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에 가 본 캄보디아를
10년만에 여행을 다시 하기 위해 가방을 끌고
인천공항으로 간다
인천공항에서 출국심사를 마치고
보딩게이트(Boarding Gate)로 향해 가는데
궁중 복장을 한 사람들이 음악과 함께 걸어 온다
관광공사에서 세계 여행자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
하는 행사라고 한다
행렬 행사를 마치고 잠시 여행자들과 함께하는
포토 타임을 갖는 시간이 있는데
시간상 갖는 모습만 보고 보딩 게이트로 향한다
인천공항에서 캄보디아 씨엠립 공항까지 거리는 3491Km이고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2시간이 늦는다
비행시간은 5시간 30분정도 소요로
현재시간 19시 05분으로
캄보디아 씨엠립 공항에는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밤 00시40분경이며
현지 시간으로 22시 40분경에 도착 예정이다
우리가 인구 약 17만명이 사는 도시를 '씨엠립'이라 부르는 명칭은
영어로 '시엠레아프(Siem Reap)'라고 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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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제2의 국제공항인
씨엠립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수속 구간마다 팁(Tip)을 요구하여
가난한 나라이다 보니 빠른 수속을 위해 어쩔수 없이 이해는 하였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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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는 입헌군주제와 양원제를 채택하고 국왕과 총리를 정부수반으로 한 국가로서
면적이 181,035㎢로 한반도 면적의 약 0.82배이며
인구는 약 1580만명 정도가 살고 있는 국가이다
국가GDP는 약 360억 달러(101위), 1인당GDP는 2,361달러(153위)로서
가난한 국가에 속한다
<대한민국 : 2015년 국가GDP 1조4351억 달러(11위), 1인당GDP 28,338달러(28위)>
인종구성은 크메르족(90%), 베트남인(5%), 중국인이며
언어는 크메르어를 사용하며
종교는 소승불교(95%)를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어제 밤 12시가 다 되어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3박을 보낼 로얄 엠파이어 호텔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잘 지내고 날이 밝아 왔다
관광을 시작하기전 필요한 캄보디아어 몇 마디 알고 시작하면
편할 것 같아 적어 놓는다
섭섭하이(안녕하세요)
쏭뜻(미안합니다)
없군(감사합니다)
번득뜻(화장실)
어제 밤 도착하였을 때는 어두워 잘 보이지 않던
창문 밖으로 압사라 홀리데이 호텔(Apsara Holiday Hotel)이
길 건너 편으로 모습을 보인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 첫 일정으로
씨엠립 공항 북쪽에 있으며
앙코르 톰(Angkor Thom)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서 바라이(West Baray) 호수로 간다
10년전에 왔을 때는 앞쪽의 모래 사장과
물 건너편에 저 멀리까지 땅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이 가득차
호수에서 배를 타고 한참을 타고 돌아 봤는데 너무 말라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
예전과 마찬가지로 6~10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애들이 몰려와
팔찌를 보여주며
"아저씨! 1달러! 싸요! 예뻐요!"하며 길을 막는다
지난 번에 왔을때는 물이 많아 방갈로를 보지 못한것 같은데
물이 있는 가장자리에 방갈로들이 늘어서 있다
서 바라이 호수 크기는 8Kmⅹ2.2Km, 깊이 7m의 직사각형 인공호수로서
앙코르 유적 중 가장 큰 호수라고 한다
서 바라이 호수 정중앙에는 서메본(West Mebon)이라는 인공섬이 있는데
예전 방문때 배를 타고 한바퀴 돈 기억이 난다
서메본 인공섬에서는 누워있는 비쉬누신의 와상이 발견되었다고 하며
현재 프놈펜 국립박물관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
바라이(Baray) 호수는 앙코르 톰(Angkor Thom)을 기준으로 해서 양쪽에
동 바라이 호수, 서 바라이 호수로 2개의 인공 호수로 건설되었는데
현재 동 바라이(East Baray) 호수는 물이 말라
마을이 형성되고 도로가 나 있다고 한다
바라이 호수가 건축된 시기는 힌두교를 신봉하는 앙코르(Angkor) 제국시기인
11세기 중반으로 우다야디트라바르만 2세(1050~1066년) 때라고 한다
서 바라이 호수에서 있는 동안 너무 습하고 더워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주차장으로 올라오니
예전엔 한산하고 없던 옷 가게들과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외국 관광객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현지인들도 많이들 몰려와
승용차들도 많이 주차되어 있었다
물소가 끄는 달구지를 타고
농촌 마을을 물소 트레킹하는 집으로 이동하였다
우리 일행이 도착하자
물소를 끌고 나오고, 달구지를 끌고와 물소 등에 올리니
간단히 조립이 끝이 난다
물소가 끄는 달구지를 타고
농가의 골목길과 밭 사이를 유유자적 트레킹하면서
물소를 이끄는 농부의 열대 식물명을 들으며
미소를 보내며 고개를 끄덕끄덕 해준다
논밭길과 농가 골목길을 빠져나와
큰 길가로 나오니 거리에 상가들이 늘어서 있는데
여기서 어린애들이 팔찌를 들고
"7개 1달러!"를 외치며 계속해서 따라 붙는다
귀찮아서 1달러 주고 구입했더니 다른 아이가 또 따라 붙는다
보여주며 샀다고 했더니
"그 것하고 틀려요! 이 것이 더 좋아요!"라고 말해
웃음짓게도 만드나
"오늘 한 개도 못 팔았어요!"라고 말해
가슴이 짠하게도 만든다
물소는 트레킹 후에는 필히 물 샤워를 시켜야 한다고 한다
물가에서 사는 동물이기에
그렇지 않으면 등이 갈라진다고 한다
물소 트레킹 장소 내에 있는 농가 주택으로 간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이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커다란 항아리 였다
수도시설이 없는 나라에서
빗물을 모아 놓거나 물을 길러 담아두는 항아리로서
여자들이 결혼할 때 필수 혼수품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예전 우리나라에서도 시집갈 때
신부가 타는 가마에 필수 혼수품으로 요강을 넣어 가지고 가던 시절이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조그마한 거실에
캄보디아 국왕 부부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이들이 자기 나라의 국왕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알 수 있었다
방에는 조촐하게 TV 한 대가 놓여져 있었으나
어두워서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를 않아 글로서 대신한다
농가 주택을 나와 물소 트래킹 장소를 나오려는데
한쪽에 있는 정자에 차와 간식이 준비되어 있어 둘러 앉는다
바나나 잎?으로 말아 익히 찹쌀밥, 야채와 고기를 꼽은 꼬치구이, 망고
그리고 녹차를 마시며 담소의 시간을 갖는다
캄보디아 주 종족인 크메르족과 소수 민족들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캄보디아 민속촌으로 간다
민속촌의 밀랍 인형관에서는
캄보디아 선사시대부터 앙코르 제국시대와 근대,
현재의 생활상을 보여 주고 있다
앙코르 제국시대 자야바르만 7세가
전쟁터에서 진두 지휘를 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캄보디아 소수민족들의 예전과 변함없는
전통적인 현재의 생활상이라고 한다
왕코르 왓을 건설하고 있는
크메르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앙코르 제국시대에
자야바르만 7가 지금의 베트남인들인 참파족과
전쟁하고 있는 모습을 대형 그림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밀랍인형관을 나와 캄보디아에 사는 각 민족들의 공연을 보러 가던 중
물위에 시원한 정자가 있어
사람들이 쉬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화교 마을이다
송나라 이전부터 캄보디아에 정착하기 시작하였고
대부분 상업과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불교를 믿고 있다고 한다
공연 시작이 오래 된 것 같아 그냥 지나친다
꼴라족 마을로 와 앞 쪽 선풍기 바람이 있는 쪽에 자리를 잡는다
꼴라족 마을의 '공작새 춤' 공연이다
공연이 시작하자
관중석에서 한 여자를 선발하여 무대 위로 데리고 올라간다
무엇을 같이 할 것인가? 궁금했는데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위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같이 지켜만 볼 뿐이다
'꼴라족'은 1876년 이후 버마(미얀마)에서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으며
캄보디아 북서쪽의 보석이 많은
파일린주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이라고 한다
꼴라족 공연이 끝나고 크롱마을 이동하던 중
크롱족 마을 공연팀이 대기하며 여행객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크롱족은 캄보디아 북동쪽 라타나끼주에 거주하며
화전과 수렵으로 살아가는 소수 민족으로서
애니미즘을 숭배하고 있다고 한다
크롱족 마을의 공연은 '신랑 고르기'로서
공연의 시작은 처녀가 절구질을 하는 모습으로 시작하는데
중국인, 말레지이아인, 인도인들이 슬금슬금 한사람씩 와서
코믹하게 처녀를 귀찮게하며 구애를 한다
너무 귀찮게 하자 크롱족 청년이 와서 활로서 구해 주고 떠나간다
처녀는 집으로 들어가고
숨어서 지켜보던 그들은 밤에 한사람씩 집으로 숨어들어가
처녀와 무엇을 하는지ㅋㅋ 헐떡이며 신음소리를 내다가
한사람씩 기진 맥진하여 밖으로 기어 나온다
날이 밝자 처녀는 밖으로 나오고
그들은 서로 자기와 결혼해 달라고 구애를 하는데
처녀는 전부 퇴짜를 놓고
관중석을 바라보며 수줍은 유혹의 미소를 짓는다
눈길로 선택한 관중석에서 있는 관광객 남자를 불러내어
혼인 의사를 타진하는데
구애하던 남자들은 코믹하게 방해를 하며 재미를 더 한다
공연을 마치고 민속촌을 나오려 걷는데
화교마을 옆으로 웃는 모습의 복(福) 스님상이 보인다
민속촌을 나와 저녁식사겸
앙코르의 미소(Smile of Angkor) 공연을 보러
대극장으로 이동하는 중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모여드는 모습이 보인다
씨엠립에서 유일하게 이 거리가 가로등불이 들어오는 거리로서
길거리에서 가족들과 식사겸 산책으로 몰린다고 한다
앙코르의 미소(Smile of Angkor)를 공연하는 대극장이 보인다
1층은 부페식당이고 2층부터 대극장이라고 한다
1층 부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20시에 2층 지정석으로 올라가 공연을 보게 되어 있다
앙코르의 미소(Smile of Angkor) 공연이 시작되고
중요장면을 사진을 찍어 두려는데
다른 공연하고 틀리게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여
종반부에만 몇 장을 살짝 찍어 담았다
앙코르의 미소(Smile of Angkor)는 캄보디아 최고의 서사극으로
얼어버린 돌로 부터 부화된 신화를
캄보디아가 전 세계에 선사하는 새로운 경이로움을 표현한 것이다
내용에서 서막은 '신에게 여쭈어라'라도 시작하여
제1장 찬란한 왕국
제2장 신들의 부활
제3장 우유바다 젓기
제4장 생명의 기도
대단원의 '앙코르의 미소'로 1시간의 공연 막을 내린다
2번째 날이 밝아 왔다
오늘은 앙코르(Angkor) 유적을 보기 위해
툭툭이를 타고 먼저 매표소로 향한다
지난 여행 때는 앙코르 유적 가는 곳마다
별도의 표를 구입하였지만
지금은 앙코르의 별도 매표소에서
사진을 찍고 증명사진이 담긴 표를 받아 목에 걸고 다니며
각 유적지 마다 입장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가이드의 말을 들으면
앙코르의 입장권을 구입하게 되면
의무적으로 북한에서 2400만 달러로 건설한 박물관을 통과하게 하였으나
한국 영사관에서 적극적으로 반대하여 무산되었다고 한다
내용은
캄보디아와 친했던 북한이 박물관을 지어주고
앙코르 유적을 보러 오는 사람들 1인당 5달러씩을 10년간 통행료식으로
받으려는 협약을 거의 완성 단계까지 갔다가
우리 한국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여행자가 많고 캄보디아에 영향을 주는 국력이
북한보다 강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이 든다
년간 약 400만명 정도가 방문한다는 앙코르 유적에
'방문자 1인당 5달러!!!'
실로 엉청난 협약을 할 뻔 한 것이다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여 목에 걸고
다시 툭툭이를 타고 약 3Km 정도 떨어져 있는
타프롬 사원 후문쪽으로 이동하였다
타프롬(Ta Prohm) 사원의 건축시기는
앙코르 제국 시대(802~1431년)인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초반으로서
자야바르만 7세(1181~1220년)가 어머니를 위해 건축한 사원이라하며
타프롬(Ta Prohm)이란 '브라흐마의 조상'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후문을 들어서 조금 걷다보니
사원 유적 위로 스펑(Spung)나무가 승천하듯 기이하게
높게 솟아 오른 모습이 보인다
스펑(Spung)나무는 타프롬 사원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이유와 목적으로서
톡톡히 주인공 노릇을 하며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스펑(Spung)나무는 생명력이 엄청 뛰어난 것이 특징으로서
처음에는 새의 배설물이나 바람에 의해
씨앗이 사원 위 쪽에 푸려져
양분을 얻기 위하여 좁은 돌틈 사이로 뿌리들이 뚫고 들어가며
오랜 시간을 거치며 뿌리가 굵어지며
사원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조화를 이루기도 하며
스펑나무와 한몸이 되어 멋진 장관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앙코르제국이 멸망하면서 수백년간 잊혀져 자취를 감추었던 이 유적지를
1868년 프랑스의 탐험가 앙리 무어가 발견한 이래
프랑스 극동학원에서 앙코르들의 유적지를 복원하던 중
타프롬 사원은 최소한의 복원만 한채 이 모습을 그대로 남겨두기로 하고
나무들이 더 자라나면 사원들이 무너질 수 있기에
성장억제제를 투여하며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지역은 너무나도 비옥한 황토 토양으로서
풍부한 일조량과 더불어 우기 때의 많은 강수량으로 인해
약기운을 이겨내고 열매를 맺으며 성장하고 있어
멀지 않은 세월에 현재의 모습을 못 볼 수도 있다고 한다
'통곡의 방'이다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님이 돌아 가셨을때
통곡을 하며 울고 싶었지만
왕은 신(神)이었기에 백성들 앞에서는 울수 없었기에
이 것을 지어 이 방에서 통곡을 하며 울었다고 한다
이 건축물 방 안에서 신체의 다른 곳은 치면 반응이 없었으나
가슴만 치면 "쿵~~"하며 울림이 발생하는데 신기할 따름이었다
2003년 안젤리나 졸리가 출연했던 툼레이더(Tomb Raider)
영화를 촬영하여 더욱 유명하여진 장소라고 해서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해 본다
'어머니의 방'이다
벽면에 구멍이 많이 뚫려 있는데 채광이 잘 되도록
수 많은 보석이 박혀있던 구멍이라 한다
타프롬 사원에서 발견된 당시 크메르어 비문에 의하면
타프롬 사원에는 500Kg이 넘는 황금접시가 한쌍,
35개의 다이야몬드, 40,062개의 진주, 4,540개의 루비와 사파이어,
512개의 실크 침대, 876개의 실크 양산이 있었다고 한다
이 중에서 황금접시와 보석류는 어머니의 방 내부에 있었다고 하는데
바닥에 있는 황금 접시에 빛이 들어오면 벽으로 빛을 반사해
벽면의 많은 보석들이 영롱하며 아름다운 빛을 내게하여
다시 반사를 거듭하며 내부를 뻗어 나갔다고 하는데
그 많은 보석들은 눈을 씻고 보아도 흔적만 엄청날뿐 찾아 볼 수는 없었다
타프롬 사원 정문쪽을 향해 걷다보니
불에 그을린 듯한 흔적이 있는 나무가 보인다
'이행나무'라고 한다
이 나무의 검은 부분을 나무로 살짝 수액을 긁어 라이터불을 갖다대니
기름에 불을 붙인 것처럼 불이 붙는다
일명 기름 나무로서 예전에 이 나무 수액은
밤에 호롱불을 밝히는게 사용하였으며
배 제작에 들어가는 방수액 대용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귀한줄 모르고 관리를 않던 나무들에서
지금은 캄보디아에서 귀한 나무로 철저히 관리하는 3종 나무가 있는데
'스퐁나무' '이행나무' 그리고 '흑단나무'라고 한다
'흑단나무'는
나무 밀도가 높고 단단하여 물에도 가라앉는 나무로서
피아노 검은 건반용 목재와
유럽 가구용 최고급 목재로 손꼽히는데
유럽에서는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이들의 앞을 지나가기 위해 접근하니
'아리랑'이 울려 퍼진다
이들은 전쟁과 내전 당시에 지뢰피해 장애자로 퇴역한 군인들로서
생계를 위해 악단을 만들어 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타프롬 사원 입구에 있는 안내판이다
캄보디아어,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로는 안내글이 써 있는데
우리글이나 중국어는 없다
가이드에게 푸념식으로 이유를 물어보니 뒤쪽으로 가보라고 하며
우리 글은 뒤에 적혀 있다고 한다
왜 하필 뒤냐고 했더니
이것도 여기에 거주하는 한인 단체에서 기부를 받아 설치한 것으로
앞쪽에는 허가가 나지 않아 겨우 뒤에 설치하였다고 한다
타프롬 사원 관광을 다 마치고 입구로 나온다
그런데 타프롬 사원 입구는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인 사면상으로 입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얼굴 형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칠 뿐이다
타프롬 사원 후문에서 입구쪽으로 이동해와
대기하고 있던 툭툭이를 다시 타고
앙코르 톰(Angkor Tomb) 지역 안에 있는 코끼리 테라스로 이동한다
캄보디아어로 앙코르(Angkor)는 '도시', 톰(Tomb)은 '크다'라는 의미가 있어
앙코르 톰(Angkor Tomb)은
'거대한 도시'를 뜻한다고 한다
앙코르 톰 지역의 크기는 가로 3Km, 세로 3Km로서
총 둘레 12Km에 높이 8m의 성곽을 쌓아
그 안에 있는 왕궁, 사원, 거주지 등을 보호하였다고 한다
앙코르 톰을 출입하는 문은 5개가 있는데
동서남북에 있는 성곽 정중앙 위치에 각각 하나 씩 있으며
동문 옆에 병사들이 출입하는 문을 한개 더 만들었다고 한다
건설시기는
앙코르 제국 시대(802~1431년)인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초반
자야바르만 7세(1181~1220년) 때로서
당시 거주한던 인구는 이 지역 중심으로 한 성곽 안 밖으로
100만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앙코르 톰(Angkor Tomb) 지역으로 들어온 툭툭이는
코끼리 테라스를 지나 정차하고
그 뒤 쪽에 부근에 있는 상가지역으로 걸어들어가니
더운데 냉장 보관한 코코넛을 시원하게 맛보라며 하나를 준다
잠시 더위를 식힌 후 바이욘 사원으로 가던 중
다시 코끼리 테라스 앞 을 지나간다
코끼리 테라스(Elephant Terrace)의 건축시기도
앙코르 제국 시대(802~1431년)인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초반으로서
자야바르만 7세(1181~1220년) 때 건축 한 것으로
코끼리 테라스란 이름이 지어진 것은
300m 테라스 벽면에 코끼리가 조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테라스 상단에는 왕의 옥좌가 있었으며
테라스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는데
백성들의 행사나 군사들이 사열을 받던 곳이라고 한다
코끼리 테라스에서 왕좌가 있던 곳은
테라스 벽면에 코끼리가 조각되어 있지 않고
반은 독수리 반은 인간 형상을 한 '가루다'가 조각되어 있다
이 것은 상단은 왕이 있는 천상계이고
하단은 인간이 사는 인간계로서
가루다는 천상계와 인간계를 받치고 있는 존재로서 본 것으로서
가루다는 원래 비쉬누 신이 타고 다니는 존재로서
천국에 가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존재이다
바이욘 사원에 거의 다가 가는데
코끼리를 타고 트레킹하는 관광객이 지나간다
바이욘(Bayon) 사원은
코끼리 테라스에서 남쪽으로
앙코르 톰(Angkor Tomb) 지역 내부에 있는 사원으로서
건축한 시기는 이 또한
앙코르 제국 시대(802~1431년)인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초반으로서
자야바르만 7세(1181~1220년)가
자신을 위하여 건축한 사원이라 한다
바이욘 사원은 3층 구조로 되어 있으며
1층은 동물이 사는 '미물계'
2층은 사람이 사는 '인간계'
3층은 신들의 세계인 '천상계'로 구성되어 있다
바이욘 사원은 외부에서 보면 여러개의 탑들이 솟아 있고
각 탑들 마다 관음보살이 4면상에 조각되어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관음보살의 상은 곧 자야바르만 7세 자신을 나타내는 모습이라고 한다
1층 미물계에는
자야바르만 7세가 자신의 업적을 표현한 것으로
업적을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었지만
글을 아는 백성들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많지 않았기에
그림으로 벽에 조각하였는데
대부분이 참파족(베트남인)과의 치열한 전투와
승리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2층 인간계는 1층 미물계처럼 화려하지 않고
승려들이 주로 수행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벽면에는 불상들이 조각되어 있던 흔적이 있으나 모두 파손되어 있어
태국 아유타이 왕국이 침범 때 파손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한다
3층은 천상계로서
중앙에 가장 높은 봉우리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사면상의 봉우리들이 산재되어 있다
중앙의 높은 봉우리는 힌두교에서 '카일라이산' '메루산'을
불교에서는 '수미산'을 표현한 것이며
주위의 봉우리는 히말라야 산들을 표현하여 건축한 것으로
인도 문명의 영향을 받아
세상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 산맥의 봉우리들에는
신들이 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 한다
바이욘 사원은 원래 54개 봉우리로 건축하였으나
현재는 37개의 봉우리만 남아 있다고 한다
앙코르 왓(angkor Wat)으로 가기 위하여
바이욘(Bayon) 사원에서 나와
앙코르 톰(Angkor Tomb) 지역에서 나가는 남문을 통과하니
해자(垓字)를 건너는 다리 난간 위로
선신(仙神)과 악신(惡神)들의 조각상이 나열하고 있어
앙코르 톰(Angkor Tomb) 안에 살았던 사람들의 신분을 말하여 주는 듯 하였다
오전 11시가 다 되어 가자 무더워도 너무 무더워 진다
툭툭이를 타고 이동하는데
얼굴에 스치는 바람도
가만히 서 있을때 보다는 시원하지만 그래도 무덥다
앙코르 왓(Angkor Wat) 입구에 도착하여
툭툭이에서 내려서
오늘의 탑승 업무를 마친 툭툭이를 $2 팁을 주어 돌려 보내고
앙코르 왓을 향하여 가는데
먼저 해자(垓字)를 건너가는 '왕의 길'이 우리를 맞이한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신의 세상'으로 건너가는 길로서
서쪽에서 앙코르 왓으로 들어 가는 문을 향해 걷고 있는데
앙코르 유적의 다른 사원들은 입구가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에 반하여
앙코르 왓의 입구는 서쪽에 있다는 것이다
앙코르에서 서쪽은 '죽음'을 의미 한다고 한다
그래서 앙코르 왓은 비쉬누 신에게 바치면서
수리야바르만 2세가 죽은 후 무덤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측도 한다고 한다
신의 세상으로 건너가며 '왕의 길'을 걷던 중
울타리를 쳐 놓고 보호하고 있는 바닥에
발자국을 새겨 놓은 돌이 놓여져 있는데 '신의 발자국'이라고 한다
앙코르 왓 서쪽 문 앞에 다다르자
뱀의 머리가 7개인 나가(Naga)의 모습이 보인다
입구 양쪽으로 있었던 것 같은데
우측으로 보이는 것은 부숴져 없어지고 흔적만 보이고
좌측으로 보이는 것만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뱀의 머리를 7개 가진 나가 조각상이다
나가(Naga)는
대지와 물의 에너지를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인간 세계와 신의 세계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기에
앙코르 유적에서는 나가 몸통을 이용하여
인간 세계에서 신의 세계로 가는 길의 난간으로 건축하여 놓았다
서쪽 문을 통하여 신의 세상으로 들어 오니 저 멀리 중앙 성소가 보인다
앙코르 왓에서 '왓(Wat)'은 사원이라는 뜻으로
앙코르 왓(Angkor Wat)은
비쉬누 신에게 바쳐진 사원으로서
12세기 초반인 수리야바르만 2세(1113~1150년) 때 건축되었다고 한다
앙코르 유적군 중에서 제일 높고 큰 대표적인 사원으로서
중앙 성소 탑 높이가 65m이며
크기는 동서 길이가 1.5Km, 남북 길이는 1.3Km로
사원 총 둘레가 5.6Km나 된다고 한다
왕의 길 정면에서 보면 성소 탑이 3개로 보이지만
이 곳 호수가에서 보면 성소 탑이 5개 다 보이고
호수가에 비추이는 성소는 성스러움을 더 해주고 있다고
촬영 장소를 이쪽으로 인도를 한다
'앙코르 왓'도 바이욘 사원과 마찬가지로
3층 구조로 건축되었는데
1층은 미물계, 2층은 인간계, 3층은 천상계로 구분하고 있는데
상단의 조각품은
1층 남쪽 벽면에 조각된 것으로
앙코르 제국의 왕 수리야바르만 2세의 군대가 행진하는 모습이다
가운데 고깔을 쓰고있는 사람이 수리야바르만 2세이며
그의 좌측으로 바라문 승려들이 순종하고 있으며
우측에는 호족세력들이 충성을 맹세하는 조각상이라 한다
힌두교에서 천국은 37개, 지옥은 32개가 있다고 하는데
위 사진은 3단 구조로 조각되어 있는데
하단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이고
중간과 상단은 재판을 받으러 가는 사람들을 조각한 모습이라 한다
위 사진 하단은 지옥에서 고초를 받는 모습이며
상단은 야마신(죽음의 신)의 화신인 다르마에게 판결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습으로
판결 후에는 지옥과 천국의 생활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죽음의 신인 야마신이 물소를 타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야마신은 기록을 관장하는 치트라굽타(Citragupta)의
심판을 받을 사람의 기록을 받아 보고
지옥과 천국으로 갈 사람을 판결을 내린다고 한다
이 외에 서쪽 벽면에는 힌두교 2대 서사시인
랑카섬 전투에서 선한 라마왕자의 원숭이 부대가 승리하여
아름다운 시타공주를 구해낸다는 '라마야나'와
왕국의 왕권을 두고 착한 판다바 5형제와 악한 100명의 카우바라 형제들이
쿠루평야에서 18일간 전쟁을 하여 판다바 5형제가 승리를 한다는
'마하바라타'가 조각 되어 있다
2층의 인간계로 올라 오니
3층 천상계로 올라가는 계단이 너무 가파르게 보이는데
2층 인간계는 승려들이 수행하는 장소였다고 한다
3층 천상계 올라가는 계단이 70˚ 경사도로 굉장히 가파른 이유는
'신에게 가는 길이 어찌 두발로 걸어 갈 수 있느냐'라는 의미로
기어 올라 가도록 계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10년전에 왔을 때는 이 계단을
기어 올라갔다가 엉금엉금 기어 내려 왔는데
그 때는 무서워서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2층 인간계에서 있다가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았으나
지금은 한켠에 나무 계단을 만들어 수월하게 올라 갈 수 있도록 하여
30명씩만 천상계에 올라가 볼 수 있도록 하며
내려오는 수 만큼 올려 보내는 통제를 하고 있었다
3층 천상계에서 보는 2층 인간계이다
예전 그 시대에는 3층 천상계에는
왕과 고위층 승려들만 올라 올 수 있던 곳이라 한다
3층 천상계에서 내려와 2층을 통과하여 밖으로 나가려는데
한쪽 지성소에 비쉬누신인 동시에 부처님이신 상이 모셔져 있었다
이 곳은 '승려의 문'이라는 곳으로
힌두교의 '유지의 신'인 비쉬누가 모셔져 있지만
캄보디아 사람들은 부처님으로 모시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비쉬누 신은 10가지의 다른 모습의 화신의 모습으로 보여지는데
그 중 9번째 화신이 부처님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속설은 비쉬누의 다리를 만지며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기에
다리 부분을 너무 많이 만져 반짝반짝 윤이 난다고 한다
앙코르 유적 중 마지막으로 앙코르 왓 관광을 마치고 나오니
이제는 무더워도 너무 무더워 시원한 물이 그리워지면서도
좀 더 둘러 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세계 7대 불가사리로 불리는 앙코르 유적들....
한때는 동남아시아의 맹주로서 호령하며
이 처럼 찬란한 유적을 남긴 앙코르 제국(802~1431년)이
태국의 씨암족(수크타이+아유타이)에게 멸망 후 자취를 감추었다가
1868년 프랑스 탐험가 앙리 무어가 발견할 때까지
어떻게 모르고 있었을까?
그 당시에는 150만 정도가 살았던 대 도시였다는데...
전설에 의하면
앙코르의 왕이 신의 딸을 배신한 앙코르 왕국에 대하여
신은 3가지의 저주를 내렸다고 한다
첫째 저주는 앞으로 앙코르 왕국에는 단 한명의 인간도 살 수 없는 곳으로 멸망하고
두번째 저주는 멸망한 앙코르 도시는 모든 사람에게서 영원히 잊혀지게 되며
세번째 저주는 그 도시를 다시 찾아내는 자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저주였다
실제로 그 저주를 증명해 주듯이 1868년 앙코르 왓을 발견한 앙리무어는
그 다음해 의문의 죽음을 맞이 했다고 한다
앙코르 유적지 관광을 모두 마치고 씨엠립 시내로 이동 하던 중
건물 벽에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가
캄보디아 국기와 나란히 있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 대한민국 자원봉사 단체와 이 곳 현지 우리 교민들이 지원하고 있는
학교라고 한다
무더워도 너무나도 무덥다
덥기만 하면 그늘 밑에서는 시원할 텐데 습도까지 높으니...
그래서 점심식사는 우리의 보양식으로
김치가 들어간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먹는다
그리고 저녁식사 시간까지 호텔에 들어가
에어콘 밑에서 편히 쉬란다
저녁식사 후
로사나 쇼(Rosana Broadway)를 보러 간다
로사나 쇼의 내용은
캄보디아 전통 춤과 노래
그리고 각 나라에서 여행 온 관광객들을 위하여
그 각 나라에서 유행하는 노래와 춤을 공연으로 만들었다
공연 시간은 약 1시간 10분 정도 이어지며
공연 중반부 쯤엔
우리나라 부채춤 공연을 하는데
무언가 부족하고 어색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지만
외국인들이 우리 전통춤을 추는 모습을
애교로 보고 미소를 지으며 관람하고 있었다
캄보디아 전통 공연이다
왕 앞에서 인지, 신 앞에서인지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압살라 춤을 추는 모습을 보니
역시 캄보디아 사람들은 자기들의 전통 춤을 춰야
구성이 잘 된 것처럼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로사나 쇼(Rosana Broadway)에 출연하고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이 트렌스젠더(Transgender)들 이라고 한다
태국 파타야에 알카자 쇼가 있다면
캄보디아 씨엠립에는 로사나 쇼가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정적과 가요를 부르며 코미디 성 행동으로 잠시 웃음을 주던 음악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현아의 '오빤 딱 내스타일'로
흥을 북 돋으며 신나게 춤판을 벌인다
역시 세계인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던 음악이 나오니
관중 모두가 열광을 한다
이 음악은 지난달 터키를 여행하며 안탈리아에서 유람선을 탈 때도
이 음악이 나오니 유람선 선원들이 춤판을 벌이며
신나게 관광객들에게 춤을 추도록 유도하여
갑판 위를 디스코텍으로 만든 기억이 난다
신나게 어께를 들썩이다 보니
어느 덧 시작된지 1시간이 지나 공연이 끝나가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호텔로 가는 것으로 생각 했는데
젊음과 여행객들이 몰리는 유러피안 거리에서 맥주 한잔씩 마시고
호텔로 가자고 하여 '야간 시티투어'에 나선다
위 사진은 병원이라고 한다
여기는 의료시설이 빈약하여 병원에 와도
입원실이 부족하여 돗자리 가져와 밖에서 대기하며 치료받는 경우도
빈번하여 이상하게 보이는 곳이 아니라고 한다
'Pub Street'라고 쓰여진 유러피안 거리 입구에 도달하니
어디에서 이 처럼 많은 사람이 몰려 나왔는지
입구부터 많은 인파로 붐비기 시작한다
낮에 관광지에서 서구 관광객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 곳에서는 서구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래서 '유러피안 거리'라고 하나...
'Pub Street'란
술을 비롯한 대중적인 여러 음료와 음식을 파는 거리로서
활기가 넘치는 유러피안 거리는
캄보디아에서 여행을 하며 가난한 모습을 주로 보는 것에 비하여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오늘 밤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짐을 모두 챙겨 넣은 캐리어를 끌고 호텔을 나와 버스에 싣고
아침부터 관광 길에 나선다
먼저 왓 트메이(Wat Thmei)에 들린다
'와(Wat)'은 사원을 뜻하고 '트메이(Thmei)'는 새롭다는 뜻으로
'새로 세운 사원'이란 뜻이라고 한다
입구에 도착하니 차는 출입하지 못하도록
출입구 중간 부근에 바를 설치해 놓고 있었다
왓 트메이 안으로 들어가서
처음에는 일반 사원인가 보다하고
시원한 그늘 밑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었는데
유심히 주위를 살펴보니 있는 일반적인 사원이 아니고
킬링필드 시대 유골이 쌓여져 있는 위령탑이 모셔져 있는 사원이었다
왓 트메이 사원 자리는 원래 중국인 병원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병원을 허물고 사원을 짓기 위하여 공사를 하던 중
캄보디아에서 가장 가슴 아팟던 시기인
희대의 악인이었던
폴 포트(Pol Pot: 본명: 살롯 사 Saloth Sar: 1925~1998년) 정권의
킬링필드 시기(1975~1979년)에 희생된 유골들이 발견되어
그 일부를 수거하여 위령탑을 세웠다고 한다
킬링필드가 발생하게 된 배경은
캄보디아의 시아누크 국왕은 태국과 베트남 사이에서
중립주의 외교노선을 펼쳐 왔지만
미국과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미국은 쉽게 승리할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전쟁이 길어지자 베트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캄보디아에 전진기지를 만들기 위하여
캄보디아의 론놀이라는 장군을 사주하여 친미정권을 세우고
캄보디아 진영으로 숨어든 베트콩 기지에 엄청난 포탄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이 포탄에 캄보디아 양민들도 30만~50만명 정도가 죽었는데
론놀 정권은 아주 부패한 정권으로서 미국편만 들자
이에 반발한 민심은 매우 나빠져 있을때
1975년 크메르 루즈(Khmer Rouge)의 폴포트(Pol Pot)가 정권을
잡게 되었다고 한다
크메르 루즈 세력은 자급자족 농업국가를 만든다는 목표아래
도시민들을 농촌으로 강제로 이주시키면서
지식인들을 색출하여 처형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때 처형 대상자들은 주로 지식인 층들로
정치인, 승려, 선생님, 학생, 안경낀 사람, 외국말 할 줄 아는 사람,
외국 물건을 가진 사람, 손에 굳은 살이 없는 사람 등으로
약 300만명 정도가 처형 당하였다고 한다
지식인 층들은 머리가 깨어 있기에
폴 포트는 정권에 반발할 것에 두려워 하여 몰살 처형하고
정권을 오래 유지하기 위하여 국민들을 문맹 무식화하는 만행을 자행한 것이다
사원 옆에 조그마한 전시관이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자물쇠로 잠겨져 있었지만
우리를 보고 관리인이 와서 문을 열어주어 안으로 들어서니
벽에는 킬링필드 시기의 참상이 그림으로 전시되고 있었다
도끼로 찍어 죽이고
비닐봉지로 쒸어서 질식사 시키고
드럼통으로 쒸여 두드려 죽이고
칼로 목 따서 죽이고
이 밖에 목 메달아 죽이고, 물에 담궈서 죽이고
허리를 분질러 죽이고, 파 묻어 죽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방법을 동원하여 학살하는 만행을 당하는
가슴 아픈 내용들이었다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세뇌교육을 시켜
자기 부모부터 학살하게 만들어 더욱 악하게 만들었다는 말에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마들이라는 생각으로
치가 떨려옴에 가슴이 저렸다
그때 당시 어린 아이들이 커서 지금의 40~50대 초반으로서
지금도 그런 아픔을 간직한채 살아가고 있다고 하니...
또한 또 다시 이러한 아픔을 겪을지도 몰라
자녀들 교육을 시키지 않아 문맹율이 굉장히 높다고 한다
캄보디아 마지막 여행지로 톤레삽(Tonle Sap) 호수에 있는
수상마을을 가기 위하여
씨엠립 시내에서 약 14.7Km 떨어진
총 크니어(Chong Khneas) 선착장으로 간다
톤레삽 호수에 있는 수상마을에 가기 위해서는
총 크니어(Chong Khneas)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약 40분 정도를 나가야 있다고 한다
배에 오르자 배안에서 일을 보조해 주는 꼬마가 다가와
안마를 해주겠다고 등을 두드린다
그리고 팁을 달라고 한다
톤레삽 호수는 언제 방문하느냐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고 한다
우기 막바지인 11월경에는 면적이 약 12,000㎢ 정도로
우리나라 강원도 면적 정도로 크지만
건기 막바지인 현재 4월경에는 약 2,500㎢ 면적이 줄어 든다고 하는데
그래도 제주도 2배 정도의 면적이다
우기 때 면적이 크게 넓어지는 이유는
범람한 메콩강의 강물이 역류해 올라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톤레삽 호수로 나가는 이 물길인
'시엠레아프 주강'을 배를 타고 나가던 중
물소들이 떼를 지어 강물 속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보인다
황토 빛깔에 물든 톤레삽 호수에 멀리 수상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며
하늘도 반사되어 황토 빛으로 뿌옇게 물들어져 있었다
톤레삽 호수는 동양에서 가장 큰 담수호로서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오대호와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
아프리카의 빅토리아호, 그레이트 베어호 니아사호 등과 더불어
세계적인 담수호로 불리우고 있는 호수 중 하나라고 한다
수상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쪽배로 옮겨타고
수상마을의 골목길을 다니듯이 누비고 다닌다
수상마을은
캄보디아에서도 가난한 사람들과
국적없는 베트남 사람들이
톤레삽 호수 주변 둑에 나무기둥을 박아 집을 짓거나
배 위에 집을 지어 모여 살아가는 마을이라고 한다
수상마을을 이쪽 저쪽을 쪽배를 타고 다닌는데
우리나라 자원봉사 단체에서 지원하는
'캄보디아 다일공동체'라고 쓰여진 회관도 보인다
쪽배를 타고 약 30분 정도를 수상마을을 돈 후
우리가 톤레삽 호수로 타고 왔던 큰배가 대기하고 있는
수상 선착장으로 돌아 간다
톤레삽 호수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어부라고 하며
가난한 삶으로 빨래, 목욕, 식수 등을 톤레삽 호수 물로 해결하면서
배설물, 쓰레기 등을 톤레삽 호수에 버린다고 한다
우리의 생각은 불결하다고 생각되는데
톤레삽 호수 물은 생각보다는 깨끗한 물이라고 한다
황토는 살균작용을 하는데
톤레삽 호수 물은 황토물이며
강한 자외선이 수표면을 소독해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상 선착장에는 심혜진(엄마) 이문식(아빠) 박명수(외삼촌) 박주미(외숙모)
최정원(딸) 강민혁(아들) 설현(딸) 역할로서
캄보디아 톤레사프 호수를 첫번째 정착지로 삼아 살아가는 내용을
KBS2 '용감한 가족' 제목으로 촬영 하였다는 장소에
출연진들의 모습이 간판에 있었다
씨엠립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에 올라 타
우리가 처음 배를 탓던 총 크니어(Chong Khneas) 선착장으로 향하는데
태극기와 함께 '나눔의 쉼터'라는 수상 가옥이 보인다
우리나라 봉사 단체가 이 곳에 많이 진출하여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 속에 뭔가모를 기쁨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톤레삽 호수를 마지막으로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모든 여행은 마쳐가는데
하늘을 보니
저물어 가는 태양은 황토 빛에 물들어
잘 가라는 듯
호수 위로 흐릿하게 자취를 나타내며 흔들고 있었다
여행이 끝나 갈 때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이유는 뭘까?
시암레아프 주강을 따라
총 크니어(Chong Khneas) 선착장에 거의 다가 가는데
강둑 위에서 배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캄보디아에서는 배구가 인기 종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슈가팜(Sugar Palm) 나무들이 보인다
꽃의 수액으로 기존의 설탕을 대체할 수가 있다고 한다
항산화작용을 하는 폴리페놀, 칼륨, 철분 비타민이 함유되어 있으며
일반 백설탕보다는 혈당량이 낮다고 하는데
킬링필드 시기에는 아이들을 살해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아이들의 발목을 잡고 나무 표면이 톱날처럼 날카로운 슈가팜 나무에 내던져
피와 살이 튀며 죽어가게 하는 만행의 도구로 사용되어져
슈가팜 나무는 아픔을 간직한 나무라고 한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씨엠립 공항에 도착한다
비행기 이륙 시간은 23:40(한국시간 01:40)로서
너무 일찍 도착하였나 시간이 많이 남아 로비에 앉아 눈을 부친다
인천공항에 도착시간은 아침 07:00로
비행 소요시간은 5시간 20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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