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프랑스 파리 여행

천황봉 2016. 11. 7. 12:24

스위스 튠호수(Thunersee)가 있는

Zweisimmen 지역의 Rawil Sternen Hotel에서

새벽 4시 버스가  빗속에 출발 한지

2시간 40여분 만에 스위스 국경도시 바젤(Basel) 지역에서

 

프랑스 생루이(Saint Louis)로 국경을 넘어와 뮐루즈(Mulhouse)를 지나

프랑스 파리 동역으로 가는 TGV 기차를 탈 수 있는

벨포트(Belfort) 역을 향해 버스는 A36번 도로를 달리 가고 있다

 

스위스에서 국경을 넘어와 

생루이(Saint Louis)에서 1시간 정도 달려

벨포트(Belfort) 시내에 도착한다

 

벨포트(Belfort)는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프랑슈콩테 지방 벨포르 주의 사부뢰즈 강 연안에 있는

인구 약 51,000여 명이 거주하는 작은 도시이다

 

벨포트(Belfort)에 도착하자

예약된 TGV 탑승 시간이 촉박하여

벨포트 역 플랫폼으로 부지런히 이동한다

플랫폼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으니 열차가 도착하여

열차에 올라 파리(Paris)로 출발한다 

 

프랑스(France)는

동쪽으로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 있고

서쪽으로는 스페인, 안도라와 국경이 맞닿아 있고

북동쪽으로 룩셈부르크, 벨기에와 국경이 맞닿아 있으며

북쪽으로 도버해협 건너 영국이 있고

남쪽에는 모나코, 지중해가 있다

 

프랑스의 국토 면적은 543,965㎢로

우리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 면적 223,348㎢ 보다

약 2.5배 넓은 국가이다

 

프랑스는 소규모 기업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여 발전된 혼합 경제로서

세계에서 주요 경제 부국에 속하는

유럽공동체(European Union:EU)의 창립 회원국이다 

 

프랑스의 국가 GDP는 약 2조 7,070억 달러로 세계7위 이며

1인당 GDP는 약 4만 4,933 달러로 세계 19위이다

<대한민국: 국가GDP 1조6295억 달러(세계12위), 1인당 GDP 32,046달러(세계28위) 2019년>

 

정부와 의회 형태는 공화제와 양원제로서

국가 수반은 대통령이고 정부의 수반은 수상이다

노정-슈흐-센느(Nogent-Sur-Seine)를 지나가고 있는 중

원자력 발전소에서 수증기를 뿜어내고 있다

 

 프랑스 인구는 6520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민족 구성으로는 대부분 골족으로서

과거 여러 시기에 걸쳐 중동과 아프리카로부터 지중해를 건너오거나

중앙 아시아와 북유럽으로부터 유럽을 가로질러 이주해와

영구적으로 정착한 다양한 이민들의 후손이다

 

종교는 전체 국민의 83%가 로마 가톨릭교도이지만

규칙적으로 성당에 다니는 신도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하며

그 중에서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예배에 참석한다고 한다

이슬람교인은 10% 정도로 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 한다고 하며

개신교인은 3% 정도이나 여러 종파로 갈라져 있다고 한다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Paris)에 거의 도착한다

인구가 214만여 명이 거주하는 도시이다

 

파리 동역(Gare de Paris-Est)에 

우리가 탄 기차는 서서히 접어들고 있다 

 

벨포트(Belfort)에서 출발한지

약 4시간 정도 소요되어 파리 동역에 도착하여

기차에서 내린다 

 

파리 동역(Gare de Paris-Est)

1849년 개업한 역으로

현재 이 역은 주로 프랑스 동부의 샹파뉴-아르덴, 알자스, 로렌 내에 있는

스트라스부스, 뮐루즈, 낭시, 메스 등의 대도시를 잇는 국내선과

룩셈부르크, 프랑크푸르트(M), 슈투트가르트, 취리히, 뮝헨, 베를린 등을 잇는

국제선을 운용하고 있다

 

파리 동역은

파리 북역과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단 5분 거리에 있다

그래서 파리에 처음 온 여행자들은 '분명 북역인데

북쪽이 아닌 동역과 근접해 있네?' 하며 의아해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두 역은 파리에서

치안이 영 좋지 않은 것으로 악명 높은 파리 10구에 위치해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국내 여행책자에서는

이 곳을 지날 때 범죄에 조심하라고까지 써있다고 한다

 

오페라 극장(Opera Garnier)이 보인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하고 호화로운 오페라 하우스라고 한다

디자인 콩쿠르에서 우승한 당시 무명의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가  설계를 담당하여

나폴레옹 3세 치하인 제2제정 시대

오스만의 파리 개조 계획의 일환으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폭 125m, 안 길이 73m, 총 면적 1만1000㎡로

극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방돔 광장(Place Vendome)이다

루이 14세(LouisⅩⅣ):1638~1715년)의 기마상을 세우기 위해

망사르(Mansart)가 설계한 광장이라고 한다

기마상은 대혁명 때 파괴되었고

나폴레옹 1세가 자신의 기마상을 원기둥으로 세웠다고한다

그 후 시대에 따라 원기둥 위는 알리 4세, 왕가의 문장인 백합꽃,

하사관 모습의 나폴레옹으로 바뀌었다고 하며

현재는 1874년에 복원된 나폴레옹 기마상 복제품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샹젤리제 대로(Aye. des Champs Elysees)로 접어든다

개선문(Arc de Triomphe)으로 향하는 중이다

 

개선문(Arc de Triomphe)이다

나폴레옹 1세는 체코의 오스테를리츠 전투에서

9시간의 혈전 끝에 승리한 병사들을 치하하며 개선문을 세웠다고 한다

 개선문은 1806년 착공하여 1836년 완공되었는데

 나폴레옹은 개선문 완공 전에 실각 돼 유배되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사망한지 19년만인

1840년에 관에 실린 채 개선문을 통과하였다고 한다

 

개선문에서 이어진

샹젤리제 거리(Ave. des Champs Elysees)로 간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샹젤리제 거리(Ave. des Champs Elysees)의 지역은

들판과 습지였다고 한다

17세기 초에 이 거리가 정비되었는데

프랑스 앙리 4세(1589~1610 재위)의 왕비였던

 마리 드 메디시스 (Marie de Medicis)를 위한 산책길을 조성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낙원'이라는 뜻의 '엘리제'를 따서

낙원의 들판(샹젤리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파리 중심가에서 남서쪽으로 23Km 거리에 있는

베르사유 궁전(Chateau de Versailles)으로 이동하였다

정문 앞에는 입장하려는 관광객들이

지그재그로 엄청난 긴줄로 붐비고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Chateau de Versailles)은

프랑스 절대 왕정의 최고 전성기를 상징하는 명실상부한

'세계 역사상 최고이자 최대의 궁전'이라고 한다

이 궁전은 태양왕 루이 14세의

유사 이래 가장 화려한 궁전을 지으라고 명령함으로

건축가 르 보(Le Vau), 망사르(Jules Hardouin-Mansart),

실내 장식가 르블랑(Charles Le Brun),

조경가 르 노트르(Andre Le Notre) 등의 당대 최고 기술가들이 모여

막대한 비용을 들여 반세기의 세월에 걸쳐 완공하였다고 한다 

 

입장하기 위하여 한참을 지그재그로 줄서 가고 있지만

정문은 아직도 멀리만 보인다  

 

베르사유 궁전(Chateau de Versailles)의

왕가 문장이 금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입구의 정문이다

태양왕으로 불리던 루이 14세(Louis XIV:1638~1715년)가

1682년에 파리에서 이곳으로 궁전을 이전하여

1789년 대혁명이 일어나기까지

프랑스의 정치,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서 번영했던 곳이라 한다

 

왕실 소성당(Chapelle royale)이다

망사르가 설계한 성당으로 높은 천장에는 삼위일체 이야기와

 예수의 부활과 재림 등 성서를 모티브로 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이곳이 루이 15, 16, 18세와 샤를 10세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던 곳이며

특히 1770년 루이 16세와

사치로 프랑스의 재정위기를 초래했던 마리 앙투아네트(Marie-Antoinette)

결혼식이 거행되었던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복도 한켠에 놓여져 있는 조각품이 눈길을 끌어 사진에 담았다

작품명을 담지 못하여 아쉬움이 있다

 

1668년 르 노트르(Andre Le Notre)가 조경한

베르사유 궁전 정원이다

 

헤라클라스의 방(Salon d’Hercule)의 천정화이다

 

비너스의 방(Salon de Venus)의 천장화이다

 

거울의 방(La galerie des Glaces)이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

천장에는 루이 14세의 생애를 묘사하는 천장화가 그려져 있으며 

천장화 아래에는 샹들리에가 반짝이고 있는 복도가

길이가 73m에 10.5m에 달하고

 17개의 창문과 578개의 거울이 있는 방이라고 한다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에서 내려다 보는

베르사유 궁전 정원이다

베르사유 궁전 정원은 넓이가 815ha에 이르는 규모로

신화를 소재로한 조각상이 200개에 이른다고 하며

아폴론 샘의 분수가 보인다 

 

 

거울의 방(La galerie des Glaces)의 한켠에

프랑스의 발전된 제조기술을 보여 주는 곳으로

아치형의 대형 거울이 맞은편 유리창과 대칭을 이루며

화려하게 늘어서 있는 곳이다

 

 

베르사유 궁전 밖으로 나오니

아름 광장(Place de la Armes)이다

 

 

센강(Seine River)이다

프랑스 중북부를 흐르는 길이 776km의 강이다 

부르고뉴프랑슈콩테 레지옹 코트로르주 디종 근처 랑그레 고지에서 발원하여

트루아, 파리, 루앙, 르아브르를 거쳐 영불 해협으로 빠져나간다

 철도가 건설되기 전에는 내륙수로(內陸水路)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센강의 미라보 다리(Pont Mirabeau)이다

1895년~1897년에 지어진 다리로서

1975년 프랑스의 역사적인 기념물로서 지정되었다고 한다

길이는 173m, 폭은 20m이며 4개의 조각품이 있다

 

 

센강 건너 편으로 고층 빌딩들이  몰려 있는

그흐넬르(Grenelle) 지역이 보이고 그흐넬르 다리(Pont Grenelle) 옆에는

파리의 자유 여신상(Statue of Liberty Paris)이 보인다

 

 

프랑스 파리하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에펠탑(Tour Eiffel)이

눈 앞에 펼쳐진다

잠시 후 에펠탑 위로 올라 갈 예정이다

 

 

앵발리드 다리(Pont des Invalides)에서 보는

센강과 에펠탑이다

 

 

이른 저녁식사부터 하기 위하여

앵발리드(Invalides) 부근의 식당가로 간다

 

앵발리드(Invalides)이다

1670년 루이 14세(Louis XIV)가

퇴역 상이군인(앵발리드)의요양을 목적으로 창설한 요양소라고 한다

지금은 군사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앵발리드(Invalides)는

프랑스 고전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조화를 이룬 종교 예술의 걸작으로

루이 14세를 기리기 위한

망사르(Jules Hardouin-Mansart)의 설계로 지어졌다고 한다

지하에는 나폴레옹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고

묘소 입구에는 "나는 내가 깊이 사랑한 프랑스 국민에게 둘러싸여

센 강에서 쉴 수 있기를 바란다"라는

그의 유언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Pond AlexandreⅢ)의 석주 위에

금색의 화려하게 세워놓은 사자와 여신 등의 조각상들이 보인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 준공된 다리로서

파리 센강의 다리에서 가장 호화롭고 장식이 많은 다리라고 한다

1893년 체결된 러.불 동맹을 기려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AlexandreⅢ)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앵발리드 공원(Invalides Park)에서 바라 보는

센강 변의 에어 프랑스(Air France) 본사 건물과

그 뒤로 프랑스의 관공서들 건물이다 

 

앵발리드 다리(Pont des Invalides)를 건너며 보는

센강(Seine River)의 알렉상드르 3세 다리(Pond AlexandreⅢ)이다

 

샤요 궁전(Palais de Chaillot) 앞으로 온다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회장으로 설립되었다고 한다

 

샤요 궁전(Palais de Chaillot) 앞으로 온 이유는

에펠탑을 전망하기 위한 아주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라 한다

 

샤요 궁전(Palais de Chaillot) 광장 뒷편에

페르디난드 포치 마레시아 동상(Statue di Ferdinand Foch Maresciall)이 있다

 

 

샤요 궁전에서 센강을 건너

에펠탑(Tour Eiffel) 아래로 왔다

 

에펠탑(Tour Eiffel)은

1889년 귀스타프 에펠(Alexandre Gustave Eiffel)의 설계로 세워졌다

당시 파리 7구인 앵발리드(Invalides) 지역의

'고귀한 거리'라고 불리던 '귀족의 거리'에 세워졌으며

현재는 많은 행정기관이 밀집한 관청가라고 한다

 

에펠탑(Tour Eiffel)이 세워질 당시에는

세계 최고 높이인 301m(안테나 높이까지는 324m)로

총 중량 약 9,700톤의 철재로 세워졌는데

건축 중에는 파리의 경관을 해치는 쇳덩어리라고 비난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완성 후에는 새로운 예술로 각광을 받았으며

20년 후에 해체될 예정이었지만

무선 전신 전화를 위한 안테나 탑으로 존속하게 되어

현재는 파리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탑은 총 3층으로 각 층마다 전망대가 있어

제일 높은 층은 3층으로

가장 꼭대기 제3 전망대인 엘레베이터로 오른다 

 

에펠탑(Tour Eiffel)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니

좌측으로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이 보이고

오른편 알렉상드르 3세 다리(Pond AlexandreⅢ) 뒤로

먹구름과 함께 무지개가 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둥근 돔(Dom)의 앵발리드(Invalides)가

엄청 솟구쳐 올라와 보인다

 

에펠탑(Tour Eiffel) 아래 남서쪽 방향의 모습이다

 

에펠탑(Tour Eiffel) 전망대에서

남서쪽 방향의 센강의 시뉴섬(ile aux Cygnes) 주변이다

 

에펠탑(Tour Eiffel) 전망대에서

북서쪽으로 센강 레나 다리(Pont d'lena) 건너 

샤요 궁전(Palais de Chaillot)이다

새가 날개를 편듯 우아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현재 여러 박물관과 국립극장이 들어서 있는 문화 공간이라고 한다

 

에펠탑 제3 전망대를 한바퀴 돌아보며 전망하다가

에펠탑 엘리베이터를 다시 타고

센강 유람선 타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밑으로 내려 온다

 

유람선에 오르니

서쪽 하늘엔 붉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루브르 박물관(Musee du Louvre) 옆을 지나쳐 간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센강의 퐁 데자르(Pont des Arts: 예술 다리) 건너편으로

프랑스 연구소(Institut de France) 건물이 고풍스럽게 서 있다

 

센 강의 시테섬(Île de la Cité)이다

현재의 프랑스 파리(Paris)라는 도시는 시테섬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BC 3세기말 이 섬에 갈리아 부족이 살던 조그만 취락이 시초라고 한다

이 취락의 최초의 이름은 '루테리아(Luteria)'로

'강 중류의 거주지'라는 뜻이라 한다

BC 52년 로마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Iulius Caesar)가 쳐들어 왔을 때

루테리아 부족들은 금화폐 주조소를 가지고 있을 만큼

부유하고 조직화된 부족이었다고 하며

당시에 로마인들에게 항복하기 보다는 섬을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1세기에 루테리아 취락은 로마의 도시로 발달하며

센강 주위로 확장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제는 거리에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하며

센 강의 유람이 야경 유람으로 전환된다

 

센 강에서 유람선이 왔던 길을 되돌려

에펠탑(tour Eiffel) 방향으로 향한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Pond AlexandreⅢ)도 보인다

 

에펠탑(tour Eiffel)에 다가가니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비가 오는데  빗속에 야경 사진이 잘 찍히려나 걱정했는데

의외로 잘 나온것 같다

 

 

파리 시내에서 북쪽 Epinay-Sur-Seine 지역의

ibis호텔에서 프랑스에서 날이 밝았다

 

Epinay-Sur-Seine 지역에서

약 40분 정도 소요되어

파리 중심가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 앞에 도착한다 

 

루브르 박물관(Musee Louvre)은

세계 3대 미술관의 하나로

동서 약 1Km, 남북 300m 규모이며

루브르 궁전 내에 30만 점이나 되는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루브르 박물관(Musee Louvre)은

원래는 12세기 말에 바이킹의 침략으로부터 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필리프 2세(Philippe II:재위1179~1223년)가 요새로 지은 궁전이라고 한다 

1546년 프랑수아 1세가 그 터에 루브르 궁전을 지었고

 그뒤 수세기에 걸쳐 많은 증축과 개조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1682년 파리 생활에 싫증을 느낀 루이 14세(Louis XIV:1638~1715년)

 베르사유에 화려한 궁전을 지어 거처를 옮긴 뒤

초기에는 왕실에서 수집한 각종 미술품을 보관 · 전시하는

소극적 의미의 미술 전시관이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집권한 이후

수 없이 많은 원정 전쟁을 통해 예술품을 매입, 선물, 약탈하면서

대규모 박물관으로 변모하며

1793년 8월 박물관으로서 처음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고 한다

 

1981년대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

예술품 전시와 새로운 문화 시설 조성을 위한 프로젝트

'그랑 루브르(Grand Louvre)'에 의해

유리 피라미드와 지하 단지가 조성되었는데

유리 피라미드 설치는 

루브르 궁 건물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반대 의견이 많았지만

지금은 루브르 박물관을 상징하는 구조물이 되었다고 한다

 

유리 피라미드는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이오밍 페이(Jeoh Ming Pei)가

기획하고 설치한 것으로

루브르 박물관(Musee Louvre)의  중앙 입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유리 피라미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장소로 새롭게 변신하는 계기가 되어

전세계 관광객들이 엄청 몰리는 박물관이 되었다

박물관 입장은 건물 아래로 내려가 피라미드 밑을 지나게 되어 있다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1757~1822)의

'에로스의 키스로 되살아난 프시케(Psyche)'라는 작품이다

안토니오 카노바는 이탈리아 출신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조각가로서

고대 조각을 연구하고 모방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프시케(Psyche)는 '영혼'을 의미하는 것으로

'에로스의 키스로 되살아난 프시케(Psyche)'라는 작품 내용은

프시케(Psyche)는 왕의 딸 세명의 공주 중 한명으로

가장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어

시기심이 많은 아프로디테(Aphrodite)에게 질투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아프로디테는 큐피드(Cupid=Eros)를 시켜

프시케가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사람과 사랑에 빠지도록

황금 화살을 프시케에게 쏘라고 한다

이에 큐피드는 프시케를 찾아가 화살을 쏘려는 순간

그녀의 미모에 반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큐피드는 프시케에게 자신은 어둠 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고 말하며

자신을 밝게하여 보면 영원히 헤어질 수 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언니들은 프시케를 질투하여 남편이 괴물일지 모르니

확인해 보라고 부추기어 고민에 빠지다가

어둠 속에 잠이든 큐피드를 보기 위해 촛불을 밝히고 보다가 촛농을 떨어뜨려

잠에서 깨어난 큐피드는 실망하고 프시케에게서 떠나게 된다

절망에 빠진 프시케는 남편을 찾아 헤메다가

결국 아프로디테의 신전에 찾아가 애원하게 되는데

아프로디테는 어려운 시험 과제를 내주는데 프시케는 어려운 과제를 다 견뎌내고

마지막 과제로 지하세계에 가서 페르세포네에게서

'미(美)'를 조금 얻어 오는 과제로서 만나서 '미(美)'를 얻게 되는데

큐피드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에

열어 보지 말라고한 '미(美)'가 담긴 상자를 열어보게 되고

순간 그 안에 죽음의 잠이 프시케를 덮친다

이 때 큐피드가 나타나 키스로 프시케를 죽음에 잠에서 깨워 구하는    

조각 작품이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의

'반항하는 노예'라는 조각상이다

교황 율리우스 2세(Julius II:재위1503~1513년)의 영묘를 장식하기 위해

여러가지 조각상을 제작하며 '죽어가는 노예'와 함께 제작한 작품이다

'노예'를 통해서 당시 교회의 억압과 권력 속에서

작업해야 했던 미켈란젤로 자신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 한다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라는 조각상이다

미켈란젤로가

'반항하는 노예'와 함께 제작한 작품이다

 

 

장 오귀스트 도미스트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의

'샤를르 7세(CharlesⅦ) 대관식의 잔다르크'라는 작품이다

샤를르 7세의 영광스러운 대관식을 그린것이지만

대관식(1429년)을 주제로 삼지 않고

잔다르크의 영웅적인 모습을 전면에 더 부각시킨 작품이라고 한다 

 

 

앙느 루이 지로데 드 루시 트리오종

(Anne Lousie Girodet de Roussy Trioson:1767~1824년)의

'대홍수'라는 작품이다

한 사내가 나직한 절벽에 서있는 고목을 붙들고

등에는 힘빠져 허공중에 발이 늘어져 있는 아버지인듯한 노인을 업고 

아내와 자식들을 구하기 위해 절망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다

부러져가는 나무를 붙들고 바위에 완강히 버티어 선

그의 몸과 두 다리는 터질듯 긴장되어 있고

두 눈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다

그는 넘실거리는 물결 위 바위 턱에 아슬아슬하게 활처럼 축느려진 여인의

오른손을 꼭 붙든 채 끌어 올리려 안간힘을 다하고 있

축 늘어진 상태에서도 여인의 왼손에는

역시 공포에 질려 울음을 터트린 아기를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다

또 다른 아이 하나가 일렁이는 물살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여인의 목과 머리채를 뒤에서 꼭 움켜쥐고 있

남편에게 붙들려 있는 오른손은 피가 통하지 않는 듯 퍼렇게 보인다

이 그림은 보면서 이 현 시대에서도 살아가는

우리 중년의 삶에 애잔함이 느껴옴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외젠 들라크루아(Ferdinand Victor Eugène Delacroix:1798~1863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1830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7월 혁명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나폴레옹 이후 샤를 10세가 1814년 왕정을 복귀했지만

1830년 의회 선거에서 시민 후보에게 패하자

샤를 10세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금하고 입헌군주제를 거부하였다

그러자 시민들이 이에 대항해 1830년 7월 28일 혁명을 일으켰다

이 혁명으로 3일간 2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샤를 10세를 몰아내고 시민군이 승리하였다

외젠 들라크루아는 이에 감동하여 이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1748~1825년)의

'나폴레옹 대관식'이다

이 자품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두번째로 큰 작품이라고 한다

베르사유 궁전에 전시되어 있던 그림을

1889년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 온 그림 이라고 한다

현재 베르사유 궁전에도 이 그림이 있는데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 브뤼셀로 망명한 자크 루이 다비드가

1822년 다시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나폴레옹 대관식' 작품 배경 설명은

1804년 12월 2일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열렸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황제 대관식 장면이다

당시에는 황제가 되려면 로마로 가서 교황에게 씌워 주는 왕관을 써야 했는데

권력이 막강했던 나폴레옹은

당시 교황 비오 7세(Pope Pius VII)를 파리로 불러 대관식을 하는 장면이라고 한다

그림에서 교황이 씌워 주는 왕관이 아니라 직접 왕관을 쓰는 장면으로

나폴레옹은 교회로부터 독립적인 강력한 왕권으로한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보여주려는 장면이라고 한다

이 대관식에서 황후인 조세핀에게도 나폴레옹이 직접 황후의 관을 씌워 주었다고 하며

교황은 참석하여 두손 모으고 앉아 있는 것을

한 손을 들어 축복해 주는 것으로 변경하였다고 한다

이 그림에서 5명의 여동생들 옆에

참석하지 않은 나폴레옹 어머니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사모트라케의 니케(Nike of Samotbrace)라는 작품이다

그리스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을 대표하며

루브르 박물관의 3대 소장품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사모트라케의 니케(Nike of Samotbrace)'의 조각상은

BC 196년 로도스(Rhodos)가 시리아와의 해전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신전에 바쳐진 것이라고 한다

이 조각상은 머리 부분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극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앞으로 활짝 젖힌 몸과 뒤로 펼친 날개는 하늘로 날아가려는 느낌을 준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이 조각상은

뱃머리에 막 내려앉는 니케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라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드농관(Denon)에 도착을 한다

작품을 보려는 사람들로 엄청나게 붐빈다

등치 좋은 인파를 뚫고

품 앞으로까지 가서 본다는 것은 눈치 봄 없이 뻔뻔해져야 하고

보통 고행이 아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모나리자(The Mona Lisa)' 작품이다

이 작품도 루브르 박물관의 3대 소장품 중에 하나라고 한다

이 작품의 정확한 이름은

'프란체스코 델 지오콘도의 아내 리사 제라르디니의 초상(Portrait de Lisa

Gherardini , epouse de Francesco del Giocondo)'이라고 한다

이 작품이 유명해진 것은

1911년 8월 22일 루브르 박물관 청소 중 도난 사건 때문이라고 한다

도난 후 2년간 경찰 수사에도 작품을 찾을 수 없었는데

도난에 관한 각종 언론 기사가 수 없이 쏟아지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모나리자'의 가치가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1913년 3월 12일 범인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한 미술상에게 '모나리자' 작품을

구매할 의향을 물어보는 편지를 보냈다가 잡혔다는데

범인은 '모나리자' 액자 제작에 참여 했던 유리공 '비센초 페루자'였다고 한다

이후 '모나리자' 작품은 유리관 속에 갖혀 지금의 모습이라고 한다

 

모나리자의 모델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나

모델은 피렌체의 귀족인 프란체스코 델 지오콘다(Francesco del Giocondo)

세번째 부인 엘리자베스(Elizabeth)로 알져려있다고 한다

지오콘다의 애칭이 '리자(Lisa)'였고

이탈리아서 부인을 부를때 '모나(Mona)'를 붙이기 때문에

'모나리자(The Mona Lisa)'라는 제목이 붙었다고 한다

 

그림에서 보이는 모나리자 옷은 두가지로 해석한다고 하는데

임산부 복일 경우 임신 또는 출산을 기념하기 위한 작품으로 해석되며

검은 옷이 상복일 경우 어린 딸의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 조각상이다

이 조각상도 루브르 박물관의 3대 소장품 중에 하나이다

 

이 조각상은

BC 150년경 멘데레스 강 유역 안티오키아의 한 조각가가 만들었다고 하며

1820년 에게해 남부의 키클라데스 제도에 있는 밀로 섬에서 발견되어

'밀로의 비너스'라고 한다

무릎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자세나

부드럽게 넘어가는 옷의 주름이 헬레니즘 미술의 전형적인 스타일로 걸작이다

이 비너스 상은

완벽한 인체 비율로 최상의 아름다움에 속하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어

아름다운 여성의 표본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이 조각상은 특히

두 팔이 없다는 사실로 더 유명하여 졌다고 하는데

팔이 있을때 모습이 어떠한지 많은 추측을 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잠든 헤르마프로디투스(Hermaphroditus)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고 깜짝 놀랜 작품으로서

아름다운 여성 조각상으로 보고 감상하고 있었는데

뒤돌아 가서 보고는

남성 성기와 여성 가슴이 있음을 보고 깜짝 놀랜 작품이다 

'잠든 헤르마프로디투스(Hermaphroditus)' 조각상은

기원전 2세기 그리스 헬레니즘 조각품으로

여기의 작품은 1619년 베르니니(Pietro Bernini)의 복제 작품이라고 한다

헤르마프로디투스(Hermaphroditus)라는 이름은

헤르메스(Hermes)와 아프로디테(Aphrodite)의 불륜의 결과물로

둘의 이름을 그냥 갖다 붙인 것이라 한다

 

헤르마프로디투스는 남성인 동시에 여성인 양성인간으로서

원래는 그냥 미소년이었다고 한다

양성 인간된 설화는

어느날 미소년에게 여성 님프인 살마키스(Salmacis)가 사랑의 고백을 하며 다가와

달라붙으려고 하자 다가오면 도망치겠다며 적극적으로 거절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해서 사랑을 고백하며 다가오자 

도망하면서 따돌리고 어떤 샘물에 들어가 혼자 목욕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어코 뒤를 따라 온 살마키스가 옷을 벗고 살며시 접근해서 꽈악 끌어 안고는

신들에게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하였는데

기도를 들은 신들이 간절한 기도에 하나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하나의 몸으로 남자와 여자의 기능을 가지게 된 헤르마프로디토스는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님프가 자신에 붙어 한 몸이 되게하였던 샘물에 접한 이들은 모두 

자기와 같이 만들어 달라는 소원을

자신의 부모인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에게 빌었는데 소원을 들어주었고

 그 결과 그가 목욕했던 샘물에 목욕을 한 사람은 누구든지

헤르마프로디토스와 마찬가지로

한 몸에 남자와 여자의 기능을 전부 가지게 하였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젖 물리우는 딸'이라는 작품이다

제목만 보면은 퇴폐라고 생각되지만 내용을 알고나면 감동의 눈물이 나는 작품이다

혁명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감옥에 갇혀

굶겨 죽이는 가혹한 형을 받고 죽을 날을 기다리던 아버지에게

마지막 면회를 간 산후인 딸이

피골이 상접하여 굶주려 말라 죽어가는 아버지를 모습을 보고

슬픔에 잠겨 고개를 돌리고 

자신의 아기에게 물리던 모유를 아버지에게 물려 먹이는 장면이라고 한다

 

 

'사냥하는 아르테미스(Artemis) 여신상'이다

아르테미스(Artemis)는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이며

제우스와 레토의 딸로 아폴론과 쌍둥이 남매였다

숲과 사냥의 여신으로서 그녀는 젊은 여자들과 처녀성의 수호신으로

그의 오빠인 아폴론과 달리 밤을 대표하는 신이었다

또한 아르테미스(Artemis)는

천성적으로 복수심이 강하고 분노도 심하며 충동적이었으나

매우 용맹한 전사이면서 다른 신들에게 통제 받지 않는 독립심이 강하고

자기 확신이 강한 여신이었다

그녀는 활을 잘쏘는 명사수로 미모의 아름다운 여자 사냥꾼으로 묘사된다

그녀가 복수심과 분노가 심하다는 것은

자식을 7명을 둔 니오베가 자신의 엄마 레토를 조롱한 것에 화가나

니오베 가족을 몰살시키고

아레스를 납치해 일년간 감금하고 신들을 전복시키고자 했던

거인 알로아다이 형제를 그들이 서로 죽이는 것에 관여도 하고

테바이의 사냥꾼 악타이온이 사냥개 50마리를 데리고 사냥을 갔다가

아르테미스가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 몰래 지켜보는 모습을 보고 분개하여

악타이온을 사슴으로 만들어 그가 데려온 50마리 개에게 물려 뜯겨 죽게 하였다

 이 외에도 오리온 죽음 사건, 오이네우스 왕가 풍지박살 사건,

트로이 전쟁 때 아가멤논의 자호자찬에 분노하는 사건 등이 있다

 

 

루브르 박물관을 다 꼼꼼히 관람하려면

적어도 3일은 걸린다고 하는데

대충대충 지나치며 관람하고 2시간 정도 지나 밖으로 나온다 

 

점심식사를 하러 '서울 오페라'라는 한국 식당으로 간다 

 

메뉴를 보니 식단 종류가 굉장히 많다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으로 향한다

파리 중심가에서 북쪽의 끌리녕꾸르(Clignancourt) 지역에 있다

 

몽마르트르(Montmartre)는

피카소, 위트릴로 등 근대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곳이라 한다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 위로

사크레 쾨르 대성당(Basilique du Sacre Coeur)이

웅장하게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사크레 쾨르 대성당을 지나 성당 뒤편의

몽마르트르 언덕의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ertre)으로 먼저 간다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ertre)'은

몽마르트르(Montmartre)에서 가장 번잡한 광장이다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ertre)에는

주변에 살고 있는 화가들이

자기의 작품들을 팔거나

관광객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ertre)의

화가들이 몰려 있는 광장을 한바퀴 돌아 본 후

광장에 있는 길거리 카페에서 앉아 맥주로 마른 목을 축인다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ertre)에서

사크레 쾨르 대성당(Basilique du Sacre Coeur) 쪽으로

골목길을 내려가려는데

코끼리 열차가 골목길을 올라오고 있다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의

사크레 쾨르 대성당(Basilique du Sacre Coeur)이다

1870년 프랑스. 프로이센 전쟁과

1871년 파리 코뮌으로 세상을 떠난 병사들을 추모하고

가톨릭교도의 마음을 달래 줄 목적으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사크레 쾨르 대성당(Basilique du Sacre Coeur)은

하얀색의 파사드와 높은 돔이 특징인

로마네스크 비잔틴 양식의 대성당으로 몽마르트르 언덕의 상징이라고 하며

높이 80m 돔 전망대에서 한 눈에 들어오는 파리 전망은

가슴 펑 뚫리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고 한다 

 

사크레 쾨르 대성당(Basilique du Sacre Coeur) 앞 계단

몽마르트르(Montmartre)에서

내려다 보는 파리 시내 전경이다

언덕 하나 보이지 않는 파리 시내가 평원이다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에서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골목길로

내려가고 올라가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이제 보는 관광 일정을 모두 마치고

파리에서 유명한 몽쥬 약국으로 쇼핑을 하러 이동하는 중이다

 

몽쥬(Monge) 약국은 프랑스 파리에서

품질좋은 상품을 싸고 저렴하게 쇼핑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에게 매우 유명하게 알려진 곳이다

일부 관광객들은 한국에서보다 반값도 안되는 가격이니

안사면 손해라고 하며 구입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달팡(Darphin)크림, 유리아쥬 립밤(Uriage stick Levres),

꽁당세(Condense)로션 몇 개를 구입하여 나온다

 

나는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으니 품질과 가격은 알지 못하고

관심 밖인데

옆 사람들 이야기하는 것은 엿듣다 보니

한국의 1/3 가격이니

여기 것을 사용하다 다른데 것을 사용하면 차이가 심하다는 등

많은 사람들이 호평을 하고 있었다 

 

지나치며 보는

'노트르담 대성당(Cathedrale Notre Dame de Paris)'이다

파리 시테 섬에 있는 대성당으로

12세기 고딕 건축물의 최고봉이라 하며

 1163년 건축을 시작한 후 1320년 완공되었다고 한다

전체 길이 130m, 폭 48m, 천장 높이 35m, 탑 높이 69m의 대건축물로서

두개의 탑이 솟아 있는데

남쪽에 있는 탑에는 13톤의 큰 종이 달려있다고 한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잔다르크의 명예 회복 재판, 앙리 4세와 마르그리트 왕녀의 혼인,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등의 역사적 큰 사건이 있었으며 

빅토르 위고의 작품 영화〈노트르담의 꼽추의 무대이기도 했다

199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파리에 왔으니

프랑스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달팽이 요리를 먹으러 간다

 

달팽이 요리를 에스까르고(Escargot)라고 한다

먹다보니 감질나는 정도의 양으로 무슨 맛인지 모르고 먹은 것 같다

달팽이 요리는

프랑스 농촌지역에서 포도 농사를 망치는 달팽이를 없애는 방법으로

달팽이를 식용으로 개발하였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마지막 밤을 보낼 어제밤 묶었던

파리 시내에서 북쪽 Epinay-Sur-Seine 지역에 있는

ibis호텔로 다시 간다 

 

날이 밝아 새벽부터

영국 런던행 유로스타(Euro-star)를 타기 위하여 파리 북역으로 간다 

 

역전에 너무 빨리 도착했는지

출국 심사 직원들이 출근을 안했는지 문이 열릴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다 출국심사를 받고

런던행 유로스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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