg Luža)'으로 다시 간다

 

조금 전 처음 왔을 때에 

'성 블라이세 성당(Church of St. Blaise)' 앞에서 

인증샷을 못하고 지나쳤기 때문에 

인증샷 한컷을 하기 위하여 성당 앞으로 와서 선다

 

루자 광장(Trg Luža) 앞에서 

우리가 걸어왔던 '플라차 대로(Placa Stradun)'를 걸어 

다시 되돌아 간다

'프란치스코회 수도원(Franjevački Samostan)'의 '종탑(Bell Tower)'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보인다 

'프란치스코회 수도원(Franjevački Samostan)'은 

1234년 프란체스코 회의 수도사들이 두브로브니크에 정착한 후 

1317년 수도원으로 세운 건물이라고 한다 

17세기에 대지진으로 모두 파괴되고 입구만 파괴되지 않아 

그 위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플라차 대로(Placa Stradun) 변의 

골목으로는 노천 음식점 및 카페가 많이 보인다  

 

'성 사비오르 교회(Church of St. Saviour)' 맞은 편에 자리한 

'오노프리오스 분수(Onofrio's Fountain)'이다 

비가 잘 내리지 않는 두브로브니크에서는 항상 부족하여 

1438년에 스르지 산(Mt. Srđ) 쪽의 12Km 떨어진 곳에서부터 

물을 끌어와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주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하고 있는 분수라고 한다 

분수를 만든 사람은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의 건축가인 

'오노프리오(Onofrio)'의 이름을 따서 

'오노프리오스 분수(Onofrio's Fountain)'라고 하였다고 한다 

 

두브로브니크 성벽(Gradske Zidine) 안의 구시가지(Old Town)에서 나와 

두브로브니크의 야경을 바라보며

크로아티아(Croatia)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 Herzegovina)로 

국경을 넘어 오늘의 숙소가 있는 네움(Neum)으로 향한다 

 

크로아티아(croatia)의 자톤 돌리(Zaton Doli) 국경 검문소에서 

국경을 넘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 Herzegovina)의 

네움(NeumⅡ)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여 네움 숙소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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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 Herzegovina)로 넘어가

사라예보(Sarajevo)까지 갔다가

2일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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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비야카(Bijača) 국경 검문소로 돌아와 

출국 수속을 받고서 ​

 

크로아티아(Croatia)로 국경을 넘어와

노바 셀라(Nova-Sela) 국경 검문소에서 입국 심사를 대기하고 있다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국경을 넘어와 

스플리트(Split)로 향하고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크로아티아로 넘어와 

스플리트(Split)로 가는 길은 직선 도로인 고속도로로 

버스는 속도를 내어 달리고 있다 

 

스플리트(Split)는 

아드리아 해(Adriatic Sea)와 접하고 있는 

달마티아(Dalmatia) 주(州)의 주도(州都)로서 

크로아티아(Croatia)에서 수도(首都)인 자그레브(Zagreb)에 이어 

인구 17만 6천여 명이 거주하는 제2의 도시라고 한다 

 

'스플리트(Split)의 역사'는

크로아티아(Croatia) 수도인 자그레브(Zagreb)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기원전 그리스인들의 거주지로 건설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 후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가 

305년 황제 자리를 물려주고 스플리트로 와서 

거대한 궁전을 건설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615년 살로나(Salona: 현재 Solin)를 약탈한 아바르족(Avar)이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에 침략하여 많은 피해를 주었으며 

620년에 다시 침입하여 들어와 궁전을 피신처로 삼고 

'스팔라툼(Spalatum:스플리트 옛지명)'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653년 스플리트(Split)의 최초의 주교가

기독교인을 박해하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영묘를 

성 도미니크 대성당(Cathedral of St. Dominicus)으로 바꾸었다고 하며

14, 15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을 추가 건설하였다고 한다 

 

812년부터 스플리트(Split)는 비잔틴 제국의 주요 도시로 발전하였으며 

998년 베네치아(Venezia) 

1069년 크로아티아(Croatia)에 잠시 지배를 받다가

1105년 헝가리-크로아티아로부터 명목상 종주권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스플리트(Split)는 

1420~1797년까지 베네치아의 377년간 지배를 받았으며 

1797~1918년까지는 합스부르크 제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의 

121년간 지배하에 있다가

1918년 유고슬라비아에 합병되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스플리트(Split)의 항만시설은 

독일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으나 

옛 도시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1991년 6월 25일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에서 분리 독립하여 

크로아티아 공화국의 국토가 되었다고 한다

 

스플리트(Split) 구시가지로 가기 전 

솔린(Solin)의 바닷가에 접한 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후 

바다를 바라다 본다 

 

'폴류드 종합 경기장(Stadion Poljud)'이다 

1979년 유고슬라비아 연방 시절 '지중해 경기대회' 개최를 위해

건설한 종합 경기장이라고 한다 

수용 인원은 

55,000명 규모에서 좌석을 설치하면서 35,000명으로 줄었으며 

현재 'NHK 하이두크 스플리트 축구팀 전용구장'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스플리트(Split) 구시가지가 있는 곳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 앞의 

바닷가 쪽 주차장에 있는 푯말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의 성벽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은 

스플리트(Split)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지이자 관광지라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의 

옛 조감도로서 

원래의 궁전 모습이라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은 

로마의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가 

로마 황제 자리를 물려주고 

고향에서 말년을 보내기 위하여 

295년에 시작하여 305년에 완공한 궁전이라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은 

유럽 각지에서 가져온 대리석과 석회암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스핑크스 및 기둥까지 가져와 장식하였다고 하는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희망했던 대로 여생을 즐기지 못하고 

권력 투쟁에 휘말려 어지러운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으로 출입하는 문은 

4개의 문이 있는데

동쪽에는 은문(Silver Gate), 서쪽에는 철문(Iron Gate), 

남쪽에는 동문(Bronze Gate), 북쪽에는 황금문(Golden Gate)이 

있다고 한다 

 

 

'성 도미니크 대성당(Cathedral of St. Dominicus)'이다 

성 도미니크 대성당은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안에 있으며 

원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무덤'으로 지어졌던 건물에 

7세기부터 성당으로 재건축되었으며 

완공된 이후 지금까지 재건축 없이 거의 완벽하게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 성당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성 도미니크(St.Dominicus)는 

로마(Roma) 제국 당시 달마티아(Dalmatia) 지방의 주교였으며

스플리트(Split)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의 

중앙에 있는 

열주 광장과 성 도미니크 대성당의 종탑이다 

열주 광장의 기둥들은 이집트(Egypt)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하며

기둥을 세운 뒤 

다시 석회암으로 구조물을 만드는 방식으로

궁전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의

황제의 알현실(Vestibule)이다 

 

황제의 알현실에는

돌을 쌓아 만든 돔형의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고 

이 곳에서 소리를 내면 울림이 있어 

 

 

이곳에서

달마티아(Dalmatia) 지방의 전통 아카펠라 공연으로서 

교회의 성가대에서 비롯된 독특한 멜로디와 창법인 

'클라파(Klapa)'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의 

북문인 골든 게이트(Golden Gate)를 향해 골목을 걷던 중 

성벽 기둥이 상점 안으로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상점의 유리창 안으로 보인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의 북문인 

황금문(Golden Gate)을 통하여 밖으로 나가는 중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의 북문인

황금문(Golden Gate)이다 

옆 성벽의 비교하여 보수된 흔적이 보인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은 

1979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의 

북문인 황금문(Golden Gate) 앞에는 

그레고리우스 닌(Gregory of Nin) 동상과 종탑(Bell Tower)이 있다 

 

'그레고리우스 닌(Gregory of Nin) 동상'이다 

그레고리우스 닌(Gregory of Nin)은 

10세기 로마 교황에게 크로아티아 국민들이 크로아티아어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간청하여 허락을 받아낸 주교이며 

크로아티아를 지켜낸 종교 지도자로서 

'크로아티아어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존경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라틴어 성경을 크로아티아어로 번역하여 

중세의 크로아티아 기독교 신앙에 공헌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레고리우스 닌(Gregory of Nin) 동상에는 

여행자들이 항상 많이 몰린다고 한다 

그레고리우스 닌 동상의 왼쪽 엄지 발가락을 만지며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속설은 

예전에 그레고리우스 닌 동상 옆에서 꽃을 팔던 여인이 있었는데 

장사가 너무 안되어 우연치 않게 

그레고리우스 동상의 발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소원을 빌었는데 

이후 장사가 너무 잘되어

이후에 이 속설이 생겨났다고 한다  

 

 

다시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의 

황금 문(Golden Gate)으로 다시 들어가 

 

우측 좁은 골목길로 들어선다 

스플리트(Split)의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 안에 있는 

구시가지(Old Town)의 거리이다 

 

스플리트(Split) 구시가지(Old Town)의 

좁은 골목길에는 유명 메이커의 상점들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스플리트(Split) 구시가지(Old Town)에 있는 

인민 광장 또는 퍄차 광장(People' Square or Pjaca)이라고 

하는 광장이다

퍄차는 마르코 퍄차(Marco Pjaca)라는 사람으로 

1995년생 크로아티아 프로축구 선수의 이름이라고 한다 

 

또 골목길을 걸어 과일 광장(Fruit Square)으로 간다

광장 가운데에는 

'마르코 마룰릭 동상(Marko Marulic statue)'이 있다 

'마르코 마룰릭(Marko Marulic)'은 

스플리트(Split)에서 태어나 살다 생을 마감한 

크로아티아의 국민 시인이라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의 

구시가지(Old Town)인 과일 광장(Fruit Square)에 있는 요새

베네티안 타워(Venetian Tower)이다 

 

스플리트(Split) 구시가지 과일 광장(Fruit Square)에 있는

상점의 간판이다

넥타이(Neck Tie)가 글자에 포함되어 있다 

넥타이(Neck Tie)의 유래가 크로아티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라 한다 

'넥타이(Neck Tie)의 유래'는 

17세기 최악의 800만 명이 사망한 가톨릭과 개신교의 종교전쟁인 '30년 전쟁'에서 

당시 개신교 측의

프랑스 우방이었던 크로아티아의 병사들이 파리로 파병되면서 

목에  붉은 스카프를 매고 있었는데 

이 붉은 스카프는 병사들의 가족들이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매어준 것이라고 한다 

붉은 스카프는 불행의 마귀가 몸에 접하지 못하게 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것을 본 프랑스에서 대유행한 것이 

오늘날 넥타이의 시작으로 

당시에 프랑스에서 크로아티아 병사들을 '크레바타(Krabata)'라고 불렀는데 

  그것이 시초가 되어 지금도 프랑스에서는 

넥타이를 '크레바타(Krabata)'라고 부른다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의 구시가지에서 

성벽 밖으로 나오니

궁전 성벽 쪽으로 상가들이 늘어서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의 

앞바다 해안로 끝으로 

성 프란시스 성당 및 수도원(The church and monastery of St.Frane)이 보인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의 앞에 있는

아드리아 해(Adriatic Sea)로 나가는 선착장에

요트(Yacht)가 정박해 있다 

 

선착장에 목선(木船)이 정박하고 있다 

오래된 목선으로 보인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 앞

스플리트에 도착했을때 버스에서 내렸던 

해안가 쪽에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으로 돌아와

버스에 오르기 전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klecijanova Palača)을 

다시 한번 바라다 본다 

 

스플리트(Split)에서 관광을 마치고 

북서쪽으로 27Km 떨어진

버스로 40분 거리에 있는 '트로기르(Trogir)'로 향한다 

 

트로기르(Trogir)의 역사는 

기원전 3세기경 비스(Vis) 섬에 살고 있던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발견된 긴 역사를 가진 도시라고 한다 

 

BC 385년경 시라쿠사(Siracusa:현 시칠리아 동쪽) 식민지가 되어 

비스섬(Vis island)에서 온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식민도시가 건설되어 '트라구리온(Tragurion)'이라 불렸다고 한다 

'트라구리온(Tragurion)'은 그리스어로 

"수컷 염소"라는 뜻을 가진 '트라고스(Trago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요새화가 진행되었으며 

9세기 후반에는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11세기에는 트로기르에 로마 가톨릭 교회 교구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1107년부터는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으며 

1123년 이슬람교도인 사라센족의 공격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기도 한

슬픈 역사도 있었다고 한다

1420년부터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성당, 요새, 광장들이 건설되었는데

이 시기의 대표적인 건축물들로는 

트로기르 대성당, 트로기르 공작 궁전, 카메를렌고 성, 

트로기르 요새 등이 있다고 한다  

 

1797년 베네치아 공화국이 멸망하면서 

트로기르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1806년에서 1814년까지는 나폴레옹의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지만 

나중에 다시 합스부르크 제국에 반환되었다고 한다 

1918년 제1차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합스부르크 제국의 멸망으로 

이탈리아에 편입되었다가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가 이끄는 

파르티잔(Partizan) 부대가 트로기르를 점령하면서 

세계대전이 종전된 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1989년 동유럽을 휩쓴 공산정권의 붕괴 속에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이 분열되면서 

1991년 크로아티아 국가의 국토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트로기르(Trogir)는 

아드리아 해(Adriatic Sea)의 섬에 있으며 

본토와 치오보 섬(Otok Čiovo)과 중간에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인구 13,300여 명이 거주하는 작은 섬이라고 한다  

 

본토에서 '트로기르 다리(Trogirski Most)'를 건너서  

트로기르 섬(Trogir island)으로 들어가 

길 건너 '두 노르드 문(Porte Du Nord)'으로 향한다 

 

두 노르드 문(Porte Du Nord)을 통과하여

성벽 안으로 들어서니 

'성 로브르 대성당(Katedrala Sv. Lovro)'이 웅장하게 서 있다

'성 로렌스 대성당(Cathedral of St. Lawrence)'이라고도 하며

트로기르(Trogir)의 대표 랜드마크라고 한다  

 

 

성 로브르 대성당(Katedrala Sv. Lovro)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좌.우측에 있는 사자상 위로 

나체 상이 조각되어 있는 부조가 보인다

 

좌측으로 보이는 부조상은

이브의 나체상이며 

 

오른쪽으로 조각되어 보이는 부조가 

아담의 나체상이라고 한다 

'성 로브르 대성당(Katedrala Sv. Lovro)'은 

12세기 이슬람의 사라센이 침입으로 파괴되었다가 

13세기 다시 재건된 성당이라고 하며 

재건된 후에도 몇차례 증축되면서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양식이 혼합된 양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성당 입구의 '아담과 이브의 조각상'은 

트로기르(Trogir)에서 태어난 조각가 라도반(Radovan)이 

1240년에 제작한 작품이라고 한다 

 

 

성 로브르 대성당(Katedrala Sv. Lovro)과

노천 카페가 있는 트로기르 광장(Trogir Square)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으로 보이는

트로기르 시계탑(Clock Tower of Trogir)이다

시계탑 옆에는 한쪽 벽만 있는 코린트식 주랑으로

예전에 공개재판소로 이용했던 '트로기르의 로지아(Loggia di Trogir)'이다

 

 '트로기르의 로지아(Loggia di Trogir)'의 중앙 벽에는

성인 반열에 오른 주교 "페트루 베리슬라비추(Petru Berislaviću)"가

말탄 모습이 있다

트로기르의 유명 조각가 "이반 메슈트로비치(Ivan Mestrovici)의 작품이라고 한다

 

 

노천 카페가 있는

트로기르 광장(Trogir Square)에서

성 로브르 대성당(Katedrala Sv. Lovro)을 배경으로

한컷을 하고 자리를 옮긴다  

 

트로기르(Trogir)의 골목길을 걸어

남문으로 향하던 중의

도반(Dovan)이라는 아이스크림 가게이다  

 

치오보 섬(Otok Čiovo)이 보이는

아드리아 해(Adriatic Sea)로 나가는

트로기르(Trogir)의 남문이다

 

트로기르(Trogir) 성 밖으로 나오니

빠져나온 남문(South Gate)과

옆으로 빨간 지붕의 마라 로자(Mala Loža)가 보인다

'마라 로자(Mala Loža)'는

예전에 뱃사람들이 뱃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때

늦어서 성문이 닫혀 있으면

날이 밝아 성문이 열리는 시간까지 대기하던 장소라고 한다

 

아드리아 해(Adriatic Sea) 건너편으로

치오보 섬(Otok Čiovo)이 보인다

 

트로기르(Trogir) 섬의

베리슬라비차 해변(Obala bana Berislavića)의 광장이

500m 정도 길게 펼쳐져 있다

 

베리슬라비차 해변(Obala bana Berislavića)의 광장에 있는 약국이다

우리 일행 중에 몸상태가 안좋아

급히 약국을 찾는 사람이 있어 카메라에 담아 두었다

 

'​성 도미니크 성당과 수도원(Church and Monastery of St. Dominic)'이 뒤로 보이고

앞에는 노천 카페가 있는데

카페가 닫힌 시간이라 파라솔이 접혀있다

 

 

베리슬라비차 해변(Obala bana Berislavića)의 광장을

끝까지 서서히 걷다 보면

 

카메를렝고 요새(Kamerlengo Castle)가 있다

14세기 후반에 건축된 베리가 타워(Veriga Tower) 타워 확장 건축에 의거

15세기 마린 라도즈(Marin Radoj)에 의해 건축되었다고 한다

성 안에는 긴 포위 공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우물 및 기타 구조물들을 설치하여 놓았다고 하는데

카메를렝고 요새의 이용은 19세기 말부터 약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후에는 개조하여

현재는 문화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마르카 요새(Marka Castle)'이다

카메를렝고 요새(Kamerlengo Castle)가 남쪽 해안을 지키는 요새라면

마르카 요새(Marka Castle)은 북쪽 해안을 지키는 요새라고 한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트로기르 성 남문' 쪽으로 향하는 길의

'성 도미니크 성당과 수도원(Church and Monastery of St. Dominic)'이다

1265년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되었으나

14세기 후반부터 건축된 교회와 본당이 추가적으로

15세기 재건되면서 르네상스 양식으로 바뀌었다고 하며

'성 도미니크 성당' 입구는

14세기 '니콜라스 덴테(Nikolas Dente)'라는 거장이 만들었다고 한다

 

건물 앞에 아이들이 몰려 있다

'페터 베리슬라비크 초등학교(Peter Berislavic Primary School)'라고 한다

 

트로기르(Trogir) 섬 베리슬라비차 해변(Obala bana Berislavića)의 광장을 걸으며

아드리아 해(Adriatic Sea) 건너

치오보 섬(Otok Čiovo)을 바라보는 풍경이다

 

트로기르 성벽 남문 앞에서 바라보는

트로기르 섬에서 치오보 섬(Otok Čiovo)으로 건너가는

치오브스키 다리(Čiovski Most)이다

 

트로기르(Trogir) 성벽 남문 앞에서

베리슬라비차 해변(Obala bana Berislavića)의 광장의 동쪽 방향으로

트로기르 성벽쪽에는

노천 카페, 식료품점, 여행사 등이 늘어서 있었다

 

다시 트로기르(Trogir) 성벽 남문을 통해 성벽 안으로 들어가

왔던 길을 되돌아 북문으로 향한다

 

다시 트로기르(Trogir) 성벽 안의

성 로브르 대성당(Katedrala Sv. Lovro) 앞을 지나쳐

북문으로 향한다

 

좁은 수로처럼 생긴 바다 건너

트로기르(Trogir) 섬의 둘레길에 다정히 걸어가는 커플이 보이고

바다 건너 치오보 섬(Otok Čiovo) 보인다

 

아드리아 해(Adriatic Sea) 건너 치오보 섬(Otok Čiovo)을 보며

오늘 저녁 숙소가 있는

트로기르(Trogir)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정도 거리에 위치한

로조바크(Lozovac)로 향한다

 

아드리아 해(Adriatic Sea) 해안지대에서

발칸반도 내륙지방으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디나르 알프스 산맥(Dinar Alps Range) 지역으로 들어서는데

산악지대가 그리 험해 보이지 않고 완만하게  보인다

 

오늘 스플리트(Split)에서는 비가 내렸고

트로기르(Trogir)에서는 날씨가 흐려 싸늘함을 느꼈으나

로조바크(Lozovac)에 거의 도달하니

노을이 저가는 산 넘어에서 햇살이 비쳐온다

 

트로기르(Trpgir)에서 출발한지

약 1시간 정도 걸려 로조바크(Lozovac) 외곽에 있는

브라타 크르케 호텔(Vrata Krke Hotel)에 도착하여

식사 후 여장을 풀고 하룻밤을 보낸다

 

 

로조바크(Lozovac)에 있는

브라타 크르케 호텔(Vrata Krke Hotel)에서 보는 주변의 풍경이다

 

 

아침이 되어 로조바크(Lozovac)의

브라타 크르케 호텔(Vrata Krke Hotel) 밖으로 나온다

근처에 크르카 국립공원(Krka National Park) 입구가 있다고 하여

아침 식사 전에 공원을 산책을 하려고

식사를 1시간 넘게 남겨두고 일찍 밖으로 나온 것이다

 

 

'크르카 국립공원(Krka National Park)' 입구이다

 

 

그런데 입구에서 '크르카 국립공원(Krka national Park)'의 주요 관광지인

크르카 강(Krka River)까지는 걸어서 갈 거리가 아니라고 하여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 호텔이 있는 마을 주변만 돌아보고

호텔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고

'플리트비체 국립공원(Plitvice Lakes National Park)'으로 출발한다

 

 

크르카 강(Krka River)과 스크라딘(Skradin) 강변도시가 보인다

 

 

크르카 국립공원(Krka Lakes National Park)은

크로아티아(Croatia) 국가의 7번째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크르카 국립공원(Krka Lakes National Park)의 대표 명소로는

스크라딘 폭포(Skradinski Waterfall), 로슈키 계곡(Roski Slap),

비소바츠 호수(Visovac Lake),

오지자나 페치나 동굴(Oziđana Pećina Cave), 크르카 수도원(Krka Monastery),

로마 군단의 캠프이자 마을이었던 부르눔(Burnum) 등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 스크라딘 폭포(Skradinski Waterfall)는

크르카 국립공원(Krka Lakes National Park)에서 가장 긴 폭포라고 한다

폭포수는 37.5m의 높이에서 17개의 계단을 거치며

240m를 떨어진다고 한다

 

 

크로아티아(Croatia)에 대하여 알아 보면

공식 국가 명칭은

크로아티아 공화국(Republic of Croatia)이라고 한다

 

 

국가 면적은 56,594.0㎢로

우리 대한민국 남한 면적(100,364㎢)의 반 보다 약간 큰 면적을 가진

작은 국가이다

 

 

크로아티아(Croatia)의 인구는

413만여 명으로

우리 대한민국 인구의 1/12 정도의 작은 인구가 살고 있는 국가로서

크로아티아인이 90%이며 세르비아인이 5%라고 한다  

 

 

크로아티아(Croatia) 국민들이 믿는 종교는

로마 가톨릭이 88%, 세르비아 정교 4% 정도라고 한다

 

 

크로아티아 국가 GDP는 607억 200만 달러(세계 79위)이며

1인당 GDP는 14,950 달러(세계 57위)라고 한다

<대한민국 2019년 국가GDP: 1조6295억3200만 달러(세계12위), 1인당GDP: 31,430달러(세계30위)>

 

 

크로아티아(Croatia)의 역사는

크로아티아인들이 이 지역에 들어온 것은 7세기였다고 한다

당시 부족들간에 느슨한 동맹을 이루고 살다가

803년에 샤를마뉴(Charlemagne) 대제로부터 종주권을 인정받았다고 하며

곧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로마 가톨릭교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여

정교회를 믿는 이웃 세르비아와 많은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10세기에 크로아티아 왕국이 수립되었다고 하며

1091년에 헝가리의 라슬로 1세(Ladislaus1)가 왕국의 통치권을 빼앗아가며

이후 크로아티아는 8세기 동안 헝가리에 합병되어 있었다고 한다

 

 

헝가리와 합병 기간 동안에도

크로아티아의 자체 의회인 사보르(Sabor)를 유지하였다고 하며

법률상으로는 독립 왕국의 지위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1526년 헝가리가 모하치 전투(Battle of Mohács)에서 오스만 제국에게

패전함으로 인하여 

크로아티아의 대부분 지역이 오스만 투르크로 넘어가

1699년까지 오스만 투르크의 이슬람 통치를 받았다고 한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지 않았던 크로아티아의 일부 지역은

뚜렷한 통치자가 없이 남겨져 있다가

1527년 사보르(Sabor) 의회에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The House of Habsburg)의

페르디난트(Ferdinand)를 왕으로 선임하였다고 하며

오스트리아는 크로아티아(Croatia)와 슬라보니아(Slavnia) 지역들을

군사적인 국경지대로 삼았다고 한다

1809~1813년 일리리아 지방의 일부로서 나폴레옹의 통치를 받았다고 하며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워진 후 

달마치아와 이스트라는 비엔나의 지배를 받게되었다고 한다  

 

플리트비체에 거의 도착하기 전 휴게소에 잠시 들린다 

 

1849년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는 오스트리아의 한 주가 되었다가

1868년 헝가리의 자치주이자 이름뿐인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으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전한 후 

크로아티아(Croatia)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을 이루었으며 

1929년 유고슬라비아로 개칭되었으나 세르비아 군주들과 관계는 원만하지 않았다고 한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크로아티아는 독립국임을 선포하여

독일과 이탈리아로부터 승인을 받았으나

1945년 티토가 이끄는 공산당원의 비정규군인 파르티잔(Partizan)들이 자그레브를 점령한 후 

크로아티아는 인민공화국으로서 유고슬라비아에 합병되었다고 한다 

이후 사회주의 체제하의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속해 있던 크로아티아(Croatia)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가 붕괴되자 선거를 통하여 비공산주의계의 정부가 탄생하여

1991년 6월25일 독립을 선포한 후 3년간 내전을 겪은 끝에 

오늘에 크로아티아(Croatia)가 되었다고 한다

 

 

로조바크(Lozovac)에서 출발한지 2시간 정도 소요되어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Plitvice Lakes National Park) 입구에 도착한다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Plitvice Lakes National Park)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는 환상적인 호수 공원으로 

계단식으로 펼쳐지는 16개의 호수가 있고 

크고 작은  90여 개의 폭포가 흘러내려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는

호수 공원이라고 한다

 

 

플리트비체(Plitvice) 매표소를 통과하여 들어서니 

높이 78m에서 떨어지는  '벨리키슬라프(Veliki Slap) 폭포'가 보인다

2013년 9월에 방문하였을 때보다는 폭포수 물량이 적어서 그런지

기대하였던 것보다는 덜 아름다워 보인다

그래서 

 

5년전 여행왔을 때의 보았던 폭포의 아름다웠던 모습을 회상하며

2013년도에 찍어 놓은 사진을 찾아

그때 당시 모습의 풍경 사진을 올려본다  

 

 

플리트비체 호수(Plitvice Lakes)가 에메랄드 빛을 띠고 있다

석회 성분의 침전물이 호수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플리트비체 호수(Plitvice Lakes)에서

첫번째 탐방은 '벨리키슬라프(Veliki Slap) 폭포'로

많은 사람들이 호수를 건너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관광하는 코스는 5개의 코스가 있는데

짧게는 2~3시간에서 4~5시간 정도 소요되며

구석구석 자세히 보려면 3일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호수를 건너 벨리키슬라프(Veliki Slap) 폭포 앞에 선다

높이는 78m로 플리트비체에서 가장 높은 폭포다

 

 

플리트비체는 카르스트 지형이나

그러나 다른 지역의 카르스트 지형과는 사뭇 다르다고 한다

다른 지역의 카르스트 지형은

대부분 물이 지하로 흐르는데

이 곳은 지표면 위를 흐르며 침전물과 혼합을 이루어

제방을 만들고 폭포를 만들며 흘러내리고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작은 폭포가 보인다

여러가지  빛깔로 보이는 호수를 바라보기도 하고

 크고 작은 폭포도 바라보며

서서히 빠르지도 않은 발걸음으로

호수가를 걸으며 풍광에 흔뻑 빠져본다

 

 

플리트비체는

큰 호수가 폭포가 되어 아래로 흐르고

또 호수가 되고, 또 폭포가 되어 흘러내리며

또 호수, 또 폭포를 반복하면서

637m의 프로스칸스코 호수(Lake Proscansko)에서

16개의 호수와 92개의 폭포를 통하여

457m의 코라나(Korana) 강으로 흘러내린다

플리트비체는 천혜의 절경을 이루고 있어

성수기에는 하루 12,000명 정도 관광객이 몰리기도 한다고 한다

 

 

이 곳 사람들은 플리트비체를 '악마의 정원'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어느날 호수가 말라 붙게 되었다고 한다.

호수가 바닥을 들어내자 

사람들은 비를 내려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는데

검은 여왕이 나타나 폭풍우를 일으켜 호수를 만들고 가득 채워

이러한 비경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두번째로 만나는 호수는 가바노바츠(Gavanovac) 호수이다

호수가에 비쳐진 숲은 더 초록으로 물들어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물속을 바라다 본다

맑은 물 속에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이 보인다

 

 

'줄어드는 호수의 땅'이라 말하는

플리트비체의 호수의 경치는 지금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고 한다.

물속의 석회질과  탄산칼슘 성분이 혼합된 침전물들이

점점 확장되여 자연적인 제방을 이루며

 

 

 

수중생물이 그 외벽을 덮고 자라나며

자연스런 폭포가 만들어지는 반복 과정을 통해 

진화하고 있다고 한다 

 

 

호수물이 남색 빛깔로 너무 곱다

팔뚝 만한 큰 물고기도 보인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물고기들은 떼를 지어

한쪽 방향으로만 줄지어 간다

 

 

세번째로 만나는 밀아노바츠(Milanovac) 호수이다

수 색상은 청색, 담청색으로 깊어 보인다

 

 

플리트비체 호수에는 요정들이 살고 있다는데

여기 저기 아름답게 흘러내리는

폭포들을 보면은 

지금이라도 요정들이 나올것만 같은 느낌도 든다

 

 

플리트비체 물의 발원지는 비엘라(Bijela)와 츠르나(Crna)강으로

하얀과 검정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 강물은 프로스칸스코(Proscansko) 호수로 흘러들어간 후

여러 개의 폭포와 호수를 거치며 에머랄드 빛을 띠며

 코라나(Korana) 강으로 흘러 간다고 한다

 

 

2013년도에 처음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왔을 때는

1번 출입구로 입장하여 벨리키슬라프 폭포(Veliki Slap Waterfall)를 보고

호숫가 길을 1시간 30분 정도를  걸어

코쟈크 호수(Kozjak Lake)에 있는 P3 선착장으로 가서

배를 타고 P2 선착장으로 갔다가 배를 환승하여 P1 선착장을 거쳐

2번 출입구로 나오는 플리트비체 호수  탐방코스였는데

 

 

이번 플리트비체 호수 탐방은

1번 출입문으로 입장하여 벨리키슬라프 폭포(Veliki Slap Waterfall)를 보고

호숫길을 걷다가

P3 선착장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능선 길로 올라

능선길을 걸어 다시 1번 출입문으로 돌아오는

짧은 코스를 택하여 걷는 중이다

 

 

이 아름다운 플리트비체에서 20년 전엔 피 비린내 나는 전투가 있었다고 한다

크로아티아가 독립하기 전에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가 연합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그 시기인

1991년 3월31일 크라지나(Krajina) 지역에서 활동하던

세르비아 극단주의자들이 이 곳에 쳐들어와 점령하면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경찰관이던

요시프 요비크(Josip Jovic)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이 참사 결과로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의 발단이 되었고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 플리트비체는 최초의 무장대결이 발생한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전쟁동안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는

세르비아 크라지나 공화국 군대가 주둔하였는데

그들은 호텔을 막사로 삼아 시설을 손상시키고 

국립공원의 자산을 마구 약탈하였다

그로부터 4년 후

1995년 8월에 크로아티아 군이 이 지역을 되찾고

전쟁을 종식시키면서

평화가 찾아 오고

호텔과 공원의 시설들을 보수하여

오늘날까지 플리트비체의 아름다운 비경을

잘 관리하여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플리트비체(Plitvice)에서 출발하여 약 140Km 거리의 2시간 정도 떨어진

크로아티아(Croatia)수도 자그레브(Zagreb)로 향하는데

제안이 들어 온다

자그레브(Zagreb)로 가는 길목에 있는

'라스토케(Rastoke)'를 잠시 관광하고 가자는 제안이었다

반대할 이유가 없어 적극 찬성하였다

 

 

라스토케(Rastoke)는 

플리트비체(Plitvice)에서 약 40Km의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슬룬(Slunj) 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라스토케(Rastoke) 마을 입구에 있는

마을 안내도 이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로 향해 가는데

건너 편에 보이는 나무 사이로 세차게 물줄기를 품어내고 있는

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라스토케(Rastoke)는

2013년 내가 크로아티아(Croatia)에 여행하고 온지 얼마 안되어

'꽃보다 누나'라는 여행 프로가 방영되었는데

'라스토케(Rastoke)'에 방문한 프로에 너무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와

그때 '저런 곳도 있었구나! 알았다면 들리자고 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있던 여행지였다

 

 

라스토케(Rastoke)가 유명하게 된 이유는

나무로 울창한 마을 안에 호수들과 폭포들로 이루어져 있어

동화 속 마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라스토케(Rastoke)는

너무 오밀조밀하면서도 아름다워

'리틀 플리트비체(Litte Plitvice)'라고 하고

'요정이 사는 마을'이라고도 하며

'천사의 머릿결'이라고도 말하고 있다고 한다

 

 

물줄기가 집들 사이를 흘러나와

폭포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정말 환상적이다

 

 

플리트비체에서 라스토케를 지나 흐르는 코라나 강(Korana River)을

건너는 다리로서

마을로 들어가는 나무로 만든 다리(Bridge)이다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서니

집들과 집들 사이에 있는 작은 폭포에서

물이 세차게 흐르는 모습이 보이고 

 

 

마을 한가운데는 호수가 형성되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마을 구경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마을 입구에 있는

카페로 들어가 차와 음료수를 시켜 갈증부터 해결하며

망중한을 느껴본다

 

 

마을의 어느집 정원이다

호수 가운데 정원을 만들어 놓은 모습이 운치있게 보인다

바라보다 보니

나도 저런 정원이 있는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라스토케(Rastoke) 마을을 돌다보니

이 마을 사람들의 생업은 무었일까? 라는 의문점이 생긴다

집들 구조가 농업에 종사하는 마을 구조도 아니고...

 

'라스토케(Rastoke)'란 

현지어로 '물레방아'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예전부터 흐르는 물로

물레방아를 이용한 방아간을 운영하며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해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오기에

입장료, 카페, 레스토랑, 민박 등을 운영하여

여행객을 받으며 살고 있다고 한다

 

 

라스토케(Rastoke) 마을을 돌아나와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보는  

위 쪽에서 라스토케(Rastoke)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 한쪽에

서 있는 십자가이다

크로아티아어 푯말로 되어 있어 해석은 못하여

마을 수호 십자가인지, 묘지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십자가 밑에 놓여진 석판에 적힌 글씨체로 보아 묘지의 십자가가 아닌가 한다

 

 

라스토케(Rastoke)에서 오늘의 숙소가 있는

크로아티아(Croatia)의 수도인 자그레브(Zagreb)로 출발한다

라스토케에서 자그레브까지 거리는 약 100Km로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잠시 쇼핑도 하면서 쉬어 가자고 하며

차를 정차한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사누스 비렌스(Sanus Virens)'라는 기념품 샵이었다

건강식품, 화장품, 장미비누, 발사믹식초 등..

 

크로아티아(Croatia) 수도 자그레브(Zagreb)로 향한다

자그레브(Zagreb)에서 여행 일정은 없고

내일 슬로베니아(Slovenia) 국가로 넘어 가기 전 

오늘 밤 숙소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Croatia) 수도인 자그레브(Zagreb)는

2013년도 9월인 5년전에 여행을 와서 

성 스테판 성당, 도라츠 시장, 반 엘라치크 광장, 마가 성당

성 마르코 광장 등을 방문하였기에

그리 궁금하지는 않아

 잠만 자고 떠나도 아쉬움은 없는 곳이었다

 

 

지난번에 자그레브(Zagreb) 관광을 하였기에

이번에는 자그레브(Zagreb) 관광은 하지 않아도 

자그레브(Zagreb)에 대하여 알아보면

 

 

자그레브(Zagreb)는

인구 68만여 명이 거주하는

크로아티아(Croatia)의 수도(首都)로서

 

자그레브(Zagreb) 역사는

서기 1세기인 로마시대 때는 '안다우토니아(Andautonia)'로 불리며

내륙의 요새 기능을 하였다고 하며

이후 1천여 년 동안

아드리아 해안의 베네치아에서

소아시아로 이어지는 두브로브니크, 스플리트, 자다르 등의 도시에 비교하여

내륙의 자그레브(Zagreb)는 아주 낙후한 지역이었다고 한다

 

 

자그레브(Zagreb)는

1093년 로마 가톨릭 주교관구가 되면서 처음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자그레브 대성당'은 '성 스테판 대성당(St. Stephen Chapel)'이라고 불리는데

헝가리 왕국의 라디슬라우스 1세가 슬라보니아를 정복하면서

1094년 건축이 시작되었다고 하며

1242년 몽골의 침입으로 '성 스테판 대성당'은 파괴되었다가

1263년 다시 건축되었다고 한다

투르크인들에게 항거하고 오스트리아의 독일화 시도에 저항하면서

자그레브(Zagreb)는

정치 중심지로 중요한 도시로 성장하였다고 한다

19세기 헝가리 지배 하에서 영주였던 '반 엘라치크(Ban Josip Jelaqcic)'가

1848년 독립을 추진하였는데 그 결과 

1851년 자그레브(Zagreb) 주변을  통합하여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제1.2차 세계대전 사이

크로아티아 자치를 열망하는 세력과 세르비아 중앙 집권화를 열망하는 세력 사이에

심각한 대립이 계속되는 중에

1941년 추축국(독일, 이탈리아, 일본 연합군에 대항한 나라) 지배 하에서

크로아티아의 수도가 되었다가

1945년 유고슬라비아 티토가 이끄는 유격대에 함락되며

크로아티아 국가는 붕괴되며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에 통합되었다고 한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에서 독립하며

지금의 크로아티아(Croatia) 국가의 수도(首都)로 회복하였다고 한다

 

 

어제 저녁 자그레브(Zagreb)에 도착하여

하룻 밤을 보내고 방에서 보는

호텔 옆에 있는 '아레나 자그레브(Arena Zagreb) 운동장' 주변 모습이다

 

 

자그레브(Zagreb) 시내 한가운데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사바 강(Sava River)의 남쪽에 위치한

아이 호텔(i-Hotel)이다

 

크로아티아(Croatia) 자그레브(Zagreb)에서

슬로베니아(Slovenia) 수도(首都)인 류블랴나(Ljubljana)를 향해 출발한다

 

 

몬테네그로(Montenegro) 헤르체그노비(Herceg Novi)에서 국경을 넘어

크로아티아(Croatia)로 들어와서

두브로브니크(Dubrovnik), 스플리트(Split), 트로기르(Trogir), 로조바크(Lozovac),

플리트비체(Plitvice), 라스토케(Rastoke)를 여행하고

자그레브(Zagreb)를 거쳐

슬로베니아(Slovenia)와 접한 국경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 향하고 있는 슬로베니아(Slovenia)도 2번째 여행하러 가는데

지난 첫번째 여행 때

류블랴나(Ljubljana) 시내 여행은 하지 않았기에 

기대를 안고 가고 있는 중이다

 

 

자그레브(Zagreb)의 아이 호텔(i-Hotel)에서 출발한지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되어

크로아티아(Croatia)에서 슬로베니아(Slovenia)로 넘어가는

크로아티아(Croatia) 측의 브레가나(Bregana) 국경검문소에 도착하여

여권심사를 받는데 또 시간이 걸린다

크로아티아(Croatia) 출입국 여권 심사는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여권 심사 후 크로아티아(Croatia)를 벗어나  

슬로베니아(Slovenia) 측의 오브레졔(Obrezje) 국경검문소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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