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광명역 주차장에 차를 놓아두고
전철을 타고 서울 종묘를 거쳐
광장시장에서 점심을 먹고
청계천에서 열리는 빛초롱 축제를 구경하고
오후6시30분에 출발하는 부산행 KTX를 타기위해
서울역에 도착하니
KTX열치를 타러 나가는
출구 옆의 오픈 콘서트 홀에서
여러 대학교가 참여하는
"제3회 코레일 심포니 실내악 축제"가 시작 되기전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었다
저녁 18시30분에 KTX는 서울역을 출발하여
부산역에 도착하니 21:13을 가르키고 있었다 (2시간43분 소요)
부산역에서 내려
해운대 쪽에 예약한 '한화리조트'까지
택시로 이동하니 요금은 13,000원이 든다
한화리조트에서 아침에 눈을 떠 창밖을 보니
가슴을 확트이게 하는 바다와 함께 광안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부산에는 5번째 방문을 하는 중인데
이번 여행은 우리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으로서
딸과 아들은 어제 오전에 도착하여
태종대, 감천문화 마을을 구경하고 한화리조트로 먼저와 있었고
우리 부부는 어젯밤 10시를 넘어 도착하여 합류한 여행이다
좌측으로는 멀리 오륙도가 보인다
오늘의 여행일정은
아침 식사를 하고
기장으로 이동하여 해동용궁사를 관광하고
용두산 공원으로 이동하여 타워전만대를 올랐다가
국제시장, 자갈치시장을 보고
집으로 올라갈 예정이다
아침 식사 후 '해운대 한화리조트'를 나와
택시를 타고 해동용궁사 입구에 내리니 요금은 8,000원이 든다
용궁사 입구로 걸어가는 길가는
작은 기념품점 및 군것질 상점들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이 곳은 얼마나 많은 관광들이 찾는지
짐작이 가게 한다
해동용궁사 입구에 도착하니 8층 석탑이 서 있고
입장하기 위한 사람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해동용궁사로 서서히 입장하는데
관광하고 나오는 사람들도 줄을 서서 나온다
굉장한 인파다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이다 보니
경 내로 들어 가는 문도 용문석굴(龍門石窟)이라 적혀 있다
대부분의 사찰들은 산속에 있는데
바닷물이 철썩대는 바닷가에 있어 '해동용궁사'라 한 것 같다
용문석굴을 통과하니
내려가는 계단 옆 나무 사이로 사찰이 보이기 시작한다
계단을 내려와 대웅전이 있는 사찰로 건너가는 도중에
다리 아래로 동전을 집어 던져 돌그릇에 넣는
행운의 점을 보는 장소가 있어
다리 위에서 3번을 던져 보았으나 다 안들어 간다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는 1376년 고려시대 공민왕의 왕사(王師)였던
나옹대사(懶翁大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창건하기전 당시 일화에
나옹대사는 경주 분황사에서 수도하고 있었는데
나라에는 심한 가뭄이 들어 민심이 흉흉해 지던 시기로
나옹대사 꿈 속에 동해의 용왕이 나타나
"봉래산 끝자락에 절을 짓고 기도하면
우순풍조(雨順風調)하고 국태민안(國泰民安)하리라" 하셨다고 한다
그 후 나옹대산는 이 곳에 와 지세를 살펴보시고
"뒤는 산이요 앞은 푸른 바다로
아침에 불공을 드리면 저녁때 복을 받는 장소다"라며
절을 지으시고
산 이름을 '봉래산'이라 하고
절 이름을 보문사(普門寺)라고 하였다고 한다
대웅보전 옆에 계단을 오르니 관세음보살 상이 서 있는데
한없는 자비를 베푸는 화신인 관세음보살은
바닷가에 살면서
용을 타고 나타나시어 중생을 구제한다고 한다
그래서 양양 낙산사에서도
관세음보살 상이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었구나 함을 느낀다
봉래산은
옛부터 동해바다 가운데 있는
신선이 강림한다는 신비롭고 청정하다는 산을 말하며
보문(普門)이란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이 광대무변하신 원력으로
중생을 구제하심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절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전쟁의 화마로 소실되어 300여 년간 폐허 상태로 있다가
1930년대 초 통도사 운강화상(雲崗和尙)이
보문사(普門寺)를 중창하시고
여러 스님들을 거쳐
1974년 정암(晸庵)스님이 부임하여
관음도량으로 복원할 것을 발원하고 백일기도를 하였는데
회향일(廻向日) 꿈속에
백의관음(白衣觀音)이 오색광명을 놓으며
용을 타고 승천하는 것을 보고
절 명을 보문사(普門寺)에서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 해동용궁사에서는
누구나 진심으로 기도하면
현몽(現夢)을 받고
한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 주는 신령스러운 곳으로 알려져 있어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이처럼 수 많은 참배객들이 몰린다고 한다
해동용궁사 한 바퀴를 돌아 경내를 나와
건너편 해안가 바위 위에서
해동용궁사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해보고
국립수산과학원 방향으로 조금 가다보니
돌탑이 나온다
해동용궁사 뒷 편으로 있는
돌탑으로 가려고 했으나 경내에서 가는 길이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나왔는데
이 곳에 또 돌탑이 있어
아쉬운 기분을 달래라는 뜻으로 보였다
국립수산과학원 방향으로 나가다
너무 단순한 길처럼 보여
다시 뒤돌아 왔던 길로 돌아 나와 용두산 공원을 향해 택시에 오른다
용두산 공원으로 가던 중
딸이 휴대짐을 왜 무겁게 들고 다니냐고 부산역에 맡기고 가잰다
부산역에 내려(택시비 18,000원) 짐을 보관하고
점심을 부산에서 유명한 '돼지국밥'으로 해결하고
다시 택시를 타고 용두산 공원으로 향한다
택시는 부산역에서 골목길을 달려
용두산 공원 바로 아래에 내려(택시비 5,000원)
계단을 조금 오르니
용두산공원 비석과 함께 부산타워 보인다
1973년 세워진 용두산공원(龍頭山公園)의
높이 120m의 부산타워는
지방기념물 제25호 지정되어 있는데
현재는 많이 노후되어
부산시에서는 리모델링을 추진하려고 계획 중에 있다고 한다
부산타워 위에서 맑은 날에는 대마도까지도
바라 볼 수가 있다고 하는데
바닷가 수평선은 물안개 낀 듯이 희미하게만 보인다
해발 49m의 용두산(龍頭山)이란 이름은
바다를 건너와 약탈을 일삼는 왜구들을 삼켜버리는
용의 머리를 의미하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또한 산의 형세가 용이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바다를 향해 뻗어 나가는 용의 머리에 해당한다고 한다
용두산이 한때는 소나무가 울창하다고 하여
송현산(松峴山)이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용두산은 조선시대에
왜인들이 무역을 하던 초량왜관(1678~1876년)이 있었던 곳이며
1876년 개항 이후에는 일본인 거류지가 조성되어
일제침략기에는 정상에 신사까지도 세워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광복후 1950년 6.25 한국전쟁 때에는
많은 피난민이 몰려들어 판자촌이 형성되기도 하였으나
1954년 대화재로 소실되고 녹화사업으로 이어져
1957년에 이승만 대통령 호를 따서 우남공원(雩南公園)이라 하였는데
1960년 4.19혁명 이후 용두산공원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부산타워 전망대에서 내려가
동주여고 방면으로 가다가 광복동주민센터 쪽으로 계단을 내려가니
사람들로 번잡한 차도가 나온다
그 곳에서 다시 골목길로 들어가 조금 걸으니
국제시장이 나온다
국제시장은
1945년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과 함께 생겨 났다고 한다
광복이 되자 일본인들이 자기네 땅으로 철수를 하며
드 넓은 빈터였던 이 곳에 모여
그들이 가지고 있던 갖가지 물건을 내 놓으면서
자연적으로 상설시장이 생겨났다고 한다
당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싹 쓸어 모아
물건을 흥정하고 거래하였기에 '돗때기 시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50년 6.25전쟁 시에는 구호물자로 들어온 물건들이
많이 거래되었으나
1954년도 대화재 이후 축소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철근 콘크리트건물로 개축된 것은
1968년도에 목조 건축물들이 헐리면서라고 한다
국제시장을 거닐다가
이 곳에서 유명한 '씨앗호떡'을 군것질하기도 하고
커피숍에 들어가 피곤한 다리도 풀어주며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피조개 요리집에 들어가 저녁 한끼를 떼운다
식사 후 어두컴컴한 길을 걸어
자갈치 시장으로 이동하여 남포지하철역 방향으로
자갈치 해안로를 걷는데 의외로 한산하다
남포지하철역 앞에 도착하니 롯데백화점 광복동점이 보인다
집으로 가는 21:30 KTX 열차를 예약하였기에
시간이 많이 남은 관계로
롯데백화점에 들어가 쉬었다 가자고 하여 들었갔는데
애엄마는 아들 패딩잠바를 사 주겠다며 가고
홀로 3층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물 줄기가 위아래로 세차게 쏟아 붇는다
물줄기는 음악 맞추어
물 높이와 조명을 달리하며
위 아래에서 쏟아지며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백화점을 나와
부산역에서 21;30 KTX를 타고 광명역에 23:57에 도착하여
주차장에서 차를 찾아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