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모로코 여행

천황봉 2015. 12. 29. 11:25

스페인에서 5일 밤낮을 바쁘게 보내며

바로셀로나에서 여행을 시작하여 사라고사, 마드리드, 똘레도, 콘수에그라,

코르도바, 그라나다, 미하스,

말라가, 푸에르토바누스를 거쳐

스페인 최남단 타리파(Tarifa)으로 와서 배를 타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아프리카 대륙의 북서쪽 대서양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

모로코(Morocco)를 여행하기 위해 

탕헤르(Tanger)항으로 건너 간다

 

스페인 타리파 항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모로코 탕헤르 행 배에 탑승하자마자

모로코 입국 심사대 앞으로 가서 줄부터 선다

모로코 입국 심사는 모로코 탕헤르로 가는 배에서 심사를 하며

빨리 줄을 서지 않고 늦으면

모로코에 도착할 때까지도 배에서 의자에 앉아 보지도 못하고

입국심사 대기로 줄을 서 있어야 하는 경우 있기 때문이다 

 

모로코에서의 일정은

탕헤르(Tanger)로 건너가 점심식사를 한 후

라바트(Rabat)를 거쳐 카사블랑카(Casablanca)에서 자고

페스(Fes)로 갔다가

다시 탕헤르(Tanger)로 돌아와 또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스페인 타리파(Tarifa) 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빨리 줄을 섯기에 입국수속을 일찍 마치고

갑판으로 나가

대서양 바다와 지중해 바다가 만나는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가는 기분에 흠뻑 빠져 본다

 

스페인 타리파 항에서 출발한지 1시간 가까이 흐르자 

배는 모로코 탕헤르 항으로 서서히 다가간다

스페인 타리파(Tarifa)에서 모로코 탕헤르(Tanger)까지 거리는

27Km 정도의 거리라고 한다

 

드디어 배에서 내린다

처음으로 아프리카 땅에 발을 내 딪으니 

미지의 세상에 온 것처럼 설레임은 더 한 것 같았다

 

배에서 내려 여행가방을 끌고 통관대를 향해 가는데

가방을 끌어 주겠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달라 붙는다

통관대를 거쳐 밖으로 나가는 길은

 길게 고가를 2층으로 올라서 가방 검색대와 통관대를 통과하여

2층에서 밖으로 가방을 끌고 내려가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짐이 무거운 사람은 2층으로 끌고 올라가기가

쉽지만은 않아

이들이 1유로에 2층으로 끌어 올려 주겠다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호객행위하는 사람은 허가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탕헤르 항에서 검색대를 통과하여 밖으로 나와 버스에 오르니

먼저 점심식사하는 곳으로 인도하는데

대서양 바다가 보이는 해변가를 지나 낮으막한 고개를 넘어 조금 가다 보니

 

골든 튤립(Golden Tulip)이라는 호텔 앞에서 정차한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이 호텔에서 모로코 현지식으로 첫 식사인 점심을 하고

라바트(Rabat)로 출발 할 예정이었다 

주위 풍경은 개발되고 있는 지역으로 보이고

호텔은 완공된지 얼마  안되는 것처럼 깨끗해 보인다

 

안으로 들어서니 밖에서 보는 것하고는 다르게

운치있게 정원이 꾸며져 있었다 

 

골든 튤립 호텔(Hotel Golden Tulip)에서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공사 업자들이 집을 지어 분양하듯이

신축된 것으로 보이는 똑 같은 모양의 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버스에 올라

모로코의 수도인 라바트(Rabat)를 향해 출발하면서

먼저 몇 마디 모로코 인사말부터 알려준다

"앗살라무 알레이쿰(당신에게 평화가 깃드시길)"

"알레이쿰 살라무(당신에게도 평화가 깃드시길)"

"마하 살라마(고맙습니다)"

 

탕헤르(Tanger)

스페인어 발음이며 영어로는 '텐지어'라고 한다

모로코 북부에 위치한 탕헤르테두앙 주의 주도(州都)로서

인구 70만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으며

지브롤터 해협을 두고 스페인 타리파(Tarifa)와 27Km 거리에 있는 도시이다

기원전 1200~900년경 페니키아 인들이 진출한 항구로 카르타고의 영토에서

BC 218년 하니발 장군이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에 패하고

BC 146년 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가 완전 멸망한 후

AD 5세기까지는 로마의 지배를 받는 영토였다 

 

6세기 이후부터는 반달족의 침입을 받았다가 비잔틴 제국과

아랍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15세기 이후에는 유럽의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등이 세력 다툼의 장소였다가

1684년 모로코에 반환되면서

북아프리카 문화와 유럽의 문화의 교류지로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모로코가 1912년~1956년 프랑스와 스페인의 보호령이 되어 분할되었을 때에

탕헤르(Tanger)는 스페인, 프랑스 외에

영국, 포르투갈, 이탈리아, 벨기에 등 여러 나라의 공동 관할하는

별도의 국제 관리 지역이며 자유 무역항이 되었다

이때부터 유럽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게 되었으며

유럽인, 아랍인, 유대인들이 어울려 사는 국제도시가 되었다

1956년 독립으로 모로코에 반환되어 무역이 다소 쇠퇴하기도 하였으나

다시 자유 무역항으로 지정되어 크게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탕헤르(Tanger)의 시가지는

이슬람식 구시가와 유럽인이 건설한 신시가로 나누어져

이슬람 문화와 유럽 문화가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현재 모로코에서는 카사블랑카 다음가는 공업도시로서

모로코 각지로 연결되는 도로와 철도가 개설되어 있는 도시라고 한다

 

모로코(Morocco)

국민 98.7%가 알라를 믿고 있는 이슬람 국가(수니파)이며

모하메드 6세(Mohamed Ⅵ) 국왕이 다스리는 왕정국가로서

국토 면적이 446,550㎢와 독립을 요구하는 서사하라 지역 266,000㎢을

포함하면 712,550㎢로서 한반도 면적의 3배가 넓는 나라이다

인구는 약 3,360만 명이며(서사하라 인구 57만명 제외)

아랍인 60%, 베르베르인 36%, 유럽인,유대인,흑인 등 4% 거주하고 있다

공용어로는 아랍어, 베르베르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제1 상용 외국어로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은 너무 많은 혼혈로 구별이 잘 안되는데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종족을 추정하고 있다고 하며

피부색은 베르베르계의 백색부터 흑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나

인종차별은 전혀 없는 국가라고 한다 

 

경제 수준으로는 2015년 국가 GDP는 1,030억7,500만 달러(60위),

1인당 GDP는 3,076 달러(119위)의 위치에 있는 나라이며 

<대한민국 : 2015년 국가GDP 1조4351억 달러(11위), 1인당GDP 28,338달러(28위)>

문맹율이 약 50%에 가까우며

입헌군주제 국가로서 국왕이 종교수반을 겸하는

이슬람 국가이나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어

전국에 주로 외국인을 위하여

기톨릭 성당 10개, 기독교회 5개, 유대교회 10개가 있으나

모로코인에게 포교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모로코 지형은 아프리카 북서쪽에서

대서양과 지중해의 3,500Km 해안선을 접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알제리, 남쪽으로는 모리타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로서

국토 중앙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는 길게

해발 4000m 봉우리들이 많은 아틀라스 산맥이 뻗쳐 있고

산맥 남쪽에는 사하라 시막에 이어지는 건조지대이고

산맥 북쪽의 서부지역은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비옥한 농업지대라고 한다 

 

인구는 아틀라스 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인 대서양 연안지역에 전체국민의 70% 이상이 거주하고 있으며

인구분포는 도시 56%, 농촌에 44%가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밭에는

스프링쿨러가 물줄기를 세차게 품어대며 돌아가고 있다

내가 모로코로 오기 전에 전해 듣은 이야기로는

못 살고 가난한 나라이고

호텔 방에서는 바퀴벌레가 나온다고 들었는데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은 그렇지가 않아 보이고

잘 정돈 되어진 농촌으로서

풍요로워 보이면서 평온해 보이기만 하였다

 

탕헤르에서 출발한지 1시간 50분 쯤 지나고 있을 때

Station TOTAL 이라는 휴계소에 정차하여 버스에서 내린다

휴계소에는 고기를 구어 파는 곳이 있는지

고기 굽는 냄세로 진동을 한다

휴계소 한켠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모여 있었는데

모로코 국왕이 스페인(?)을 방문하기 때문에

탕헤르까지 배웅하고 라바트로 돌아가는 요원들이라고 한다

 

잔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 휴계소 주위를 둘러보는데

우리와는 생긴 모양에서 차이가 있는

비닐하우스가 길게 뻗쳐 있었다

저 언덕을 넘어가면 대서양 바다 해변 모래 사장이 나온다고 한다 

 

다시 버스에 올라 라바트를 향해 달린다

휴계소에서 목적지인 라바트의 모하메드 5세 왕릉까지는

1시간 정도만 더 가면 된다고 한다

 

무슨 모종을 해 놓았는지 정렬되어 심어져 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보며 느끼는 것이

농촌 모습과 도로를 보면은

그 나라가 발전을 도약하는 나라인가를 느낄 수 있는데

모로코는 빠른 속도로 발전 성장하고 있는 국가라는 생각이 든다

 

검문을 하고 있다

라바트 시내로 진입하고 있다고 한다

라바트(Rabat)

2015년 현재 인구 약 66만명 정도가 거주하는 모로코의 수도로서

'승리의 근거지'라는 뜻을 의미한다고 한다

 

라바트 시내로 접어 들자

목적지인 모하메드 5세 왕릉과 핫산탑이 보인다

 

라바트에 도착하여

'모하메드 5세 왕릉'과 '핫산탑'이 있는 광장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수 많은 높낮이가 각기 다 다른 돌기둥들이 눈에 들어 온다

 

입구에서 보면 우측 끝 쪽으로 하얀 건축물이 보이는데

모하메드 5세 왕릉(Mausolee Mohammed Ⅴ:1909~1961년)이다

모하메드 5세는 현재의 국왕 모하메드 6세의 할아버지로서

1912년 이후 모로코가 프랑스의 식민지 시대에

식민 통치에 항거하여 선두에서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1956년 3월 독립을 하자 왕위에 올라

국가 재건에 힘쓰다가 1961년 사망한 국왕이라 한다

왕릉은 모하메드 5세가 사망한뒤 1962년부터 1969년까지 7년에 걸쳐

400여 명의 장인들을 동원하여 완공하였다고 한다 

 

왕릉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근위병이 지키고 있는데

옆에 서서 포즈를 취하며 카메라를 들이대면 포즈를 잡아 주기도 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념 사진을 같이 찍는다

 

왕릉 안으로 들어서면

아래 층으로 관들이 놓여져 있는 것이 보이는데

가운데 있는 것이 현재의 국왕 모하메드 6

할아버지인 모하메드 5세 석관이고

뒤 쪽에 양 편으로 관들이 놓여져 있는 것이 보인다 

모하메드 5세의  아들들 석관이라고 하는데

왼쪽으로 보이는 석관은 현재의 국왕 모하메드 6세의 아버지인 

하산 2세 석관이고

우측은 현재의 국왕 모하메드 6세작은 아버지 석관이라고 한다

한쪽에 코란이 펼쳐져 있는 모습도 보인다

 

천장을 쳐다보니 너무도 화려하게 장식을 해 놓았다

무어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예술적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모하메드 5세 왕릉을

프랑스어로 모졸리 모하메드 5세(Mausolée Mohammed Ⅴ)라고 하는데

모졸리(Mausolée)는 릉(陵), 영묘(靈廟)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모설리엄(Mausoleum)이라고 한다

건축물에 릉(陵)으로 표시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경우로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인도에 아그라(Agra)에 있는

무굴제국의 제5대 황제인 샤자한(Shahjahan)이

먼저 사망한 부인 뭄타즈마할(Mumtaj Mahal)을 그리워하며 건축한

거대 웅장하면서도 화려 아름다운 건축물인

타즈마할(Taj Mahal)이라 할 수 있다  

 

모하메드 5세 왕릉  광장에는 핫산탑이

높낮이가 다 각기 다른 돌기둥과 함께 웅장하게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보수 공사중으로 가설 울타리 설치되어

본 모습의 모양을 보기가 어려워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원래는 이러한 모습의 핫산탑(위)을 보고 싶었는데

보수 공사중으로 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사진으로만 본 모습을 보았다

핫산탑(Tour Hassan)

12세기말인 1195년 알 모하드(Al Mohad)왕조의

제3대 왕 야쿱 엘 만수르(Yakub el Mansur)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 원정에서 기독교인들과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높은 미나렛을 세우려고

정사각형(변 16m)으로 공사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공사 시작 4년 후 1199년 그가 사망하게 되자  

44m 높이에서 중단되어 현재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하산탑을 중심으로 높낮이가 다 각기 다르게 서 있는 300여개 기둥들도

핫산탑을 세우며 같이 모스크를 건축하려 하였으나

야쿱 알 만수르(Yakub el Mansur) 왕의 사망으로  인해

핫산탑과 함께 중단된 것이라 한다

돌기둥의 중간 받침돌 높이들이 각기 다른 돌로 쌓아 놓은 것은

내 생각에는 규격품이 아닌 크고 작은 돌을

최대한 가공하여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생각하는데 

'1년 365일은 똑 같은 날이 없다'는 의미를 표시하는 것이라 한다

 

모하메드 5세 왕릉과 핫산탑 광장에서 나와

카사블랑카로 출발하는데

보우 레그레그 강(Oued Bou Regreg) 근처 핫산탑이 있는 담 옆에

무슨 의미가 있는 광장인지는 모르겠으나 

11월16일 광장(Place 16 Novembre)이 눈에 들어 온다 

 

보우 레그레그 강(Oued Bou Regreg)변에 앉아

밀회를 즐기는 연인이 보인다

 

라바트(Rabat) 역사는 

BC 300년 보우 레그레그 강(Oued Bou Regreg)의

강변에 형성된 쉘라(Sale)라는 정착촌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AD 40년 로마인들이 쉘라를 정복하여

그곳을 로마인 정착촌 살라 콜로니아(Sale Colronia)로 개명하였다

AD 250년에 베르베르인들이 로마 식민지에서 해방시켰으며

마라케시(Marrakech)를 수도로 한

알 모바비드 왕조(Al Moravids:1062~1145년)를 멸망시킨

아틀라스 지방에서 금욕생활을 종교기반으로 하는 베르베르족의 

알모하드 왕조(Al Mohads:1145~1248년)의 초대 칼리프(왕)인 압드 알무민

1146년 라바트(Rabat)를 스페인 공격을 위한

전진 기지로 만들기 위해 요새화를 시작 하였다고 한다

 

1170년 이 지역이 중요한 군사적인 요충지로 생각하여

'리바투 엘 파스'라고 하였으며 현재의 지명을 유래하였는데 

라바트(Rabat)는

'승리의근거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알 모하드 왕조(Al Mohad:1145~1248년)의

제3대 왕 야쿱 엘 만수르(Yakub el Mansur:1160~1199)는

수도를  라케시(Marrakech)에서 라바트(Rabat)로 옮기고

카스바흐 데스 오우다야스(Kasbah des Oudayas) 도시 성벽을 세우고

모로코를 강력한 이슬람 왕국으로 만든 술탄(왕)이었다 

 

알 모하드 왕조(Al Mohad:1145~1248년)의

제3대 왕 야쿱 엘 만수르(Yakub el Mansur:1160~1199)의 일생은

1184년 포르투칼에서 아버지 아부 야쿱 유수프가 암살되면서 왕좌에 올라

아버지의 죽음에 복수로 왕좌를 가로챈 자들을 죽이고

모로코로 돌아 왔다가 군대를 이끌고

이베리아 반도로 다시 건너가 모든 주요 도시를 정복하고

수천명의 기독교인 포로와 처녀, 아이들을 모로코로 데리고 왔다

그가 모로코로 돌아오자

이베리아 반도에서 반대 세력들인 기독교인들의 모반이 발생하자

다시 건너가 모두 진압하고 포로들을 잡아와 노예로 팔았다고 한다

 진압 후 모로코로 다시 모로코로 돌아오자

이베리아 반도에서 기독교인들이 30만명의 군대를 양성하자

그는 다시 건너가 15만명 이상을 죽이고 많은 약탈품을 가져 왔으며

이슬람 세계에서 최고 높은 핫산탑과 최고의 모스크를 건설하려다가

1199년 마라케시에서 사망하였다고 한다

 

알 모하드 왕조(Al Mohad:1145~1248년)

야쿱 엘 만수르(Yakub el Mansur) 왕이 사망한 후 국운이 쇠퇴하며

1212년 스페인의 '톨로사 전투'에서 패배하며

'그라나다'를 제외한 스페인의 대부분의 영토를 기독교 세력에게 반환되며

국력을 상실하였으며

1248년 페스(Fes)를 중심하는 메린족알 모하드 왕조를 멸망시키고

메레니드(Merenids) 및 와타시드(Wattasids) 왕조(1248~1554년)를 세웠다고 한다

 

대서양 바다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차안이 갑자기 "우~와!" 소리가 터져 나온다

좌측 창밖을 바라보니 묘비석이 엄청나게 서 있고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사람을 놀래키고 있었는데

아스 소우하다 공동묘지(Cimetiere As-Shouhada)라고 한다

 

라바트(Rabat)에서 카사블랑카(Casablanca) 까지

거리는 약 90Km 정도이며 시간은 약 1시간 15분 정도 소요된다고 하는데

태양은 대서양 바다를 향해 기울고 있었다 

 

라바트에서 출발한지 약 40분쯤 지났을까

서쪽 하늘에서는 일몰이 시작하고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데

버스는 카사블랑카를 향해 쏜살 같이 달려 가고 있었다 

 

내가 언제 태양이 대서양 바다로 숨어들어 가는 일몰을 본적 있던가?

열심히 흔적을 남기기 위해 셔터를 눌러본다

 

카사블랑카에 거의 도달한 것 같다

이슬람 국가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모스크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이슬람 사원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했더니

저 것(위사진)이 이슬람 사원이라고 한다

터키를 여행하면서 본 이슬람 사원하고는 차이가 많아 보였다

이슬람 사원이라 하면

지붕에 둥근 모스크가 있고

사원 옆에는 둥근 첨탑인 '미나렛'이 양쪽으로 서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여기는 둥근 모스크도 안 보이고

첨탑은 사각으로서 한개만 이슬람 사원에 붙어 있어 몰랐던 것이다

 

카사블랑카(Casablanca)에 도착하자

호텔로 들어가 저녁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어가서

다음날 날이 밝아 오기도 전인 새벽 6시부터 서둘러 여행길에 나선다

오늘의 일정은 카사블랑카를 관광하고

페스(Fes)로 이동하여 구시가지인 메디나를 보고

탕헤르(Tanger)까지 가야 하기에 바쁘게 서두르는 것이다  

 

먼저 핫산 2세 도로변에 있는

 모하메드 5세 광장(Place Mohamed Ⅴ)으로 이동하였다

컴컴한 새벽이라 도로는 차량과 사람 이동이 없이

한적하니 가로등불만 밝혀져 있었다

 

 모하메드 5세 광장(Place Mohamed Ⅴ)이라고 하는데

컴컴하여  분수도 작동하지 않고

무엇을 기준으로  인증샷을 해야 하는지 구별이 되지 않아

인물 인증샷만하고 버스에 오른다 

 

대서양 바다와 접해 있는

핫산 2세 메스키다(Mosquee HassanⅡ) 광장으로 오니

사원이 금색 찬란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가운데

벌써 관광객들이 나와 즐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핫산 2세 메스키다(Mosquee HassanⅡ) 사원

1980년 공사를 시작하여

1986년 모로코 왕 핫산 2세(HassanⅡ)가 자신의 60번째 생일에

모스크를 짓도록 명하였으나

1993년에 완공된  이슬람사원이다

이 사원은 '신의 옥좌는 물 위에 지어졌다'는 코란 구절에 있는

핫산 2세의  뜻에 따라

프랑스 건축가 ' 미셀 펭소'가 사원 일부를 절벽에 세우고

대부분을 대서양 바다를 매립 확장하여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스크를 세웠다고 한다

 

핫산 2세 메스키타 사원은

90,000㎡의 면적 위에 펼쳐져 있는데

사원 내부에는 동시에 3만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광장에는 8만명이 들어 설 수 있다고 한다

사원 내부 바닥은  유리로 되어 있는 부분이 있어

발 아래로 대서양 바다의 파도가 치는 모습도 볼 수가 있다고 하는데

이슬람 신도가 아니기에 들어가 보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핫산 2세 메스키타 사원의 건축비로  들어간 비용은 10억 달러라고 하는데

우리 돈으로 계산하면 1조 1천억원 정도로

모두 국민의 성금으로 완공되어진 건축물이라고 한다

이 금액은 당시 모로코 경제 규모를 감안한다면

모로코 국민들이 10년 정도를 먹고 살 수 있었던 금액이라고 한다

 

핫산 2세 메스키타 사원에는

이슬람 학교, 모로코의 역사 박물관, 도서관등 교육시설과 

그리고 여러개의 공중 목욕탕,  주차장 등의 편의 시설이 들어서 있다고 한다

 

핫산 2세 메스키타 사원 광장에서

인증샷을 하다보니 날이 밝아 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는 바쁘게 페스(Fes)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버스가 출발하고 잠시 멍하고 앉아 있는데 창밖을 보라고 한다

1942년에 개봉한 영화 '카사블랑카'에 나와 유명해진

'릭 카페(Rick's Cafe)'라고 한다

그러나 사진을 찍기위해 핸드폰 카메라를 꺼내 들었으나

이미 지나치며 입구와 간판이 나무에 가리워져 아쉬워하는데

 

버스가 우회전 하면 뒷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앞에서 보는 것과 뒤에서 보는 것은 차원이 다른데 아쉽다

'카사블랑카' 영화는

험브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영화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 였던 카사블랑카에서

독일군을 피해 리스본으로 떠나려고 통행증을 구하려는 

내용의 로맨스에서 비롯된 영화이다

카사블랑카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릭(험프리 보가트)에게

어느날 프랑스에서 헤어진 사랑했던 여인 일자(잉그리드 버그만)가

독일군에 저항하던 레지스탕스의 리더인

남편 라즐로(폴 헨레이드)와 함께 독일군을 피해 통행증(비자)을 구하던 중 

릭 카페(Rick's Cafe)에서 구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카페를 찾아 와

우연히 릭과 재회하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연민의 로맨스 영화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여기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라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라고 한다

 

카사블랑카(Casablanca) 시내를 통과하고 있다

카사블랑카(Casablanca)이름은

스페인어로 카사(casa)는 집을 블랑카(Blanca)는 하얀을 뜻하며

아랍어로는 الدار البيضاء(앗-다르 알-바이다‎)로 불리는데

이 역시 '하얀 집'이라는 의미를 두고 있다  

 

카사블랑카(Casablanca)는

모로코의 수도인 라바트(Rabat) 보다 더 큰

인구가 약 340만명 정도가 거주하는

북서 아프리카 대륙에서 제일 큰 도시이며 무역항으로서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6번째로 큰 도시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조그마한 어업 항구로서 베르베르인들이 살던 '안파'라는 마을로서

그리스도교 국가의 배을 습격, 약탈하는 해적의 기지가 되자

1468년 포르투갈이 이 마을을 파괴하고 

1515년 포르투갈인들이 새 도시를 건설하면서

'하얀 집'이라는 의미의 '카사블랑카'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1755년 카사블랑카는 대지진으로 파괴된 후 버려졌다가

알라위트(Alauite) 왕조(1665년~현재)의

술탄 시디 모하메드(Sidi Mohammed:1757~1790년)가

18세기말 카사블랑카를 다시 재건하였다

이 후 프랑스인들이 다른 유럽인들 보다 더 많이 몰려들어 오면서

카사블랑카를 '메종블랑슈(프랑스어 하얀집)'라고도 하였다

 

카사블랑카는18세기 후반부터 유럽의 열강들이

아프리카에서 수탈한 물자를 수송하는 항구가 되었으며

유럽과 미국의 노예상들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는 시기였다고 한다

 

1907년 카사블랑카는 프랑스에 점령되었으며

1912년~1956년은 프랑스 보호령의 식민지에서

모로코 제1의 무역항으로 급속도로 성장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초에는 독일군에 의해 점령되기 하였으나

2년 뒤 탈환 후 1943년에 이 곳에서 미국과 영국의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며

1961년에는 모로코 국왕 모하메드 5세가 주재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회의에서 카사블랑카 그룹이 창설되기도 한

도시라고 한다 

 

페스(Fes)로 향해가며 차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모로코에 오기 전 가난한 나라라는 말을 수 없이 들음이 생각이 되살아 나는데

아무리 보아도 그렇게 보이질 않는다

평온하며 넉넉하게 살고 있는 모습으로만 보인다

 

양떼들이 노니는 넓은 목장.....

 

끊임없이 지평선으로 펼쳐져 잘 정돈되어진 농작지.....

 

평온하게만 보이는 농촌 풍경.....

 

이야기만을 듣고서 상상으로만 생각하였던

가난하여 구걸하고 거리가 지저분하고

사하라 사막 끝단의 척박한 땅에서

사람들 표정이 뭔가 어두울거라는 인식들이 확 바뀐었다고 할까?

이 나라도 무서운 속도로 경제가 급성장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맴든다

 

페스(Fes)에 거의 도달하며 버스는 휴계소로 들어선다

페아게(Peage)라는 휴계소다

 

휴계소에 들린 이유는

페스 관광하기전 점심식사를 하고 가기 위해서이다

점심 식사는 카사블랑카에 사는 한국인 교민 집에 부탁하여

도시락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오랫만에 김치 맛을 보니 감개무량해 진다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차 창 밖으로 페스 시가지가 시야에 들어 온다

 

페스 입구에 도착하니 학교가 끝나는 시간인지

책가방을 맨 어린 학생들이 많이 보이고

 

도로 위에 차들이 정체되는 모습들이 들어 온다

카사블랑카에서 출발한지 약 4시간 50분 정도를 달려

페스에 도착한 것이다

 

페스(Fes) 신시가지를 지나

구시가지 메디나로 들어가는 입구 부근에 있는

페스왕궁 앞의 광장에서 버스는 멈추어 선다

왕궁으로 들어가는 문은

이슬람 건축 양식의 아라베스크 문양으로서 황금색을 칠한 

크고 작은 7개 문으로 되어 있는데

사진 촬영이 가능한 곳은 여기 뿐이라고 한다

여기에서는 담장 쪽이나 근위병은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페스왕궁은 다르 알 마크젠(Dar al-Makhzen)이라 부르며

모로코 국왕이 수도 라바트(Rabat)에서 페스(Fes)에 방문하면 사용하는 왕궁으로서

왕궁의 크기는 약 7ha(약 7만㎡) 규모라고 한다

 

다시 버스에 올라 잠시 이동하였나?

미로의 도시 페스의 구시가지인 메디나(Medina) 입구에 도착하니

작은 키에 남누하게 아랍 복장을 한 노인이

어눌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를 외치며 우리 앞으로 다가 선다

메디나의 복잡한 골목길을 안내할 현지 가이드라고 한다

   

페스의 메디나 골목길은

9800 여개의 골목으로 이루어진 미로 골목으로서

좁다란 골목 길을 이으면 약 300Km 이상 뻗쳐있는 길이 되어

여기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골목으로 들어 가면

방향 감각을 잃고 엄청 헤멜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앞에서 안내하는 가이드가 "좌로!"하면 뒤따르는 사람들이 "좌로!"

"우로!"하면 "우로!"를 복창하여 맨 뒤쪽에 따라오는 사람들까지 전달되어

낙오하여 헤매는 사람들이 없게 하여야 함을 주지시켜 준다

 

병아리떼들이 어미 닭을 쫒아가듯 아랍인 가이드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니

집들이 높아 골목길은 어두침침한 것 같고

마주오는 사람들과 비켜 가기가 비좁을 정도로 좁다

이러한 골목길을 걷자니 좀 낯설고 묘한 느낌이 든다

어린시절 집들이 옹기종기 달라붙은 달 동네에서 살았지만

이 정도로 좁은 골목길은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골목길을 걷던 중 수공예품 가게로 이끌고 들어간다

한 켠에서는 놋그릇을 끌로 두드리며 문양을 내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점원들이 다가와 알아듣지 못하는 설명을 하며 구입할 것을 권유하는데

오로지 통하는 말들은 가격 흥정에 관한 말들이었다

나는 여행하면서 그 나라를 의미할 수 있는 작은 액서사리를 구입하는 습관이 있어

알라딘 램프처럼 생긴 작은 주전자와 받침의 100유로 가격을 흥정하는데

수작업으로 만든 제품이라고 깍아줄 생각이 없는 듯하여

60유로 불러 놓고 뒤돌아 쳐다도 안보고 있으니 그들도 모른척 하다가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다시 흥정을 시작을 한다

그 가격아니면 관심 없다는 듯 대꾸를 안하니

그들도 막바지에 가서는 60유로에 팔겠다고 너스레를 떤다   

 

페스(Fes)의 구시가지를 메디나(Medina)라고 하는데

모로코에서는 고도(古都)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원래 메디나(Medina) 는 지명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이슬람 성지로서

메카에서 북쪽으로 약 340Km 지점의 와디함두 강 상류에 있는

오아시스 지역에 있는 도시로서 유대인들의 촌락이었으나

5세기말 아랍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하였으며

622년 무하마드가 메카에서 이주(헤지라)하여 온 후

이슬람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이 된 도시이다

'메디나(Medina)'라는 말은 아랍어로는 알마디나(al-Madinah)로서

'예언자의 도시'라는 준말이라고 한다

 

좁은 골목길을 빠져 나오니

전통시장인 페스의 수크(Souq) 골목길로 이어진다

수크(Souq)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시장이다보니

 

식료품 가게는 보이지 않고

가죽제품, 의류, 신발, 기념품 등의 상점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전통시장인 이 수크(Souq) 지역이 

메디나의 중앙 부근이라고 하는데

골목길을 좌측 우측으로 앞사람 놓칠세라 부지런이 따라 다니다 보니

시장 구경은 보는둥 마는둥

방향 감각도 전혀 없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사람이 사는 가정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한다

입구가 매우 비좁아 보이고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것만 같다

 

페스의 구시가지 메디나 지역을 보고 살아있는 '화석도시'라고 한다

이드리스(Idriss) 왕조(8~11세기) 시대

801년 이드리스 2세가 이 곳 페스를 수도로 정하고 8년에 걸친 공사 끝에

809년 도시의 틀을 완성한 이후 왕조가 여러번 바뀌며

잠시 수도가 마라케시나 라바트로 이전되기도 하였으나

현재의 수도가 프랑스에 의해 1912년 라바트로 이전하기까지

약 1100년의 세월 동안 대부분이 모로코 왕조의 수도였다고 한다

여기에 있는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초기의 건축물에 연결하여 증축되며 커져 나갔으며

14세기 이후에는 거의 변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 유지하며 

현재의 모습으로 되었기에

오랜 세월의 생활상을 알 수 있어 '화석도시'라고 한다고 한다

 

또한 모로코의 역사는 페스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한다

787년 이슬람교가 수니파와 시야파로 분열되면서

수니파의 박해를 피해 시야파의 일부였던

물레이 이드리스(Moulay Idriss)의 인솔 아래 모로코로 피난와

모로코의 첫번째 왕조인 이드리스(Idriss) 왕조(8~11세기)를 세웠고

이드리스 2세(Idriss Ⅱ)가 807년 페스를 수도(首都)로 삼아

왕조 역사를 시작하였기에

그래서 페스(Fes)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이야기 한다고 한다

 

이 곳 아랍인 인솔자를 따라 골목 골목길을 돌고 돌아

카라위인 이슬람 사원(Karaouiyne Mosque)으로 왔으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문이 닫혀 있어 내부를 볼 수 없어 너무 아쉬운 맘으로 발길을 돌린다

카라위인 이슬람 사원 안에는

세계에서 최초의 가장 오래된 카라위인 대학교도 함께 있다고 하여

그 규모를 보려고 했는데 언제 다시 와서 볼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 뿐이었다

카라위인 대학교(University of Karaouiyne)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세계 최초의 대학으로

12세기에 문을 연 이탈리아에 있는 볼로냐(B0logna) 대학을 말하고 있지만

그 보다 앞선 862년에 설립된 대학이라고 한다 

 

다시 골목 골목을 돌아

중세 이전인 약 700년 전부터 생겨나 

그때와 동일하게 가죽 천연 염색 공정을 사람 손으로 하고 있다는

슈아라 탄네리(Chouara Tannerie)로 간다

공장 입구에 도착하니 사람이 나와 민트잎을 주며

코에 대고 따라 오라고 한다

 

민트 잎을 코에서 떼면 구린 냄새로 인해 잠시도 있기 곤란한 공간에서

사람을 따라 좁은 건물 계단을 따라 4층으로 오르니

창 밖을 쳐다 보라고 한다

손짓하는 쪽으로 가서 창 밖을 쳐다보니

또 한번 실망을 하고 만다

여기도 보수 공사 중으로 염색을 하고 있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위 사진<펌>과 같은 염색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여기도 또 보수공사 중이다

 보수공사 현장을 내려다 보고 있자니

모로코에 와서는 문이 닫혀 있어 보지 못하거나 보수작업 중이

어제부터 계속 연속인 것처럼 느껴져 서운한 감정까지 든다

 

슈아라 탄네리(Chouara Tannerie) 염색공장의 공정은

석회석을 섞은 물에 가죽을 넣어 불려서 동물의 육질을 완전히 탈착시키고

비둘기 똥으로 가죽을 짓이겨 가죽을 부드럽게 하는 연화 과정을 거쳐

원하는 가죽 색상의 염료 웅덩이에 20일 정도를 넣어 가죽을 염색한다고 한다   

 

3층에는 각종 가죽제품의 가방과 쿠션이 전시되고 있는데

구린 냄세 때문에 나가고만 싶어졌다

각종 가죽 제품이 전시되어 있는 1층 매장으로 내려가

여행객들의 제품 구매 흥정하는 모습을 보다가 냄새에 질려 밖으로 나온다 

 

페스(Fes)의 구시가지인 메디나(Medina)의 미로 골목 길을 빠져 나와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뚜흐 드 페스 로드라는 큰 도로를 향해 걷는다

페스에서 일정을 끝내고 탕헤르(Tanger)로 가기 위해서 이다

 

걷던 중 건물 위를 보니

TV 수신 안테나와 원형 위성 안테나들이 우후죽순으로

엄청나게 세워져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내가 살던 서울의 동네 1970~80년대 모습을 보는 듯 하였다  

 

버스를 타고 탕헤르(Tanger)를 향하여

 페스(Fes) 구시가지인 메디나(Medina) 외곽을 빠져 나가는데 성벽과 성문이 보인다

페스의 메디나(Medina)를 둘러싸고 있는 카스바(Casbah)로서

성벽은 11세기 경에 건설되었다고 하며

총 길이는 약 14Km 정도 된다고 한다

 

페스를 벗어난지 얼마 안되어

사막 산으로 보이는 곳 부근에 호수가 보인다

시디 차헤드 댐(Barrage Sidi Chahed) 호수인데

댐으로 막은 인공호수라고 한다

 

페스에서 물레이 이드리스 2세 영묘(Zaouia de Moulay Idriss Ⅱ)

 보지 못하고 지나친 아쉬움도 남았다

카라위인 이슬람 사원(Karaouiyne Mosque) 근처에 있는데...

이슬람 시아파로서  수니파의 박해를 피해 이주하여 와서

모로코의 첫 왕조를 연 이드리스 1세와 베르베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드리스 2세가 807년 왕이 되어 페스를 수도로 정하였다고 하는데

당시 페스(Fes)는

아프리카 대륙 동부지역과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 사하라 사막 남부지역과

유럽 대륙 스페인 지역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무역로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이드리스 2세는 모로코를 20년 이상을 통치하며 영토를 확장하고

제도를 정비하여 국가의 위상을 높였던 왕이었다고 한다  

 

829년 물레이 이드리스 2세(Moulay IdrissⅡ)는 그 곳에 묻혔는데 잊혀졌다가

1437년 메리니드(Merenids) 왕조 때 재 발견되어

현재와 같은 영묘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모로코인들은

'이드리스 2세'를 페스(Fes)의 수호 성인(聖人)으로 모시고 있으며

이드리스 2세의 영묘는 성소로 여기기 때문에

이슬람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출입을 금하고 있다고 한다

그  곳에는 임신을 하지 못하는 여인들, 할례의식을 막 마친 어린 사내들,

가난과 굶주림에 찌들어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데

이드리스 2세는 이들을 보호하고 축복하는 수호성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모로코인들은 이드리스 2세의 영묘가 있는 페스를

가장 성스로운 도시로 섬기고 있다고 한다

 

시디 차헤드 댐(Barrage Sidi Chahed) 호수가 있는 곳을 지나

고개를 넘어 달리다 보니

 나즈막한 구릉지대를 넘어 끝 없이 이어지는 밭들이 시야에 들어 온다 

 

구릉지대에 끝 없이 이어지는 밭들이 여러가지 색들로 수 놓여지고

줄 무늬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예술적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듯 하였다

 

우리가 지나고 있는 도로는 한산하다

그러나 도로 옆 구릉지대들은 농경지로 개발되어 있어

 몇 시간을 달려가도

가난하게 사는 국가로는 보이질 않는다

 

페스에서 출발한지 2시간 정도가 되어서

시디 카젬(Sidi Qacem) 부근에 있는 아프리카 휴계소에 들려

쉬다 가기로 한다

부근엔 기차가 달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버스는 탕헤르를 향해 출발한다

모로코 국토 중앙부에 남북으로 뻗쳐있는 아틀라스 산맥 서부 지역은

아프리카 최대의 곡창지대라고 하여 그런지

끝없이 펼쳐져 있는 초원이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세보우 강(Oued Sebou)이라고 하는 곳을 스쳐 지나가고 있다

모로코에 와서 평원을 달리다 보니 물이 있는 긴 다리를

거의 건너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셔터를 눌러 본다

그런데 강이 인공 운하처럼 보인다

 

페스에서 출발한지 2시간 30분만에 처음으로 도로에 차들이 붐비는 

소우크 에라르바아 두 가르브(Souk Elarbaa Du Gharb)라는 도시에 진입 한

아직도 갈 길은 먼 것만 같다

 

영어 국명인 모로코(Morocco)

모라비트(Al-Moravids) 왕조(1062-1145년)의 수도였던

마라케시(Marrakech, مراكش)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아랍어에서도 지역명을 따와 '알-마그리브(المغرب, al-Maġrib‎)'라 불리기도 한다고 한다

 

모로코는 고대 로마시대에는

마우레타니아(Mauretania)라고 불렀다고 한다

원주민은 베르베르인이며

8~9세기 이슬람 제국의 침공 이후 아랍인들이 대거 몰려들었으며

이 때 마그리브(Magrib)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 후 모라비드(Al-Moravids) 왕조(1062~1145년) 시대와

모하드(Al-Mohads) 왕조(1145~1248년) 시대에는

모로코를 기반으로 하여

유럽 대륙의 이베리아 반도의 중남부(스페인, 포르투갈) 지역과

아프리카 대륙의 알제리, 튀니지까지 이르는 

넓은 지역을 다스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유럽 대륙에서 기독교 국가들의 국토 회복 저항(레콩키스타) 전투에 패하면서

1492년 무하마드 7세 보아브딜(Boabdil)이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보루였던 지금의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을

카돌릭의 페르난도 왕과 이사벨 여왕에게 인계하고서

유럽 대륙에서 완전 철수하게 되었으며

모로코 땅 남쪽에서는 사막 유목민들 잦은 침략에 의해 쇠락하여

이 후 왕조들은 현재의 국토만 유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1912~1956년 시대에는 프랑스 및 스페인 보호령 아래 분할되어 식민지가 되어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군의 햇불 작전인 상륙하여

프랑스군과 함께 독일군에 대항하여 피비린나는 전쟁을 치룬 장소이며

1927년 즉위한 모하메드 5세(MohamedⅤ) 국왕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민족주의자들과 함께 모로코 독립을 추구하다가

1953년 프랑스 식민 당국에 의해 강제 망명 조치까지 당하였다고 한다

1955년 해외 망명지에서 모하메드 5세(MohamedⅤ) 국왕은

일방적 모로코의 독립을 선언하여

1956년 프랑스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아 식민시대의 종결이 되었다

현재 모로코를 다스리는 모하메드 6세(Mohamed Ⅵ) 국왕은

1665년부터 계승되어 온 알라위트(Alaouite) 왕가의 국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와 관계는 1962년 7월에 수교협정이 체결되었으며

북한과는 1989년 수교되었다고 한다

 

어두워지며 탕헤르(Tanger)에 거의 도착하여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통과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차들이 2줄 3줄로 얶히기 시작한다

사고가 났나 유심히 쳐다봐도 이유는 알 수 없었고

차들이 더 얶히고 설키며 차가 많아지며 경적 소리로 시끄러워 졌다 

 

페스(Fes)를 출발한지 5시간 30분만에

탕헤르(Tanger) 시내의 지브롤터 해협 해변가에 있는

타리크 호텔(Tarik Hotel)에 도착한다  

 

타리크 호텔에 도착하여

식당으로 식사부터 하고 방을 배정 받아

대서양 바다와 지중해가 만나는

지브롤터 해협의 밤바다를 보기 위해 베란다로 나가니

탕헤르 항구 방향 해변에 휘황찬란한 불 빛 속에서

파도 소리와 섞여 음악 소리가 들려 온다

 

궁금함에 핸드폰 카메라 줌으로 당겨 본다

인파는 많아 보이지는 않고

  영업 차원에서 음악을 틀어 놓은 것이라 추측하며 눈길을 돌린다

 

호텔 수영장엔 밤이라 그런지 인적이 없다

호텔을 지키는 안전 요원만 왔다가 갔다가 하는 모습을 보이고

어두운 바다만 바라보다가 방으로 들어와

조용하고 은은하게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여독에 지친 하루를 마감하는 잠속에 빠져든다

 

아침 7시30분에 스페인 타리파(Tarifa) 항으로 출항하는 배를 타기 위해

새벽 밥을 먹으러 호텔 식당으로 갔다가

파도 소리에 밖으로 나와 땅거미가 사라져가는

지브롤터 해협 바다를 바라 본다

잠시 만 있으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모로코와의 이별하는 시간으로

여행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아쉬운 마음이 몰려 온다  

 

어두움이 아직 가시지 않는 시간에

타리크 호텔(Tarik Hotel) 문밖으로 나와 탕헤르 항을 향하여 출발한다 

 

도로는 아직 차들과 인적이 없이 한적하기만 한데

우리는 모로코 탕헤르(Tanger) 항을 출항하여

스페인 타리파(Tarifa) 항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서둘러 간다

 

모로코 땅에 오기전 가난한 국가라서

모든 것이 열악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여행을 왔는데

그렇지 않았음을 많이 느끼며

모로코(Morocco)라는 국가는 잘사는 나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인식이 전환되는 계기의 여행이 되어

 

스페인 타리파 항을 향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가는 배에서

멀어져 가는 아프리카 대륙의 모로코 땅을

아쉬움을 간직한채 바라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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