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Albania)의 국경 Hani i hotit 검문소를
통과한 버스는
몬테네그로(Montenegro)의 국경 Bozhaj 검문소에서
여권 검사를 잠시 마친 후
몬테네그로의 수도인 포드고리차(Podgorica)를 향한다
몬테네그로(Montenegro)에서 행보는
포드고리차(Podgorica)를 경유하여
아름다운 아드리아 해안 도시인 부두바(Budva)를 거쳐
몬테네그로의 대표적인 여행지로 손꼽히는
코토르(Kotor)로 가는 일정이다
몬테네그로(Montenegro)의 뜻은
Monte(산)+negro(검은)가 합쳐진 것을 '검은 산'이라는 뜻으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식 발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검은 산'이라는 '몬테네그로(Montenegro)'를 가르키는 산은
코토르(Kotor) 쪽에 있는
나무가 없이 검게 보이는 '로브첸 산(Mt.Lovcen:1749m)'이라고 한다
몬테네그로(Montenegro)는
공식 명칭이 몬테네그로 공화국(Republic of Montenegro)으로
면적은 13,812㎢로서
우리 나라 경기도 면적(10,175.13㎢) 보다 약간 큰 국토를 가진
작은 국가이다
몬테네그로(Montenegro)는
국토 면적은 작지만
아드리아 해안을 끼고 북서쪽으로 '크로아티아(Croatia)',
북쪽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Bosnia&Herzegovina)',
동북쪽에는 '세르비아(Serbia)',
동남쪽으로 '코소보(Kosovo)',
아드리아 해안을 끼고 남쪽으로 '알바니아(Albania)'와인
많은 나라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국가이다
몬테네그로(Montenegro)는
65만여 명의
작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국가라고 한다
민족 구성으로는
몬테네그로인 61.9%, 세르비아인 9.3%, 알바니아인 6.6%,
무슬림 14.6%, 기타 7.6%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언어는
몬테네그로(Montenegro)의 고유 언어가 없이
키릴문자로 이루어진
세르비아어(Serbia Language)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종교는
그리스 정교 72%, 이슬람 19%, 카톨릭 3% 인구가
믿고 있다고 한다
몬테네그로(montenegro)에는
부계(父系) 중심의 대가족제를 이루기 때문에
가문에 대한 충성을 중요시 하여
가문들 간에 이해 충돌 때는 피에 복수와 싸움이 만연했던
전통사회의 잔재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중앙집권 공화제인 대통령 중심제이며
의회형태는 다당제와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체제상 공화국이지만
옛 왕가의 역할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고 하며
옛 페트로비치네고시 왕가에 상당한 수준의 실권이 주어지고 있다고 한다
법적으로 왕조의 존재가 명문화돼 있으며
왕은 몬테네그로 대통령과 같은 월급을 받고
옛 수도 체티네(Cetinje)에 집이 제공되고 있다고 한다
외교적 의전(State Protocol)을 행할 권한도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고 하며
국빈을 맞이하는 역할을 실제 정치인들과 같이 하므로
사실상 헌법에만 공화정으로 명시되어 있고
실제론 입헌군주국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국가라고 한다
몬테네그로(Montenegro)의
국가GDP는 54억2400만 달러 (세계 152위)
1인당 GDP는 8704 달러 (세계 75위)로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
<2019년 한국 국가GDP: 1조6295억3200만 달러(세계12위), 1인당GDP: 31,430 달러(세계30위)>
몬테네그로(Montenegro)의 수도인
포드고리차(Podgorica)애 진입하고 있다
포드고리차(Podgorica)는
우리가 가고 있는 부두바(Budva)나 코토르(Kotor)에 비교하여
여행지라기 보다는 삶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어
여행자가 가장 적은 곳이라 한다
그러나 몬테네그로의 수도(首都)이기에
주변 국가들과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라 여행 거점 도시라고 한다
포드고리차(Podgorica)에는
거주하는 인구가 13만6,000 여 명으로
몬테네그로의 인구의 22%가 거주하고 있는 도시라고 한다
포드고리차(Podgorica)는
리브니차 강(Ribnica River)과 모라차 강(Moraca River)의 합류지 근처에 있는데
기원전 일리리아인들의 정착지였을 것으로 추측하며
로마 시대에 거상들의 거점 역할을 했던
'비르지미니움(Birziminium) 정착촌'이라는 내용으로
역사에 처음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포드고리차(Podgorica)는
중세초에 한 봉건영지의 중심지로서 리브니차(Ribnica)로 알려졌다고 하며
1326년에 포드고리차(Podgorica)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1946년 유고슬라비아의 공산 독재자였던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대통령을 기념하여
'티토그라드(Titograd)'로 개칭하였다가
1992년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된 후
다시 '포드고리차(Podgorica)로 회복되였다고 한다
해발 107m 높이에 있는 '포드고리차(Podgorica)'의
고리차(Gorica)는
세르비아어로 언덕 이름으로 '아래'라는 뜻이라고 한다
포드고리차(Podgorica)는
1474년 오스만 제국에 넘어간 뒤 4세기 동안 지배를 받다가
1878년 베를린 조약 이후에 몬테네그로(Montenegro)의 영토가 된 후
급속히 발전하여 수도(首都)인 체티네(Cetinje) 보다 큰
몬테네그로의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1918년 몬테네그로와 세르비아의 합병을 결의한 대회가
이 곳 포드고리차에서 열려
이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개 소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70 차례 이상의 폭격을 받아 초토화되기도 하였으며
1945년 티토그라드(Titograd)로 개칭되어
1946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인
몬테네그로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고 한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내전 여파로
1990년대에는 경제가 크게 침체되었다고 하며
2006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마지막으로 독립한
몬테네그로(Montenegro)의 수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 관저는 옛 수도(首都)인
체티네(Cetinje)에 있다고 한다
포드고리차(Pogorica)를 지나쳐
몬테네그로(Montenegro)의
옛 수도였던 체티네(Cetinje) 방향을 향해 달려 간다
몬테네그로인들은
세르비아인의 한 지파로 분류된다고 한다
6세기 이후 남슬라브족들의 이주와 더불어
현재의 아드리아 연안을 중심으로 부족 국가를 형성하였다고 한다
몬테네그로인들은
로마인들로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인
9세기 두클랴(Duklja) 공국을 수립한 이후
1077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 7세(GregoryⅦ)로부터
독립 왕국을 인정 받았다고 한다
1094년 세르비아 중세 왕국의 초대왕 스테반 네마냐(Stefan Nemanja)가 이끄는
라쉬카(Raška) 공국 지배 하에 들어가며
제1대 몬테네그로 중세 왕국은 멸망하였다고 한다
세르비아 최대 전성기를 이룬
두샨(Stefan Uroš Dušan) 왕이 사망한 이후
1356년 제2대 몬테네그로 중세 왕국의 발쉬치(Balšić) 왕조가
수립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의 발칸 원정과 베네치아 공국과 전투에서
패배로 국력이 약해진 몬테네그로는
제3대 왕조가 출현하게 되는데 쯔르노예비치(Crnojović) 왕조였다고 한다
이후 오스만 제국의 계속된 공격에도 불구하고
몬테네그로는
험준한 산악지대를 이용하여 근대까지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포드고리차(Podgorica)를 지나쳐 산악 지형의 도로를 달린지
1시간 정도 되어
체티네(Cetinje)에 근접하여
예제르스키 음식점(Restaurant Jezerski Vrh)이라는
휴게소에 정차한다
체티네(Cetinje)는
15세기에 세워진 역사적인 도시로서
1918년 몬테네그로가 이웃 세르비아에 합병되기 전까지
몬테네그로 왕국의 수도였다고 한다
1910년에 인구가 5,895명으로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수도(首都)로 알려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체테네의 인구는 1만5천여 명이라고 한다
에제르스키 음식점(Restaurant Jezerski Vrh)이 있는
휴게소 앞 도로 풍경이다
고도가 높은 산악 지형의 도로라
보이는 것은
산 정상부와 바위산 꼭대기만 눈에 들어 온다
버스는 다시 부드바(Budva)를 향해 출발한다
보이는 지형들은 첩첩 산중만 보인다
몬테네그로(Montenegro)는
근대 시절 오스만 제국의 강력한 견제와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의 간섭에도
니에고쉬(PeterⅡ Petrović Niegoš:1830~1851) 시기에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1878년 오스만 제국과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의 지원 속에
독립국가로 인정받아
수도 체티네(Cetinje)를 중심으로 경제적 사회적 발전을 이루었다고 한다
몬테네그로(Montenegro)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이 끝난 이후에
1918년 세르비아군의 무력에 의해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왕국'에 편입되면서
독립국으로 위치를 상실하였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이 끝난 후에는
공산 독재인 유고슬라비아 연방 내의 몬테네그로 공화국으로 편입되어
1980년 공산 독재 대통령 '티토(Josip Broz Tito:1892~1980년) '사망과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공산주의 몰락으로 붕괴되며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가
차례로 독립을 선언하며 분리되어지고
1992년 세르비아와 함께 신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새롭게 구성하였다고 한다
몬테네그로(Montenegro)는
신 유고슬라비아 연방 일원으로서 분리되어 독립한 국가들과 내전을 치르면서
세르비아와 같은 연방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국제 사회로부터 오랫동안 경제 금수 조치를 받았으며
연방 내에서도 세르비아에 정치적 소외를 당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1999년 밀로 쥬카노비치(Milo Đukanović) 대통령을 중심으로
독립 논의를 시작하여
2006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마지막으로 분리되어
독립 국가가 되었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산악 길을 달려 오며
산능선 위에 있어
멀리서도 계속해서 보이던 성으로
1840년대 건설된 '코스마치 성(Kosmać Fort)'으로
1869년 지역일족의 '크리보쉬예(Kriboshije) 반란군'에 공격을 받을 때부터
1918년 몬테네그로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오스트리아 군에 의해
수비되고 있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 이탈리아 군의 주둔지였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폐허가 된 성이라고 한다
'코스마치 성(Kosmać Fort)'을 지나
'S'자형 산악 길 끝자락에 도착하니 아래 편으로 아드리아 바다와
아름다운 해안선을 끼고 있는 부드바(Budva) 시내가 보인다
이곳이 굉장히 높은 산악지대 도로라서
부드바(Budva)로 내려가는 길은
산 능선을 크게 'S'자형으로 돌아서 내려가게 되어 있어
멀리 산 중턱으로 돌아가는 길이 보인다
몬테네그로(Montenegro)는
아드리아 해안을 끼고 해발 고도 2400m 고봉들이 펼쳐져 있는
'디나르 알프스 산맥'이 북쪽 국경에 맞닿아 있고
남동부 쪽에는 해발 고도 1600m 고봉들이 펼쳐져 있는
'발칸 산맥'이 지나고 있다고 한다
몬테네그로(montenegro)는
발칸반도의 서쪽 아드리아해를 끼고 중남부에 위치한 국가로서
국토의 해발 평균 높이가 1000m의 고원지대로서
부드바 시내는 해안가에 있어
부드바(Budva) 시내가 눈에 보여도 내려가는 길은
한참을 'S'자로 크게 돌아 내려 간다
내려다 보이는 해안가 시내는
오른쪽으로 보이는 시내가 부드바(Budva)이고
좌측으로 보이는 시내가 베치치(Bečići)라는 곳이다
발칸 반도의
'발칸(Balkans)'이란 말은
19세기 초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고 하며
'산맥'이라는 뜻으로
터키(Turkey)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부드바(Budva)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해안가 쪽의 툭 튀어 나온 곳이
'올드 타운(Old Town)'이라고 한다
내려가는 길목에 산 위를 올려다 보니
벼랑 위와 그 아래로 숲 사이로도 우리가 내려 온 길이 보인다
산악지대를 내려와 해안가에 있는 시가지로 내려오니
베치치(Bečići)라는 도시이다
베치치(Bečići)라는 도시는 부드바(Budva) 남쪽 해안에 위치하며
산 능선 하나를 끼고 떨어져 있는 도시이다
베치치(Bečići)에서 부드바(Budva)로 향하는 도로이다
산에서 돌아 내려 온 도로가 위로 보인다
부드바(Budva)로 가는 해안도로이다
부드바(Budva) 시내가 해안선을 끼고 펼쳐 보인다
부드바(Budva)는
현재 1만9,2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중세 성벽이 잘 보존된 도시로서
몬테네그로에서 관광의 중심지라고 한다
부드바(Budva)의 역사는
2500년이 넘는정착촌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테베(Thebes)를 건설한 카드모스(Cadmus)가
테베에서 추방 당했을 때
그와 그의 아내 하모니아 여신을 위해
이곳에 은신처를 찾아 세운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부드바(Budva)는
기원전 4세기 이곳에 식민 상업도시로 엠포리움(Emporium)을 세웠으며
기원전 2세기에는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고 한다
6세기에는 비잔틴 제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이후 슬라브인과 로마인들과 섞여 이곳으로 몰려들었으며
841년 이슬람 사라센스(Saracens)의 침략으로
황폐화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중세 초에는 세르비아(Serbia) 귀족과 제탄(Zetan) 귀족과
도클린 왕(Doclean Kings)들이 잇달아 부드바(Budva)를 다스렸다고 한다
1200년 경에는 로마 카돌릭 부드바(Budva) 교구가 되어
1828년까지 명목상 이어갔다고 한다
1420년에서 1797년까지 거의 400년 동안을
베네치아인들이 부드바(Budva)를 통하였다고 했다고 하며
그 수세기 동안 알바니아 베네타(Veneta) 지역의 일부였으며
오스만 제국의 정복에 대항하는
베네치아인들의 성벽에 의해 요새화되었다고 한다
1797년 베네치아 공화국이 멸망하면서
부드바(Budva)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통치 하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후 합스부르크 왕조가 나폴레옹 군대와 전쟁하는 동안에
1806년 러시아와 연합한 몬테네그로가 부드바(Budva)를 장악하였으나
1807년 프랑스가 장악하여 1813년까지 지배하다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양도되었다고 한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100년 동안 지배하였다고 한다
부드바(Budva)는
1814~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통치 하에 있었으며
산 위에 있는 '코스마치 성(Kosmać Fort)'은 최남단 요새로
부드바(Budva)에서 체티네(Cetinje)로 가는 길을
지키기 위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세르비아(Serbia) 군'은
오스트리아 군에게 버림 받고 유고슬라비아 왕국 밑으로 들어가
부드바(Budva)를 장악하였다고 한다
부드바(Budva)는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이탈리아 왕국에 장악되었다가
1944년 유고슬라비아 연방 내의
몬테네그로 사회주의 공화국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1979년 대지진이 발생하여 많은 옛 마을들이 황폐화되었지만
현재는 대부분 옛모습을 찾았다고 하며
2006년 몬테네그로(Montenegro)는
부드바(Budva)를 주요 관광지로 하여
신 유고슬라비아 연방인 세르비아(Serbia)와 분리하여
독립국가 되었다고 한다
코토르(Kotor)에 진입하기 시작하며
내리막 길에 공동묘지가 눈에 들어 온다
코토르(Kotor) 중심가로 진입하는데
급경사진 산위로 성벽이 이어진 모습이 보이고
산들이 검게 보인다
베네치아인들이 이곳에 침공하여 이 모습을 보고
Monte(산)+Negro(검은)= 'Montenegro(검은산)'라고 지칭하여
몬테네그로(Montenegro) 국가명이 된
로브첸산(Mt.Lovcen:1794m) 대산괴에 속하는 산들이다
코토르 만(Kotor Bay)에
대형 크루즈(Cruise)가 정박해 있는 것이 보인다
몬테네그로(Montenegro)에서
가장 대표적인 여행지로 손꼽는다고 하는 '코토르(Kotor)'에 도착한다
코토르 만(Kotor Bay)은
아드리아 해에서 가장 움푹 들어간 부분에 위치하고 있어
유럽 최남단 피오드르(Fjord)라고도 하는데
하지만 리아(Ria)로 물에 잠긴 강 협곡이라고 한다
코토르(Kotor)는
현재 2만3,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로
고대 로마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도시라고 한다
기원전 168년 고대 로마시대 때 정착되었다고 처음 언급되었는데
당시에 아크루비움(Acruvium), 아스크리비움(Ascrivium),
아스크루비움(Ascrubium)으로 알려져 있었고
로마의 달마티아(Dalmatia) 지방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코토르(Kotor)는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JustinianusⅠ)가
이주해 오는 게르만족의 일부인 오스트로고스(Ostrogoths)를 몰아낸 뒤
535년 아스크리비움(Ascrivium) 위에 성벽을 쌓으며
요새화되었다고 한다
코토르 성벽(Kotor Wall)이다
앞에 원형 성벽이 캄파나 타워(Kampana Tower)이다
이 코토르 성벽은 베네치아가 코토르(Kotor)를 공격해 오던
14세기 말에 네만니치 왕가(Nemanjić Dynasty:1167~1371년)에 의해
높이 20m에 총길이 4.5Km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코토르 성벽(Kotor Wall) 안에 있는 코토르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코토르 성 '서문'이다
코토르 성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서문, 남문, 북문으로 3개의 문이 있는데
서문이 메인 문이다
코토르 성벽 안 구시가지 및 성벽길
한국어 번역 안내도이다
발칸반도에 있는 국가들을 여행하면서
키릴문자 및 슬라브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답답한 면이 많이 있었는데
한국어 안내도가 있어
우리의 국가 위상도 많이 높아졌구나 하는
자랑스러움이 느끼는 순간이다
코토르 성(Kotor Fort) 서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서면
'무기의 광장'이라는 작은 광장이 나오는데
성벽 안에서 가장 넓은 광장이라고 하며
정면으로 '시계탑'이 보인다
1602년에 시계탑이 세워졌다고 하며
1667년 지진이 발생하여 약간 서쪽으로 기울어졌다고 하는데
그냥 보기에는 느끼지 못할 정도이며
시계탑 앞에는 작은 삼각뿔 모양의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수치의 기둥(Pillar of Shar)'이라고 한다
이 기둥은 죄인을 이곳에 묶어 세워
공개적으로 수치를 당하게 하였던 기둥이라고 한다
시계탑 뒤로 있는 골목길로 들어선다
골목길에는
코토르(Kotor) 기념품 샵도 있다
피마 궁전(Pima Palace)이다
16~18세기까지 코토르(Kotor)를 다스렸던
피마 가문이 거주하던 궁전이라고 한다
고딕 양식과 바로크 양식을 혼재하여 건축한
코토르(Kotor)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고 이야기 한다
'성 트리폰 대성당(Cathedral of Saint Tryphon)'이다
몬테네그로(Montenegro)에는 2개의 '가톨릭 성당'이 있다고 하는데
그 중에 하나인 코토르(Kotor)를 대표하는 성당이라고 한다
'성 트리폰 대성당(Cathedral of Saint Ttyphon)'은
1166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되었는데
코토르(Kotor)의 수호자로 여기는 성 트리폰(St.Tryphon)에게 봉헌된
성당으로 35m의 두개의 첨탑이 특징이라고 한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아치 좌우 측에는
1166과 2016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데
1166은 대성당이 건축된 년도이며
2016은 이 대성당이 지진으로 파괴되어 훼손된 이력을
1667년과 1979년 2회 가지고 있는데
복구된 연도를 적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코토르(Kotor) 구시가지 골목길이다
스페인의 톨레도 또는 이테리 피렌체를 여행할 때 처럼
짧지만 그런 좁다란 골목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비롯 그쪽의 낡고 어두운 느낌의 골목길 보다는
밝은 느낌을 주고
골목의 바닥돌도 중세시대의 것치고는
특색이 있었다
베란다에 깃발이 걸려 있는
옛 그르구리나 궁전(Grgurina Palace)이라고 한다
코토르(Kotor)로 이주해 온 그르구리나 가문에서
1732년 바로크 식으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그르구리나 궁전(Grgurina Palace)은
현재는 '해양 박물관(Pomoaski Muzej)'으로 사용하여 있으며
입구 옆에는 해양박물관을 표시하는 닻을 전시하고 있으며
해양 박물관 안에는
코토르(Kotor)의 항해술에 뛰어남을 자료들로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해양 박물관(Pomoaski Muzej)'에서
'성 루카 광장(St. Luca's Square)'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