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울릉도, 독도여행

천황봉 2015. 2. 3. 14:42

인천 송내역에서 강원도 묵호항까지 왕복하는 셔틀버스를

인원 40명이 넘으면

출발지와 도착지를

 우리가 사는 동네로 해 줄 수 있다고 하여

인원 41명을 만들어 울릉도(鬱陵島)독도(獨島)여행 길에 나섰다

 

동해시 묵호항에서 오전 9시 정각에 울릉도 도동항으로

출항하는 여객선을 타기 위해

서둘러 가다가 휴계소에서 아침식사라도 하고 갈 생각으로

새벽 4시에 시흥시 정왕동에서 모여 출발하였다

 

묵호항에서 정각 9시에 출항한 여객선은

161Km 거리의 3시간 반을 높은 파도와 싸우며

12시30분에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한다

그러나 배를 타고 오는 도중에  파도가 너무 심해

우리 일행 중 많은 사람들이 배멀리로 인하여

초주검이 되어 하선을 한다

 

 울릉도에 도착하자마자

첫 일정으로 독도로 가는 일정인데

배 멀리로 많은 사람이 기진맥진한 모습이어서 일정을 바꾸어

미니버스에 나누어 타고 울릉도 육로관광 길에 나선다

이 곳에서는 길이 좁고 꼬불꼬불하여

대형버스 운행은 어려워 미니버스들이 대중교통이라 한다

 

울릉도 육로관광은

도동항에서 서쪽해안 도로를 따라 통구미해변을 지나

 서쪽 끝 태하리 항목령 고개를 넘어

북쪽의 천부를 지나 나리분지까지 약 40Km 구간을 왕복하는 코스이다

첫 코스로서 독도 박물관을 거쳐 거북바위 앞을 지난다

 

울릉도는 역사적으로 신라시대 이전인

삼한시대 진한(辰韓)에 속해 있던 12국 중 하나로

지금의 경주지방에 있던 사로국(斯盧國) 공주가

계림의 공격을 받아 울릉도로 피신하면서 부터라고 한다(?)

'사로국'은 박혁거세(BC57~AD4)가 세운 '서라벌'과

동일한 의미가 있다고 하며

신라의 4대왕 석탈해(AD57~80)가 '서라벌'에서 '계림'으로

국호를 바꾸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 시기에 발생한 사건이 아닌가 한다

 

울릉도가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

처음으로 왕(王) 칭호를 시작하는 지증왕(AD500~514)시대

오래전부터 해양강국으로서

울릉도에 토착민들에 의해 건국된 우산국(于山國)에

512년 지증왕 12년 신라장수 이사부(異斯夫) 침공하여

신라로 복속시켜 조공을 받음으로서 처음으로 역사에 등장하였다

 

현재 울릉도에 거주하는 인구는 약 1만명 정도이며

농업과 어업 인구가 주를 이루며

관광산업도 발달하여 관광업에도 많은 사람이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우산국(于山國)이란 명칭은

고려시대 때까지도 사용되었는데

고려시대 현종 때인

1018년~1022년 동북여진의 침략을 받아

존립기반이 상실되어 고려 군현에 포함되어 역사 무대에서 사라졌다

1157년 고려 의종 때부터 공도정책(空島政策)을 시행하며

1694년 조선 숙종 때부터 울릉도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고

1882년 고종 19년에 울릉도 개척령을 공포하여 다시 이주를 장려하였다

1900년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개칭하여 강원도에 편입하였다가

1906년 경상남도에 편입하였다

1914년 경상남도에서 경상북도로 이속시키고

1915년 군제를 폐지하고 제주도와 더블어 도제로 변경하였다

1949년 정부 수립 후 울릉군으로 환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태하 신당은 태하리에 있는 신당으로서 성하신당(聖霞神堂)이라고 하는데

 이 곳에는 전설(傳說)이 있다

조선 태종때 울릉도 공도정책(空島政策)이 확정된 후

안무사 김인우 일행이 울릉도 주민을 육지로 데려오기 위하여

병선 2척을 끌고 태하동에 도착하여 숙영지로 삼고

섬을 두루 살펴 본 후 날씨가 좋아

주민을 데리고 내일 출발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꿈속에 해신(海神)이 나타나

"너희 일행 중 동남동녀 한쌍을 남겨두고 떠나라"고 분부를 하였다

날이 밝아 꿈을 잊고 출범하려고 하자

갑자기 풍랑이 일어 출범하지 못하고 기다렸으나 심해지기만 하였다

문득 꿈 생각이 나서 동남동녀 한쌍을 불러

"내가 거처하던 곳에 필묵을 놓고왔으니 너희가 가져 오라" 명하니

그들이 필묵을 찾으러 숲으로 뛰어 사라지자

풍랑이 순식간  가라앉고 순풍으로 바뀌어 황급히 출범을 하였다

필묵을 찾지 못한 남녀 한쌍이 해변으로 왔을 때는

까막득한 수평선으로 배가 사라지고 있었다

 

무사히 귀임한 안무사는 섬에 두고 온 동남동녀의 안부가 걱정되어

번민하던 차 다시 수년이 지나 다시 울릉도 순찰 명령을 받고

울릉도에 도착하여 지난 숙영지로 가보니

그 자리에 껴안은 형상의 백골만 남아 있어 두사람의 혼을 딸래기 위해

 그 자리에 신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고 귀임하였다

이 후 현재까지 주민들은 매년 삼짇날에 모여 

농사나 어업의 풍년을 빌고

선박 진수 때도 반드시 이 사당에서 안전과 사업번창을 빈다고 한다

 

버스는 천부항 근처에서 해안 도로를 벗어나 산길을 올라

나리분지(羅里盆地)로 향한다

나리 분지는 지름이 약 3km의 면적이 약150ha 정도의 

울릉도에서 유일한 넓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울릉도는 약 1만 년 전에 여러 번의 화산 폭발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생긴 분화구가 함몰되어

칼데라 분지인 나리 분지가 형성되었고

 나리 분지는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배수가 양호하여

감자, 옥수수, 약초 등 주로 밭농사를 많이한다고 한다

 

 

나리분지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려

울릉도에 왔으니 이 곳의 토속 막걸리를 시음하기 위해

'산마을 식당'으로 들어가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나리분지(羅里盆地)의 유래

이 곳은 원래 우산국(于山國) 시대 때부터 사람이 살았으나

조선시대 공도정책(空島政策)으로 수 백년간 섬을 비워 오다가

1882년 고종19년 개척령에 의거

개척민들이 이 곳에 들어와 정착할 때

이 지역에 자생하는 많은 섬말나리 뿌리를 캐 먹고 연명하여

'나리골'이라 불린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울릉도는 험악한 지형이어서

차로 한바퀴를 돌 수 있는 일주도로가 안되어 있어

나리분지에서 나와 다시

오늘 우리가 묵을 도동항에 있는 숙소 쪽으로 되 돌아가는데

해는 서쪽 바다를 향해 많이 기울고 있었다

 

울릉도 현포리는

18세기에 제작된 지도에

20여개의 탑이 있는 사찰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하며

동국여지 승람에는

7개의 촌락과 석물, 석탑, 적석총 등의 많은 고분군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아마도 우산국(于山國)의 도읍지가 아니었나

추정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울릉도(鬱陵島)는 여러가지 지명으로 불리워졌다는데

930년 고려 태조 때는 우릉도(芋陵島), 덕종 때 우릉성(羽陵城),

인종 때 울릉도(蔚陵島),

이 밖에 울릉도(鬱陵島), 우릉도(于陵島), 무릉도(武陵島) 등으로

불리워졌다고 한다

 

또한 일본에서는

울릉도를 죽도(竹島:다케시마)라 하고 독도를 송도(松島:마쓰시마)라고 하다가

메이지 정권(1867~1912년) 후기에

울릉도를 송도(松島:마쓰시마), 독도를 죽도(竹島:다케시마)로

바꾸었다고 한다

 

도동항으로 돌아와 오늘 하루의 일정을 마친다

도동(道洞)이라는 지명은

1882년 고종19년 울릉도 개척령이 공포되어

현포리에 있던 행정기관이 이 곳으로 옮겨오고

면세정책으로 육지에서 울릉도로 이주해 오는 사람들이 많아

당시 도방청(都方廳)이라는 관청 이 곳에 설치되었다

'사람이 많이 살아 붐비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도방(都方)이라는 관청이 있어 이 곳 지명이 비록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도(都)자가 아닌 도(道)자를 사용하는 것은

이 곳은 사방으로 길이 통하는 마을이기 때문에

도동(道洞)이라고 한다고도 한다

 

울릉도의 밤을 즐기다 보니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7:30 독도(獨島)가는 배를 타기 전  

도동항에서 저동항이 보이는 행남 등대가 있는 쪽으로

새벽부터 해변 절벽으로 길이 나 있는 코스로 트래킹을 시작한다 

 

1시간 30분 코스로 갔다와서 아침 식사를하고

독도로 7:30 출항하는 배를 타야 하기에

매우 바쁘게 갔다가 오기로 하고 몇 명이서 출발한 트레킹이다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분비지 않아

조용하니 걷는

절벽 아래로 바다와 맞다아 있는 산책길이

더 운치 있어 보였다

 

울릉도3무(無) 5다(多)라고 알려져 있다

3무(無)는 도둑이 없고, 공장이 없으며, 뱀이 없다고 하며

5다(多)는 바람, 물, 돌, 여자와

그리고 향나무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추가한다면

접근하기 어려워 사람들의 손이 타지 않은

태고적 자연환경을 유지하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바다와 맞다은 절벽아래로 만들어 놓은

이 산책로 트래킹 코스도

언제적 만든 길인지 모르겠으나

 

걷는 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파도가 치는 바다물과

가까와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면서

 

멀리 수평선을 바라 보며

세상에 찌든 생각을 잊고 그냥 걷다보면

이 길에 매료되어

입가에는 탄성만 절로 나온다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커다란 돌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파도에 깍기고 깍겨나가

이제는 견디다 못해 속살까지 보여 주는듯한 모습이다

 

독도행 배시간 때문에

바쁘게 길을 재촉하면서도

계속 뒤돌아 보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뒤돌아보니

많이 걸어온 것 같고

걷는 길에 바위 터널도 통과하고

 

구불구불한 길을

돌고 돌기도 하면서

 

오르락 내리락도 하면서

 

내가 지나온 길이

어떠했는지 느껴보자는 게 아닐까 한다

 

우리네 삶도 이와 같을 것이다

과거를 생각하며 미래를 설계하지 않고

살아 온 과거를 대단하다고 뒤만 바라보며

과거만 자랑하는 삶은

시간이 흐름에 허망하기만 할 뿐이다

 

지나온 과거가 어떠하였는지를 되돌아 보며

앞으로 살 미래의 삶에서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를 

긍정적 방향의 활력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벽부터 바쁘게 숨이 차게 이 길을 걷고 있지만

걸어가야만 하는 저기 보이는 저 길을

즐거운 마음으로 걷기에 힘든다는 생각은 들지 않기 때문이다

 

걷다보니

저동항이 보이는 행남 등대가 있는 곳까지 왔다

오늘 트래킹 목표로 했던 지점이다

여기서도 계속해서 걸어 저동항(苧洞港)까지 가는

1시간30분 소요의 행남트래킹 코스이지만

독도행 아침 배시간 때문에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걷기를 멈춘다

 

 

저동(苧洞)'모시개 마을'이라 부르는데

조선 고종시대 개척령에 의거 정착민들이 이주해 왔을때

이 지역에 모시 풀들이 많이 자생하고 있어

'모시가 많은 갯벌'에서 유래되어

한자로 모시 저(苧)자를 써서 '저동'이라고 한다고 한다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곳에

꽃이 만발한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 컷 올려 본다

 

신의대 군락지도 보인다

신의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일본에서는 죽도(竹島)라고도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행남트래킹을 행남등대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 열심히 달리다시피

도동에 있는 숙소를 향해 간다

아침식사 후 7:30 독도행 배를 타기위해서...

 

아침식사 후 독도로 가기 위해 도동항으로 간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87.4Km에 위치하고 있는

(89.493Km라고도 하였으나 2005년 해양수산부에서 통일)

우리나라 최동단의 섬이다

위치는 동경 131˚52'08347", 북위 37˚14'22.1636"으로

울릉도에서 날씨가 맑은 날은

육안으로도 보이는 섬이다

주소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1~35번지까지 있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가는 시간은 약1시간30분으로

어제 묵호항에서 울릉도에 올 때보다는

파도가 심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파도는 심하여

3대가 덕을 쌓아야 밟을 수 있다는 독도

접안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여기까지 와서 발도 딛지 못하고

배로 독도를 한바퀴 빙 돌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우리는 3대는 덕을 쌓았는지

배가 독도 동도항에 무사히 접안을 하여

독도 땅을 밟는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을 주는데

가슴이 뭉클하면서 감격스러움이 몰려온다

 

독도에 발을 딛자 마자

감격스러움에 인증샷부터 하기로 한다

독도는 폭 110m~160m의 사이를 두고

동도(99.4m), 서도(174m) 2개의 바위섬으로서

약 32개의 바위와 암초를 거느리고 있는

화산활동으로 해저 2000m에서 용암이 솟아 생성된 섬이다

 

독도의 동도

 높이 99.4m로 정상부는 비교적 평탄한 부분이 있어

독도 경비대가 상주하고 있으며

동쪽 끝 부분에는 분화구에 바다물이 왕래하는

2개의 동굴(천장굴)이 있어 호수를 이루고 있다  

 

 

독도의 서도

높이 174m로 정상부가 뾰족한 원뿔형으로

경사로가 가파른 하나의 봉우리로 되어 있다

이 섬 산20번지에는 주민 김성도씨가 기거하고 있으며

북서쪽 해안의 물골 바위틈에서는

 하루에 한드럼 정도의 물을 받을 수 있어

독도에서의 중요한 수원이라고 한다 

 

삽살견 한마리가 어스렁어슬렁 우리 옆으로 다가오는데

독도를 지키는 삽살견이라 한다

 

2000년대 들어와서 요즘은

우리의 독도를 일본이 자기들 땅이라 생떼를 쓰며 우겨대고 있다

그 이유로는

"1849년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에 처음 발견된 암초로 간주하고

1904년2월 한일의정서에

조선영토를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 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어

울릉도와 독도를 불법 점령하였다

이 후 주인이 없는 땅이므로 먼저 가는 것이 임자라는 식으로

러일전쟁(1904년2월8일~1905년 여름) 중에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자기들의 영토라고 불법 편입해 놓고 이 사실을

러일 전쟁을 승리한 일본은

1905년 11월17일 일본은 강제로

이토 히로부미가 참석한 가운데

협약에 반대하는 우리 대한제국 조정 대신들을 배제시키고

찬성하는

우리 민족의 매국노 을사오적(乙巳五賊)인 이들만 데리고 협상에 나서

학부대신 이완용(李完用),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 농상공부대신 권중현(權重顯)만 서명을 받아

제2차 한일협상조약(을사보호조약 또는 을사5조약)으로 불리는 

대한제국은 일본의 허락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조약을 강제로 맺는다

그리고 1906년4월에야 울릉군수 심흥택을 통해

대한제국에 자기들 땅이라고 고지를 하였다

이 후 대한민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1950년 6.25 한국전쟁이 한창일때

1951년 9월 일본은 미국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강화조약'을 맺으며 

맹렬한 로비를 통하여 독도를 한국지도에서 누락하도록 시켰다

또한 1948년6월30일 미국공군이 독도 부근에서

폭격연습을 한 적이 있어

6.25 한국전쟁 기간에 미˙일 합동위원회에 의해

독도가 미공군연습기지로 선정되었는데

 이 점을 들어 '일본강화조약'에서

연합군이 일본영토라고 간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내용이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이유다

 

그러나 독도가 우리 한국 땅인 이유

1. 서기 512년 신라 지증왕 13년에 우산국(우산국)이 신라에 병합될 때부터

우리의 고유 영토이며

2. 1454년 세종36년에 편찬한 "세종실록지리지"의 울진현조 부분에

"우산무릉이도재현정동해중(于山武陵二島在縣正東海中)"

이도상거불원풍일청명칙가망견(二島想去不遠風日淸明則可望見)

신라시칭우산국...(新羅時稱于山國...)"

해석하면 "우산(독도)과 무릉(울릉도) 두섬이 현의 정동(방향) 바다 가운데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바람이 불고 청명한 날씨면 바라볼 수 있다

신라시대는 우산국이라 불렀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 것은 우리 지리지에 있는 우리가 관리하는 영토를 말해주고 있다

3. 1737년 프랑스의 지리학자 당빌의 "조선왕국전도"에 독도(우산도)가

 조선 영토로 그려져 있으며

4. 1667년 일본의 고문헌과 고지도인 "은주시청합기"에 울릉도와 독도는

 고려 영토이고 일본의 서북쪽 경계는 은기도(隱岐島)를 경계로한다고 써있다

5. 1785년 일본 실학자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편찬한 "삼국접양지도"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것'이라는 글자가 써 있고 조선의 황색 표시로 되어 있다

6. 1696년 우리 조선어부와 일본어부들이 충돌있자 일본 정부는 조업 허가인

죽도도해면허(竹島渡海免許)와 송도도해면허(松島渡海免許)를 취소하여

 일본어부들에게 울릉도 근해에서 고기잡이를 했다

7. 19세기 일본 메이지 정부 외무성 "일본외교문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부속으로 되어있다'라는 실증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8. 당시 일본 내무성 또한 시마네현에게 울릉도와 독도는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영토이고 일본과는 관계없는 땅임을 결정하였다

9. 일본의 최고국가기관인 태정관도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 없다 것을 심득(심득)할 것'이라는

훈령을 내무성에 내려 보냈다

10. 19세기말 갑오개혁 후 작성된 근대적 한국지도에서는 울릉도와 독도를

정확한 위치에 표시하고 있어 한국 영토임을 분명히 하였다.

11. 1900년 대한제국 칙령41호에 독도가

대한제국 영토임을 세계에 공표하였다.

서양에서는 독도를 '리앙쿠르 바위섬'이라고 호칭하였다

12. 1905년 일본 내각에서 강제로 모르게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하여

 "다케시마'로 명명하였으나

1946년 1월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한반도 주변의 제주도, 울릉도, 독도 등을

일본 주권에서 제외하여 한국에 반환하였다

13. 1950년 연합국 '구일본 영토 처리에관한 합의서'에 다시한번 독도는

한국에 반환해야 할 영토라고 규정하였다

14. 1951년 9월 일본이 미국과 강화조약을 맺을때

맹렬한 로비로 한국지도에서 독도를 누락시켰지만

1950년 유엔군은 엄연히 한국영토로 인정하고

한반도와 함께 방위하도록 하였다

또한 6.25전쟁 중 미국이 일본과 합의해서  독도를 미공군연습기로 했다고

1951년 9월 '미국과 일본강화조약'에서 일본영토라고 주장하였지만

우리 대한민국 정부에서 미국에 항의하자

미국은 1953년2월27일자로 독도는 미국공군 연습기지에서

제외되었다고 우리 대한민국에 공문을 보내왔다

15. 독도는 군인이 아닌 경찰이 독도를 지키고 있다

군인이 지키는 것은 분쟁지역을 의미하지만

경찰이 지키는 것은 주권이 미치는 곳에 치안행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한 이유로  그래서 도(獨島)는 대한민국 땅인것이다

 

또한 독도는 울릉도에서 보이는 87.4Km의 가시거리에 있는 섬이지만

일본 오키제도 섬에서는 158Km 떨어져 있어 보이지 않는 섬이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반환 시 울릉도는 합의서에 들어가 있는데

독도는 들어가 있지 않다고 우기는데

국가가 독립을 할 때 일일이 섬 하나하나까지 명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제주도가 독립 반환하는데

그 의 부속된 섬인 마라도, 우도, 추자도 등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제주도하면 그의 부속된 섬까지 포함되어 있기에

독도 또한 울릉도에 부속된 섬으로서

일본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괴변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독도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30분 정도로 시간이 다 되었다

다음에 다시 이 곳에 오더라도 날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다시 땅을 밟기 어려운 섬이어서 인지

서유석 작곡 "홀로 아리랑"이 마음 속에서 불러진다

"1.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잤느냐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함께 가보자

2.금강산 맑은 물은 동해로 흐르고 설악산 맑은 물도 동해가는데

우리네 마음들은 어디로 가는가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함께 가보자

3.백두산 두만강에서 배타고 떠나라 한라산 제주에서 배타고 간다

가다가 홀로섬에 닻을 내리고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이해보자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함께 가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함께 가보자"

 

독도에 울릉도 도동항으로 돌아오자 마자

일부는 점심식사를 하러 숙소로 가고

몇 명이서 성인봉에 오른다

성인봉에 빠르게 올랐다가 내려와서

울릉도 일주 유람선을 탈 계획으로 서두루는 중이다

울릉도에서 일정은 오늘뿐이고

내일 새벽 5시 배를 타고 묵호항으로 가는 일정이 끝나기 때문이다

 

코스는 대원사 코스로 해서 성인봉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그 코스로 내려오는 계획으로서

시간은 최대 3시간 30분 정도로 예측하고

바쁘게 갔다가 인증샷만 하고 올 심산으로 오르기 시작 하였다

 

 

도동항에서 11:40에 출발하여

대원사로 오르는 급경사 지대를 통과하여

성인봉 정상(984m)에 오르니 13:20분을 넘어서고 있다

바쁘게 인증샷부터 하고 정상에서

동서남북  전망이 되는 곳을 향하여 셔터를 눌러대고

왔던 길을 되돌아 하산을 한다  

 

하산을 거의 띠다시피하는 빠른 걸음으로 하여

도동항 근처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니

시간은 14:40을 넘어서고 있다

식사시간이 넘어서 간단하게 간식으로 때우고

울릉도 일주 유람선을 타러 나간다

소요시간은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유람선 배에 오르자

관광하기 좋은 포인트를 잡아 자리를 확보한다

유람선은 도동항을 나와

서쪽방향으로 해서 울릉도를 한바퀴 돌아

다시 도동항으로 오는 일정이다 

 

망향봉은 이주정책으로 이 곳으로 온 옛 선인들이

저 봉우리에 올라가 고향 쪽을 바라보며

그리워 했다고 하여 부쳐진 이름이라 한다

지금은 독도 전망대가 있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어제 육로관광으로 해안선을 따라 버스로

지나친 것을 해상에서 다시 보는 풍경들이다 

여기서 부터는

사진으로 울릉도를 감상하시길...

 

울릉도에 새로이 사동항이 들어 설 자리이다

 

 

 

 

 

 

 

 

 

 

 

 

 

 

 

 

 

 

 

 

 

 

 

 

 

 

 

 

 

 

 

 

 

 

 

 

 

 

 

 

 

 

 

 

 

 

 

 

 

 

 

 

 

 

 

 

 

 

 

 

 

 

 

 

 

 

 

 

 

 

 

 

 

 

 

 

 

 

 

 

 

12일 새벽 5시에 출항하는 배를 타고

묵호항으로 나오려고 하였으나 파도가 심하여 출항하지 못하고

9시에 배가 출항한다고 하여 그 배를 타고 왔지만

우리 뒷 배부터는 결항되어

2일간 발이 묶였다고 하며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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