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네팔과 인도를 여행하기 위해 계획하였다가 하지 못하고
이번에 어렵게 실행에 옮기된 여행으로
네팔 카트만두에서 여행을 시작해서
인도 뭄바이에서 여행을 마무리하는 13박14일 일정이다
06:00에 집을 나와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시간에 맞춰 타기위해 여행가방을 끌고
열심히 빠른 걸음으로 정류장으로 가서
아슬아슬하게 버스에 오른다.
인천공항까지는 약 30분정도 소요되는데 버스에 오르니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혼잡한 만원 버스로서 엄동설한에 땀으로 범벅이 된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07:30에 여행사 직원과 미팅을 한 후 출국장으로 가니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출국하는 인파가 100m 정도는 늘어서 있어
출국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맨 뒤로 돌아가 줄을 선다.
지금까지 여행하며 출국장으로 들어가 검색대 앞에서는 줄을 서 보았으나
처음으로 겪어보는 장면이다.
우여곡절 속에 09:55에 우리가 탄 대한항공 비행기는
네팔 카트만두를 향해 날아 오른다
인천공항에서 네팔 카트만두까지 비행거리는 5,503Km이며
비행시간은 7시간 30분 정도소요 되고
한국과 시차는 3시간 15분 이라한다.
어느덧 비행기 모니터에는 네팔의 영공을 날고 있으며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산이 표시되어 나타난다.
비행기 창문 가림막을 얼른 올리고 밖을 쳐다보니 모니터의 표시된 방향에
히말라야 산맥이 보이며 에베레스트 산이 보인다
지구상에는 8000m가 넘는 산이 14좌가 있는데
약 2500Km의 히말라야 산맥에 14좌가 전부 펼쳐져 있으며
네팔이란 나라에 그 중 9좌가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비행기 안에서
마칼루(사진 중앙), 로체(8511m 사진좌측), 에베레스트(사진 로체옆 맨좌측)
초오유(8201m 위 사진에는 없음)를 보며
하늘을 날고 있는데
정말 꿈만 같고 환타스틱(Fantastic) 함에 빠져든다.
히말라야 산맥만 보더라도 감개무량 할 줄 알았는데
그리 생각하지도 않았던
이 최고봉들을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에
마음은 한 껏 벅차오르며
입에서는 감탄사만 연이어 토해낸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산!
책에서와 말로만 듣던 신화처럼 느껴지던 산!
내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고 꿈만 같다
비행기는 에베레스트 산이 보이는
네팔 하늘을 우리에게 자세히도 보여 주려는 듯
한바퀴 선회하더니 서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다
산세가 험한 계곡에 계단형 밭인지 논인지가
정겹게 보이는데
그런데 험준한 산 능선에 희끗희끗 무엇인가 보인다
자세히 보니 집들이 아닌가?
줌으로 끌어 당겨 본다
저렇게 험하고 높은 곳에
집들이 많이도 보이는데....
저 곳에 오르려면
저 좁은 경사길을 따라 꼬불꼬불 걸어 올라야 하는데..
억!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도대체 몇 시간이나 걸어서 올라야 될까???
카트만두 공항이 다가 오는 듯
산세가 낮아 지며
비행기는 더욱 고도를 낮춘다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는 산악지형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금 전까지 보이던
험준한 산악지형들은 보이지 않고
우리나라의 농촌마을 보는 듯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카트만두 시내 외곽인 듯 한데
집들이 단층 보다는 층수가 있는 건물들이 많이 보이고
카트만두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 오더니
비행기는 순식간에 활주로에 내려 앉는다
카트만두 트리부반(Tribhuvan) 국제공항에 착륙한 시간은
현지시간 오후 2시25분 (한국시간 오후 5시40분)....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인터내셔날 터미널이란 쓰인 건물 바로 뒤쪽에 내려 준다.
걸어가도 되는데... ∨∨!!
네팔에 입국하려면 비자(VISA)가 필요한데
비자가 없는 사람은 공항에서 $25와 사진1매와 입국신고서를 작성하여
"Without VISA"가 쓰여진 창구로 가 줄을 서 발급을 받고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면 된다
네팔 입국 절차를 마치고 짐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오니
복잡한 가운데 피켓을 들고
네팔 현지 가이드 "구팔"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따라 주차장으로 가 버스에 오른다 (현지시간 16시10분)
그런데 공항을 나와 가이드를 만나면
그 옆에서 친절하게 짐가방을 받아 버스까지 옮겨주는 사람이 있다.
우리와 함께 할 직원으로 알았는데
공항에서 그 일을 하고 팁($1)을 받는 사람이다
우리가 버스에 오르자
첫 관광지로 더르바르 광장(Durbar Square)으로 출발한다
네팔 국가의 공식 명칭은 네팔왕국에서
2008년5월28일 네팔 연방 민주공화국이 되었다
국토의 동,남,서 방향은 인도와 국경을 이루고 있으며
북쪽은 중국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데
히말라야 산맥 정상을 공동 국경으로 하고 있는 나라이다
국토는 직사각형 형태로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약 800Km,
북에서 남으로140~240Km 펼쳐져 있다
면적은 147,181㎢로 우리 남한 면적의 보다 약1.5배 정도 크며
산악지형이 77%, 평야지대가 23%로 되어 있다.
인구는 약 3,043만명 정도이며 130여 소수 종족이 모여 살고 있으며
종족으로는 체르리족 16%, 브라만힐족 13%, 마가르족 7%,
기타 소수종족이 함께하는 국가인데
그들은 아리안족 80%, 몽골리안 20%가 살고 있다고 말한다
언어는 공식언어로 네팔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103개의 언어가 공존하고 있어
대화가 통하지 않는 지역도 있다고 있다고 한다
정치는 공화제 형태로
국가원수는 대통령이고 정부수반은 총리이며
종교는 힌두교 80.6%, 불교 10.7%, 이슬람교 7.4%로 나뉘어 믿고 있는데
14세기에 인도에서 들어온 카스트제도가
1951년까지 네팔에서도 존재 하였었다고 한다
1인당 GDP는 2013년 기준 692 달러로 우리 대한민국 23,837 달러에 비하면
경제력이 낮아도 매우 낮지만
나의 눈에는 거리의 사람들이 매우 분주해 보이고
얼굴도 밝아보여 열심히 노력하며 행복하게 사는 나라로 보여지고 있었다
기후는 몬순성 기후와 아열대성 기후로 가진 나라인데
카트만두, 포카라 등 산악지역은
한국과 비교해 여름에는 덜 덥고, 겨울은 덜 춥지만
바랏푸르나 룸비니 지역의 평야지대는 열대성 기후 가진 나라로
가이드 구팔은 네팔은 대한민국은 4계절을 가지고 있으나
네팔은 6계절을 가진 나라라고 한다
군대는 지원제로서 네팔의 군인은 약 15만명 정도이고
대우가 좋아 경쟁율이 세다고 한다
공항에서 약 30분 정도 달려 버스를 세운 곳은
칸티 대로(Kanti Path)의 로얄네팔항공(RNAC) 건물 앞
버스 정류장 쪽에서 세워 준다
이 곳부터 뉴 로드(New Road) 쪽으로 버스가 진입할 수 없으므로
약 15분 정도를 걸어서 더르바르 광장까지 가야 한다고 하며
가이드는 길이 매우 번잡하니 깃발을 잘 보고 따라 오라고 당부한다.
뉴 로드(New Road)는
네팔에서 우리의 명동 거리에 비교되는 곳으로
쇼핑센터와 상점이 많이 늘어서 있는
카트만두의 최고의 번화가라 한다
뉴로드를 통과하니 더르바르 광장(Durbar Square)이 보인다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건물은
9층의 바산타푸르 탑이고
그 곳 앞을 지나니 바산타푸르 광장이 나온다.
이 광장에는 골동품을 파는 많은 노점상이 늘어서 있었다
더르바르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바산타푸르 더르바르(Basantapur Durbar)를 배경으로 인증 샷부터...
'더르바르'라는 말은 왕궁을 뜻한다고 한다
사진 뒤로 보이는 9층의 바산타푸르 탑은
18세기 말 프리트비 나라얀 샤(Prithvi Narayan Shah)가 말라 왕조를
물리치고 세운 전승 기념탑이라 한다
바산타푸르 탑 앞에서 더르바르 광장을 바라보면
나라얀 사원이 보이고 그 뒤로 쉬바 사원인 마주데발(Maju Deval)이 보인다
나라얀 사원의 정식 명칭은
트라일로캬 모한 나라얀 사원 (Trailoka Mohan Narayan Madir)로
1680년 파르티벤드란 말라왕(King Parthvendra Malla) 때 만들어져
우주를 유지보전하고 다르마(도덕률)를 원상복구 역할을 담당하는 신으로
숭배받는 비슈누(Visnu=Narayan)에게 헌정된 사원이라 한다.
나라얀 사원 바로 옆에는 쿠마리 사원(Kumari Bahal)이 있다
힌두교의 시바의 부인 파르바티(Parvati)의 화신으로서
순결하며 용맹하고 무서운 이미지를 가진
카트만두의 주신으로 모시는 탈레주(Taleju) 여신 또는
두르가(Durgha) 여신의 화신으로서
살아있는 여신인 라즈 쿠마리(Raj Kumari)가 거주하는 곳이다
사원은 3층의 네마르 전통양식으로 지어 졌으며
쿠마리를 섬기는 것은
17세기말 말라(Malla) 왕조 마지막 왕 때부터
현재까지 이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쿠마리 사원의 조그만 입구를 들어서자 안 쪽에는 작은 정원이 있다
여기서 쿠마리는 3층 가운데 창문을 통해 잠시 얼굴을 보이는데
사진은 촬영은 안된다고 한다
지금 얼굴을 보이기 바로 전이라 관리인이 3층 창에서 지켜보고 있으며
카메라를 끄고 아래에서 신호를 보내면 쿠마리가 잠시 얼굴을 보여 준다
라즈 쿠마리(Raj Kumari) 선발은
4~5세의 여아로서 석가모니 쪽 후손에서
용모와 별자리 등 여러가지 32가지 조건을 거쳐 선발하는데
마지막 시험은 어두운 동굴 속에서 울지 않고 하룻밤을 견디어야 하고
전임 쿠마리가 쓰던 소지품을 골라내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한다
쿠마리로서 살수 있는 기간은 4살부터 초경전 까지라 한다.
쿠마리로 선발되면 가족과 함께 사원으로 들어가 같이 사는데
쿠마리는 신으로 추앙을 받고는 있지만
정해진 날(1년에 7번 행사) 외에 밖으로 나올 수 없으며
부와 명성은 부모가 다 가져 간다고 한다
쿠마리는 초경을 치루면 신성을 잃었다고 간주되어 사원에서 쫒겨나게 된다
쫒겨난 전임 쿠마리는 이때 부터 비참한 삶을 많이들 살게되는데
전임 쿠마리와 결혼한 남성은 일찍 죽는다는 속설 때문에
평생 결혼하지도 못하고
부모에게도 버림을 받아
떠돌이 생활하는 전임 쿠마리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생계를 위한 윤락 여성으로 살아가는 전임 쿠마리도 있다고 하니
여신으로 추앙 받을때는 언제고....
너무 안타깝고 애처로운 생각이 든다.
마주 데발 옆에는 쉬바 파르바티 사원(Shiva Parvati Temple, 사진좌측)이 있다
18세기 바하두르(Bhahadhur) 왕이 건립한 힌두 사원인데
힌두 사원은 한명의 주신만 모셔 놓는데
이 사원은 쉬바와 그의 부인인 파르바티 부부를 동시에 모셔 놓은 특징이 있다
사진을 유심히 보면 위쪽에서 부부가 함께 더르바르 광장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우측의 하누만 도카(Hanuman Dkoka)는
카트만두의 구왕궁으로서
5세기경 네팔 최초의 왕조인 리차비 왕조(Licchavi Dynasty)에 건립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17세기경 말라(Malla) 왕조에 의해 중건 된 것으로
카트만두를 지배하는 왕국으로서는 정통성을 상징하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더르바르 광장 한가운데 있는 쉬바 사원인 마주데발(Maju Deval) 인데
1690년 박타푸르의 왕인 부파틴드라 말라(Bhupatindra Malla)가
3층 지붕을 포함하여 기단까지 총 9층으로 세웠고
외형적으로는 불교사원에 가까우나 힌두교 사원으로서
쉬바 신의 링가(Ringa:성기)가 모셔져 있다
사원 앞에 인도 사클아라(Saklara)양식의 흰탑이 보인다
하누만 도카 옆을 지나 몇 미터만 조금 더 가면
길 한켠에 돌로 된 신상이 나오는데 칼라 바이라브(Kala Bairav)이다
쉬바(Shiva) 신의 화신 중에 하나인 공포와 파괴의 신으로서
여섯개의 손을 가지고 있는데
한손에는 칼을 또 한손에는 연꽃을 또 잘린 손목을 또 잘린 머리를
각각 들고 사람을 발로 밞고 있지만
얼굴 모습은 보면 천진난만한 모습을 하고 있다
칼라 바이라브 신상 옆에서 장사하는 노점의 물건이다
이 신상에는 다른 사원에 비하여
제수용품을 받치고 기도를 하는 모습이 더 많이 보이는데
이 근처에는 대부분 제수용품 노점이 늘어서 있었다
칼라 바이라브 신상 쪽에서 다시 하누만 도카를 향하는 쪽
신상 바로 옆에 자간나트 사원(Jagannath Mandir)이 있다
이 앞을 지나다가 연인들의 데이트하는 모습이 정겹게 보여 찍어 되었는데
자간나트 사원은 비슈누(Visnu)의 권화로
"우주의 신""세상의 어머니""위대한 여신"으로서
자비와 광폭의 양면성을 지닌 자간나트 신을 모신 사원이다
자간나트 사원 앞에는
구 왕궁인 하누만 도카(Hanumman Dhoka)로 들어 가는 작은 문이 있다
이 입구에는 원숭이의 신상이 있는데 이 곳에서도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왕궁의 이름인 하누만 도카의 의미를 살펴보면
"도카(Dhoka)"는 '입구'라는 뜻이고
"하누만(Hanumman)"은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에 나오는
원숭이 신의 이름이라 한다
직역하면 '원숭이 입구'라는 뜻인데
신화에서 처럼 '왕을 수호하는 신'을 의미한다고 한다
하누만 도카의 작은 문을 들어서면 나살초크(Nassal Chowk)가 나온다
나살초크는 왕궁의 안쪽 광장으로서
사진은 이 곳에서 보는 바산타푸르 탑(Basantapur Tower)과
왕궁의 박물관인 마헨드라 박물관(King Mahendra Memorial Museum)이다
나살초크는 왕궁이 비롯 더르바르 마르그(Durbar Marg) 지역으로 옮겨 갔지만
오랜기간 네팔왕국의 상징으로 왕궁으로 지위는 남아 있어
국왕의 대관식이나 국가의 중요행사는
반드시 이 하누만 도카의 나살초크에서 행하여 진다고 한다
나살초크에서는 보는 하누만 도카의 일부인
유럽풍의 가디 바이탁(Gaddi Baithak) 왕궁이다.
일부는 트리부반 박물관(Tribhuvan Museum)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흰색 왕궁은 런던 국립 미술관을 본 따서
1908년 건립하였으며 왕들이 쿠마리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 곳에 거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가이 바이탁 왕궁의 문이 열린 곳에 정복을 입은 사람이
하누만 도카의 경비병으로 보여 줌으로 당겨 본다
그런데 계속 안쪽을 바라보며 무슨 이야기 하며 저러고 있다
가이드인 구팔에게 물어 본다
'저 사람! 왕궁의 정식 경비병이 아니야?"
'아니다'고 한다. 자율적으로 하는 경비병이란다. ???
하누만 도카에서 나와 다시 마주데발과 나라얀사원을 사이를 지나
쿠마리 사원의 옆쪽 광장에 있는
카스타만다프 사원(Kasthamandap Temple) 앞으로 이동한다
이 사원은 1595년 거대한 살 나무(Sal Tree) 하나로
락슈미나 나라심하 말라 왕(King Lakshmina Narasimha Malla)이
건립한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새로 발견된 문서에 따르면 1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져
카트만두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되는 건물이다
카스타(Kastha)는 나무, 만다프(Mandap)는 정자를 의미하는데
원래는 순례자들과 교역상들이 휴식처로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고락나트(Gorakhnath) 사원으로 변모하였다
'카트만두'라는 도시의 명칭도 '카스타만다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더르바르 광장은 시장 상가 골목과 연결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어 서서히 걸으면서
네팔의 서민들의 생활상을 조금이라도 느꼈으면 하지만
우리는 다음 관광지인 스와얌부나트로 가야하기에
해가 지고 있어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곳은 더르바르 광장에서
약 15분 정도 떨어진 비쉬누마티(Bishnumati) 강쪽에 있는데
그 쪽으로 가는 길은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길로
오토바이들이 많이 다니며 경적을 울리고 있어
길 거리를 거닐며 소음 공해에 시달려 짜증이 날 정도 였다
오토바이를 피하며 강쪽으로 내려와 다리를 건너 버스에 오른다
스와얌부나트는 카트만두 시내 서쪽에 있는데
버스를 타고 좁은 시내 도로를 10여분 가니
어두워져 가는 가운데 아담한 산(언덕)정상 위에 스투파가 보인다
가이드가 묻는다
걸어 올라 갈까요? 차로 올라 갈까요?
스와얌부나트(Swayambhunath)의 입구는 2곳으로
동쪽 입구와 서쪽 입구가 있는데
동쪽 입구는 급경사인 365계단을 올라야 하며
서쪽 입구는 계단이 얼마 있지 않고 쉽게 빨리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서쪽 입구로 가 버스에서 내려 매표소를 통과하니
조그만 연못이 있고 그 가운데 보살 상이 있는데
가이드는 그 앞에 있는 통으로 동전을 던져서 집어 놓고
소원을 빌으면 다 이루어 진다나???
연못 옆에 있는 작은 스투파이다
스와얌부나트 사원은 언제, 누가 세웠는지 모른다고 하며
전설로만 전해져 온다고 한다.
전설의 내용은 아주 먼 옛날 신들이 사는 히말라야의 산기슭에
파란 하늘 아래 에메날드와 같이 빛을 발하는 호수가 있었다
그 호수 한가운데 섬이 있었고 그 곳에 연꽃이 피었는데
어느날 그 연꽃에 대일여래가 나타나셨다고 한다
그 무렵 중국의 오태산에 있다가 티벳을 지나 인도로 돌아오던 문수보살이
대일여래의 소식을 듣고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 호수로 향하였는데
그 곳 호숫가에 살던 주민들은 그 호수에 사는 커다란 뱀의 악행에
시달리며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 격노한 문수보살은 가지고 있던 검을 휘둘러 조바르산을 둘로 갈랐다
그러자 괴물은 호수와 함께 사라지고
오늘날과 같이 사람이 살 수 있는 비옥한 카투만두 분지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리고 문수보살은 그 호수의 작은 섬이었던
이 곳에 스투파를 세웠고 나중에 싯다르타로 환생한 대일여래를
만물의 창조자로 칭송하였다고 하는 전설이다
이 전설은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한다고 한다
지질학적으로 3만전에는 카트만두 분지가 호수였다고 하며
분지 남부에 조바르 마을 부근의 있는
산이 붕괴되고 수계가 변경된 흔적이 있다는 것과
또한 부처님 탄생도 네팔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전설에 의하면 스와얌부나트 사원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라 할 수 있다 ???
스와얌부나트 사원의 스투파에서
불탑의 눈은 부처님의 눈을 상징하는데
동서남북 사방으로 있어 카투만두를 전체를 바라보고 있으며
물음표처럼 생긴 코는 네팔 숫자 1을 나타 내는데
모든 진리는 하나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두 눈사이의 점은 진리를 보는 제3의 눈인 '삼지안'이라 한다
불탑 위에는 13개의 둥그런 고리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데
티벳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에 이르기 위한
13개의 수행과정을 뜻한다고 한다
스투파를 참배할 때는 시계방향으로 돌며 탑돌이를 하여야 하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때는 크게 실례를 범하는 것으로 모독을 뜻한다고 한다
이 곳은 사원 동쪽 입구에서 급경사 계단으로 올라오는 쪽인데
해진 저녁이라 계단이 보이질 않는다
카트만두 시내 야경 촬영으로 만족을 한다
사원에서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쪽으로 내려가는데
계단 및 길 옆에는 여기저기 원숭이 떼들이 엄청 몰려 있다
어두운 밤길이라 촬영도 못하고...
어느쪽에서 갑자기 습격을 당할지도 모르고...
조폭들이 주위를 어슬렁 거리는 꼭 그런 느낌이랄까 ??
경계하며 조심조심 버스로 향한다
타멜(Thamel) 지구에 있는 저녁 식당으로 이동하는데
현재시간 저녁 7시16분을 가르키고 있는데
가이드는 빠르면 15분, 늦으면 1시간 걸린다고 한다.
스와얌부나트에서 좁은 골목길을 내려 오는데
차들이 밀려 움직이질 않는다
우리가 진행하는 방향으로는 몇 m만 가서 우회전 하면 되는데
정체되어 그대로 서 있고
우리의 반대 방향으로는 좁은 길을
오토바이와 승용차들이 뒤섞여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한 30분 정도 정체되어 있었나
겨우 빠져 나와 우회전 하기 시작한다
네팔은 운전석이 우리와 반대로 우측에 있으며
주행도 우리와 반대로 좌측통행을 한다
버스가 복잡한 도로를 벗어나 타멜(Thamel) 지구로 접어드니
번잡하지는 않으나 화려한 조명들이 많이 보인다
(움직이는 차에서 밤중 사진이라 건진 것이 없어 아쉽다ㅠㅠ)
버스가 웃사브(UTSAV)라는 식당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가 다 되어서다
이 식당은 네팔 전통공연을 보면서 식사하는
네팔 전통식단 음식점인데
우리가 네팔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식사하는 곳이다
식당에 도착하여 식당으로 들어 갈때 이마에 빨간 점을 찍어준다
이것을 띠까라고하는 하는데 '신의 은총을 받으라'라는 뜻이라 한다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물과 함께
황토 흙으로 빗은 조그만 잔에 네팔 전통주를 따라준다
술맛을 보니 고량주 맛이라 할까..
그런데 흙으로 빗은 잔이라 그런지 잔에 스며들고 샌다 ㅠㅠ
식사는 그 이후에 나오는데
코스요리 식으로 음식들을 들고 나와
동그란 놋그릇 식판에 조금씩 덜어주고 간다
맛은 대체로 입맛에 맞는것 같고
식사를 하면서 부족한 식단을 보면 더 먹겠냐고 묻는 친절도 베푼다
식사를 하는 동안
네팔의 여러 지역의 음악과 민속춤을 소개하는데
그래도 좋았던 음악은 네팔인에게 우리의 아리랑과 같은
우리 귀에 익숙한 네팔의 민요
레삼삐리리(Resham Phree Ree: 바람결에 휘날리는 비단처럼) 이다
이 네팔 민요는 어딘가 모르게 흥이나면서도
마음에 평온함과 함께 행복해지는 느낌을 주는 음악인 것 같다
공연 후반부로 가는 것 같다
음악을 소개하던 MC가 내려와
무용을 같이 즐길 사람을 추천을 받는다
우리 팀에서는 나간 사람이 없고
서양 여성이 혼자 나와 춤을 따라하고 있는데
얼굴에는 쑥스러운 표정이 가득하다 ^^
어제는 민속춤과 함께 식사를 하고 호텔로 왔는데
밤길이라 이 에베레스트 호텔(The Everest Hotel)이
어디쯤 있는지 몰랐는데
지도를 보니 어제 카트만두 공항에서 더르바르 광장으로 이동하였던
아르니코 하이웨이(Arniko Highway)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는
네팔에서는 고급 호텔이었다
호텔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이른 아침 부터
길거리 차도변에서 보따리 장사하는 모습이 보인다
벌써 이 시간부터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일정은 카트만두에서 서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포카라(Pokhara)로 약 7시간을 이동하여 관광하는 일정이다
우리는 아침 8시에 길을 나선다
카트만두(Kathmandu)는
네팔의 수도로서 해발 약 1350m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후는 일년 내내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은 온화한 날씨를 가진 곳이다
카트만두에 현재 거주하는 인구는 약 400만명 정도라고 하며
면적은 약 650만 ㎢ 라고 한다
카트만두 분지에 오래 전부터 거주하며 도시를 건설한 부족은
네와르족이라 하며
네와르 라는 이름은
예전엔 카트만두 분지를 뜻하고 지금은 국가명인
네팔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카트만두 외곽의 고개 마루를 벗어나니
비포장에 가까운 좁은 산길도로를
까마듯하게 꼬불꼬불 서서히 엄청 내려간다
카트만두 쪽에서는 고개답지 않은 낮은 고개를 올라 왔는데
그 곳 정상부를 지나니
이 나라가 히말라야에 있는 산악 국가이구나 하는 것이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다
뒤를 보니 트럭들이 힘들게 카트만두를 향해 올라가고 있다
사진 위쪽에는 카트만두로 넘어가는 길이 보이고
그 아래로는 계단식 밭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농부들이 밭일을 하기위해 저곳을 얼마나 많이 오르내릴까?
너무나도 고단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한숨만 나오며...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꼬불꼬불 산길을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쳐다보는데
저 멀리 히말라야 설산이 보인다
산길을 거의 내려 왔나..
비포장 도로에서 장사하는 집처럼 보이는데
너무너무 아슬아슬 해보인다
바위 위에도 아니고...
지금 우리는 고속도로에 접어 들었다고 한다
?????
고속도로는 포장은 되어 있으나 울퉁불퉁하여 차가 너무 떨고
차선은 왕복 2차선이나 차선이 없는 곳이 너무 많아
속도를 내기 어려우며
우리의 지방도 보다 못한 비포장 도로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된다
고속도로 명은 프리트비 하이웨이(Prithvi Highway)
그래도 고속도로니 통행료는 내야 한다고 한다.
통행료는 우리 돈으로 약 300원 정도로
네팔 돈으로는 15루피 정도를 내야한다고 한다
카투만두가 해발고도 1350m 인데
우리는 그곳에 서서히 내려와
해발고도 약 900m 까지 고도를 낮추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달리는 버스 안에서 열심히 풍경사진을 담으려 하는데
차가 너무너무 덜컹거려 사진을 찍기가 엄청 어려워
망치는 사진이 속출한다
갠지즈 강으로 흘러가는 상류지역의 강인
트리술리 강(Trishuli River)으로 흘러가는 지천이다.
우리는 이 지천에서 트리술리 강을 따라 몇시간을 달리다
무글링(Mugling) 지역에서 다리를 건너서
포카라로 가게 된다
카트만두에서 출발한지 2시간 정도가 넘어
아쇼카 나무가 쭉쭉 뻗어 있는 주차장에 버스를 세운다
아담한 함레트(Hamlet) 휴게소이다
언덕 위에 차를 팔고 있어 차를 시켜 마셔 본다
네팔 정통차로서 '찌아차'라 하며
우유, 생강, 홍차가루, 물, 설탕 5가지를 섞어 만든다고 한다
맛은 약간 생강 향과 더블어 우유 향과 함께
맛은 그런대로 마실만 하다고 할까...
휴게소를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도로 한쪽에 다시 버스를 세운다
이 버스는 운전석 앞 부분과 승객석이 분리되어 있고
운전기사 옆에는 항상 조수가 타고 있는데
조수가 내리더니 저 노점에서
바나나를 한줄을 사 가지고 와 우리에게 2~3개씩 돌린다
출출 할텐데 요기 좀 하라나...
바나나를 먹으며 포카라를 향해 가고 있는데
출근을 하는 여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너무 추워 보여서...
함레트 휴게소를 출발한지 1시간 정도 지났나...
노점들이 줄지어 있고 지나온 곳들 중에서 조금 더 번잡한
우리나라로 말하면 읍내처럼 보이는 곳에 버스를 세운다
발쿤타푸리 마렉후(Balkunthpuri Malekhu)의 재래시장이다
꾸불꾸불 약간 징그럽게 묶어 놓은게 무엇인가 유심히 쳐다보니
물고기를 저렇게 말려 묶어 놓았다
이 시장을 둘러 보면서 살만한게 있으면 사 보려고
달러도 받느냐고 물으니 달러는 안받고
현지 화폐인 네팔 루피(Rupee)만 받는다고 한다
에이! 눈요기 쇼핑만 하자 ˘˘
발쿤타푸리 마렉후 마을 재래시장에서 본
우리가 앞으로도 4시간 정도를 더 가야 할 포카라 방향의
프리트비 고속도로(Prithvi Highway) 이다
발쿤타푸리 마렉후 마을을 떠나
한 30분 정도 달렸을까? 점심을 먹고 가자고 차를 세운다
메뉴는 중국식 요리라 한다
식사를 하고 나와
식당 주위를 맴돌다가 우리가 타는 버스를 바라다 본다
차 번호판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아라비아 숫자가 아닌 데바나가리 숫자라 한다
데바나가리 숫자를 이야기 하다보니
네팔 달력은 서양식 달력보다
57년이 빠르다고 우수성에 대하여 자랑을 한다
또한 네팔은 다른나라의 통치를 받는 식민지가 되어 본적 없으며
거리에는 도둑이나 소매치기가 없기에
안전한 나라라고 한다
카트만두에서 달려와서
서쪽 지방의 포카라와 남부 지방의 바랏푸르로 가는 갈림 길인
삼거리 지점의 무글링(Mugling) 지역의 다리이다
오늘은 저 다리를 건너서 포카라(Pokhara)로 가지만
내일은 다시 이 다리를 건너와 바랏푸르를 거쳐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Lumbini)로 가야 하는 지점이다
무글링 지역의 다리를 건너며 찍은 트리술리 강(Trishuli River)이다
'삼지창'이라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 강은 힌두교에서는 쉬바신이 거하며
불교에서는 최고의 성지로서
세계 3대 미봉 중에 하나인
중국 티벳에 있는 수미산(카일라스 6713m)에서부터 흘러내려 온다고 한다
또 이 강이 흘러
인도에서 어머니의 강으로 최고로 신성시 하는
갠지즈강으로 흘러가는데
갠지즈 강은 이러한 강 14개가 합쳐진 강이라 한다
또 버스를 도로 한쪽에 세운다
그리고 버스 조수가 내려 밀감을 사러 간다
나는 창밖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다가
경악을 하고 만다
사람이 먹는 음식으로 보이는데
파리 떼들이 우글우글 거린다
옆에는 요리를 하고 있는 남자가 보이는데
쫓을 생각도... 덮을 생각도... 전혀 안하고 있는것 같다
버스는 출발하고 밀감을 2개씩 나누어 준다
네팔은 열대지방 과일부터 우리나라와 같은 기온에서 재배되는
과일들을 모두 재배할 수 있고 재배하는 나라라고 한다
밀감의 맛은 좀 신맛이 있고 씨가 있으며
껍질에서는 우리나라 밀감보다 향이 진하여
손에 묻은 향으로 인해 빨리 손을 씻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버스는 또 휴게소에 차를 세운다
구나디(Gunadi) 휴게소로서 손을 씻고 나오던 중
플랫카드에 알 수 없는 네팔 글씨가 써 있어 포즈를 잡아본다
버스에 몸을 실은지 7시간이 다 되어 간다
버스의 덜컹 거림은 몸이 위 아래로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앞 뒤 좌 우로 흔들려 잠시라도 눈을 붙일수가 없어
많이 힘들고 지쳐 가고 있었다
현지시간 오후 3시 15분...
드디어 포카라(Pokhara) 데이비스 폭포가 있는 곳에 버스는 도착한다
카트만두를 출발한지 7시간 15분 만이다
버스에서 내려 짧은 골목을 통과하여
데이비스 폭포(Devi’s Fall) 입구로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것은 설산 모형이다
포카라(Pokhara)를 상징하는
안나푸르나 연봉들과 세계 3대 미봉 중에 하나인 마차푸차레 이다
데이비스 폭포의 원명은 파타레 창고(Patale Chango)이다
페와 호수에서 2Km 정도 흘러 온 물이
땅속으로 물이 떨어져 지하로 스며들어 흐르는 특이한 폭포이다
데이비스 폭포라고 별칭이 생긴 것은
1961년 스위스의 데이비(Devi)라는 여인이
남편과 함께 이 곳에 왔다가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려 들어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이 후에
데이비스 폭포(Devi’s Fall)라는 별칭이 생겼다고 한다
데이비스 폭포의 주위로는 난간이 둘러쳐 있고
또 한켠에는 데이비스 부부가 입었던 것으로 보이는
복장을 전시하고 있었다
데이비스 폭포에서 나와 티벳 난민촌으로 약 500m 정도를 도보로 이동한다
이 곳 티벳인 난민촌은 1959년에 중국이 티벳에 침공했을때
네팔로 피난 온 난민들이 모여 1965년 집단 정착촌으로
타실링 티벳탄 난민촌(Tashiling Tibetan Refugee Camp)을 설립하였다
포카라에는 티벳 난민촌이 4곳이 있으며
이 곳이 2번째로 크다고 한다
네팔에는 티벳 난민이 약 4만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는데
포카라에 3만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 곳 난민촌에는 약 3000명 정도가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티벳인들은 이 곳에 몰려 살면서
그들이 살던 티벳의 전통 문화나 생활을 잊지않고
이 곳에서도 유지하고 지켜 나가고 있다고 한다
티벳인들이 사는 주택은 번호표가 붙어 있었고
우리가 그 앞의 골목을 지나던 중
그 곳 주민과 마주쳤는데 웃으며 먼저 인사를 해온다
그들의 얼굴은 우리와 생김새도 비슷한데다가
순박함에 정감이 더 가는것 같다
골목을 통과하여 동네 한켠에 있는 티벳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간다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그들을 후원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벽에 전시하고 있었다
실내에는 카펫트 종류와 방석 종류 등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이 곳에 거주하는 난민들이 직접 제작하고 판매하는 것이라 한다
우리는 이 곳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타고 약 10분정도를
페와 호수(Fewa Lake)로 이동한다
페와 호수에 도착하자 마자 선착장으로 이동하여
조그만 쪽배에 4명씩 승선한다
쪽배는 조금만 움직여도 배가 뒤집어질듯 휘청거린다
페와 호수는 히말라야 설산에서 녹은물이 흘러 내려와 고인 호수로
포카라가 자랑하는 심장이며 여행을 온 여행자가 꼭 들리는 장소이다
네팔에는 9개의 호수가 있는데 그 중 2번째로 큰 호수로서
길이가 약 5Km 정도이고 깊이는 30m 정도라고 한다.
페와 호수의 관광은
1956년부터 개방하여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이른 아침과 석양이 질 무렵이 최고라고 한다
그 이유는 호수에 비춰지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설산의 반영 때문이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곳에서 설산이 보이는지 안보이는지 모르다가 있다가
희미하게 잠시 보였을때는 "어!" 하다가
그 장면을 놓치고 말았다
페와 호수 한가운데 있는 섬안에 있는 사원이다
비슈누(Vishnu) 신의 화신인 바라히(Varahi)를 모신 사원으로서
이 섬에서 보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영봉들의 설산은
아주 아름답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 섬에서 내리지 않고 섬을 한바퀴를 돌아
포카라에서 여행자들의 거리로 유명한 레이크 사이드(Lake Side)가 가까운
선착장으로 향한다
쪽배 투어가 끝나갈 무렵
안개낀 듯이 뿌엿던 하늘이
시계가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한다
배에서 내려 하늘을 보니 파란하늘도 보인다
이 곳에서 둘러본다
혹시 설산이 보이나?
배를 타고서 잠시 설산이 보였던 방향을 바라다 본다
설산은 산으로 가려서 안보여 포기하고
여행자의 거리인 레이크 사이드(Lake Side)로 발걸음을 향한다
여행자의 거리인 이 곳에서 가이드는 40분간의 자유 시간을 준다
저 몬순(Monsoon) 카페에 들어가 급한 일부터 해결하고
커피한잔 마시려 했더니
아들놈은 기념품 상점에 가자고 한다
머플러 가게로 들어 갔더니 우리 일행들이 쇼핑하고 나간다
머플러 가격을 물어 보니 $30 이라 한다
깍으라고 했더니 $5를 깍은 $25에 사려 한다
더 깍으라고 했더니
깍았다고 그냥 사고야 만다
물건을 계산하고 나와 다른 사람에게 얼마에 샀냐고 물어보니
$12에 샀다고 한다 ㅠㅠ
포카라(Pokhara)는
'호수'라는 뜻의 네팔어 '포카리(Pokhari)'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약 200만명 정도 인구가 거주하고 있고
카트만두에서 약 200Km 지점에 있는 네팔의 제 3의 도시이며
관광과 교육의 도시라고 한다
해발고도 800~900m 위치한 도시에서
7000m가 넘는 히말라야의 설산을 바라볼 수 있는 매력이 있고
안나푸르나를 등반과 트래킹을 하기 위해
사시사철 전 세계에서 온 많은 여행자들이
포카라의 이 여행자의 거리로 몰린다고 한다
저녁 6시30분이 다 되어 오늘의 숙소인
페와 호수 상류쪽에 위치한
워터 프론트 호텔(Water Front Hotel)로 들어간다
입구에 들어서자
호텔 정원의 조경과 수영장이 이를 비추는
조명과 어울려 아름답게 보인다
새벽 5시에 기상하여 5시 40분에 버스를 타고
사랑코트(Sarangkot)로 오른다
버스는 산으로 좁은 길을 꼬불꼬불 오르는데
오르는 길목의 경사도가 높은 곳에 집들도 보이고
벌써 문을 연 가게도 보이고
걸어서 산에 오르는 사람도 보인다
사랑코트는 해발 1592m 지점에 군사시설로 개발한 장소지만
현재는 히말라야를 전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로서
포카라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전망대라 한다
'사랑'이란 이 곳의 지명이며
'코트'란 왕이 머물던 자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버스에서 내려 산길을 조금 걸어 정상에 06시20분경 오르니
여기에도 민가가 있다
민가 옥상에서 차 한잔을 사 마시며 앉아서 볼 수도 있으나
우리는 그 민가에서 10m 정도 앞에 있는 산등성이에 서서 전망하기로 한다
사랑코트에서 맑은 날은
좌측방향에 있는 다울라기리(8167m) 산부터
안나푸르나(8091m)를 거쳐 우측으로 마나슬루(8163m) 산까지
전망할 수 있는 전망대라 하는데
1년에 전망할 수 있는 날은 약 40일 정도로
그 것도 10월에서 2월경까지가 전망하기 좋은 날이 많다고 하며
또한 낮에는 안개 및 운무가 잦아 아침에 조망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우리는 너무 운이 좋아
어둠 속에서 마차푸차레 봉과 안나푸르나 연봉들이
서서히 자태를 드리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나푸르나 연봉 중 가운데에 보이는
'물고기의 꼬리'라는 뜻을 가진
마차푸차레(Machha Puchhare : 6997m)는
가깝게 보이나 이 곳에서 25Km 정도 지점에 있으며
힌두교에서 추앙받는 쉬바(Shiva)와 부인 파르바티(Parvati)가
살고있다고 여겨 신성시 하고
불교적으로는 문수보살이 거한다고 하여
신성시 하는 산으로서
불교의 우주관에서 우주의 중심을 이루는 산으로 티벳에 있는
수미산(중국명 Mt. Kailas : 6721m)과
스위스의 마터호른(Matterhorn : 4478m)과 함께
세계 3대 미봉 중의 하나라고 한다.
안나푸르나(Annapurua)는 산스크리트어로
"수확의 여신" "풍요의 여신"이라는 뜻으로
전 세계에서 8000m가 넘는 14좌 중에 주봉이 10번째로 높은 8091m 이다
사진의 좌측 봉우리가 안나푸르나 4봉이고 우측이 2봉(7937m) 이다
사진에 2봉 뒤로는 람준히말(6986m) 능선이 어둡게 보인다
드디어 좌측에 조그마하게 멀리 능선 뒤로
8000m가 넘는 14좌 중에 7번째로 높은
다울라기리(8167m) 산이 모습을 나타내는데
저 모습을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자체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좌측의 봉우리가 안나푸르나 사우스(7219m)이고
그 옆으로 움푹 파인 옆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안나푸르나 정상(8091m)이다
그 남쪽 벽에는 8000m가 넘는 14좌를 완등하고 양 극지를 정복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악인인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 강기석 대원이
2011년10월18일 신루트로서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다가
산사태를 당하여 지금 그 곳에 잠들어 있다고 한다
안나푸르나의 능선은 48Km에 걸쳐 있으며
제일 먼저 등정에 성공한 사람은
1950년6월3일 프랑스 등반대 모리스 에조르와 루이 라슈날이라하며
한국에서는 1984년 겨울에 여성 산악인 김영자가
처음으로 성공하였다고 한다
드디어 히말라야의 운무 속에서 서서히 태양의 모습이 나타난다
시간은 7시를 넘어서고 있다
고지가 높아 추운 가운데 기다린 보람이 있어
히말라야의 일출을 볼 수 있는 행운을 맞이 한 것이다
히말라야 일출을 감상하고
사랑코트에서 하산하는데 올라 올 때는
캄캄해서 보지 못했던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걷기도 힘들고 아찔한 경사도에 밭을 일궈 놓은 모습은
삶의 고단함 속에 그들만의 한줌의 풍요라 할까?
다시 숙소인 워터프론트 호텔로 돌아 왔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9시에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로 출발한다
포카라에서 룸비니까지는 거리는 280Km정도로
6시간에서 7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포카라는 과거엔 북쪽의 티베트와 남쪽의 인도와 연결하는
교역로로서 많은 상인들이 왕래하는 도시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많은 관광객과 등반가들이
몰려드는 도시로서 번영하고 있다고 한다
학교로 가던 학생들이 통학버스를 기다리며 놀고 있는것 같은데
우리가 탄 버스를 보더니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이
너무 순박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건물을 지어 놓은 1층을 보면
기둥을 세우고
문을 여러개 만들어 놓은 모습이 특색이 있어
디카에 담게 되었는데
이 나라 만의 특징으로 보인다
포카라 이쪽 지역의 농가에는
우리 제주도 문화와
아주 똑 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흔들리는 차속에서 순간 포착을 못하고 또한 흔들려서
디카에서 망치거나 담지는 못 하였지만
제주도 농가에 가면 대문에 3개의 기둥이 있어
대문에 기둥 3개가 열려 있으며 사람이 집에 있다는 뜻이며
1개가 걸려 있으면 집 근처에 사람이 있다는 뜻이고
2개가 걸려 있으면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으며
3개 걸려 있으면 멀리 출타 중 이라는 뜻인데
여기에서도 똑 같은 문화로 그러한 대문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이
버스가 지나는 길목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2013년 기준 네팔의 1인당 GDP가 $692로
대한민국 $23,837 에 비하면 엄청 낮은 수준이지만
예전에 1960년대 1970년대 초 우리나라가 이처럼 못 살던 시절
경제발전 밑바탕의 힘이 되어주었던 우리의 새마을 운동처럼
농지를 개혁한 모습이 보여
잘살고자하는 이 나라의 희망을 보는듯 하였다
어느덧 버스는 어제 건너갔던 무글링 지역의 다리를 다시 건너와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바닷푸르 방향으로 향한다
수미산에서 발원하여
카투만두 방향에서 흘러오던 트리술리 강(Trishuli River)은
이 지점 부터는 나라야니 강(Narayani River)으로 명칭이 바뀌어
바랏푸르 쪽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모든 강의 이름은 여신의 이름을 붙여 지어졌다고 한다
버스가 달리는 가운데
강 옆으로 이러한 집들이 종종 보이는데
가게인지 집인지 분간은 안되나
이들의 생활은 어떤지 짐작은 가게한다
나라야니 강을 끼고 버스는 덜커덩 거리며
꼬부랑 꼬부랑 남쪽으로 하염없이 달려간다
.............
네팔 북쪽으로 펼쳐진 지구상에 히말라야 산맥 및 티벳에만 있는
6300m가 넘는 고봉들은 1600 여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8000m가 넘는 봉우리가 14좌
7000m가 넘는 봉우리가 170 여개
6300m가 넘는 봉우리가 1400 여개 있다고 하며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에 오른 사람은
세계적으로 2,400 여명인데
그 중 한국인이 150명이 넘으며
8000m가 넘는 14좌를 완등한 사람도 5명이나 있다고 한다
.............
시골길을 덜커덩거리고 달리는 버스가
갑자기 복잡한 도시에 진입한다
점심을 먹고 갈 도시인 바랏푸르(Bharatpur)에 도착한 것이다
우리가 탄 버스는 포카라에서 달려와
이 곳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달려간다
우회전 길이 룸비니 방향이다
바랏푸르(Bharatpur)는 100만명 정도 거주하는 도시로서
아시아의 세렝게티(Serengeti)라고 하는
야생동물의 보고 테라이(Terai) 평원에
동서로 80Km, 인도와 국경 남에서 북으로 23Km에 걸쳐 펼쳐져 있는
치트완(Chitwan)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목이다
치트완 국립공원은 1984년 유네스코에서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하였는데
43종류에 이르는 포유류 중에
멸종직전의 인도 코뿔소, 호랑이, 악어가 서식하고 있으며
나라야니 강(Narayani River)에는 담수 돌고래가 서식하고
450 여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도시에서 염소 떼를 끌고 간다
이들에게는 낯선 풍경이 아닐진데
나에게 있어서는 낯선 풍경으로 다가와 디카를 눌러 본다
우리가 룸비니로가는 도중 바랏푸르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호텔이다
점심을 먹고 호텔 문앞을 나오던 중
호텔에서 우측편 차도쪽에 치트완 한국 문화원이라는
간판이 보여 반가운 마음에 디카에 담아 본다
다시 버스는 돌려 룸비니로 향하는데 158Km 남았단다.ㅠㅠ
조금 전의 삼거리를 지나쳐 조금 가다보니
강가에 빨래를 걸어 놓아 말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이 강은 나라야니 강(Narayani River) 이다
이제는 점심 먹기전
포카라에서 바랏푸르까지 달려 오던
길과 배경이 확연이 달라지고 있다
꼬불꼬불하고 여길보나 저길보나 가파른 산만 보이던 풍경이
길이 똑바른 직선도로에 평야지대를 보며
버스는 달려 가고 있었다
기온 조차도 틀리다
남부지방은 아열대 기후라 하더니
현재 1월인데 덥지는 않지만 따뜻하다는 생각이 든다
네팔인들의 인사는
두손을 모으고 고개를 까닥이며
"라마스떼"라고 하는데 뜻이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내 마음에 있는 신이 너의 마음에 있는 신에게 경배를 드린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유인 즉은 네팔의 신은 '3억 3천명 정도' 된다고 한다
결혼 문화는 북방과 남방 문화가 있는데
북방 문화는 남자가 지참금을 준비하여 신부집에 가져다 받치고
남방 문화는 여자가 지참금을 받쳐야 결혼할 수 있는 문화라 한다
네팔의 장례 문화는
화장, 매장, 조장, 수장 4가지가 있는데
화장은 강이 있는 지역의 사람들에게서 행해졌으며
매장은 12살 미만 또는 유명인사들이 행하고
조장은 산악지대나 티벳지역에 가까운 지역의 사람들이 행하였으며
수장은 연고가 없는 시신에게 행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도로를 몇 시간째 달리고 있는데
네팔에서는 이러한 도로가 고속도로이다
룸비니에 도착하여 북쪽에 위치한 서문에서
오후 4시 5분에 버스에서 내린다
포카라를 출발한지 7시간 5분 소요된 시간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Lumbini)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기념품을 파는 장터가 늘어서 있었다
장터를 지나쳐 룸비니에 서문 안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진신사리 룸비니 봉안 기념비가 보인다
2008년 2월25일 해동사문 도선사 주지 혜자스님과 108산사 순례기도회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부처님이 탄생하신 고향으로 돌아가
'귀향법회'를 열었다는 기념비다
네팔의 수상의 초청을 받아 국빈 방문으로 예우 받으며
2500 여년만에 고우팀 부다(석가모니)는 법체인 사리로 나마
혜자스님의 손에 들려
300 여명의 108산사 순례회원들과 함께
태어난 고향 룸비니를 방문하여
곳곳을 돌며 네팔 외무부장관의 참여 속에
성대하게 고향방문 행사를 치루었다고 한다
부처님은 깨달음 이후 열반에 드실 때까지 길위에서
먹고 자며 중생을 교화하시다가
세상과 마지막 작별을 앞두고
고향으로 발길을 향하시던중 병으로
쿠시나가르(Kushnagar)에서 열반에 드셨다고 한다
그러니 부처님께서는 살아 생전에도 고향에 가시지 못하였는데
2500 여년만에 귀향이라니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귀향행사를 마친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108산사 순례의 길을
7~8년 계획으로 행하고 있다
이 곳에서 운하를 따라 남쪽으로 2.5Km를 조금 넘게 걸으면
부처님이 탄생하신 마야데비 사원이 있다
이 운하를 사이에 두고
좌측은 소승불교 사원군이고
우측은 대승불교 사원군으로 나뉘어 진다
운하를 따라 걸어 내려와 북쪽을 보고 찍은 사진이다
이 지점에는
세계 평화를 기원하고
꺼지지 않는 진리를 설파한 부다의 가르침을 상징하기도 하는
평화의 등불(Peace Flame)이 타오르고 있다
1986년11월1일 점화되어
세계 53개국을 돌아서 한국에도 들어 왔다고 한다
평화의 등불 옆에 마야데비 사원으로 가는 길목의
아기 부다(Buddha 석가모니) 상인데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가르키고 있는 모습으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아기 부다(Buddha) 상에서
탄생지인 마야데비 사원이 있는 곳으로 가는 뚝방길이다
연못에 비추인 일몰이 너무도 아름답게 보인다
부다가 태어난 곳에 세워진 마야데비사원(Mayadevi Temple)이다
마야부인은 출산을 하기위해
이곳에서 동쪽으로 35Km 떨어진 친정인 콜리성으로 가는도중
출산의 고통을 느껴 이 곳에서 부다(Buddha)를 출산하였는데
부다를 출산 후 7일만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 사원이 있는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매표소에서 신발을 맡기고 맨발로 들어가야 한다.
마야데비 사원은 2003년에 완공되었다고 하는데
사원 안에는 부다(Buddha)의 탄생의 전설이 새겨져 있다.
(사진 촬영을 금하고 사람이 지켜서 있다)
4세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돌조각에는 사라수 나무를 붙잡고 옆구리로 부다를 낳는 마야부인과
그 옆에서 부다를 받는 브라흐마(Brahhma: 창조와 지배의 신) 신이
새겨져 있다는데 오랜 세월로 인해 마모가 심하여 윤곽만 보인다.
그 아래 유리관 밑에는 부다가 태어난 위치를 표시하는
아기 부다의 발자욱을 표시해 놓은 발자욱 돌이 보관되어 있다
마야데비 사원은 현지인들에게는 힌두사원으로 숭배되고 있다고 한다
아쇼카 석(Ashok Pillar)는
인도의 최초로 대제국 마우리 왕조의 전성기를 열고
독실한 불교신자 였던 아쇼카 왕이
기원전 249년 부다 탄생지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석주를 세우고 비문을 새겼다고 한다
비문 내용은 고대 브라흐미 문자로 글이 새겨져 있는데
"많은 신들의 사랑을 받는 아쇼카 왕은 왕위에 오른지 20년 되던 해에
이 곳을 찾아 참배하였다. 여기가 부다가 탄생하신 곳이다.
그래서 돌로 말의 형상을 만들어 석주를 세웠다.
위대하신 분의 탄생지임을 기념하여
이지역의 조세를 면제하고 생산물 1/8만 징수케 한다"
라는 내용이라 한다
그리고 아쇼카 석주는 이 곳에서 일곱 걸음 떨어진 곳에
부다의 탄생지가 있다라는 현장기록의 기준점으로서
마야데비 사원안의 탄생지를 추정하고 있다.
1300 여년전 우리나라 신라시대에 이 곳에 방문하였던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에는
아쇼카 석주가 들어 누워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부다(Buddha)를 출산하며 마야 부인이 목욕을 하였다고 전해지는
푸쉬카르니 연못(Pushkarni Pond)이다
이 곳에 순례 온 5세기경 법현스님은
"부인이 목욕한 연못은 지금도 사람이 그 물을 퍼 마신다"라고 기록하였고
7세기경 현장스님은
'물은 맑아 거울과 같아 갖가지 꽃들이 다투어 피고 있다"라고 기록 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빨간 벽돌로 된 연못제방은
1939년이라는 글이 적힌 벽돌을 사용하였다고 하며
연못 물은 아주 더러워 보였다
오색깃발 타르초(Tharchog)가 걸려 있는 16세기에 심어진 보리수 나무는
부다의 전설과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보리수라는 이유로
각국에서 찾아오는 순례객들의 기도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오색깃발 타르초(Tharchog)는 룽다(Lungda)와 함께
티벳 글로 진리가 바람을 타고 세상 곳곳으로 퍼져나가
모든 중생들이 해탈에 이르라는 염원이 담겨있는 깃발이다
타르초(Tharchog)는 긴 줄에 깃발이 만국기처럼 매달려 있는 것이고
룽다(Lungda)는 긴 장대에 매단 기다란 깃발을 말한다
이 깃발에는 옴마니 파드메훔 같은 만드라와 경문이 가득 적혀 있다
타르초의 깃발 5가지 색상은
우주 5원소를 가르키는 것으로
파랑(하늘), 노랑(땅), 빨강(불), 흰색(구름), 초록(바다)의
조화의 진리를 가르침을 나타내고 있다
불교의 4대 성지는
이 곳 룸비니(Lumbini)는 탄생지와
부다가야(Buddha gaya)의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 얻었고
바라나시(Varanasi)의 사르나트(Sarnath)에서 첫 설법을 펼치셨고
쿠시나가르(Kushnagar)에서 열반에 드셨다고 한다
룸비니를 제외한 3곳은 모두 인도에 있는데
이 곳에서 400Km 범위 안에 모두 있으며
부처님은 이 사이를 일생을 걸어다니며 설법을 펼치셨다고 한다
또한 열반 후 부처님 사리는 8개국으로
나뉘어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네팔의 불교 사원의 특징으로서
불탑의 눈은 부처님의 눈을 상징하는 것으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있어 온 세상 전체를 바라보고 있으며
물음표처럼 생긴 코는 네팔 숫자 1을 나타 내는데
모든 진리는 하나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불탑 위에는 13개의 둥그런 고리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데
티벳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에 이르기 위한
13개의 수행과정을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 카트만두 스와얌부나트에서 보이던
두 눈사이의 점인 진리를 보는 제3의 눈인 '삼지안'은 보이지 않는다
가이드는 이 첨탑은 밑에서 부터
치, 수, 화, 풍, 천 의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마야데비 사원에서 바라보니 머~얼리
운하 서쪽 대승불교 사원군에 있는 한국사원 대성석가사가 보인다
줌으로 끌어 당겨 담아 본다
사원군에 있는 절들은 각 나라에서 그 국가 양식으로 지은 절들로
대부분 국력 과시용으로 지어 놓고
순례객들은 받지 않는다고 하는데
대성석가사는 다른나라 순례객뿐만 아니라
다른나라 스님들까지 숙식을 해결 해 준다고 한다
마야데비 사원을 나와
캄캄해진 길을 한참을 걸어 룸비니 동문으로 나오니
바로 우리가 또 하룻밤을 보낼
뉴 크리스탈 가든 호텔이 있다
먼저 방 배정을 받아 입실을 하였는데
방엔 TV가 없다
긴밤 어떻게 보내지 ㅠㅠ
오늘 아침은 5시 기상이다
오늘은 네팔국경을 통과하여 인도 바라니시(Varanasi)로
가야하는 일정으로 9시간 정도를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일정으로 조금 일찍 서두른다
씻고 아침식사를 하러 나오며
호텔 내부 정원을 보니 괜찮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왜 TV도 없었지 ???
아침 7시에 버스는 인도로 넘어가는
네팔 국경인 싯다르따나가르(Siddarthanagar)로 가기위해
룸비니의 뉴 크리스탈 가든 호텔(New Crystal Garden Hotel)을 나선다
룸비니(Lumbini) 크리스탈 호텔부터 네팔 국경인 싯다르따나가르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국경과 연결된 도시 싯다르따나가르(Siddarthanagar) 이다
이 곳 룸비니 지역은 부다(Buddha)의 탄생지이므로
이 도시 지명도 부다(Buddha)의 아명인
싯다르따 고타마(Siddartha Gotama)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번 네팔 여행의 마지막 도시를 지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여행한 여러나라들 보다
이 나라 국민들은 비롯 잘살지는 못하지만
순박하고 교육열은 높은 것 같았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와 룸비니를 거쳐
이 곳 네팔 국경 도시에 다다르며 이들의 순박함을 보았고
버스를 타고 지나는 동안
도시나 산골이나 농촌에서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 가고 오는 모습이 많이들 보였기 때문이다
룸비니 호텔을 나온지 1시간20분정도 소요되어
네팔 국경인 싯다르따나가르(Siddarthanagar)에 도착한다
이 곳에 도착하니 걸어서
인도로 넘어가는 사람, 네팔로 넘어오는 사람으로
많이 몰려 있었다
방금 인도에서 넘어온 사람들이다
터번을 둘러 쓴 모습이 시크교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디카를 눌러 본다
이제 저 네팔의 상징 스투파 모형의 문을 통과하면
인도의 국경인 소나울리(Sonauli)에 들어서게 된다
네팔 국경 통과시간은 8시45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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