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중국 황산 & 삼청산 여행

천황봉 2015. 5. 28. 16:13

중국은 대륙이니 만큼

시간만 나면 수시로 이곳 저곳을 여행하자는 계획을 세우고

갑작스럽게 황산과 삼청산을 가기 위해

가방을 꾸려 떠난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12시2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약 1320Km를 날아

중국 안후이성(安徽省) 황산공항에 도착하니

이 곳 현지 시각 13시40분(한국시간14:40)으로

2시간 20분정도 날아 온 것 이었다

 

이 곳에서 일정은

오늘은 휘주박물관명청 옛거리를 둘러보는 일정이며

내일은 장시성(江西省) 상라오시(上瑤市)에 있는 삼청산(三淸山)에 가며

그 다음날은 안후이성(安徽省) 황산시(黃山市) 황산구(黃山區)에 위치한

황산(黃山)에 오르며

또 그 다음날은 황산시(黃山市) 휘주구(徽州區)에 있는

잠구민택(潛口民宅)포가화원(飽家花園)을 들려서

황산시(黃山市) 둔계구(屯溪區)로 돌아가 저녁에 휘운가무쇼를 보고

마지막 날은 고성암(古城岩)에 갔다가 4박5일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황산공항에서 황산시(黃山市) 둔계구(屯溪區) 시가지 방향으로

10분정도 이동했을까?

휘주박물관 앞에 도착한다

휘주문화는 돈황문화, 티벳문화와 함께

중국 3대 문화의 발원지라고 한다

 

버스에서 내려 휘주 박물관으로 들어서니

제일 먼저 다음과 같은 글이 눈에 띤다

 

전세불수(前世不修) 생재휘주(生在徽州)

십삼사세(十三四歲) 왕외일거(往外一去)

'전생에 배우지 못하고 휘주에서 태어난 사람은

13, 14세에 집을 나와 밖으로 떠나야 한다'

칠산반수반분전(七山半水半分田)

이분도로화장원(二分道路和莊園)

'산이 70%이고 나머지는 물과 밭으로 반반 나뉘고

다니는 길을 경계로 마을과 밭을 이루고 있다'라는 뜻으로

휘주와 이 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휘주의 지리적인 여건은 많은 산과 물로 둘러 쌓여 있어서

살기가 힘들어 고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옛날에는 결혼 후 2~3년은 부부로서 잘 지내며 살다가 아이가 태어나면

남편들은 이 곳을 흐르는 신안강을 따라 타지로 돈을 벌러 떠나가

성공 할 때까지 잘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생활은 여자들이 책임지고 가정을 꾸려 나갔다고 하며

 그러한 이유로 이 곳은 독수공방하며 지낸 열녀가 많았다고 한다

 

이 곳 여인들이 신었던 아기 신발 크기의 전족이다

도망을 가지 못하도록

어려서부터 발이 커지지 않게 꼭꼭 조이며 신고 살았던 신발이다

이 곳에 살던 옛 여인들이 이 전족을 신고

뒤뚱거리며 걸었을 모습이 그려진다 

 

휘주의 특산물로는 문방사우로 불리는

종이, 먹, 벼루, 붓이 발달하였다고 하며

자연히 교육열이 높아 서원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휘주(徽州)는 학문적으로 유명한 분이 많이 배출되었다는데

그 대표적인 분이 남송 시대의 주자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이시다

주자의 이름은 희(熹), 자는 원회(元晦), 호는 회암(晦庵)으로서

주자(朱子)는 존칭이다

그의 학문은 '군신(君臣), 부자(父子), 부부(父婦)의 도'인 삼강(三綱)과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五常)을

영원불변의 '인리천리(人理天理)의 지(至)로 보는 입장에서 이론화 하였는데

주자의 학문은 당시 봉건 사회와 혈연관계에서

질서원리로서 교본이 되었다

 

대청에 오르는 계단은 신분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왕이 거주하는 곳은  4곳의 계단을 만들었으며

일반적인 관리들의 집은 2곳으로 대부분 만드는데

왕이 허용하는 명망 있는 사람들의 집은 3곳의 계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휘주는 대부분이 집성촌으로 형성되어 있어

마을의 중대사를 논할 때는

마을의 어른들이 모여 협의하여 결정하였다고 한다

 

예로부터 휘주 사람들은 장사로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장사로써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농산물보다는 문방사우로 불리는 종이, 붓, 먹, 벼루의 풍부한 특산품을

교통이 편리한 신안강이 있어

경제적으로 발전한 강남 지역까지 쉽게 운반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휘주 상인으로는 청나라 말기의 호설암(胡雪巖)을 들 수 있다

"작은 장사를 하려면 상황에 순응하면 되지만,

큰 장사를 하려면 먼저 나라의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

"관리든 상인이든 모두 사회적인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리가 되어도 탐관이 되고

상인이되어도 간상(奸商)이 되기 쉽다"며

공익을 위한 사업을 할 때 성공이 있음을 믿고 그대로 실천하여 성공한  인물이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호설암(胡雪巖)은 아버지를 일찍 여위고

12살에 홀어머니를 떠나 항저우(杭州)로 가서 전장(錢莊)의 수금사원이 되었다

어느 날 결손 처리된 은(銀) 500냥을 유학자 왕유령(王有齡)이란 사람에게

담보없이 일생일대 모험의 투자를 했는데 이 일로 전장(錢莊)에서 쫓겨나게 된다

훗날 왕유령(王有齡)은 저장성(浙江省) 최고관리가 되어 돌아와 

호설암(胡雪巖)의 후견인이 된다

이로 인해 부강전장(阜康錢莊)을 설립하여

10여년만에 중국 최고의 부를 축적하여

이 후 양강총독인 좌종당(左宗棠)과 협력함으로써

청나라 정부로부터 당시 상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모자에 붉은 산호를 달 수 있는

관직을 받고 홍정상인(紅頂商人)이 된다   

 

그러나 청나라 말기의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양강총독 좌종당(左宗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북양대신(北洋大臣) 이홍장(李鴻章)을 후원하는

영국 베어링은행의 이화양행(怡和洋行)과

동정산방(洞庭山幇)의 석정보(席正甫)가

결합하여 세운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생사판매권을 놓고

서양자본과 대립한 토착자본의 호설암은 경제, 정치적 싸움에서 패함으로써

권력과 금력을 모두 박탈 당한채 파산한지

1년만인 62세 나이로 삶을 마감한 격동의 상인이 되고 만다   

 

북경에 1669년 청나라 강희제 때 창립된

동인당(同仁堂)이 한방의 메카로 자리잡고 있다면

휘주에는 동덕인(同德仁)이 있다

동인당(同仁堂)은 귀족적인 한약방으로 불릴 수 있지만

동덕인(同德仁)은 서민적인 한약방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휘주의 건축물들은 마두문화(馬頭文化)라고 할 수 있는데

지붕이 말머리처럼 올라 가 있기 때문이라 하며

지붕은 검고 벽은 하얀데

검은색은 먹을 뜻하고 흰색은 종이를 뜻한다고 한다 

 

이 집은 문인의 집이라고 한다

대문 앞에 원형으로 된 조형물이 있으면 문인 집이고

사자 조형물이 있으면 무인 집이고

엽전 모양의 원형에 사각 구멍이 있으면 거상(巨商)인 상인의 집이라 한다

또한 신분에 따라 크기가 달라 진다고 한다

휘주박물관 한 바퀴 돌아 나와

다시 버스에 오른다

 

중국 안후이성(安徽省)에 있는 16개의 지급시 중의 하나인 황산시(黃山市)

전신은 휘주(徽州) 지구이었으나

1987년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비준에 의하여 휘주 지구를 철폐하고

당시 현급 시인 둔계시(현 둔계구)를 중심으로 하는 지급시가 되었다고 한다 

 

황산시는 구(區)와 현(縣)을 가지고 있는데

현 시청사가 있는 둔계구(屯溪區:툰시구)와 황산구(黃山區),

휘주구(徽州區:후이저우구) 3개 구(區)와

휴녕현(休寧縣:슈닝현), 서현(歙縣), 기문현(祁門縣:치먼현)

이현(黟縣) 4개 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황산시(黃山市)의 총 인구는 현재 약 140만명 정도가 거주 한다고 한다 

 

우리 대한민국에서 황산에 오려면

직접 황산시 둔계구에 있는 황산공항으로 오던지

상해 또는 항주를 거쳐 6시간 정도 버스로 오는 방법과

북경을 거쳐 오는 방법이 있다

버스는 신안강(新安江) 변의 도로를 달리더니

강변 옆에 정차하여 내리게 한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도로를 건너

상점들이 몰려 있는 골목길로 들어 간다

 

조금 들어가 걷다보니 조그마한 광장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명청(明淸) 옛거리가 시작하는 곳이다

 

명청(明淸) 옛거리는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목 10곳 중 9번째로 꼽히는 곳으로서

휘주(徽州)의 둔계노가(屯溪老街)로서

살아있는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라고도 한다

이는 천 여년전 북송(北宋) 시기 풍속을

청명날 그린 국보급에 속하는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의 그림과 비슷하기 때문이라 한다   

 

오늘과 같은 건축물로 명청거리가 생겨 난 것은

북송(北宋)이 금(金)에게 1127년 멸망 당하고 도읍지이었던

동경(東京: 현 하남성河南省 개봉開封)을 버리고

황족들이 임안(臨安: 현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으로 떠나와 

남송(南宋)을 건국하고 도읍지로 정하였다

이때 휘주의 장인들을 많이 동원하여 도읍지의 공사를 하게 하였는데

그들이 공사를 마치고 돌아와

송나라의 도읍지 임안(臨安)을 본따서 가게들을 지음으로서

명청거리가 생겨났다고 한다 

 

이 거리에 있는 만수루(萬粹樓)는

중국 최초의 고건물 형식의 개인 박물관으로

주인 만수루씨의 평생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전시된 중국 4대 벼루와 문방구 중에는

최대로 인정되는 2,500Kg의 벼루가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명청 거리는 광장에서부터 동쪽의 노가패방비(老街牌坊碑)에 이르기까지

둔계노가(屯溪老街)라고 하는데

길이가 1,273m  폭은 평균 7m정도의 거리라고 한다

 

명청거리를 나와

다시 버스에 올라 저녁식사를 하러 20분 정도를 이동한다

 

한라산이라는 한국요리 식당으로 들어간다

식사를 하면서 부족한 것을 더 주문하는데

고개만 끄덕일 뿐 말이 잘 안 통하며 굉장히 느리다

우리는 한라산(漢拏山)이라고 쓰고 있는데

여기는 한라산(韓羅山)이라 쓰여 있어 한국식당 흉내만 낸 듯하다

 

중국 황산에 와서

하룻밤을 지낸 첫날 아침이다

간 밤에 비가 왔는지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축축해 보인다 

 

우리가 이번 황산여행 전 일정인 4박을 계속 지내야 할

'황산 컨트리 가든 피닉스 호텔(黃山碧桂園鳳凰酒店)'이다

중국에 8번을 왔는데

이번이 최고로 방이 넓고 분위기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일정은

이 곳 안후이성(安徽省) 황산시(黃山市) 둔계구(屯溪區)에서

버스로 고속도로를 약 2시간30분 달려

장시성(江西省) 상라오시(上饒市) 데싱(德興)에 있는

삼청산(三淸山)에 오르는 일정이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향해 서서히

황산시내를 벗어나고 있는데

비가 온 후라 그런지 뿌였기만 하다

 

황산시(黃山市) 부근의 현대식 건축물로서

옛 휘주(徽州) 건축 양식을 가미하여 조성하여 놓은 모습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차창으로 흔치 않게 들어온다 

 

이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치면

안후이성(安徽省)에서 장시성(江西省)으로 접어들게 된다

 

장시성(江西省)

중국 동남부의 창지앙(長江) 중하류가 연결되는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장시(江西)라는 이름은

당나라때 강남(江南) 서도(西道)의 관할이었으므로

장시(江西)라고 명하였다고 한다

 

장시성(江西省)은 평균 해발 고도가 1000m인

산악지대이므로 구릉과 산이 주를 이루고

분지와 골짜기가 넓게 분포하고,

강과 호수가 많이 있는 곳이라 한다

 

이 지역은 중아열대 온대 습윤 계절풍 기후에 속하며

년 평균 기온은 16~20℃이나

여름에는 최고 기온이 40℃이상에 높게 오르고 비가 많이 내리는

장강(長江) 중류에서 가장 덥고 습한 지역이라

여름 여행은 피하고

겨울에도 기온이 많이 내려가지 않음으로

10월에서 이듬해 5월까지가 여행하기 적합한 시기라고 한다  

 

처음으로 고속도로 휴게소에 정차한다

이 곳은 장시성(江西省) 상라오시(上饒市) 데싱(德興)의 휴계소이다

삼청산(三淸山)은 조금만 가면 된다고 한다

 

장시성(江西省)의 성도(城都)는 난창(南昌)인데

중국인들에게는 의미있는 도시로

1927년8월1일 중국 공산당이 일으킨 무장 봉기로 인해

사실상 군대를 갖출 수 있었으며

장개석의 국민당이 반공정책에 의해 괴멸 직전까지 갔지만

중국 홍군의 총사령관이 된 주더(朱德)가 잔류 병사를 데리고

징강산(井岡山)으로 들어가  마오쩌둥(毛澤東)을 만나

공산당 진용을 갖추고

홍군 대장정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삼청산(三淸山) 입구에 도착하자

꾸물꾸물하던 날씨가 비를 쏟아붇기 시작한다

삼청산은 1년 365일 중 300일은

흐리거나 비가 온다고 하며 항상 운무로 가득하여

아무에게나 쉽게 그 자태를 보여주지 않는 산이라고 하는데

 

 비가 쏟아 지는 하늘을 보며

오늘 삼청산에 올라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여기에 다시 오기 어려운데... 하는

걱정이 서서히 몰려 온다 

 

삼청산(三淸山)

2008년 7월 8일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세계자연유산으로서

중국에서 7번째로 선정된 자연유산이라 한다 

중국의 옛날 최고의 여행가 불렸던

명나라시대 여행가 서하객(徐霞客)이

황산(黃山)에 올라 최고의 산으로 칭한 뒤

삼청산(三淸山)에 오르고 나서 더 한 찬사을 남긴 곳이라 한다 

 

금사케이블카를 타고 산으로 오르는데

금방 우리가 탓던 지점이

안개비로 인해 보이질 않는다 

 

 

오르는 위쪽을 보아도

케이블카들이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케이블카가 구름을 통과하고 나니

위쪽은 서서히 비가 그치고

멀리까지 시야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약 10분 정도 올랐나

케이블카 하차장이 절벽 위로 나타난다

 

금사케이블카 산 위 하차장에서 내려

산 위쪽을 바라보니

기암괴석이 솓구쳐 있는 봉우리들

멀리 시야에 들어온다 

 

산 위 케이블카 하차장에서

산 위로 오르는 길은 2갈래 길이 있는데 우측 길로 가라고 한다

우측으로 접어드니 잔도가 나오며

산 밑에 있을 때는 비구름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던

멀리 있는 산봉우리들까지 나타난다 

 

잔도(棧道)를 따라 걷는다 

삼청산에 절벽으로 놓여있는 잔도(棧道)는 약 3Km 정도 이며

해발 1600m이상 고지에 놓여져 있어

중국에서는 가장 놓은 위치에 세워져 있는 것이라 한다

 

잔도를 따라 산모퉁이를 돌고돌고 하다보니

멀리 뱀이 머리를 처들고 있는 듯한 바위가 보인다

일명 코브라 바위라 불리우기도 하는

거망출산(巨出山)이다

 

조금 전 주차장에서 여기에 올라 오기까지는

비가 너무 쏟아지며 모든 풍경이 보이질 않아 걱정이 앞섯는데

비도 개고 시야가 좋아져

걷는 발걸음이 가볍게만 느껴진다

 

잔도(棧道)를 걸으며

아래도 쳐다보며 뒤도 돌아다 보며

서서히 하늘 위를 걷는 기분으로 삼청산에 오르고 있다 

 

삼청산은 약 14억년의 지질 변화를 거쳐 형성된

화강암 밀집군으로

기이한 풍경들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밑에서 보는 거망출산(巨出山)

위압감을 느끼도록 아슬아슬하게 보인다

코브라 바위라고도 불리는 이 바위는 해발 1200m 산위에

128m 높이로 솟아 있는 화강암 기둥이다   

 

거망출산(巨出山)에는

옛부터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내용은 한 나무꾼이 우연히 선녀를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을 반대하던 선녀의 어머니는

나무꾼을 구렁이도 만들어 바위속에 가둬버리고

선녀를 데리고 가버렸다고 한다

구렁이로 변한 나무꾼은 바위를 뚫고 나와

선녀가 있는 하늘로 고개를 쳐들고

그리움에 사무쳐 있다가 지금의 모습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거망출산에서 삼청산(三淸山) 최고봉인 옥경봉(1819m)이 있는

계단을 오르지 않고 동방여신 바위가 있는 쪽으로 놓여 있는

잔도(棧道)로 향한다

 

잔도 위를 걸으며 바위를 돌아서니

기아헌도(企鵝獻桃)라는 바위가 나온다

이 바위는 '펭귄이 복숭아를 바치는 형상'으로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기아헌도에서 조금 지나치니

동방여신(東方女神=사춘여신司春女神)이라는 바위가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동방여신은 서왕모(西王母)의 딸 요희(瑤姬)로서

옥황상제가 삼청산을 바다로 만드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요희가 이 계획을 마을 사람들에게 몰래 알려주었는데

옥황상제가 이 사실을 알고

비밀을 누설한 죄를 물어 요희를 이 곳의 바위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옥경봉을 전망할 수 있는 옥태(玉台:1575m)쪽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여신빈관(女神賓館)이 있는데

그 곳으로 향하며 뒤 돌아 보니 거망출산 바위와

옆으로 손가락 형상을 닮은 오지봉(五指峰)이 보인다

 

여신빈관(女神賓館)을 지나 옥태(玉台:1575m)로 오르며

동방여신(東方女神) 바위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삼청산을 조망할 수 있는 옥태(玉太)를 향해 오르다 보니

이름은 있겠지만 알 수 없는 기암괴석의 암봉이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조금 더 오르다 보니

바위 사이로 협곡이 나타난다

화강암 협곡 풍경구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옥태(玉台:1575m)에 오르니

삼청산의 주봉이 눈에 들어 온다

 

옥태(玉台)는 옥청대(玉淸臺)라고도 하는데

이 곳에서 보는 일출(日出)은 장관이라고 한다

 

삼청산(三淸山)은

주봉인 옥경봉(玉京峰:1819m), 옥화봉(玉華峰),

옥허봉(玉虛峰)을 말하는데

3개의 산봉우리에 도교의 시조인

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이 앉아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옥태(玉台) 옆에 있는 봉우리로서

옥태보다 높아 보여 하산하려다 다시 올라 인증샷을 한다

 

오늘의 삼청산 등반은

산에 오르기전 입구에서는 비가 오는 운무 속에

삼청산의 풍경을 볼 수나 있을까?하는 우려 속에 산에 올랐는데

운무가 어느 정도 깔려 있으면서도

멀리 선명하게 보여주니 나는 복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옥태(玉台)에서 오르지 않은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는

여신빈관(女神賓館) 쪽으로 다시 내려가는데

만홀조천이라 부르는 오지봉(五指峰)이 바로 앞으로 보인다

만홀조천(萬笏朝天)이란 '만백성이 천자를 배알하다'라는 뜻이라 한다

 

여신빈관(女神賓館)에서 금사(金沙)케이블카 탑승장으로 향하며

뒤돌아 지나 온 잔도(棧道)를 바라 본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천길 절벽 위에 길을 낸다는 발상이... 

 

잔도 밑으로 꽃이 피었다

삼청산을 등산 코스대로 전부보려면 6시간 이상 소요되는데

우리는 3시간 정도로 남청원풍경구 위주로 보고 하산 길에 오른다  

 

오를 때는 보이지 않던

삼청산 입구의 금사(金沙)지역 마을이 선명하게 보이는데

삼청산 전체를 돌아보지 못한 것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삼청산에서 내려와 입구 근처에 있는

늦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금사농가(金沙農家)라는 식당으로 간다

1층에는 자리가 없어 2층으로 올랐는데

기름칠 해 놓은 것처럼 바닥이 엄청 미끄럽다

 

식사를 하고 나왔는데 우리가 타고 갈 버스가 없다

차가 고장나 차를 수리하러 갔다고 하며

1시간 정도 대기해 달라고 양해를 구해 온다

 

대기하며 마을구경도 잠시

식당 대기실에 들어가 커피 한잔 마시다 보니 버스가 온다

삼청산 자락을 버스가 꼬불꼬불 돌아 나가는데 고지가 꽤 높은 지역인 것 같다

운무가 밑으로 보인다

 

삼청산 자락을 거의 내려 온 것 같다

마을이 나오기 시작 하는데 피곤했는지 잠이 몰려 온다

 

한 시간 정도 단잠을 잔 것 같다 

눈을 떠 확인해 보니

안후이성(安徽省)을 향해서 장시성(江西省)을 벗어나기 직전이다

 

잠에서 깨어나 부시시한 눈으로

잠시 창밖을 쳐다 보는데

버스는 고속도로 휴녕(休寧) 휴계소에 정차한다

휴계소는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계소에 비해 매우 한적한 느낌이 든다

 

버스는 다시 달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신안강을 끼고 황산시 둔계구 시내로 서서히 진입한다

 

오늘 공식 일정은

삼청산에서 호텔로 돌아옴으로 인해 모두 마치고

 

자유 시간을 만끽한다

 

또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의 일정은 4시에 기상하여

이동하는 버스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황산시 둔계구에서 1시간 30분 거리의

황산시 황산구에 있는 황산(黃山)에서 보내는 일정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황산이 붐빌거라며

호텔에서 일찍이 출발하였으나

황산에 오르는 태평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송곡암 입구에 도착하였는데 벌써부터 기다리는 통제를 받는다

태평케이블카 타는 곳에는

버스가 일정 대 수만 들어 갈 수 있어

사람을 내려 준 다른 버스가 나오면 들어 갈 수가 있다고 하여

한참을 대기한다

 

성질이 급한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

그냥 걸어서 가자고 했는데

버스로 한참을 오른다

걸어서 송곡암 태평케이블카 탑승장까지 왔다면

꽤나 고생할 뻔 했다는 생각이 든다

 

황산에서 일정은

송곡암에서 태평케이블카를 타고 단하역으로 올라

서해대협곡 북측 입구에서 서해대협곡 최저지점으로 걸어내려가

모노레일을 타고 천해역으로 올라

천해백운호텔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광명정(1860m)에 오른 후 백학산장을 지나 백아령으로 내려가

두견담을 지나서 신백아령에서

운곡케이블카를 타고 운곡사로 내려오는 일정이다

 

버스에서 내려

케이블카가 올라가는 방향의 산을 바라보니

높기만 한 것처럼 보인다

 

케이블카를 타러 입구로 가니

'이게 난리 난리 무슨 난리???  후~!!!'

엄청난 인파가 줄을 서 있었다

일찍 왔다고 왔는데...

 

1시간....

2시간...

3시간...

을 기다려도 탑승구에 도달하지 못하는데

중국인들은 젊으나 늙으나 웬 쌔치기들이 그리 심한지

은근히 짜증이 난다

 

황산 외곽은 대나무 밭으로 넓게 한바퀴 둘러 쌓여 있다고 한다

많은 시간을 기다리며 쌔치기 하는 사람들에 짜증이 나는데

대나무를 보며 마음을 진정시키라는 느낌이다 

 

줄을 서 기다린지 4시간 30분만에

태평케이블카에 오른다

케이블카는 100인승...

움직이기도 힘든 콩나물 시루 케이블카다

산위로 오르는 케이블카에서 산 위를 바라보니

아침 송곡암역 입구에 도착하였을 때는 선명하게 산이 보이더니

 뿌였게 연무가 끼기 시작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동안

송곳모양 뾰쪽뾰쪽한 산들도 보이고

 

바위가 쏫아오른 절경인 산들도 보인다

 

케이블카가 송곡암 떠난지 10여분이 지나 산을 넘자

종착지인 단하역(丹霞驛)이 보인다

 

단아역 내려 서해대협곡 북측 입구로 간다

서해대협곡의 절벽사이로 난 길로 약 2.8Km 구간을

서해대협곡 최저 지점을 향해 약 1시간30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서 절경을 본다고 한다   

 

단하역(丹霞驛)에서 배운정(排云亭)을 지나

서해대협곡 북입구를 지나치는데 안내도가 보인다

 

바위 옆으로 난 급경사의 잔도를 조심스레 걸어 내려 가는데

얇고 넙적한 바위산들이 줄지어 있어

부채살을 펼쳐 놓은 듯 눈길을 끈다 

 

중국 황산은 10대 관광지로 손꼽히는 곳으로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라 한다

 

황산에는 해발 1000m가 넘는 72개의 봉우리가 있으며

산 중심부에는

연화봉(1864m), 광명정(1860m), 천도봉(1810m)

3대 주봉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황산이 유명한 이유는

기송(奇松)과 기암괴석(奇岩怪石)과 운해(雲海)가

조화를 이루는 풍경은

지상 최고의 절경이라 극찬을 받기 때문이라 한다

 

위를 보니 수직 절벽에 난 길이 보인다

우리가 지나 온 길이다

지나올 땐 앞만 보고 내려 왔기에

저렇게 높은 줄 몰랐는데

아래에서 보니 아찔한 높이다

 

서해대협곡 최저 지점으로 내려 가던 중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발 길을 잠시 멈추는데

뒤로 보이는 풍경이 장관을 이룬다 

 

황산은 '천하의 명경(明景)은 황산에 모인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에서는 아름다운 산으로 유명하여

우리에게도 알려진 산이다

 

서해대협곡의 내려가는 길목에 바위터널도 있다

인위적인 길이지만

이 또한 여행객에게는 황산과 더불어 운치가 있었다 

 

바위터널을 통과하니

바위산 위에 기암괴석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나온다

이 곳에서 인증샷하려는 사람들이 몰린다

 

장가계 원가계를 다녀 온 사람들에게

이 곳을 안내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서해대협곡을 내려다 보면

원가계 모습과 닮아 있는 모습이 보일거라고...

 

솟아 오른 바위는

수직방향의 절리가 발달하여

깍아지른 절벽과 기암괴석을 이루는데

원가계에서는 봉우리가 둥글둥글한 면이 있는 것에 반해

여기는 뾰쭉뾰쭉하다는 것이다

 

수천길 절벽으로 난 길의 잔교를 따라 돌고 돌며

서해대협곡으로 내려가는 재미도

황산에서만 느끼는 최고로 즐길거리의 하나 인 것 같다 

 

오늘의 황산 날씨는 굉장히 청명하다 

황산을 더욱 유명하게 한 운해(雲海)를 볼 수 없음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래도 자세히 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황산에서 운해(雲海)를 감상하기 좋은 계절은

매년 11월에서 다음해 5월까지가 좋은 계절이라고 한다

비나 눈이 내린 후 일출과 일몰 시에는

오색 찬란한 운해를 하고 있어

그 광경이 탄성을 자아내는 그 어디에서 볼 수 없는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서해대협곡으로 내려오는 계단도 가히 급경사를 이룬다

그러나 내려오며 보는 멋진 풍경으로 인해

이 또한 즐거움으로 변한다

 

배운루(排云樓)을 출발하여 약 2.3Km의 절벽길을 내려와

이환하로구(二環下路口)에 도착하였다

약 0.5Km 정도만 내려가면

우리가 목적지인 서해대협곡 최저지점에서

위로 오르는 모로레일을 탈수 있는 배운계역(排云溪驛)이다   

 

이환하로구(二環下路口)에서 보는 풍경이다

여기에서 이 계곡의 계단을 내려가면 배운계역이다

 

광명정(1860m) 쪽으로 오르는 모노레일을 타는

배운계역(排云溪驛) 앞에 있는 황산 안내도이다

 

늦게 내려오는 일행들을 기다리면서

역 옆에 있는 다리에 주저앉아

간식을 즐기며 보는 배경이다

 

모노레일을 타기위해 이 배운계역(排云溪驛)에서도

1시간30분을 기다려야만 했다

 

기다림에 지쳐 갈 무렵 드디어 모노레일을 탄다

그러나 타는 것도 순서가 아닌

뒤에서 앞지르기 뛰어가는 무질서의 극치를 보여준다

모노레일에 올라

천해역(天海驛)으로 출발하는 창 밖을 쳐다보니

산을 내려 오는 사람들의 늘어선 긴 줄이 보이는데

언제 오르려나 하는 쓸모없는 걱정도 해본다

 

이 모노레일은 2013년 7월에 개통하였다고 한다

길이는 892.6m 이며

탑승인원은 61명이고

운행시간은 약 3분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모노레일이 올라가는 속도는

유럽에서 푸니쿨라 타는 속도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빠른 속도로 달려 올라간다

 

움직이는 모노레일에 탑승객들이 만원을 이뤄

몸을 돌리기도 힘들고

사진 촬영하기가 쉽지가 않아

무조건 셔터를 눌러 댄다

 

그런데 배경이 좋아서 그런지

마음에 드는 사진들이 제법 보인다

 

모노레일의 종착지인 천해역(天海驛)에서 내려

서해대협곡 최저 지점인

배운계역(排云溪驛)에서 올라 온 길을 바라 보았다

이 것 또한 멋있는 장면이다

 

천해역(天海驛) 앞이다

계단을 따라 광명정(1860m)으로 가는 방향의 중간 정도에 있는

백운호텔로 향한다

 

점심 때가 너무 지난 시각이라 

백운호텔(白云賓觀)에서 점심을 먹느냐?

하산해서 먹느냐?를 놓고 의견을 나누다가

빨리 식사하고 이동하기로 결정한다

 

빠른 식사를 하고 광명정(光明頂:1860m)으로 오른다

500m 정도만 오르면 된다고 하는데

식사 후라 그런지 산에 오르는 발이 매우 힘겹고 무거워만 진다

 

어렵게 광명정(光明頂)에 올랐다

이 정상석에서 인증샷을 하려고 대기해도

새치기하는 사람들로 붐벼 가까이 접근하기도 힘들다

옆에 서려하면 같이 덤벼들어 같이 서기에

포기하고 정상석만 찍는다

 

정상석이 있는 건물 쪽에서 앞으로 있는 바위에서

정상에 있는 건물을 향해 인증 샷을 한다

정상에도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어 인증샷도 어렵게 하는 것 같다

 

안내도로 보아 앞쪽에 보이는 보이는 정상이

용성봉(龍成峰)이 아닌가 한다

 

광명정(光明頂)의 앞 바위 위에서 인증샷을 하고 내려와 대기하는데

우리 일행 1부부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식사하고 같이 올라오기 시작은 했으나

부인의 안색이 안좋아지며 뒤쳐졌다고 한다

 

그래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올라오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데

앞쪽으로 황산에서

최고봉인 연화봉(蓮花峰:1864m)과

세번째 봉인 천도봉(天都峰:1810m)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일행이 도착하자

광명정에서 백학산장(白鶴山莊)으로 이동하는데

얼마나 갔을까?

이정표가 복잡하게도 붙어 있어 눈길을 끈다

 

광명정에서 백학산장까지는 가벼운 산책길로서

이 곳에서 잠시 쉬어 간다

여기에서부터 운곡케이블카를 타는 신백아령까지는 

내려가는 길이라 한다

 

백학산장(白鶴山莊)에서 백아령(白鵝嶺)으로 내려 가는 길로서

계단 길과 조금 가파른 길이다

 

백아령(白鵝嶺)으로 내려오니 넓은 공간이 있는데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머물지 않고

두견담(杜鵑潭)을 지나

케이블카를 타는 신백아령(新白鵝嶺)으로 향한다

 

두견담(杜鵑潭)을 지나니

흑호송(黑虎松) 방향에서 걸어 올라와

케이블카를 타고 운곡사로 내려 가려는 사람들과 병목현상으로 겹쳐

또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기 시작한다

 

많은 인파에 묻혀

조금씩 조금씩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앞으로 나아가며 지루함을 틈타 셔터를 눌러 댄다

 

엄청난 인파에 시달려 가며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밀려 가는데 중간중간 공안(公安)들도 보인다

사람들이 이 처럼 많이 몰리니 공안(公安)들도 출동하여

안전사고에 대비하고 있는 것 같다

 

저기 중앙의 봉우리가 석순봉(石筍峰)이라 한다

신백아령(新白鵝嶺) 운곡케이블카 탑승장까지

아직도 한참을 기다려야 하나 보다...

 

오늘의 황산 구경은 너무 아쉬운 마음 뿐이다

지금도 황산을 내려가기 위해 한참을 기다리며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서서히 가고 있다 

너무 많은 인파로 인해 시간을 소비함으로서

가서 보지 못한 곳이 여러 곳이다 

 

운곡케이블카에 드디어 오른다

줄을 서 기다린지 약 3시간만에 겨우 탑승한 것이다

오늘 황산의 날씨는 좋았는데...  인파에 밀려...

끝내 아쉬움만 남기고 황산을 내려 가야만 한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황산 위로 올라 갈 때의 

태평케이블카는 100인승으로 콩나물 시루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 내려가는 운곡케이블카는 8인승으로서

편안하게 앉아 4면을 감상하며 내려 갈 수 있어

몇 시간씩 인파에 밀리며 기다려야 했던

다리의 피곤함을 풀어주는 시간이 되는 것 같다 

 

오늘 황산을 관광한 시간은 3시간 정도이고

기다리는 시간이 9시간 정도...

가이드에 물어 보았다

"평소에도 황산은 이 처럼 사람이 몰리느냐"고...

아니라 한다

"명절이나  공휴일과 주말에만 그렇다"고 한다 

 

황산을 내려가는 운곡케이블카에서 보는 관경도 멋있다

기암 괴석과 그 사이를 지나가는 케이블카들과의

조화가 더욱 멋진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기암괴석 위에 공기돌을 올려 놓은 것처럼

둥그런 돌들이 아슬아슬하게 보인다

저 곳이 안내도로 보아서는

'신선이 하산길을 알려준다'는 선인지로(仙人指路)가 아닌가 한다

 

운곡케이블카 운행거리는 2804m로 약 8분정도 소요된다

이제 황산에서 내려와

운곡사(云谷寺) 케이블카 하차장에서 내린다

참으로 줄 서 기다림에 황산 구경하기 힘들 날이었던 것 같다

 

운곡케이블카 하차장에서 내린 우리는

다시 운곡사입구에서 우리가 타고온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황산대문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러 이동한다 

 

그런데 이곳도 거리가 가깝지는 않은 것 같다

거의 700~800m 정도 걸은 것 같았다

 

이 곳도 줄을 선다

줄을 서 기다린다 것은 그만하였으면 좋겠다

오늘은 지치고 지겹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우리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황산대문까지 타고 나갈 셔틀버스이다

우리 일행들만 탈 수 있는 셔틀버스를 배정 받아 타고 있는데

우리 일행 중 늦게 걸어와 중국인들 줄 선 사람들 뒤에 있어 출발을 못한다

가이드는 중국인들에게 별도 단체 셔틀버스에 타야 되니

길 좀 터 달라고 부탁하는데

일부러 비켜 주지 않고 길을 계속해서 막는다

화가 난 가이드는 큰소리를 내며 주먹을 휘두려고 하다가 참는다

 많은 인파와 기다림에 지친 예민함 때문이라 생각한다

 

 

셔틀버스로 황산에서 꼬불꼬불 한참을 내려온다

한 20분정도 소요되었나

황산대문 셔틀버스 종점에 도착한다

이 곳에서 내려 우리가 아침에 타고 온 버스로 갈아 타고

고속도로를 약 1시간 반을 달려 호텔로 돌아 가야 한다

 

많은 보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이것으로서

이번 중국 여행 중의 하일라이트인

삼청산(三淸山)과 황산(黃山)의 등산하는 일정은 모두 마치고

 

내일부터 2일간은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휘주(徽州) 문화를 보는 일정만 남았다

 

또 하루 밝아 온다

황산에서 보지 못했던 운무(雲舞)가 호텔 창밖 아파트 뒤쪽에서

일출(日出)과 함께 아침을 아름답게 수 놓고 있었다

 

오늘 아침은 일정에 여유가 있어

일행 방으로 건너가 베란다에서 호텔 앞 정원을 보니

무슨 행사가 있는지

울타리를 쳐놓고 킹콩, 공룡, 작은 팬더곰 등을 깔아 놓았다

 

호텔에서 나와 우리 호텔이 있는 황산시 툰시구(屯溪區) 시내에서

야 25Km 정도 거리에 있는 

황산시 후이저우구(徽州區) 잠구진(潛口鎭)으로 향한다

후이저우구(徽州區)는 툰시구에서 북쪽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는 구로서

툰시구가 현대화 되고 번잡한 도시라면

후이저우구는 옛 고풍스럽고 한적한 읍내 같은 느낌이 든다  

 

버스는 후이저우구(徽州區) 잠구진(潛口鎭)에 있는

잠구민택 앞에 있는 주차장에 정차한다

잠구민택(潛口民宅)

명나라와 청나라시대의

전형적인 휘주 건축양식을 보존해 놓은 곳으로

'왕궁을 보려면 북경으로 가고

민가를 보려면 휘주로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잠구민택 안에는 민가, 사당, 정자 등

24개의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의 일반적인 가옥 건축물들은 대문과 담장이 있으며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당이 있으며 안쪽에 가옥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이 곳의 건축물들은

사방으로 높게 둘러 쌓인 담장과 연결하여 안쪽에 지어진

목조 주택으로 만들어져 있다

 

사당이 아닌 가옥들의 구조에는

담장의 1층 높이에는 전혀 창문이 없으며

2층 높이나 3층 높이 조그만 창이 있는 집도 보이는데

손님들이 와서 문을 두드리면

옛날 여성들이 그 창으로 밖을 쳐다보고 아는 사람이면 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또 대문 옆 하얀 담장에 검은색 점 무늬로 보이는 것들이 있어 알아보니

예전에 명절이나 행사때 불을 밝힐 등을 걸어두던 고리가 있는 곳이었다

 

대문을 들어서자 지붕이 사각으로 뻥 뚫려 있고

1층은 대청으로 되어 있으며

2층에는 창틀이 보이는데 아래에서 2층 안쪽은 보이지 않는 구조다

1층은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며

2층은 손님이 왔을 때 이 집에 사는 아낙들이 어떤 손님이 왔나

슬며시 내려다 볼 수 있는 구조라고 한다

 

그것이 궁금하여 보려고 하였으나

2층으로 올라가서 볼 수 없도록 올라가는 문을

전부 잠그어 놓은 상태였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전통족으로 휘주의 남성들은 결혼 후 애가 태어나면

집을 나와 객지로 돈을 벌러 떠나기 때문에

집안 살림은 여자가 책임지고 꾸려나가는데

휘주 여성들은 정절을 중요시 여겨

남자가 떠나 가 없는 집은 문이 항상 잠겨 있었다고 하며

남자가 돌아오면 문이 열려있어 그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잠구민택을 한바퀴 돌아나와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가니 옆에 호수가 있다

오래된 호수로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의 잠구민택(潛口民宅)은

예전부터 이 곳에 있었던  건축물이 아니라

부근에 있던 명청대 건축물을 이축하여 조성하여 놓은 것이라 한다

 

잠구진(潛口鎭)에서 버스로 동쪽으로 약 20분 정도 이동하여

서현(歙縣)에 위치한 포가화원(鮑家花園)으로 간다

 

포가화원(鮑家花園)

청나라시대 때 소금장수였던 포치원의 개인화원을

정원으로 꾸며 놓은 곳으로서

 

북경의 이화원(頤和園), 소주의 졸정원(拙政園),

승덕의 피서산장(避暑山莊)과 더불어

중국의 4대 정원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4대 정원을

북경의 이화원(頤和園), 소주의 졸정원(拙政園), 소주의 유원(留園),

승덕의 피서산장(避暑山莊)을 지칭하기도 하는데

정확한 것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경의 이화원(頤和園)이나 승덕의 피서산장(避暑山莊)은

황제나 황족들의 사용하는 정원이고

여기의 포가화원(鮑家花園)을 비롯하여

소주의 졸정원(拙政園)과 유원(留園)은 서민들의 정원이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정원(庭園)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구비되어야 할 4가지가 있는데

자연석(自然石), 연못, 정자, 가산(假山)이

있어야 정원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포가화원을 거닐던 중 담 밖으로

밀림 같은 숲이 보이고

그 뒤로는 정촌진(鄭村鎭)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눈길을 끈다

 

포가화원의 호수를 한바퀴 돌아 보려고 하다가

길을 잘 못 들어 리조트가 있는 곳으로 오게 되었다

중국의 4대 정원으로서 관리되고 있는 곳에

리조트가 있다는 것이 의아한 느낌을 갖게 한다 

 

다시 원위치 된 시점에서

시간이 촉박함에 빠른 걸음으로 호수를 돌기 시작한다

포가화원(鮑家花園)은

정품원, 유파원, 수목원, 산석원의 4개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고

큰 정원을 화원으로 꾸며 놓아 무형세계유산으로

동방원림의 어머니라고도 불리운다고 한다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이 파랗고

호수위에 비쳐지는 오래 된 정자와 나무 숲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이 아름답게 보인다

 

호수가가 끝 무렵 출렁다리가 나온다

언제 만들어진 것이지는 모르겠으나 이 곳을 건너며

사람들은 카메라에 이 모습을 담아댄다

 

호수를 돌아 출구 쪽으로 걷다보니

희귀한 분재 작품만 1만분이 넘는다는 분재 화원이 있고

아담한 정자와 주변을 아름답게 조성하여 놓은 공간이 나오는데

이 곳을 통과하여 포가화원 밖으로 나온다

 

 낮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향하던 중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쇼핑센터에 방문한다

입구에는 옥으로 만든 범선이 있었고

대나무 섬유로 생산된 제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이 제품들은 가격도 저렴하고 사용 결과에 만족하여

중국 여행시마다 조금씩 사 가지고 와 선물을 하는 편이다   

 

황산시 둔계구 시내로 들어와

황산 골프장 리조트를 방문하였다가 호텔로 향한다

 

호텔로 돌아가 잠시 쉬었다가

저녁 식사를 하고

휘운가무쇼를 보기로 하여

 

호텔에서 저녁식사 후 휘운가무쇼를 하는 향명대극원(香茗大劇院)으로 왔다

휘운가무(徽韻歌舞)

황산의 사계절과 휘주의 전설과 애환어린 생활상을 표현한 

장예모 감독의 작품이라 한다  

 

쇼가 시작되기전 처음은 코믹스런 분장을 한

광대가 나와 분위기를 먼저 이끄는 것으로 시작을 한다

나는 장예모 감독 작품으로

장가계에서 천문산(天門山)을 배경으로

나무꾼과 하얀여우의 사랑이야기인 천문호선(天門狐仙)과

계림 양삭에서 이강(漓江)에서 펼쳐지는

인상적인 유씨집안 세째딸이라는 인상류삼저(印象劉三姐)를

관람한 적이 있다

그 작품들은 모두 자연을 배경으로

그 지방에 사는 일반주민들이 참여해서 공연하는 작품이었는데

여기는 무대가 극장에서 공연과 모두 전문적인 배우라는 점이

장예모감독 작품에서 차이가 있었다

 

코믹스런 광대가 들어가고 조금있으니

어두움에서 신비한 조명이 비쳐지며 신선이 나타나

무엇인가 설명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무대 옆쪽 위로 영어와 우리말로 자막처리는 하는데

고개 돌려 자막을 쳐다보랴, 무대를 보랴 정신이 없어

자막을 본다는 것은 거의 힘들었다

휘운가무(徽韻歌舞)쇼는 총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1장은 황산의 사계(黃山四季)로서

 휘주의 역사적인 유래를 소개하면서

문방사우(文房四友)인 종이와 붓과 벼루, 먹을 중시하는 휘주문화와

 

황산의 아름다운 사계를 배경을

아름다움을 서커스적인 기예로 펼쳐보이고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표현함에

생동하고, 시원하고, 그리고 운무, 일출, 단풍들과 

 

겨울의 설경(雪景) 등을 아름답게 펼쳐보이고 있었다 

 

2장은 휘주의 사랑(天上人間)으로

칠선녀가 천상에서 내려와 황산 경치에 반해 놀다가

그 중의 한 선녀가 휘주의 총각을 사랑하게 되어

자식까지 낳으며 살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된 옥황상제는 노하여

천군(天軍)을 보내어

선녀를 잡아 하늘로 데리고 가 버린다

 

홀로 남게 된 남자는

하늘로 잡혀 올라간 선녀를 그리워 하다가 죽게 된다  

 

죽어서 하늘로 올라 간 남자는

천상에서 새들이 만든 오작교에서 선녀와 재회한다는

내용의 '휘주의 사랑' 이야기로서

우리나라 설화인 칠월칠석날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견우와 직녀' 내용과 비슷하다

 

제3장은 휘주의 꿈(痴夢徽州)으로서

자식과 남편을 외지로 보내고 난 뒤에

휘주 여인으로 살아가야 할 하루하루의 고달픈 삶과

독수공방의 외로움을 보여주고 있는 내용이다

 

휘주지역은 산악지형이 70%이고 물이 30%로

경제적 생활여건이 좋지 않아

남성은 관료가 되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13세가 되면 돈을 벌러 신안강을 따라 집을 떠나야 했다

그 결과 휘주지역은 22명의 장원급제자를 배출한 학문의 고장이며

강남지역으로 진출하여 부를 축적한 

휘주상인으로 명성을 떨치는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다 

 

남편과 자식들이 명성 떨치기 위해 장기간 휘주를 떠나있는 동안

 여인은 고달프고 외로운 독수공방의 삶에

세월은 흘러만 가서

 남편이나 자식이 성공하여 금의환향(錦衣還鄕)하였을 때는

여인은 이미 연로하여 죽음에 이른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하는 내용이다

 

4장은 휘극의 북경진출(喜劇進京)의 내용으로

휘주의 극(劇)은

휘주 상인들이 거상(巨商)으로 성장하며 중국의 상권에서 유명해지면서

그 들과 함께 청나라 황제의 연회에 초대를 받게 된다

 

황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삼국지에 나오는 주유의 영웅담을 공연하여

군사들의 사기가 오르게 함으로서

 

황제의 인정을 받아

청나라의 수도인 북경에 진출하였다는 내용이다

 

이후 극(劇)은 북경에서 머무르면서 경극의 형태로 발전하여

황제의 연회에서 즐겨 공연하게 되었으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서 경극(京劇)의 기원은 휘주(徽州)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휘운가무쇼는 200여명이 출연하는

1시간10분 동안의 공연으로서

이 공연의 특이점은 무대 밖인 객석에 까지 와서 공연도 하며

무대 옆 벽쪽에 빈 공간까지도 활용하여 공연을 하는데  

 

매우 화려하면서도 웅장함이 있으면서도

휘주의 역사와 문화를 잘 표현한 작품인 것 같다

특히 휘주 여인들의 눈물겨운 삶의 표현은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을 듯한 작품이었다

 

황산에서 오늘이 마지막 밤의 일정으로써

휘운가무쇼를 관람함으로써 모두 마치고 호텔로 간다 

 

오늘은 중국 황산에서 마지막 날로서

고성암을 들러 황산공항으로 가

인천공항으로 날아 집으로 가는 날이다

 

고성암으로 왔다

고성암(古城岩)은 우리가 4박을 묵었던

'황산 컨트리 가든 피닉스 호텔'에서 서쪽으로 약 15분 거리의

황산시 슈닝현(休寧縣) 만안진(万安鎭)에 소재하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 고성암 내부로 들어가는

의문(儀門)으로 들어선다

 

고성암은 17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휘주 문화와 전통을 간직한 고적지로서

민가, 패망, 사당 등을 볼 수가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는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도

많이 이용하는 곳이라 한다

고성암에 입장하여 금순경택(金舜卿宅)이라 문패가 있는 집으로

들어가 보았다

이 집은 문패로 보아 관료를 지낸 분의 집으로 생각되는데

대청 옆에 무대가 있었는데

 

잠시 있다보니

어떤 여자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첫 곡은 모르는 노래였고

두번째 곡은 첨밀밀(甛蜜蜜)의 "I'm still loving you" 노래로서

우리나라 두리안이 번안하여 부른 "햇살같은 그대는 나의 빛"이었다

 

노래를 듣고 그 집을 나와

골목 계단을 올라 우측으로 돌아가니

삼형제가 살았다는 정씨삼택(程氏三宅)이라는 집이 나온다

밖의 담장은 하나로서 이루어져 있지만 안은 3등분으로 담으로 나뉘어져 있고

대문은 각각 두고 있었다

대문 입구를 보니 각각 작은 벼슬을 하던 사람이라는 표시로

첫째는 무인, 둘째와 세째는 문인표시의 작은 사자와 원형 돌조각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전형적 휘주 문화 전통양식의 목조주택으로서

가운데 천정 뚫린 곳에서 빛이 환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1층의 대청에는 각각 중앙에 탁자가

탁자를 두고 양쪽에는 의자가

탁자 뒤로는 병풍이

탁자 위 쪽에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휘주문화(徽州文化)에서

집에 탁자 위에는 시계, 물병, 거울을 놓아 둔다고 한다

이유로

시계(鐘聲)는 평생(終身:Zhong sheng)

물병(甁)은 평화로움(平:Ping)

거울(鏡)은 고요하다(靜;Jing)와 발음이 같아

이를 모두 합치면

 

종신평정(終身平靜)으로

'일생동안 평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싶다'는

염원으로서 그렇게 하였다고 한다 

 

정씨삼택에서 나와 골목 큰 길가로 나오니 햇살이 따갑다

황산은 일년 365일 중 3분2는 비가 오거나 흐리다고 하였는데

이번 우리의 여행은 하늘이 도와 주었다는 생각이다

 

고성암 내부에서 밖으로 나가려던 중

오래된 표시로 지붕이  균일하지 않은 건축물로서

황씨종사(黃氏宗祠)라는 사당이 보인다

 

고성암의 의문(儀門)을 통해 밖으로 나오니

패방(牌坊)이 보인다

패방(牌坊)은 충(忠), 효(孝), 절(節), 의(義)를

행한 사람에게 하사하여 세워진 것이나

휘주에서는 우리나라 열녀문에 해당하는 패방이 많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결혼하여 애가 태어나면 고향을 떠나

돈을 벌러가 성공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아

여자는 남편을 기다리며

고달프고 외로운 독수공방 삶을 살다가 쓸쓸히 죽어가는 생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곳의 패방(牌坊)들은 애환이 많은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고성암 관리사무실로 보인다

이 문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이 많아

배경을 담아 두었다

 

관리사무소 옆에 있는 건축물이다

누각(樓閣)처럼 보이는데 저 것도 패방(牌坊)이라 한다

명칭은 용원패방(龍源牌坊)이다

 

고성암을 출발하여 황산공항으로 온다

이번 여행은 너무도 감사한 마음 뿐이다

날씨가 도와주어

비가 많이오고 안개가 많이 낀다는 이 지역에서

매일 너무도 쾌청한 날씨 속에 여행을 했으니 너무 좋았다는 생각이다

 

중국 황산공항에서 14:40분에 출발하는 항공을 타고

약 1320Km 날아

인천공항에 18:00시에 내림으로

이번 여행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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