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간다는 것은 항상 즐겁다
유럽의 여러 많은 나라를 가 보았지만 그 곳을 가보지 못하면
유럽 여행을 하였다고 명함도 못내미는 국가를
찾아서 가는 여행으로 이탈리아를 먼저 선택하여 간다
유럽의 목적지로 갈 때마다 항상 환승공항을 거쳐 갔는데
처음으로 인천공항에서 이탈리아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까지 가는
직항을 타기 위하여 대기한다
인천공항에서 이탈리아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까지
비행시간은 12시간 45분 정도 소요된다고 하며
비행거리는 8976Km 이다
기내식이 쌈밥으로 나오는데
그동안 비행기를 많이 타보았으나 기내식으로 쌈밥은 처음인지라
기분좋게 먹고 장시간 비행이므로 지루함을 달래려 잠을 청한다
자다 깨다 반복한 끝에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비행기는 아드리아해를 지나 이탈리아 반도로 진입하고 있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지 12시간을 넘게 날아와
이탈리아 상공을 날고 있는데
밖을 내다 보며 지루했던 감정도 날아 가고
마음이 들뜨기 시작하였다
비행기는 서서히 고도를 낮추기 한다
이탈리아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Leonardo da Vinci international Airport)에
12시간 40분 정도 소요되어 서서히 착륙하여 착륙 게이트로 이동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Leonardo da Vinci international Airport)은
피우미치노 공항(Fiumicino Aeroporto)이라고도 하는데
로마 시내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32Km 정도 거리에 있는 공항이다
대한민국 여권을 가진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에서도 이탈리아 국가 입국수속을 간단하게 마치고
밖으로 나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에서 나와
오늘은 저녁시간이 다 되어
숙소가 있는 로마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40Km 거리에 위치한 근교 도시
피아노 로마노(Fiano Romano) 지역으로 이동한다
피아노 로마노(Fiano Romano) 지역에 있는
베스트 웨스턴 호텔(Best Western Hotel)이 오늘 밤을 보낼 숙소이다
버스가 호텔 로비 앞까지 들어갈 수 없어
버스에서 내려 캐리어를 끌고 잠시 걷는 불편함이 있는 호텔이었다
아침이 되어 창문 밖을 쳐다 보니 사람들이 수영장에 나와
주변에서 사진 찍기에 열중하는 모습이 보였다
바티칸 시국(Citta del Vaticano)에 입국하려면 빨리 가야 하는데
늦었다고 재촉하며
로마 시내를 향해 달려 나간다
여행하다 보면 세계 어느 나라 수도에는
아침에 근교도시에서 시내로 진입하기에는 러시아워로 많이 밀리는데
여기 로마(Roma)도 많이 밀리며 시내로 진입한다
바티칸 시국(Citta del Vaticano) 주변 도로에서 내려
바티칸 시국 입장하는 문 쪽을 향하여 급하게 뛰는 걸음으로 달려 갔으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바티칸 시국(Citta del Vaticano)은 항상 방문객이 많아
늦으면 길게 늘어진 줄 뒤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입장 할 수가 있다고 한다
줄을 서서 대기하며 지루함을 달래며 주변을 바라다 본다
주변의 상가들이 문을 열기 시작하고 있었다
바티칸 시국(Citta del Vaticano)으로 입국하는 문까지
약 1시간 30분 정도 줄을 서 대기한 끝에 표를 받아
바티칸 시국 안으로 들어 간다
시스티나 예배당(Cappella Sistina) 입구 벽에 있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작품 '최후의 심판(Giudizio Universale:1535~1541년)' 사진이다
시스티나 예배당(Cappella Sistina)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바티칸 시국(State of the Vatican City) 정문으로 입국하자마자
시스티나 예배당(Cappella Sistina)에 있는 걸작들을 사진으로 찍어
이 곳 몇 군데로 전시하여 놓고 관광객들에게 사진으로 설명하도록 하고 있었다
'최후의 심판(Giudizio Universale)' 그림은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그린후 20년간 쉬고 있던 중 나이 60살에
1533년 교황 클레멘스 7세(Clemens Ⅶ) 요청에 의해
시스티나 예배당(Cappella Sistina) 벽면에 '최후의 심판'을 그리게 되었다
'상단부에 천국' '중간부에 연옥' '하단부에 지옥'의 장면을 묘사하였는데
재미있는 것은
천국 편에 피부가 벗겨지는 고문 속에 순교한 바로톨로메오 성인의 살가죽에
미켈란젤로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는 것과
지옥 편에 당시 '최후의 심판'을 나쁘게 평가한 체세나 추기경(Biagio da Cesena) 얼굴을
복수로서 당나귀를 귀를 가진 지옥의 재판관 미노스(Minos)로 그렸다는 것이다
시스티나 예배당(Cappella Sistina) 좌우측 벽면에 그려진
벽화 사진이다
'시스티나 예배당(Cappella Sistina)'은
교황 식스토 4세(Sixtus Ⅳ)의 명으로 1475년부터 5년에 걸쳐 완공한 예배당이다
현재도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인 콘클라베(Conclave)를
진행하는 신성한 곳이라 한다
시스티나 예배당(Cappella Sistina)에 있는 천장화로서
미켈란젤로가 그린 작품 '천지창조(Genesis:1508~1512년)' 사진이다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지시로 그려진 천장화로
천장 벽면에 회반죽을 발라 채색하는 프레스코 기법으로
'천지창조(Genesis)' 천장화는
창세기의 아홉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빛과 어둠의 창조' '별과 행성의 창조' '땅과 물의 분리' '아담의 창조' '이브의 창조'
'원죄와 낙원 추방' '노아의 제사' '대홍수' '술에 취한 노아'
이야기를 순서적으로 그려 놓았다
바티칸 시국(State of the Vatican City)으로 들어와서
초입 넓은 공간에서 사진으로
시스티나 예배당(Cappella Sistina)에 있는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본격적으로 바티칸 시국(State of the Vatican City)을 보기 위하여 이동하던 중
로마 초대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Augvstvs=Octavianus:재위 BC27~AD14)의
모조상이 세워져 있었다
피냐 정원(Cortile della Pigna)의 한가운데에
1990년 작품인 아르날도 포모도로의 '천체 안의 천체(Stera con Stera)'가 보인다
파괴되어 가는 지구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으로
바티칸에서 유일한 현대 작품이라고 한다
피냐 정원(Cortile della Pigna)에는
또한 솔방울 조각품이 보인다
'피냐(Pigna)'는 솔방울이라는 뜻으로
브라만테가 설계한 정원으로서 4m 높이의 솔방울 조각품이다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Museo Pio-Clementino)이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곳으로
1700년대 말 교황 클레멘스 14세와 비오 6세 시대에 건립되어 붙은 이름이다
전시된 대표적인 작품은 라오콘, 벨베데레의 아폴로,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벨베데레의 토르소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바티칸 박물관에서 나오니
팔각형의 벨베데레(Belvedere) 정원과 이어진다
정원에는 여러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메두사(Medusa)의 머리를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Perseus) 조각상'이다
오른쪽 팔과 허벅지 사이에 연결대가 없으면
메두사(Medusa)의 머리를 들고 있을 수 없다고 한다
페르세우스(Perseus)는
제우스 신과 아르고스(Argos)의 왕 아크리시오스(Akrisios)의 딸인
다나에(Danae)의 아들이다
아크리시오스는 손자가 자기를 죽일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페르세우스와 다나에를 궤짝에 넣어 바다에 던졌다고 하며
궤짝은 세리포스섬(Serifos island)에 닿았고 페르세우스는 그 곳에서 자랐다
세리포스의 왕 폴리덱테스(Polydectes)는 다나에를 아내로 맞고자 흉계를 꾸며
페르세우스에게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했다
메두사를 죽인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쳐들어
폴리덱테스 왕을 돌로 만들었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바다 괴물로부터 안드로메다(Andromeda)를 구하고 그녀와 결혼을 하였다
안드로메다는 요파(팔레스타인의 에디오피아)의
케페우스(Cepheus)왕과 카시오페이아(Cassiopeia) 여왕 사이에서 난 딸이다
페르세우스는 어머니 다나에와 함께 아르고스(Argos)로 돌아갔는데
그가 던진 원반에 맞아 결국 아크리시오스(Akrisios) 왕은 죽게 되었다
페르세우스는 아르고스를 떠나 미케네(Mycenae)를 건설하고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여러 명의 후손을 낳았다고 한다
라오콘 군상(Laocoön Group)은
기원전 2세기로 추정되는 작품으로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신관 라오콘은
트로이와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그리스 군이 두고간
트로이 목마 안에 군사들이 있다고 폭로한다
트로이가 멸망하길 바라던 아테네 여신들은 이에 분노하여
바다뱀을 보내 라오콘 가족을 몰살시킨다
이 작품은 질식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아버지와 아들과 또 다른 아들은
뱀에게 고통을 당하며 아버지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모습이다
벨베데레의 아폴로(Apollo Belvedere)는
기원전 4세기로 추정되는 작품으로
백발백중의 활 솜씨를 가진 아폴로신 동상으로
원래 한 손에 활을 들고 있었으나 현재에는 볼 수 없다
활을 쏜 후 날아가는 화살을 바라보는 모습을 형상화 한것이라고 한다
벨베데레(Belvedere) 정원에서
시스티나 예배당(Cappella Sistina)으로 연결되어 있는
바티칸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디오니소스(Dionysos) 조각상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그리스 식민지 도시였던
리비야(Libya)의 키레네(Cyrene)는
2세기 경에는 로마제국 식민지로 바뀌었는데
이 조각상은 바로 키레네(Cyrene)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포도송이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디오니소스(Dionysos)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벨베데레의 토르소(Torso Belvedere)는
기원전 1세기로 추정되는 작품으로
미켈란젤로에게 극찬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팔다리가 없는 몸통밖에 없는 작품으로
작품의 주인공은 헤라클레스 또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영웅인 아이아스 장군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로톤다의 방(Sala Rotonda)은
원형으로 된 방으로
네로 황제가 사용했다는
자주색의 큰 욕조를 전시하고 있다
그리스 십자가의 방(Sala a Croce Greca)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성녀(Saint Helena)와
그녀의 딸 콘스탄티나(Constantina)의 석관이 모셔져 있다
다산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 조각상이다
야생동물·사냥·식물·순결·출산의 여신으로
로마 신화의 디아나(Diana)와 동일하다고 한다
시골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던 여신이라 하며
지방에 따라 성격과 역할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님프들과 함께 산·숲·늪지를 춤추며 돌아다니던
야생적인 성격을 가진 여신이라 한다
아르테미스 숭배는
헬레니즘 시대 이전에는 크레타 섬이나 그리스 본토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아라치의 방(Galleria degli Arazzi)이다
아라치(Arazzi)란 색실을 짜 넣어
그림을 표현하는 직물 공예인 '태피스트리'를 뜻한다
아라치의 방(Galleria degli Arazzi)에는
한쪽 벽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수놓은 아라치가 걸려 있으며
또 한쪽 벽면에는 교황의 일화를 수놓은
아라치를 전시하고 있다
지도의 방(Galleria delle Carte Geografiche)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금빛 찬란한 천장에 감탄하게 된다
교황이 지배하는 주요 성당이 있는 도시의 지도가
프레스코화로 그려져 있는 방이다
라파엘로의 방(Stanze de Raffaello)은
교황 율리우스 2세를 위해 만든 방이라고 한다
이 방은 4개의 방으로 나뉘는데
콘스탄티누스의 방, 엘리오도르의 방, 서명의 방, 보르고의 화재의 방으로
가장 인기 있는 방은 라파엘로가 처음으로 그렸다는 서명의 방이며
라파엘로는 콘스탄티누스의 방을 제작하다가 사망했으며
나머지는 그의 제자들이 완성하였다고 한다
시스티나 예배당(Cappella Sistina)는 사진촬영을 금하고 있어
앞의 바티칸에 입장하여 시스티나에 있는 그림의 사진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설명으로 대체한다
시스티나 예배당(Cappella Sistina)을 나와
산 피에트로 광장(Piazza San Pietro)이 있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으로 향한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성 베드로 대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 안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Pieta)' 조각품이 있다
대성당 내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면서
미켈란젤로를 거장에 올려놓은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막 숨을 거둔 아들 예수를 안고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으로
죽은 예수의 축 처진 육신과 성모 마리아의 표정, 옷자락을 섬세하게 표현함이
대리석으로 조각하였다는 경이롭다
또한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서명을 남긴 유일한 작품으로
서명을 성모 마리아의 어깨에 둘러진 띠에 새겨 놓았다고 한다
'피에타(Pieta)'는 이탈리아어로 슬픔, 통한이라고 한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의 명칭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자 초대 교황인 성 베드로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로마 최초의 그리스도교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24년 베드로의 묘지 터에 그리스도 교회를 세운 것이 대성당의 기원이다
1452년 교황 니콜라우스 5세가 재건을 지시하고
1506년에 율리우스 2세 명으로 건축가 브라만테가 재건을 시작하여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 당대의 최고의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참여하여
120년에 걸쳐 완공하였다고 한다
성당 규모는 내부 면적 15,000㎡, 길이 180m로
11개의 예배당과 45개의 제단이 있으며 최대 6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의 중심의 돔(Dom)인
큐폴라(Cupola)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지름 42m, 높이 136m로서
큐폴라(Cupola)에 오르려면 2가지 방법이 있는데
551개의 계단을 걸어서 오르는 방법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방법이 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더라도 내려서
320개의 계단을 걸어서 올라야 한다고 한다
큐폴라에 오르면 로마 시내 전경이 한 눈에 들어 온다고 한다
교황 우르바노 8세의 명으로
1633년 베르니니(Bernini)가 만든 작품 '발다키노(Baldacchino)'는
교황의 제단으로 교황이 미사를 드릴 때만 사용한다고 한다
높이 29m, 무게 56ton으로
4개의 나선형 기둥에 올리브 가지 모양 등을 장식하였으며
덮개는 베르닌의 가문의 문장인 벌 모양이 새겨져 있다고 하고
발다키노(Baldacchino)의 밑에는
성 베드로가 잠들어 있는 묘지가 있다고 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홀 바닥에는 사람들이 발길이 닿지 않도록
칸막이를 해놓았는데
세계의 유명한 성당들의 크기를 표시한 것이라고 한다
라파엘로의 마지막 작품인 '그리스도의 변용'이라는 성화이다
마태복음 17장 1~6절의 내용으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 같이 빛나며 옷이 희어지며 변형되시고
그때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하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놀라 엎드려 두려워 하는 모습이며
하단부 그림은
1520년 라파엘로가 열병으로 죽기전
스케치한 부분을 제자들이 완성한 부분으로
귀신들린 소년들이 치료받기 위하여 사도들 앞으로 이끌려 나오는 장면을
상단부와 하단부로 나누어 묘사한 성화이다
18세기 초 피에트로 비앙카의 유작
'무염시태 성모 마리아 제대(Altar of Mary's Immaculate Conception)' 성화이다
성모 마리아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원죄에 물들지 않고 잉태됨을 말하며
성모 무염시태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을 뜻한다
'산 피에트로 광장(Piazza San Pietro)'으로 나왔다
정 동쪽을 향하게 건축되어진
산 피에트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성 베드로 대성당)이 웅장하게 보인다
1989년까지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지만
1989년 코트디부아르(Cote D'lvoire)의 수도 야무수크로(Yamoussoukro)에
성 베드로 대성당보다 더 크게 성당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산 피에트로 광장(Piazza San Pietro)'은
1666년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의 거장 베르니니(Bernini)가 완공하였다고 한다
길이는 340m, 너비 240m의 타원형과
사다리꼴의 광장 모양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었다는 천국 열쇠 모양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또 광장에는 284개의 기둥이 타원형으로 광장주변을 둘러
성 베드로 성당까지 줄지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어느 일정한 위치에서 보면 모두 겹쳐 하나로 보이는데
이는 세상 밖과의 소통을 의미한다고 한다
기둥 위에는 140개의 가톨릭 성인들의 조각이 서 있는데
이 조각들은 베르니니(Bernini)의 제자들이 조각한 것이라 한다
산 피에트로 광장(Piazza San Pietro) 중심에는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37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엽기적 폭군이었던 로마 황제 칼리큘라(Caliqula)가
이집트에서 약탈해 온 것이라 한다
오벨리스크 좌우에는 2개의 분수가 마주 보고 있는데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책임자였던
마데르노(Maderno)와 베르니니(Bernini)가 설계한 것이라 한다
바티칸 시국(State of the Vatican City)인
산 피에트로 광장(PIiazza San Pietro)에서 국경을 넘어 보는
이탈리아(italia) 로마(Roma) 시내의
비아 델라 콘칠리아치오네(Via della Conciliazione) 거리이다
이 거리에는 많은 성당 및 교황청 각 국의 대사관들이 있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다
걷는 길은 코론나토 거리(Largo del Colonnato)로서
성벽은 바티칸 시국(State of the Vatican City)이고
거리는 이탈리아 로마 시내이다
산 피에트로 광장(Piazza San Pietro)에서 시작하여
비아 델라 콘칠리아치오네(Via della Conciliazione) 거리를 지나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us)의 영묘인
성 천사 성(Castel Sant Angelo)까지 이어진 수로처럼 보이는 성벽인 것 같다
로마 시내를 가로 질러 흐르는 테베레 강(Fiume Tevere)은
길이가 406Km로
이탈리아에서 포강(Fiume Po: 652Km), 아디제강(Fiume Adige:410Km)
다음으로 긴 강으로
역사적으로 테레베강은 로마제국이 있게 했던 근원의 강이다
로마 건국 신화에 나오는 로물루스와 레무스(Romulus & Remus) 형제가
버려진 곳이 테베레강으로
그들이 자라서 이 강 하류에 도시를 건설하였는데
로물루스의 이름에서 로마(Roma)라는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우고 라 말파 광장(Piazzale Ugo la Malfa)에서 보는
'고대 전차 경기장(Circus Maximus)'이다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 지은 경기장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며
25만 명이나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경기장에서는 전차 경기를 비롯해서 경마 등 다양한 운동 경기 열렸으나
549년에 마지막 경기가 열린 후 중단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경기장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처형하는 장소로서
순교지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고대 전차경기장 넘어 팔라티노 언덕(Colle Palatino)이 보인다
기원전 753년경 로물루스(Romulus)가 동생 레무스(Remus)를 죽이고
이 팔라티노 언덕에 로마를 세웠다고 한다
로마의 일곱 언덕 중 가장 오래된 곳이라고 하며
건국 후 약 200년이 지나면서부터는 로마의 부유층들의 거주지가 되었다고 한다
팔라티노 언덕(Colle Palatino)에는
도미티아누스 황제(Caesar Domitianus Augustus)가 건설한
플라비(Flavia) 궁전터와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저택
파라티노 경기장(Stadio Palatino)터 등이 있다
진실의 입 광장(Piazza della Bocca della Verita) 앞에 있는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in Cosmedin)'으로 간다
6세기 헤라클레스의 제단이 있던 터에
기독교 스타일의 양식으로 건축한 성당이라고 한다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 입구에 있는
'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a)'이다
그레고리 펙이 손을 입에 넣어 손이 물린 것처럼 장난에
오드리 헵번이 놀라는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져
로마를 찾는 여행자들의 기념 촬영 장소로 사랑 받는 곳이라 한다
'진실의 입' 조형물은
지름 1.5m의 커다란 원반에 포세이돈의 아들 인어인
바다의 반신 트리톤(Triton)이 입을 벌리고 모습의 조형물로서
본래 헤라클레스 신전의 하수구 뚜껑이었다는 설과
가축시장 하수구 뚜껑이었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진실의 입 조형물의 입에
거짓말쟁이가 손을 넣으면 먹어 버린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이는 중세시대 때에 사람들을 심문할 때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손이 잘려도 좋다고 서명한 것에서 유래 한다고 한다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in Cosmedin)'은
밸런타인데이의 유래가 된 성 밸런타인의 유골이 보관된 성당이다
밸런타인데이 유래는 몇 가지가 있는데
3세기 무렵 로마 황제 클라디우스 2세(Cladius Ⅱ)는
가족이 그리워 탈영할 것을 염려해
군인들을 상대로 '금혼령'을 내렸는데
성 발렌티노는 이 법을 어기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몰래
결혼을 성사시키다가 발각되어 사형에 처해졌는데
이 날이 2월14일이라 기념하게 됐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에서 이동하여
트레비 분수가 있는 골목길로 들어선다
트레비 분수(Fontand di Trevi) 앞으로 왔다
그런데 보수공사 중으로 칸막이로 볼 수 없게 막아 놓았다
그래도 트레비 분수를 보기 위해
아쉬운 마음으로 앞 건물 계단 위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바라본다
'트레비 분수(Fontand di Trevi)'는
1453년 교황 니콜라우스 5세(NicolausⅤ) 명으로 만들었는데
로마제국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Gaius Julius Vaesar Augustus)가 지은
고대의 수도 아쿠아 비루지네(처녀의 샘)의 수원을
약 1000년 만에 부활시키고자
약 18Km 떨어진 살로네 샘에서 지하 송수로로 물을 끌어오는
공사로 건설하였다고 한다
분수에는 날개달린 말 2마리가 이끄는 조개 마차와
바다의 신 트리톤, 태양의 신 오케아노스 등이 조각되어 있다
트레비 분수(Fontand di Trevi) 옆에 있는 젤라토(Gelato) 가게이다
이 가게가 유명한지 모르겠으나
아이스크림(Ice Cream)을 사먹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며 아우성 거린다
트레비 분수를 떠나
꼬불꼬불골한 골목길을 돌아서
스페인 광장으로 향한다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의
주 교황청 스페인 대사관 앞 광장에 있는
'성모 마리아 상(Colonna dell' Immacolata)'이다
광장의 이름은
17세기 이 곳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던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의 '스페인 계단'이다
계단 앞에는
바르카차 분수(Fontana della Barcaccia)가 보이고
계단 위에는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Basilica di Trinita dei Monti)이 보인다
스페인 계단이 더욱 유명하여진 것은
영화 '로마의 휴일'의 스페인 계단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판테온(Pantheon)으로 가는 길에 들린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Sopra Minerva)'이다
앞 광장에는 코키리 오벨리스크(Elephant and Obelisk)가 있다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은
고대 미네르바 여신에게 바친 신전이 있던 자리에
13세기에 지은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특히 이 성당은
1633년 지동설을 주창한 이유로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ililei)가
종교재판을 받은 성당이라고 한다
'판테온(Pantheon)' 앞에 있는
로톤다 광장(Piazza della Rotonda)이다
로톤다 광장(Piazza della Rotonda)에서 보는
'판테온(Pantheon)'과 판테온 분수(Fontana del Pantheon)이다
로마 시대의 건축물 중에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불후의 명작이라 한다
판테온(Pantheon)의 정면 윗부분에는 라틴어로
“M.AGRIPPA.L.COS. TERTIUM FECIT”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보인다
‘세 번째(TERTIUM) 집정관(COS=CONSUL) 루키우스의 아들(L)
마르쿠스 아그리파(M. AGRIPPA)가 했다(FECIT)’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이는 아그리파가 집정관을 세 번째 지낼 때인
기원전 25년에 세웠다는 의미라고 한다
'판테온(Pantheon)'은 기원전 25년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의 사위인 아그리파(Agrippa)가
로마의 모든 신에게 바치기 위해 건립한 신전이라고 한다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118~125년경 하드리아누스(Hadrianus) 황제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판테온(Pantheon)의 둥근 돔 천장에는
지름 9m의 태양을 상징하는 구멍을 뚫어 구석구석 밝히는 빛이
내부로 들어오게 하는 유일한 구멍이며
제사 의식 때에는 연기가 빠져 나가는 연통 역할을 하는
유일한 구멍이라고 한다
608년 동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포카스(Phocas)가
판테온(Pantheon)을
교황 보니파치우스 4세(Bonifacius Ⅳ)에게 기증한 이후
로마 최고의 범신전이었던 판테온은
‘순교자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Santa Maria dei Martiri)’으로
변모되었다고 한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이교도의 신전에서 기독교 성전으로 바뀌게 된 것인데
그 덕택에 판테온(Pantheon)은 다른 고대 로마의 건축물과는 달리
‘채석장’으로 전락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질 수 있었다고 한다
판테온(Pantheon) 내부에는
37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 화가 라파엘로(Raffaello Sanzio)의 무덤이 있으며
또한 예배당에는 움베르토 1세와 그의 부인 마르게리타 무덤이 있다
판테온(Pantheon)에서 나와
음료수를 사기위해 옆에 있는 가게에 들린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Monumento Nazionale a Vittoria Emanuele)을
정면에서 보기 위하여 베네치아 광장(Piazza Venezia)으로 간다
베네치아 광장(Piazza Venezia)에서 보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Monumento Nazionale a Vittoria Emanuele)'이다
분열되었던 이탈리아 통일을 이룩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1885~1911년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은 웅장한 건물이지만
주위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타자기' '웨딩케이크' 등의 별명으로 비난을 사기도하였다고 한다
기념관 앞에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마상'이 서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뒤편 언덕에 있는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으로 간다
1536년 바오로 3세 때 미켈란젤로 설계로 조성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광장은 3개의 궁전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옛 시청사 건물인 세나토리오 궁전(Palazzo Senatorio)과
누오보 궁전(Palazzo Nuovo)과
콘세르바토리 궁전(Palazzo Conservatori)은
미술관과 카피톨리니 박물관(Musei Capitolini)으로 이용하고 있다
광장 중앙에는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의 기마상'이 보인다
캄피돌리오 광장 언덕으로 올라왔던 길이 아닌 반대편 길로 내려 가면서 보는
폐허가 되어 잔재만 남아 있는 '포로 로마노(Foro Romano)'이다
'포로 로마노(Foro Romano)'는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 정치, 종교, 경제의 중심지 였다고 한다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지역은
원래는 비가 오면 물이 고이는 습지였는데
하수시설을 확충한 후 공공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능이 갖춰져
도시의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신전, 바실리카, 개선문, 원로원 등이 남아 있고
수 많은 유적이 땅속에 묻혀 있어
지금도 발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타르페오 언덕 길(Via Monte Tarpeo)을 통해
산타 마리아 델라 콘소라시오네(Santa Maria della Consolazione) 카톨릭 성당 앞으로
버스를 타고 콜로세움(Colosseo)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내려 간다
TV에서 보아오던 '콜로세움(Colosseo)'으로 왔다
콜로세움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검투사들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인 '글래디에이터' '스파르타쿠스'와
'쿼바디스'의 그리스도교인의 순교가 생각이 난다
'콜로세움(Colosseo)'은
72년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황제 때 짓기 시작하여
그의 아들 티투스(Titus Flavius Vespasianus, 39~81)황제 때인
80년에 완공했다고 한다
타원형 4층 건물로 긴 쪽의 지름은 187m, 짧은 쪽 지름은 155m이며
높이는 48m이라 하며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으로
층마다 다른 양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내부는 5만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계단식 관란석이며
76개의 문을 통하여 빠르게 출입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콜로세움(Colosseo) 옆에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Arco di Costantino)이 서있다
밀비오 다리(Ponte Milvio) 전투에서 막센티우스(Maxentius)를 무찌르고 돌아 온
콘스탄티누스 1세(Constantinus I)의 서로마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315년 원로원에서 세운 것이라 한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기독교를 공인하고
수도를 비잔티움(Byzantium)으로 옮긴 인물이다
로마에서 오늘 숙소가 있는 피우기(Fiuggi)로 이동하였다
피우기(Fiuggi)는
라치오(Lazio)주 프로시노네(Frosinone)현에 있는 작은 산악 마을로서
로마에서 동남쪽으로 약 80Km, 1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피우기(Fiuggi)는
본래 '안티콜리 디 캄파나(Anticoli di Campagna)'라고 불렀다고 한다
피우기에 도착하자
버스는 시내 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낫시리야의 마르티리 광장(Piazza Martiri di Nassiriya)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서 내려 식사 후 걸어서 광장을 지나 호텔로 이동하여 간다
피우기(Fiuggi)는
해발 747m의 고지대의 산악마을이기도 하는데
이 작은 산악마을이 유명하여진 것은
예전 14세기 때인 교황 보니파시오 8세(BonifaciusⅧ)가
여기에서 솟아나는 샘물로
신장결석을 치료하였다고 알려지면서라고 한다
피우지(Fiuggi)는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인근의 여러 산악마을들을 포함하여
교황청이 다스리는 일부로서
이 곳의 마시는 온천수인 샘물을 담아 유럽의 왕족들에게 보내기도 하였다고 하며
예전 미켈란젤로는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유일한 돌"이라고 하며
자신의 결석을 치료하며 물의 효능을 극찬하였다고 한다
피우지(Fiuggi)는 먹는 온천수로 유명한데
14세기 이래로 많은 사람들이 여기 물을 사용하여 왔다고 하며
여러 물은 성분이 풍부하고 천연 치료 성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음료수처럼 사서 마실 수 있기에
예전의 이 곳 주민들은 여기의 물을 팔아 세금을 충당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온천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오늘 밤은 산 마르코 호텔(San Marco Hotel)에서 보내는데
시골 동네의 있는 호텔답게 아담하고 아기자기하여
짐을 방에 두고 나와 동네를 돌아다니며
카페도 들려보고 마트도 들려 먹을 간식을 사들고 호텔로 돌아와 밤을 보냈다
아침이 되어 바쁘게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의 일정은
피우기에서 남쪽으로 약 200Km 거리에 있는 폼페이(Pompei)를 거쳐
소렌토(Sorento)를 보고
환상의 섬 카프리(Capri)를 둘러보고
나폴리(Napoli)를 거쳐
다시 피우지(Fiuggi)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폼페이(Pompei)는
현재 약 28,000명 정도 거주하는 나폴리에서 23Km 근교의 작은 도시로
BC 6세기경에 그리스의 지배를 받다가
BC 80년경부터 로마(Roma)제국의 지배를 받았다고 한다
로마제국의 지배 이후 이 지역에서 폼페이(Pompei)뿐만 아니라
에르클라네움(Herculaneum)도 발전하기 시작해서
폼페이 지역 인근의 인구는 약 3만 명 정도의 거주 지역이 되었다고 한다
그 때 화산 폭발의 징조는 이미 62년경부터 보이기 시작하였으며
인근 도시로 있던 에르클라네움은 이미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폼페이(Pompei)에는 피해가 없이
겨울에도 화산의 지반열이 있어 그다지 춥지가 않아
로마 지도자들이 휴양지나 별장 등으로 선호하여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어
폼페이(Pompei)는 도시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폼페이(Pompei)는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Vesuvio) 화산이 대폭발하여
7m 이상 분출된 화산재에 파묻혀 15,000명 이상의 폼페이 시민들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전설로만 내려오던 폼페이 유적에 대한 발굴 작업은
1748년부터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에 시작되었지만
유물을 대부분 프랑스 왕궁으로 가져갔다고 하며
이탈리아 통일되어 발굴작업을 하였다가 멈추었다가 하며
현재는 발굴 작업은 거의 완료된 상태이지만
아직도 발굴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폼페이(Pompei) 유적지로 들어가는 매표소가 있는
입구에 도착한다
매표소가 있는 입구에서 보는 전경으로서
폐허이지만 폼페이 유적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마을 옆으로 유적지로 올라가는 길과
들어가는 마리나 문(Porta Marina)이 보인다
마리나 문(Porta Marina)을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마리나 문과 통하는 길은
바다로 통하는 마리나 길(Via Marina)이다
마리나 문(Porta Marina)은
'바다로 향한 문'이란 뜻이며 2개의 문으로 큰문과 작은문이 있다
작은문에는 계단이 있고 사람이 다니는 문이라 하며
큰문은 마차가 다니던 문이라 한다
마차가 다니던 마리나 길(Via Marina)이다
밤에 출입하는 마차나 수레를 위하여
달빛에 반사되는 반사석을 큰돌의 사이사이에 심어 놓아
길 안내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마리나 길(Via Marina)을 다 오르면
폼페이 광장(Foro di Pompei)이 나온다
광장 한복판에는 사람 모형의 청동 구조물이 드러누워 있고
얼굴 모형의 동 구조물이 세워져 있는데
발굴된 유물이 아니고 최근의 구조물이라고 한다
폼페이 광장(Foro di Pompei)의 얼굴 모형의 구조물 뒤로는
'주피터 신전(Tempio di Giove)'이 보이고
2000년전 화산 대폭발 화산재로 폼페이의 대참사를 전설로 만들어버렸던
베수비오(Vesuvio) 화산이 보인다
폼페이 광장(Foro di Pompei)의
반인반수인 켄타우로스(Kentauros) 동상이다
이 부조 또한 최근 것이라 한다
광장에서 먼저 '풍요의 길(Via dell' Abbondanza)'로 발길을 향한다
주요 신전들과 광장들도 이 거리를 따라 자리잡고 있고
항상 사람들이 붐비고 화려한 물건들이 많아서
아본다차 거리(Via dell' Abbondanza:풍요의 거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길에는 무거운 마차가 많이 다녀 움푹 파인 바퀴 자국도 남아 있었다
풍요의 길(Via dell' Abbondanza)의 길을 걷다보면
여러 현장에서 아직도 유적을 발굴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문지방으로 사용했던 돌에
일직선으로 홈을 파놓은 흔적이 있다
이것은 당시에 미닫이 문을 사용했다는 흔적이라고 한다
풍요의 길(Via dell' Abbondanza)을 걷다가 골목길에서 보는
병원으로 사용했다고 하는 건물이다
골목길을 걷다보니 몇몇 집 벽에
남근을 형상화한 부조들을
집 입구 문 위에 만들어 붙여 놓고 있었다
홍등가(紅燈街) 뜻인
루파나레(Vicolo del Lupanare)에 있는 한 집으로 들어간다
당시에도 공식적으로 매춘하는 장소가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서 벽을 보니
프레스코화로 그린
성관계 그림 벽화가 각 장소마다 그려져 있었다
루파나레(Vicolo del Lupanare)에서
루파(Lupa)는 라틴어로 '암늑대'라는 뜻이지만
'매춘부'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한다
당시 호객 행위를 하는 여성들이
마치 암늑대가 교태스럽게 우는 듯한 소리를 내는 곳이라 하여
루파나레(Lupanare)라고 불렀다고 한다
매춘 장소의 침대이다
어두침침한 여러 각 방마다 돌침대가 있고
침대 위 벽에는 다양한 성행위 장면의 프레스코화가 있는데
2000년전의 생활상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홍등가 유적에서 빠져나오는 중에 보는 것으로
조금전에는 나무로 남근 모양을 조각하여 집벽에 박아 놓았는데
여기에는 집벽돌에 남근 모양을 조각해 놓았다
수로(水路) 시설이라고 한다
2000년 전에 관으로 수로 시설을 하였다는데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때 당시에 원형관을 만들어 사용하였다니...
여기에서도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다시 '풍요의 길(Via dell' Abbondanza)'로 나왔다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와 있었다
풍요의 길(Via dell' Abbondanza) 바닥 돌에도
남근 모양이 조각되어 있었다
당시에 폼페이는 성문화가 개방적이었는지? 문란했는지?
우리나라 문화로서는 참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폼페이(Pompei) 광장으로 다시와 주피터 사원(Tempio di Giove)과
폼페이를 화산재로 오랜 세월을 전설 속으로 파묻어 버렸던
베수비오(Vesuvio) 화산이 잘 보이는 곳에 선다
주피터(Giove)은 그리스의 제우스(Zeus)와 동일한 신이다
폼페이 광장에 있는
베스파시아누스 신전(Tempio di vespasiano)의 입구
문기둥에 조각된 것을 보호하기 위하여 커버를 만들어 놓았다
공중 목욕탕(Terme del Foro) 유적으로 들어가자
정원이 펼쳐진다
목욕탕(Terme del Foro) 안으로 들어가니
때밀이 침상으로도 보이기도 하고
주위에 보조 의자가 놓여져 있어 사우나용 화로로도 보인다
목욕탕 천정에는 섬세하고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해 놓고
한쪽 벽에는 빛이 들오는 창을 만들어 목욕탕 내부를 환하게 만들고 있었다
욕탕의 개인 락커룸이라 한다
각 공간 사이에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듯한 조각상을 만들어 놓았다
욕조도 있는데 온탕이라 한다
현대식과 같이 온탕, 냉탕으로 구분해 놓았다고 한다
천정으로 빛이 들어 원형 구멍 옆으로는
물방울이 그냥 떨어지지 않게
가늘게 아래쪽으로 빗살무늬 홈을 파놓아 수증기 올라가 식은 물방울이
홈을 타고 밑으로 흘러 내리도록 한 과학적 설계를 하였으며
아래에 원형 구조물은 차가운 물을 받아 놓고 사용하는 통이라 한다
목욕탕에서 나와 건물 밖으로 문을 나오면
옆으로 예전에 음식점이었던 것으로 화덕 구멍들이 보인다
화구가 많은 것으로 보아 꽤 컸던 음식점으로 추정되며
목욕을 마치고 나와 음식을 즐겼던 것 같다
'비극 시인의 집(Casa del Porta Tragico)'이라 하여
비극적인 내용의 시를 지었던 시인이 살았던 집으로 알려져 있다
현관문 바닥에 모자이크로 만든 개 모습이 있고
'Cave Canem'라고 쓰여 있는데 개조심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벽에 염소 조각을 해 놓았다
염소가 가는 방향으로 가라는 표시라고 한다
마차, 수레들의 '일방통행'을 의미한다고 한다
수도 시설이 있는 우물이다
당시에 폼페이(Pompei)가 얼마나 발전하였는지
유적을 돌아보면서 당시의 폼페이의 발전상을 가늠해 볼 따름이다
발굴 유적들을 모아 놓은 창고이다
각종 다양한 토기와 조각품들을 쌓아두고 있다
화산재에 쌓여 굳은 어린아이로 보이는 시신이다
쪼그리고 앉아 화산재에 굳은 시신이다
죽어가며 얼마나 고통에 힘들어 했을까하는 소름이 올라온다
화산재에 굳어 있는 개 사체이다
엎드려 죽은 시신이다
당시의 고통과 참옥함이 온몸에 느껴지는 순간이다
도로에 징검다리가 있다
당시에도 마차 바퀴 폭 규격이 있었는지 마차가 지나칠 수 있도록
마차 바퀴 폭 규격에 맞추어서 돌다리 놓았다고 하며
비가오면 빗물이 흐르는 마차길을 피해 인도를 건너는 징검다리 역할도 했다고 한다
폼페이 유적지를 한바퀴 돌아 관광을 마친 우리는
폼페이 기차역으로 향한다
폼페이 유적지에서 내려와 뒤돌아 본
폼페이 유적지이다
폼페이(Pompei)에서 소렌토(Sorento)까지는 버스가 아닌
기차로 이동한다고 하여
폼페이 역(Pompei Station)으로 와 기차가 오기를 기다린다
기차는 우리의 전철 같은 형식이었는데 입석으로
소렌토(Sorento)까지 가게 되었다
소렌토(Sorrento) 역에 도착한다
소렌토(Sorrento)라는 이름은
'시레나(Sirena)의 땅'이라는 뜻의 수렌툼(Surrentum)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매혹적인 노래로 뱃사람들을 흘려 바다에 빠져 죽게 했다는
그리스신화 속 인어아가씨 세이렌(Siren)의 유혹도
바로 소렌토 앞바다에서 있었다고 하며
현재 경보를 나타내는 사이렌이란 단어가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시레나(Sirena)라는 인어아가씨의 담콤한 노래는 너무 황홀하여
이를 듣는 뱃사람들의 넋을 잃게 하여
그들을 모두 바다에 빠져 죽게 만든다고 한다
율리시스는 시레나의 노래 소리가 너무나 듣고 싶어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고 선원들은 모두 귀를 꽁꽁 막게하고
이 소렌토 앞바다를 지나갔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소렌토(Sorrento)는 인구 약 17,000명 정도 거주하는 작은 아름다운 도시이다
내셔날지오그래픽에서는
소렌토를 포시타노와 아말피 해안을 함께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봐야 할 곳 1위로 선정했다고 한다
나폴리 만과 살레르노 만을 가르는 반도의 나폴리 만 연안에 있다.
배후에는 산탄젤로 산(1,443m)을 정상으로 하는
반도의 척량 산맥인 라타리 산맥이 있다.
역사적으로는
그리스인이 처음 건설한 것으로 추정되며
고대 로마 시대에는 수렌툼이라는 휴양지였다고 한다
7세기에는 자치 공작령의 수도였으며
1137년에 노르만족의 시칠리아 왕국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소렌토(Sorrento)역 앞에 있는
임페리얼 트라몬타노 호텔 주인의 초청으로 소렌토에 머물게 되었던
시인이자 화가였던 잠바티스타 쿠르티스(Giambattista de Curtis)의 흉상이다
이 흉상은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urriento)'라는 노래가 나온 지 80주년이 되던
1982년 소렌토시가 잠바티스타 쿠르티스에게 헌정한 흉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노래를 쿠르티스 형제가 만들었지만
누가 작사, 작곡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고 한다
소렌토의 중심 광장으로
소렌토가 낳은 16세기의 유명한 시인 토르쿠아토 타소(Torquato Tasso)의
이름에서 유래된
타소 광장(Piazza Torquato Tasso)이다
거리에 야자수가 늘어서 있어 이국적인 풍경 속에
바로크 스타일의 카르미네 성당(Chiesa del Carmine)을 비롯해
카페와 레스토랑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타소 광장(Piazza Torquato Tasso)에서 조금 지나면
바닷가 쪽 절벽 아래에 길쭉한 U자 형태로 뻗은
해안 도로를 보는 뷰포인트가 나온다
여기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장소라고 한다
1903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30세에 데뷔한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가 머물렀던 레스토랑이라 한다
이 거리는 '카루소 거리'라고 하는데
엔리코 카루소의 이름을 딴 카페와 레스토랑이 많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는
모든 음역대를 커버할 수 있는 최고의 성악가 였지만
48세의 젊은 나이로 나폴리에서 죽음을 맞이 했다고 한다
카루소 거리 골목길을 빠져 나오니
성 안토니노 광장(Piazza Sant' Antonino)이 나온다
카프리섬(Isola di Capri)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하여
소렌토 항구 피콜라 부두(Marina Piccola)로 내려 가는
루이기 데 마이오 길(Via Luigi de Maio)이다
루이기 데 마이오 길(Via Luigi de Maio)은
'S'자 형으로 절벽길을 돌아
소렌토 항구 피콜라 부두(Marina Piccola)로 내려 가는 길로서
내려가다 보면 아름다운 절경을 보는 포인트가 나온다
소렌토 항 피콜라 부두(Marina Piccola)에서
카프리 섬(Isola di Capri)으로 가기 위해 배에 오른다
소렌토 항에서 카프리섬까지는 여객선으로 약 30분 정도 소요 된다
카프리섬으로 가면서 뒤돌아 본
소렌토 반도 쪽으로
멀리 베수비오(Vesuvio) 화산이 보인다
카프리 섬(Isola di Capri)은
바다의 요정 사이렌(Siren)이 산다는 신화를 가지고 있는 섬으로
현재 약 2만명 정도 거주하는 작은 섬이지만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며
기원전 그리스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로마 제국 초기에는 황제들의 휴양지(카프레아이)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거주하였었다고 하며
티베리우스 황제는 여러 채의 별장을 지었다고도 한다
또한 나폴리가 내려다 보이는 섬의 북동부 끝머리에서는
이오비스 별장이 발굴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10세기에 주민들은 해적들의 약탈을 피하여
해안가 정착지를 버리고 바위산 위쪽 높은 지대인
지금의 카프리 시(Capri)와 아나카프리(Anacapri)로 옮겨 살기 시작 하였으며
19세기에 카프리와 아나카프리 사이를 연결하는 마차 길이 생기기 전까지
아나카프리는 스칼라 페니차(페니키아의 계단)로 불리는
800개의 계단을 통해서만 왕래가 가능했다고 한다
중세 때 카프리 섬은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에 귀속되었고
아말피 공화국의 일부를 이루다가
나폴리 왕국에 넘어갔다고 한다
나폴레옹 전쟁중 프랑스와 영국에 번갈아 점령되었다가
1813년에 양시칠리아 왕국에 반환되었다고 한다
배는 카프리 섬(Isola di Capri)의 관문인
마리나 그란데(Marina Grande) 항구에 들어선다
카프리 섬의 마리나 그란데(Marina Grande) 항구 부둣가에는
많은 카페와 레스토랑과 기념품들이 있어
관광객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미니 버스를 타고 저 바위산 뒤쪽에 있는 아나카프리(Anacapri)로
오르고 있는 중이다
저 바위산 위쪽이 카프리섬의 최고봉인 솔라로산(Monte Solaro:589m)이다
솔라로산(Monte Solaro:589m) 정상으로 가기 위하여
아나카프리(Anacapri)로 가는 암벽을 깍아 만든 아찔한 절벽길을 가며 내려다 보는
소렌토 반도와 마리나 그란데(Marina Grande) 항구의
너무나도 아름다운 앞바다이다
아나카프리(Anacapri)로 오르는 절벽길에서 보는
산 위의 카프리 시(City Capri)이다
절벽길을 산위로 올라서 체어 리프트(Chairlift)를 타는 곳으로 가는 중
산 아래에서 쳐다보았을 때
아나카프리(Anacapri)에는 산 위라서 집들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주유소가 보인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체어 리프트(Chairlift)를 타려고
골목길을 걷는데
담장 넘어로 공동묘지가 보인다
솔라로산(Monte Solaro:589m)으로 올라가는
체어리프트(Chairlift)이다
체어 리프트(Chairlift)를 타고 솔라로산(Monte Solaro:589m)에 오르는데
걸리는 시간은 13분 정도이며
왕복 요금은 11유로, 편도 요금은 8유로라고 적혀 있다
리프트를 타고 솔라로산(Monte Solaro:589m)으로 오르는데는
일반 개인집 정원 위로도 지나친다
솔라로산(Monte Solaro:589m)으로 오르는
체어리프트(Chairlift)는
스키장 리프트와는 비슷하나 한 명씩만 타고 오르내리는 리프트였다
솔라로산(Monte Solaro:589m)으로 오르면서 보는
아나카프리(Anacapri)이다
절벽 위에 이 처럼 많은 집들이 있는 도시로 형성되어 있었다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바다나 해안가에서는 암벽 산 위를 바라 보았을 때에는
이 처럼 많은 집들이 있는 도시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였기 때문이다
솔라로산(Monte Solaro:589m) 위에 올라 리프트에서 내려
정상으로 계단을 조금 오르면서 보니
바닷가 쪽으로는 절벽이다
카프리섬의 최고봉 솔라로산(Monte Solaro:589m)에서 보는
마리나 피콜라(Marina Piccola) 해안이다
마리나 피콜라의 절벽 위에는
아우구스토 정원(GIardini di Augusto)이 있다
아우구스토 정원(GIardini di Augusto)은
절벽 위에서 짙푸른 바다와 해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있는
꽃과 나무와 조각상으로 아름답게 가꾼 드넓은 정원으로서
고대 로마 시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19세기에 들어와 독일의 사업가가 사들였다가
시에 기부하여 현재는 카프리 시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솔라로산(Monte Solaro:589m) 정상에는
정원으로 꾸며져 있으며
카페도 있어 정상에서 커피를 주문하여 의자에 앉아 잠시 발길을 머문다
솔라로산(Monte Solaro:589m) 정상의 한가운데 있는
꽃밭 조형물이다
솔라로산(Monte Solaro:589m) 정상에서
리프트를 타고 내려가며 보는 아나카프리(Anacapri) 지역이다
해안가에서는 상상도 못하였던 도시이다
아나카프리(Anacapri)의 버스터미널인
비토리아 광장(Piazza Vittoria)에 도착하니
마리나 그란데(Marina Grande) 선착장으로 내려가려 미니 버스를 대기하는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아나카프리에서 마리나 그란데(Marina Grande) 선착장으로 내려 가는
아주 좁은 절벽길이다
교행하기에는 너무 아슬아슬하여
낭떨어지 쪽을 바라보면 스릴이 느껴지는 길이다
급격히 180도 회전하는 길도 있으며
내려가는 차와 올라가는 차가 교행하는데
도로가 좁아
백미러 끼리 달듯말듯하며 지나친다
다시 마리나 그란데(Marina Grande) 선착장으로 내려와
배 탑승 시간이 여유가 있어
주변 상가들을 돌아다니며 눈요기 쇼핑과
마리나 그란데(Marina Grande) 선착장 옆에 있는
해수욕장에도 가보고
기념품 가게로 가서 카프리에 관한 기념품을 사서
배 탑승장으로 가 배에 오른다
카프리 섬(Isola di Capri)에서 나폴리(Napoli)로 가는 배로서
나폴리까지는 약 32Km 거리라고 한다
나폴리(Napoli)의 베베렐로 항(Porto Beverello)으로
여객선이 들어서고 있는데
누오보 성(Castel Nuovo)이 웅장하게 항구를 지키고 있었다
누오보성(Castel Nuovo)은
'새로운 성'이라는 뜻으로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왕 카를로 1세(CarloⅠ:재위 1266~85)가
왕국의 수도를 나폴리(Napoli)로 옮긴 후 지은 성이라 한다
프랑스에 있는 양주 가문의 성을 모델로 하였으며
프랑스 건축가 피에르 드 샤르네와 피에르 앙강쿠르의 설계로
1282년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1309년 로베르트(Robert) 왕이 성을 확장하였으며
1400년 원통형 기둥의 성을 세우는 등
여러 차례의 증 개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나폴리(Napli)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와 호주의 시드니(Sydney)와 함께
세계3대 미항(美港)으로 꼽는다
크루즈(Cruise)선들이 많이 정박하고 있다
나폴리만의 풍광은 너무도 아름다워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라고 한다
나폴리(Napli)의 도시명은
'새로운 도시' 의미의
그리스의 식민도시 네아폴리스(Neapolis)에서 기원한다고 한다
12세기 이후 나폴리 왕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18세기 말 부르봉 왕조 지배하에 있을 때에 이탈리아 최대 도시가 되어
40만 명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였다고 한다
1860년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1807~1882년)에게 정복 이후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상업 항이 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대부분의 항만 시설과 시가지가 파괴되면서
쇠락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밀입국하는 난민들과
시칠리아에서 활동했던 마피아 조직이
나폴리로 이동해 오면서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고 한다
나폴리(Napoli)에서 오늘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피우지(Fiuggi)에서 어제 밤에 묵었던
산 마르코 호텔(San Marco Hotel)로 되돌아 간다
피우지(Fiuggi)에서 또 하루를 보내고
오늘은 피렌체(Firanze)로 간다
피우지(Fiuggi)에서 출발한지
4시간 정도 지나
피렌체(Firenze) 외곽에 도착을 한다
피렌체(Firenze)에 도착하자 피렌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산 위의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Michelangelo)으로 간다
광장 가운데에는 다비드 조각상이 서 있는데 광장의 상징이라고 한다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Michelangelo)'은
피렌체 시내를 한눈에 전망할 수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서
피렌체 중심가에서 아르노강(Fiume Arno) 건너편의 동쪽 언덕에 위치한 광장으로
미켈란젤로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1860년 주세페 포지가 조성하였다고 한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내려와
아르노(Arno) 강가에 있는 사진에서 보이는 니콜로 탑(Torre di San Niccolo)과
강 건너로 마주하고 있는 체카 탑(Torre della Zecca) 옆에서
버스에서 내려 피렌체(Firenze)의 골목길로 들어선다
지우세페 골목길(Via S. Giuseppe)을 걷다 보니
가죽 디자인 학교(Leather School)가 보인다
피렌체(Firenze)는 전통적인 수공예 제품업이 발달하였다고 하는데
유리제품, 도자기, 귀금속, 가죽제품 등이 유명하다고 한다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di Santa Croce)의 측면이다
일명 '성 십자가 성당(Basilica di Santa Croce)'이라 한다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di Santa Croce)은
1294년 아르놀 디 캄비오 설계로 착공하여 1442년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성당 지하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등
300여 명 위인들의 묘가 있다고 한다
산타 크로체 성당 앞에는 단테(Dante)의 동상이 있다
단테는 피렌체가 고향이다
산타 크로체 성당 앞 광장에는
카페,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 등이 있다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di Santa Croce)에서
단테의 집(Museo Casa di Dante)으로 가는
토르타 골목길(Via Torta)이다
오래된 높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이다
골목길을 빠져 나오니
산 피렌체 광장(Piazza di San Firenze)이다
프로콘솔로 거리(Via Proconsolo)의
바르젤로 미술관(Museo Nazionale del Bargello)를 지나
단테의 집(Museo Casa di Dante) 으로 향한다
단테의 생가를 박물관으로 꾸민 '단테의 집(Museo Casa di Dante)'이다
단테(Dante)는
불멸의 걸작 '신곡'으로 르네상스 문학의 지평을 열었다고 한다
박물관에는 그리 볼거리는 없다고 하며
생전에 거주했던 흔적만 있다고 한다
단테의 집 앞에서 기념사진만 찍고
두오모 성당으로 향한다
스투디오 골목길(Via dello Studio)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로 보이는 두오모(Duomo) 성당이다
'두오모(Duomo) 성당'의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Cath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이라고 하며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이라 한다
1296년부터 약 150년간 아르놀포, 조토, 프란체스코 탈렌티 등
당대 유명 건축사들의 손길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성당의 거대한 돔(Dom)인
두오모 쿠폴라(Cupola di Brunelleschi)는 지름이 42m로서
브루넬레스키가 독창적인 형태로 이중벽 구조의 팔각형 형태로 설계한 것으로
당시의 건축 기술로는 불가사의한 일 가까워
감탄과 찬사가 쏟아진 초기 르네상스 건축의 걸작이라고 한다
두오모(Duomo) 성당의 '조토의 종탑(Campanile di Giotto)'이다
14세기 중반에 건축한 탑으로
르네상스 회화의 조토가 1층을 지었으며 조토가 죽은 후
그의 제자 안드레아 피사노가 짓고
프란체스코 탈렌티가 장미색, 흰색, 녹색의 3색 대리석으로 마감하여
14세기 말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높이 85m의 종탑 꼭대기까지는 414개의 계단이 있다고 한다
두오모(Duomo)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오늘은 굳게 닫혀 있어 아쉬운 마음이다
안에는 바사리와 주카리가 그린 ''최후의 심판' 천장화가
있다고 하던데.....
두오모(Duomo)의 붉은 색의 쿠폴라(Cupola)와
조토의 종탑(Campanile di Giotto)이
웅장하면서도 섬세함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두오모 광장(Piazza del Duomo)의
산 조반니 세례당(Battistero di San Giovanni)이다
피렌체의 수호성인 산 조반니(San Giovanni)를 기리기 위해
4세기경에 지은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11세기에 재건하였다고 한다
지름 25.6m에 이르는 팔각형 건물을 흰색과 녹색 대리석으로
세례식을 거행하였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 후까지 단테를 비롯한 수 많은 사람의
세례식을 거행하였다고 한다
산 조반니 세례당(Battistero di San Giovanni) 건물의
세 방향에 있는 청동 문이다
남쪽 문에는 안드레아 피사노가 세례자 요한의 삶과
가톨릭의 덕목을 새겼다고 하며
북쪽 문과 동쪽 문에는 기베르티가 '신약성서'와 '구약성서' 내용을
묘사하였다는 부조로서
사진은 동쪽 문으로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고 극찬하였다는 문이다
두오모 광장(Piazza del Duomo)에서 골목길을 따라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으로 발길을 옮긴다
칼치아이울리 길(Via de Calziaiuoli)을 따라
도보로 약 3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의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이다
건축가 겸 조각가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설계로 지은 후
수차례의 개조를 거쳐 16세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메디치(Medicis) 가문의 코시모 1세(CosimoⅠ:1519~1574년)가 정부 청사 건물을
아르노 강 건너편에 있는 피티 궁전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피렌체의 역사와 함께하였다고 한다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의
피렌체의 영광을 만들기 시작한 코시모 1세(CosimoⅠ)의 기마상으로
1594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은
피렌체의 정치와 사회의 중심이었던 광장으로
중세 때는 공공집회가 열리던 중심 광장이었다고 힌다
1576년 세워진 넵튠 분수이다
포세이돈을 상징으로 피렌체가 해전에서 승리했음을 기념하는 것이라 한다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 앞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과 반디넬리의 '헤라클레스와 카쿠스' 조각상이 있는데
둘 다 모조품이라 한다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의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 옆에는
로지아 데이 란치(Loggia dei Lanzi)가 있다
14세기 말 코시모 1세가 비가 오는 날의 집회 장소로 세운 것이데
현재는 예술 작품들의 복제품을 전시하는 야외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유명한 작품으로는 첼리니의 '페르세우스' 잔볼로냐의 '사비네 여자들의 겁탈' 등의
모조품이 전시되고 있다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을 떠나려 하는데
관광객을 실은 백마차가 온다
시뇨리아 광장에서 산타 크로체 성당으로 가는 그레치 거리(Borgo dei Greci)에서
산 피렌체 광장(Piazza di San Firenze)이 보이고
우측편으로 바르젤로 미술관(Museo Nazionale del Bargello)이 보인다
16세기 사법부의 우두머리 바르젤로(Bargello)의 집무실 이었으며
이후 경찰서, 감옥, 이교도를 고문하는 장소 등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미술관이라 한다
중앙의 미색 건물은 법부관 재판소이고
뒤로 보이는 첨탑은
피오렌티나 모나스테로 대성당(Badia Fiorentina-Monastero)이다
시뇨리아 광장에서 산타 크로체 성당으로 가는 골목길인
그레치 거리(Borgo dei Greci)이다
그레치 거리(Borgo dei Greci)에서 걸어 가며 보는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di Santa Croce)이다
피렌체(Firenze)에 도착하여 골목길 투어를 하기 위해
버스에서 내렸던
체카 탑(Torre della Zecca) 다시 돌아와
버스를 타고 베네치아(Venezia)를 향해 출발한다
버스는 피렌체(Firenze) 외곽을 돌아 볼로냐(Bologna) 방향으로 향하는데
차창 밖으로 멀리 피렌체 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피렌체(Firenze)는 꽃의 도시인 '플로렌스'라고도 불리는 아름다운 도시로서
로마에서 북쪽으로 230Km 거리에 있으며
인구가 약 39만명 정도 거주하고 있는 도시라고 한다
피렌체(Firenze)에서 볼로냐(Bologna)로 가는 도로는
산악지형을 넘어가는 높은 길이다
피렌체(Firenze)의 역사는
기원전 2세기부터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BC 1세기경 로마의 군사 식민지에서 비롯되어
12세기 이후 16세기에는 모직물과 귀금속을 중심으로
경제적 번영을 이루며
유럽의 상공업과 금융업의 중심지로 성장하여
주변의 도시들을 지배하면서 강력한 공국으로 우뚝 서
토스카나 공작령의 수도, 이탈리아의 수도(1865~1871년) 등
다양한 지위를 누리며 긴 역사를 이어 온 도시라고 한다
또한 피렌체(Firenze)는 르네상스를 꽃피운 도시로
유명한 인물들이 많이 활동하였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브루넬레스키, 단테, 마키아벨리,
갈릴레오, 메디치 가문들이 활동한 도시라고 한다
베니스(Venezia)를 향하여
볼로냐(Bologna)의 외곽을 돌아 가는 중이다
볼로냐(Bologna)는
유럽에서 가장 된 것으로 알려진 볼로냐 대학교가 있는 곳으로
볼로냐 대학교(Bologna University)는
1088년에 설립되어 유럽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대학교라고 한다
볼로냐(Bologna)는
또한 빨간 도시 볼로냐(Bologna la Rossa)라고도 한다고 한다
볼로냐 시는 붉은 벽돌 건물들이
도시 전체에 산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파도바(Padova)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호텔로 이동하는 일정이라
파도바에 있는 중국 식당으로 들어 간다
파도바(Padova)는
베니스(Venezia)에서 38Km 정도 거리에 있는 도시로
BC 4세기부터 존재한 도시로
한 때는 로마제국 다음으로 부유한 도시였다고 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간직한 학문과 종교와 산업의 도시라고 한다
저녁식사가 끝나자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한다
산 도나 디 피아베(San Dona di Piave)에 있는
베스트 웨스턴 파크 호텔(Best Western Park Hotel)이 오늘의 숙소이다
산 도나 디 피아베(San Dona di Piave) 지역은
베니스(Venezia)에서 33.6Km 거리에 있는 지역이다
다시 아침이 되어
베니스(Venezia)로 출발한다
오늘의 일정은 베니스(Venezia)를 둘러보고
밀라노(Milano)까지 가는 일정이다
베니스로 이동 중에 버스가 검문소 같은 부스 앞에 정차한다
베니스로 들어가는 버스는
탑승 인원에 맞추어 요금을 내고 베니스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베니스(Venezia)로 건너 가는 리베르티 다리(Liberty Bridge)에서 보는
육지 쪽의 마르그헤라 항(Porto Marghera)지역의 산업단지이다
리베르티 다리(Liberty Bridge)에서 보는
베니스(Venezia) 항구이다
크루즈가 뒤로 보인다
베니스항 주차장에서 버스에서 내려
수상 버스를 타는 선착장으로 이동하는 장소에 있는 노점이다
베니스의 트론케토(Tronchetto) 지역의 수상 버스(Vaporetto) 선착장이다
여기에서 수상버스를 타고
아르세날레(Arsenale) 선착장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대형 크루즈(Cruise) 선 2대가 정박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많은 관광객이 들어 온 것 같은데
대형 크루즈가 들어와 정박할 수 있는 시설이 저 정도 크기로 있다는 것에
우리도 하는 부러움이 앞선다
세계 유일의 수상 도시 베네치아(Venezia)는
118개의 섬이 400여 개의 다리로 이어진 석호 위에 건설되었으며
인구는 약 262,000여 명이 거주하는 도시라고 한다
베니스섬 쪽에
로사리오의 산타 마리아 교회(Church of Santa Maria del Rosario)가 보인다
우리가 수상 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 뱃길 주데카 운하(Calale della Giudecca)를 두고
베네치아(Venezia) 섬과 주데카(Guidecca) 섬이 마주하고 있는데
주데카섬 쪽에 레덴토레 교회(Chiesa del Santissimo Redenyore)가
웅장하게 보인다
베네치아(Venezia) 섬 쪽으로
산타 마리아 살루테 교회(Basilica di Santa Maria della Salute)가 보인다
주데카 운하(Calale della Giudecca)이다
주데카 운하는 베네치아(Venezia)섬과 주데카(Giudecca)섬 사이에 있는 바다이다
베니스(Venezia)섬 쪽에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과
산마르코 대성당(Basilic di San Marco)의 종탑(Campanile)가 보인다
주데카(Giudecca)섬 끝단 지나있는 산 조르조(San Giorgio)섬의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Chiesa di San Giorgio Maggiore)이 보인다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Chiesa di San Giorgio Maggiore)'은
르네상스 후기의 유명 건축사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1508~1580년)가
설계하여 건축하였으며 100년 후쯤 시몬 소렐라가 개축하였다고 한다
성당 내부에는 틴토레토(Tintoretto:1518~1594년)의 대표작
'최후의 만찬'이 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다르게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예수의 모습과
제자들에게 포도주와 빵을 나눠주는 성찬식 모습이라고 한다
아르세날레(Arsenale) 선착장에서 수상버스에서 내려
레스토랑 및 기념품샵들이 몰려 있는
스치아보니 제방(Riva degli Schiavoni)을 걷는다
스치아보니 제방(Riva degli Schiavoni)에서
골목길로 조금 들어 가면
무어인 깃발 광장(Campo Bandiera e Moro)의
산 조반니 브라고라 성당(San Giovanni in Bragora)이 나온다
성당 옆에는 비발디(Antonio Lucio Vivaldi:1678~1741년) 생가가 있는데
비발디가 어린시절 세례를 받은 교회라고 한다
비발디는 4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四季)' 작곡으로 유명하다
산 조반니 브라고라 성당(San Giovanni in Bragora) 앞 마당으로
반디에라 에 모로 광장(Campo Bandiera e Moro)으로
일명 '무어인의 깃발 광장'이다
산 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 쪽으로
스치아보니 제방(Riva degli Schiavoni) 길을 걷다보니
그레치 운하(Rio del Greci) 끝 쪽으로
그리스의 성 조르지오 교회(Chiesa di San Giorgio dei Greci)의 종탑이 보인다
산 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으로 가는
스치아보니 제방(Riva degli Schiavoni) 길이다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과 탄식의 다리(Ponte dei Sospiri)로 연결되어 있는
'누오베 감옥(Prigioni Nuove)'이다
전설적인 바람둥이로 유명한
카사노바(Giacomo Girolamo Casanova:1725~1798년)도
풍기문란 죄로 이 감옥에 수감되었는데
가면 무도회 때에 간수를 매수하여 가면을 쓰고 탈출하였는데
멀리 도망가지도 않고 근처 카페로 가서
커피 한잔 마시며 여유를 부렸다는 유명한 무용담이 전하여 지고 있으며
당시에 카사노바가 들렸다는 카페도 현재 영업 중이라고 한다
1600~1603년에 안토니 콘티노(Antoni Contino)의 설계로 만들어진
탄식의 다리(Ponte dei Sospiri)는 그 이름에 특별한 사연이 있다고 한다
'탄식의 다리(Ponte dei Sospiri)'는
총독부가 있던 두칼레 궁과 누오베 감옥을 연결하는 다리로서
두칼레 궁에서 재판을 받고 감옥으로 이동하던 죄수들이
이 다리를 건너가면 밖의 세상을 다시는 평생 볼 수 없기에
이 다리에서 마지막으로 창문 밖을 쳐다보면서
한숨을 내쉬며 탄식하였다고 하여
'탄식의 다리(Ponte dei Sospiri)'라는 이름이 붙여 졌다고 한다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은
도제의 궁전(Doge's Palace)이라고도 불리는
옛 베네치아 공화국 총독의 관저로
9세기에 짓기 시작하여 1442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박물관으로서
카르파치오의 '산 마르코의 사자' 벨리니의 '승천'
틴토레토의 '천국' 베로네세의 '베네치아의 찬미' 등의
베네치아 화가 들의 벽화 및 천장화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스치아보니 제방(Riva degli Schiavoni) 길에서
산 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으로 들어가는 길의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과 길 건너 편으로 마주하고 있는
국립 마르차나 도서관(Biblioteca Nazionale Marciana)과
산 마르코 석주(Colonne di San Marco)가 보인다
산 마르코 광장에 들어서면 대종루(Campanile)가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높이 98.6m로 대종루 꼭대기에 올라서면
베네치아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하며
대종루(Campanile di San Marco)는
12세기에 등대로 지어졌다가
1514년에 종탑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로서 건축 기술로는 유일무이한 탑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다른 곳에 가서 똑같이 건축하지 못하도록
설계자의 눈을 실명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산 마르코 광장(Piazza di San Marco)의 시계탑(Torre di Orologio)이 보인다
15세기 말엽 르네상스 양식으로 시계탑(Torre di Orologio)은
베니스의 영광과 부를 주목시키기위해 산마르코 광장에 세워진 것이라 한다
시계탑 옥상에는
청동 종과 청동 종치기 2명의 조각상있는데
예전에 노예를 거래했던 무어인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 밑으로는
날개 달린 사자상이 성경을 펼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는 원래 시계탑을 설계하고 완공시킨
아고스티노 바르바리고(Agostino Barbarigo:1420~1501년)의 도제의 상이 있었으나
1797년 나폴레옹이 베니스를 정복한 후 철거하고
사자상이 마르코 복음(마가복음)을 펼치고 있는 모습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 아래로는
가운데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 양 옆으로
좌측에는 로마자 우측으로는 아라비아 숫자가 공존하는시계의 숫자가 있는데
로마자는 시간을 아라비아 숫자는 5분마다 변하는 분을 표시하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에는
동방박사 3사람이 천사를 따라 나타나 나팔을 불며 게이트 웨이를 한다고 한다
또 그 아래로는
황금 도금을 한 시계가 안쪽으로 12개 별자리 표시와
밖으로는 24시간 로마자 표시로 시간을 알려주는 원형시계가 있다
베네치아(Venezia)의 정치. 종교. 문화의 중심이었던
산 마르코 광장(Piazza di San Marco)이다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가장 우아한 응접실'이라고 표현한 광장으로
12세기 운하를 메워 조성한 광장이라고 한다
베네치아의 수호성인 마가의 유해를 모신 성당
'산 마르코 대성당(Basilica di San Marco)'이다
823년 베네치아의 두 상인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성당에서 발견한
'마가복음'의 제자 성 마르코의 몰래 훔쳐와
이를 모시기 위해 지은 성당이라고 한다
비잔틴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히는 외관은
동방 스타일 돔과 성서에 나오는 일화가 조각된 문이 5개 있다
산 마르코 대성당 입구의 모자이크 성화로
1836년 완성 된 것으로 '최후의 심판'을 형상화 한것이라고 한다
산 마르코 광장(Piazza di San Marco)의 주변에는
종교적 상징인 성 마르코 대성당이 있고
정치와 권력의 상징인 두칼레 궁전
법의 상징인 검찰청과 법원 등이 모여 있어 정치와 종교의 중심이었으며
이곳에서 처형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축제와 공연 등이 여리기도 하여 문화의 광장이었으며
지금은 여행의 구심점이 되어 관광객들의 끊이지 않고 몰리는 곳이며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오케스트라 음악이 분위기를 더하는 장소라고 한다
산 마르코 광장 앞에 있는 부두가로 나와 곤돌라를 타고
운하 관광에 들어 간다
산 마르코 광장 앞에서 탄 곤돌라(Gondola)는 대운하 쪽으로 이동하여
그 쪽에서 골목 운하로 뱃길로 들어간다
곤돌라(Gondola) 종류는 2~6인 용이 있으며
3명이 4인용에 탄 우리 곤돌라는 노젓는 사공의 콧노래를 흥얼 거림에 맞추어
좁은 운하를 서서히 휘젓고 다닌다
수로 쪽으로 문들이 나있는 집들이 많이 있었다
습기를 먹어서인지 어둡고 음침해 보였는데
문들이 닫혀 있는 1층이 무슨 용도인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곤돌라(Gondola)들이 모두 검은색이다
한 때에는 화려하게 꾸민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1562년 사치금지법이 실시된 뒤로 모든 곤돌라는 검은색으로 통일되었다고 한다
곤돌라로 좁은 골목 수로 돌아 본 후 산 마르코 광장 뒤편에서 내려
다시 산 마르코 광장으로 왔다
산 마르코 광장 주위를 걸어서 둘러보기 위하여
건물 사이의 골목길을 누비고 다녀 본다
건물의 뒷 골목은 허전하고 관광객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
한산한 거리였다
건물사이 골목길을 걸어 건물 뒷편으로 가보니 곤돌라(Gondola)들이 몰려 있다
바치노 오르세오로 곤돌라 정류장(Gondola Station Bacino Orseolo)라고 한다
다시 산 마르코 광장을 지나
대운하 방조제 수상택시 정류장인 페르마타 마르코(Fermata Marco)에서
수상택시 탑승 순서를 기다린다
주데카 운하(Calale della Giudecca)에서
대운하(Canal Grande)로 진입하는 수로이다
대운하(Canal Grande) 진입로 초입 좌측에는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lla Salute)이 있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lla Salute)'은
1630년 경 베네치아 인구의 1/3 정도가 흑사병으로 목숨을 잃었는데
흑사병 종식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성당이라고 한다
10만 개에 달하는 나무 말뚝을 박아 그 위에 세운 성당으로서
공모전에서 당선된 무명 건축가 론게나(Longhena)가 설계하여
그가 죽기 전 1년전인
1682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베네치아의 대운하(Canal Grande)는
산타 루치아 역(Stazione di Venazia Santa Lucia)에서
산 마르코 광장(Piazza di San Marco)까지
'Z'자 형태로 이어지는 운하이다
대운하의 주변에는
아름다운 옛 건물들이 터줏대감처럼 자리잡고 있어
수상택시를 타고가며 마음을 들뜨게 한다
대운하 주변에는유명 브랜드 샵과 기념품 샵이 늘어서 있는
쇼핑 일번지로서
항시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이라고 한다
대운하 구간 중 리알토 다리에서 산 마르코 광장까지는
대성당 및 궁전들이 많이 있는 곳이다
1854년 대운하에 2번째로 건축된 아카데미아 다리(Ponte dell' Accademia)이다
수상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베네치아의 현지 가이드는 열심히 설명하며 열변을 토해내는데
설명하는 곳을 찾아보랴
구경하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을 것은
산 사무엘레 교회(Chiesa di San Samuele) 건축물이다
카 포스카리 대학교(Universita Ca' Fodcari)라고 한다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의 옆으로
산 바르톨로메오 교회(chiesa di San Bartolomeo)의 첨탑이 보인다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는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다리라고 한다
상업적 필요에 의해 대운하에 목조다리를 축조하였으나
불에 타거나 허물어졌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당대에 유명한 예술가 및 건축가들 이었던
미켈란젤로, 팔라디오 등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어 당선된
안토니오 디 폰테(Antonio di Ponte)가 리알토 다리 설계와 건축을 맡아
1591년 길이 48m, 넓이 28m에 이르는 석조다리를
곤돌라와 배가 지나갈 수 있도록 완공하였다고 한다
1854년 아카데미아 다리(Ponte dell' Accademia)가 건축되기까지는
대운하를 건너는 다리로는 유일하였다고 한다
리알토 시장(Rialto Mercato) 건물이라고 한다
베네치아에서 고딕 건축물의 대명사로 불리는
하얀건물 카도르 갤러리아(Galleria Ca' d'Oro) 건물이 수상보트 뒤로 보인다
카 도로(Ca' d'Oro)는 '황금의 집'이라는 뜻으로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건물 정면이 황금으로 도금되어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1424~1430년 사이에 베네치아의 귀족 콘타리니(Contarini) 가문의 저택으로 지었으며
1927년부터 프란케티 미술관(Galleria Giorgio Franchetti)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베네치아에서 유일하게 나무 정원이 있는 집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집 값은 상상이 안되는 엄청날거라고 한다
18세기의 부호 페사로(Ca' Pesaro) 가의 저택이라고 한다
1628년에 착공해서 1710년에 완성한 건물로서 건축가 롱게나가 건축 설계한
화려한 비잔틴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라고 한다
1902년부터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1층과 2층은 국제 근대 미술관이며 3층은 동양 미술관이라고 한다
11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세워진
산 제레미아 성당(Chiesa di San Geremia)은
구약의 예레미아 성인을 주보로 모신 성당이며
성녀 루치아(Santa Lucia)가 잠들어 있는 성당이다
성녀 루치아(Santa Lucia)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지 160년 후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시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하나님께 동정을 서원한 그녀는 물려받은 유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었는데
루치아에게 청혼하였던 남자가 결혼 지참금이 없는 것에 분개하여
루치아가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당국에 고발하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최고조로 심할 때로서
감옥에 갇혀 불길 속에 던져지고 두 눈이 뽑히는 고문을 당하며
배교를 강요를 받았지만 끝내 신앙을 버리지 않아
마침내 칼을 입에 넣는 형벌을 받고 서기 304년 12월 13일 순교하였다고 한다
루치아(Lucia)는 눈을 뽑히는 고문을 당하였기에
루치아(Lucia) 이름은 빛을 의미하는 룩스(Lux)와 연관 있으며
시력이 약하거나 시력을 잃은 사람들과 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수호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고 한다
산타루치아 역(Station of Santa Lucia) 부근의 대운하(Canal Grande)에서
작은 골목길 운하인 트레 폰트 운하(Rio del Tre Pont)로 접어들어
트레 폰티 다리(Ponte Tre Ponti) 밑을 통과하고 있다
대운하(Canal Grande)에서 트레 폰트 운하(Rio del Tre Pont)로
접어든 이유는 주데카 운하(Calale della Giudecca)로 나가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트론케토(Tronchetto)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 이다
주데카 운하(Calale della Giudecca)로 빠져 나오니
크루즈 선착장이 나온다
전에 여기를 지날 때에 선착장에는 2대의 크루즈가 정박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크루즈 3대가 정박되어 있었다
트론케토(Tronchetto) 지역 선착장에서 수상택시에서 내려
주차장으로 걸어나오는데
기념품 노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베니스 섬에서 육지 쪽으로
리베르티 다리(Liberty Bridge)를 건너가며 보는
베네치아 마르코 폴로 국제공항(Venecia Marco Polo International Airport)을
바라 본다
리베르티 다리(Liberty Bridge)를 건너 조금 달리다보니
베네치아 역(Venezia Porto Marghera Railway Station)이 보인다
베네치아(Venezia) 섬은
118개 섬에 400여 개의 다리를 연결되어 이룬 섬으로
567년 훈족의 침입에 쫓긴 롬바르디아(Lombardia) 난민이 흘러들어와
수상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하였으며
697년 초대 총독이 선출되어 독자적인 정치체계를 확립하였다고 한다
7세기 이후부터는 약 4세기 동안 지중해 무역으로 번성을 누렸으며
아드리아 해를 사이에 두고
여러 도시와 각축을 벌여 당시 해상 공화국이던
피사, 아말피, 제노바를 차례로 정복하였다고 한다
13세기 후반에는 대형 범선의 등장에 마르코 폴로가 중국까지 가며
동서양의 문화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18세기 후반에는 프랑스 나폴레옹에게 점령 당하기도 하였으며
또 오스트리아 영토가 되기도하는 영욕의 역사가 있었으나
1866년 이탈리아에 병합되었다고 한다
19세기 이후 리도섬에서 열리는 베니스 영화제로 더욱 유명하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환경변화로 인하여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으므로 물에 잠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밀라노(Milano)에 거의 다 온것 같다
밀라노(Milano)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패션의 중심지"라는 단어로
세계 패션 유행의 시발점의 고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밀라노(Milano)는
BC 600년경 갈리아족이 처음에는 정착하였고
수세기 동안 켈트족의 수도였다고 한다
BC 222년 경에는 메디올라눔(mediolanum)이란 지명으로
남부 알프스의 로마인 지배지역에서 가장 막강한 도시 중 하나였다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로마제국이 이분되면서
밀라노를 황궁소재지와 행정중심지로 삼았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Milano)를 '이탈리아의 대리자'로 선언하였다고 한다
밀라노(Milano)는
374년에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가 대주교가 되면서
밀라노는 북부 이탈리아의 종교 중심지가 되었으나
452년 훈족 아틸라의 침략이 있었고
539년 고트족에 의해 도시가 파괴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아리베르토 다 안티미아노(1018~1045년) 치하에서
대주교의 정치적세력은 절정에 달했으나
대주교의 권위가 실추되고 주민 생활이 나아짐에 따라 정치제도는
자치도시(Commune)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후 도시들 간의 주도권 싸움으로 많은 침공과 파괴도 있었으나
1176년 레냐노 전투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의 게르만 세력을 격퇴한 후
100년 이상의 찬란한 경제적 전성기를 이루었다고 한다
1450년 스포르차에게 점령 당했고
1535년 합스부르크의 황제 카를 5세(KarlⅤ)가 밀라노 공국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1796년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입성하였고
1805년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고 나폴레옹이 대관식을 가졌다고 한다
1848년 오스트리아 지배에서 이탈리아 통일의 시민봉기에 의해
밀라노가 마침내 독립하였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합군의 집중 포격으로 심한 손실을 입었으나
밀라노(Milano)는
이탈리아의 통일국가 성립 이후 경제, 문화, 사상 분야에서
선두적 역할을 하며
현재는 인구 135만 명 정도가 거주하는 도시라고 한다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이다
'라 스칼라(La Scala)'라고도 하는
이 극장은 세계 3대 오페라 극장 중에 하나라고 한다
1776년 화재로 불타버린 두칼레 극장(Teatro Ducale) 자리에
1778년 신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은 유서 깊은 극장이라고 한다
8월에는 휴가철로 공연이 없으며
밀라노의 수호성인 암브로시우스의 축일인
매년 12월 7일 공연이 시작되며
12월에서 7월 사이에는 오페라를 공연하며
9월에서 11월 사이에는 발레를 공연한다고 한다
조수미도 여기에서 공연하였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년) 동상이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 길 건너 편에 서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피렌체(Firenze) 출신이지만
밀라노(Milano)의 루도비코 스포르자(Ludovico Sforza) 대공의 지원을 받아
밀라노(Milano)에서 1482~1499년 17년간 활동하였는데
작품은 최후의 만찬 등의 6점만 남겼다고 한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Ⅱ)로
들어가는 문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동상 옆에 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Ⅱ)는
거대한 아케이드 쇼핑몰로
1865년 170 여 명이 공모한 가운데
공모전에서 1등을 차지한 주세페 멘고니(Giuseppe Mengoni:1829~1877년)가
1865~1877년까지 13년에 걸쳐 완공하였다고 한다
아케이드의 긴 쪽은 약 200m 짧은 쪽은 약 100m로
십자가 형태로 길이 교차되어 있으며
유리와 철골로 된 아치형 지붕으로 덮여 있으며
아케이드는 두오모 광장과 연결되어 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Ⅱ)의 중앙부인
아케이드 길이 교차되는 중심부에는 황소 문양의 있는데
생식기 부분에 홈이 파여 있어
이 곳에 발 뒤꿈치로 밞고 떼지 않고 한바퀴를 돌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로마의 건국 신화를 그린 모자이크화이다
로마의 건국 신화는
트로이 전쟁에서 패한 전쟁 영웅 아이네아스(Aeneas)로 부터 시작하는데
아이네아스는 일행이 새로운 트로이 건설하기 위하여
이탈리아 근처까지 갔으나 풍랑을 만나 카르타고까지 밀려가 생활하다가
다시 이탈리아 티베르 강가에 도착한다
아이네아스(Aeneas)는 그 곳에서 지역을 다스리는 지배자와 협력도 하고
또 침공하는 세력과 전쟁도 하며
그 지역을 13대 후손에 걸쳐 다스리게 된다
13대 알바의 왕 프로카스가
누미토르(Numitor)와 아물리우스(Amulius) 두 아들을 두고 죽자
형인 누미토르가 왕이 되자 동생 아물리우스가 반정을 일으켜
누미토르를 국외로 추방하고 누미토르의 아들들은 죽이고
딸 레아 실비아(Rhea Silvia)는 처녀신 베스타(Vesta) 여신의 무녀로서
평생 처녀로 살도록 하였으나
신전에 바칠 물을 뜨러 마르스 신의 숲으로 갔다가
그녀를 보고 반한 마르스(Mars) 신에게 겁탈 당한 후 쌍둥이를 낳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아물리우스(Amulius)는 쌍둥이를 죽이라고 명하자
신하는 아기들을 차마 죽이지 못하고
바구니에 실어 테베레(Tevere) 강에 띄어 보낸다
흘러가다가 언덕에 걸려 배가 고파서 울고 있을때에 마침 물을 마시러 왔던 늑대가 물고가
늑대우리에서 젖을 물려가며 키우고 있었다고 한다(사진 그림)
이 때 이 곳을 지나가던 양치기가 늑대가 없는 틈을 타서
아기를 데리고 가서 아들로 삼아키웠다고 한다
이 아이들이 로물루스(Remulus)와 레무스(Remus)로서
성장하면서 출생의 비밀을 알게되면서 세력을 규합하며 힘을 키워서
아물리우스(Amulius)를 죽이고
할아버지 누미토르(Numitor)를 모셔와 같이 나라를 다스리던 중
의견 충돌이 생겨 동생 레무스(Remus)을 죽게 만든다
누미토르(Numitor)가 죽은 후
로물루스(Remulus)가 로마를 건국하였다는 신화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년) 동상이 있는 쪽에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Ⅱ)을 가로 질러
반대편으로 나오니
두오모 대성당 광장(Duomo Cathedral Square)이 나온다
두오모 광장(Piazza del Duomo)에 서 있는
통일 이탈리아의 최초의 국왕이었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Vittorio EmanueleⅡ:1820~1878년) 동상이다
세계에서 4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두오모(Duomo) 대성당'이다
1386년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Gian Galeazzo Visconti:1351~1402년)가 착공한 후
500 여 년의 긴 세월에 걸쳐 건축한 끝에 높이 158m, 너비 93m의 거대한 크기로
1858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건물 벽에 성인과 동물을 묘사한 3600여 개의 조각상과
135개의 첨탑이 세워져 있고
그 중 가장 높은 첨탑에는 황금 빛 마리아 상이 있다
벽의 성인과 동물을 묘사한 조각상은 악귀가 들어 오려다
이 것들을 보고 놀라서 도망가게 하는
악귀를 쫒는 부조라고 한다
밀라노(Milano)를 끝으로 이탈리아에서 관광을 모두 마치고
오늘 저녁을 보낼 숙소로 향한다
내일 아침에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넘어 갈 예정이다
밀라노(Milano) 시내에서
버스는 북서쪽으로 40분 거리에 있는
Pregnana Milanese 지역의 모니카 호텔(Monica Hotel)로 향한다
Pregnana Milanese 지역의 모니카 호텔 피에라(Monica Hotel Fiera)에서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아침 날이 밝기 전에 스위스를 향하여 출발한다
이탈리아(Italia) 여행을 하며
찬란한 로마제국의 역사를 간직한 이탈리아 국가 소개가 늦었는데
국토 면적은 301,336㎢로
우리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 면적 223,348㎢ 보다 1.35배 넓고
인구는 약 5,900만 명이 살고 있는 국가이다
민족 구성은 이탈리아인으로서
로마카톨릭을 90% 이상이 믿고 있는 민족이다
지형은 산지가 많은 편으로 700m 이상의 산지가 35%를 차지하며
구릉지대가 42%, 나머지 23% 정도가 평지라고 한다
2019년 통계 국가 GDP는 약 1조 9,886억 달러로 세계 8위이고
1인당 GDP는 33,350 달러로 세계 26위로
우리 대한민국 보다 조금 잘사는 국가이다
<대한민국: 국가GDP 1조6566억 달러(세계11위), 1인당 GDP 31,940달러(세계29위) 2019년>
코모 호수(Lago di Como)가 보인다
알프스 산악지대의 만년설이 녹아 흐른 물이 고인 호수라고 한다
밀라노(Milano) 외곽의
모니카 호텔 피에라(Monica Hotel Fiera)에서 출발한지
약 1시간 정도 지나자
이탈리아 국경도시 코모(Como)의 마슬리아니코(Maslianico) 지역을 통과하여
스위스의 국경도시 치아소(Chiasso) 지역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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