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영국 런던 여행

천황봉 2016. 11. 7. 15:01

프랑스 파리 북역에서 여권 심사를 받고

영국 런던행 기차인 유로스타(Eurostar)에 올라 타

출발한지 1시간 여가 지나자

프랑스 칼레(Calais)에서 도버 해협(Strait of Dover)의 해저 터널을 통과하여

영국의 도버(Dober) 지역을 지나 가고 있다

 

도버해협(Strait of Dover)의 해저터널를

유로스타는 속도 300Km 내외를 왔다갔다 하며 달리고 있다

도버해협의 해저터널은 

1987~88년 도버 해협 양쪽에서 굴착 공사를 시작해 1991년 완공되었으며

공식적으로는 1994년 5월에 개통되었다고 한다

 터널은 총연장 55㎞(해저구간은 약 37㎞)로 3개의 터널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중 2개는 고속 열차가 다니는 곳이고

나머지 하나는 안전과 서비스를 위한 곳이라고 한다

 

영국의 포크스톤(Folkestone) 부근에서

해저터널을 빠져 나와 달리는데 차창 밖으로 평원지대가 펼쳐진다

 

영국(United Kingdom)의

국가 공식 명칭은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이다

 

영국의 국토 면적은 242,495㎢로

우리 나라 남북한 면적을 합친 한반도 면적(223,348㎢) 보다 조금 크며

인구는 6,667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와 의회형태는

영국 여왕이 있는 입헌 군주제와

총리와 상.하원이 있는 양원제를 택하고 있다

 

민족 구성으로는

주로 잉글랜드 쪽에 사는 앵글로색슨족과

스콜틀랜드와 북아일랜드 쪽에 사는 켈트족으로 구성된다고 하며

종교는

16세기에 잉글랜드 왕 헨리 8세가 로마 교황의 절대권력에 반기를 들면서

영국 국교회로 탄생한 성공회 43%, 로마카돌릭 9%, 개신교 8%,

기타 기독교 종파 20%, 이슬람 2%, 비종교 13% 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 GDP는 약 2조7435억 달러로 세계 6위

1인당 GDP는 4만1,030 달러로 세계 21위로 우리 보다 부국이다  

<대한민국: 국가GDP 1조6295억 달러(세계12위), 1인당 GDP 32,046달러(세계28위) 2019년>

 

프랑스 파리 북역을 출발한지 약 2시간 정도 소요되어

영국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 국제 역(St. Pancras International)에 도착한다

 

 세인트 판크라스 역(St. Pancras Station)은

빅토리안 고딕의 건축가

조지 길버트 스콧(Georgo Gilbert Scott, 1811~1878년)에 의해

1863~1865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런던(London)은

대영제국의 수도로서 산업, 상업, 정치의 중심지이며

템스강(Thames River)을 끼고

인구 842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이다

 

런던의 역사는

AD 43년에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의 침공 후에

도로와 템스강물이 교차하는 지역을 택해 곳 원주민을 축출하고

 다리와 도시(론디니움)를 건설하기 시작함으로 런던의 역사는 시작한다고 한다

이후 런던이 색슨인들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데 밝혀주는 자료는 전혀 없다고 하는데

 597년에 교황 그레고리 1세가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로마에서 영국으로 파견하였는데

이미 런던은 다시 중요한 도시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또 런던은 1세기 이상 앵글로색슨 역사에서 사라졌다가

알프레드 대왕(849~99) 시대 및 데인족과의 전쟁 기간중

다시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고 한다

1066년 노르만족의 정복왕 윌리엄1 세가 영국 정복한 후

런던 시민들에게

참회왕 에드워드 밑에서 누렸던 것과 똑같은 법적 지위를 허용하고

런던 시민에 대한 어떤 음해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헌장에 서명을 하고

런던 탑에 딸린 위협적 아성으로

노르만 양식의 화이트타워를 세웠다고 한다

 

무단 주정차 차량의 위반 딱지를 발부하고 있는 모습이다

 

1135년 헨리 1세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런던 시민들은 직접 영국왕을 선출할 수 있는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여

스티븐을 왕으로 선출하여

 그는 3주 후에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즉위식을 가졌다고 한다

1136년경 대화재가 발생하여

많은 목재가옥과 세인트폴 성당이 소실되었다고 하며

12세기말에 덴마크 상인들이 들끓던 런던에

독일인들 수효가 늘어나기 시작하였고

특히 북부 이탈리아인들은 은행가로서 지위가 확고해지자

1290년 유대인들을 약탈·투옥·추방하였다고 하며

이후 유대인들은 수세기 동안 런던에 발을 붙이지 못했다고 한다

1332년부터 시의회가 있어 강력하고 안정된 중앙정부를 지원하였으며

1529년 헨리 8세가 울시 추기경의 요크 저택을 화이트홀 궁으로 개조하고

들판 너머에 세인트제임스 궁을 짓기 시작하면서 웨스트민스터 시는

왕궁을 중심으로 도시 전체의 윤곽이 뚜렷해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1세의 재임기간(1558~1603)중 런던은

전 영국을 지배한 전성기를 맞게 되는데

런던의 시민군·재력·후원 등을 자신의 통치기반으로 삼았다고 한다 

1585년과 1589년 해외파병 인력의 1/4을 조달했고

스페인의 침공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무장한 자체 '시민군'을 조직했다고 한다

1642년 찰스 1세무역으로 생기는 런던의 특권을 경시하며

런던을 공격했으나

턴엄그린에서 런던 시민군에게 저지당했으며

의회파와의 싸움에서 왕당파가 패하였다고 한다

1664~65년 1348년의 흑사병 이래

자주 런던을 괴롭혀온 전염병이 기승을 부려

런던 시민 7만 5,000명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 이듬해에는 9월 2일부터 9월 5일까지 계속되는 대화재가 발생하여

도시의 4/5를 불태워

1667~71년 대부분의 새 주택들이 건설되었으며

이때의 집들은 벽돌로 지어졌으며

목골조 건물은 건축허가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1820년 조지 4세가 왕위를 계승한 후  인구는 110만 명 이상으로 증가하면서

현대도시로 탈바꿈하기 시작하여 

1863년에는 증기철로선인 메트로폴리탄이 개통되고

 1869년에는 홀본 고가다리가 놓이기 시작하여

 템스 강에 연이어 새로운 다리들이 건설되었다고 한다

높이 310m의

유럽 최고층 빌딩인 사드 빌딩(The Shard B/D)이 보인다

2013년 2월에 개장되었다고 한다

33층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런던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고 한다  

  

템즈강(Thames River)의 타워 브리지(Tower Bridge)가 보인다

1894년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총 길이 260m의 신고전주의 고딕 양식으로 완성된 다리이다

대형 선박이 통과할 수 있도록 유압 힘으로 다리가 올라 가도록 만들었으나

현재는 간혹 가다가 운영함으로 좀 처럼 볼 수 없다고 한다

 

'타워 브리지(Tower Bridge)'의

50m 높이에서 2개 탑을 연결하고 있는

인도교에서 바라보는 런던의 경치는 아주 일품이라고 하는데

입장료가 있다고 한다 

 

'사우스워크 대성당(Southwark Cathedral)'이다

영국 최초의 고딕 양식 대성당으로서

13세기 세인트 세이비어 앤드 세인트 메리 오버리 교회

(Church of St Saviour and St Mary Overie)로 있다가

1905년 이후, 서더크 지역의 영국 교회를 관할하는 대성당이 되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가 근처에 거주하면서 이 성당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하며

1607년 미국 하버드 대학의 설립자인 존 하버드가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영국은

14세기에 웨일스가 18세기에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통합되면서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이 탄생하였다고 한다

그 후 1921년 아일랜드로부터 분리된 북아일랜드가 합쳐져

현재의 연합왕국이 확립되었다고 한다

국기인 유니언 잭은 웨일스를 제외한 나머지 3 나라의 국기가 합체된 형태라고 한다

1999년에 웨일스와 스코틀랜드에 각각 국회가 설립되어

독자적인 문화를 양성하려는 강하게 일고 있다고 한다

 

대형 관람차 런던 아이(London Eye)는

2000년 밀레니엄을 기념해 만든 영국 최대의 관람차이다

높이 135m의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런던의 고풍스러운 거리 모습을 고수해 오던 도시가

이제는 현대적인 고층 빌딩가로 변신하고 중에 있다고 한다

 

템즈강(Thames River)의 런던 아이 옆의

웨스트민스터 다리(Westminster Bridge)로 접에 든다

 

웨스트민스터 다리에서 보는 템즈강이다

1750년 프로렌스 나이팅게일 박물관(Florence Nightinggale Museum) 쪽에서

템즈강 건너 서쪽의 빅벤(Big Ben)으로 건너가는

'웨스트민스터 다리(Westminster Bridge)'가 건설되었다고 한다

 

템즈강변의 국회의사당(House of Parliament)이다

영국 시민들에게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곳으로

원래 1050년 에드워드 참회왕(Saint Edward the Confessor:1003~1066년)이

명하여 15년간 공사하여 완공한

웨스트민스터 왕궁(Palace of Westminster)이었다

헨리 8세(Henry VIII)가 화이트 궁전(Palace of white)을 세운

1512년 후부터는 '국회의사당'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국회 의사당의 현재 건물은 1834년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뒤에

1852년에 다시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관청가가 늘어서 있는

화이트 홀(Whitehall) 대로가 시작되는 사거리 지점에 있는

수입세관이 입주해 있는 건물이다

 

빅벤과 국회의사당 앞 길건너 편에 있는

국회의사당 광장 정원(Parliament Square Garden)이다

광장 중앙에는 윈스턴 처칠 동상이 보이고

광장 사이드에는 세계 유명인사 동상들도 눈에 띠였다

 

세인트 마가렛 교회(St. Margaret's Church)이다

11세기에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함께 옆에 부속 교회로

중세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웨스트 민스터 궁전의 교구 교회로서

1614년부터 연사와 하원의 예배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하며 

 많은 유명인사들이 이 곳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웨스터민스터 궁전(국회의사당)과 웨스터민스터 사원과 같이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되어있다고 한다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이다

1013년 당시 덴마크가 잉글랜드를 침공하여 왕좌를 차지하자

참회왕 에드워드가 어린시절 어머니의 고향인 노르망디 지방에서

망명생활을 하였는데 그의 어머니의 영향으로 두터운 신앙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노르망디 망명 도중 그는 하느님에게 자신이 다시 왕위를 회복하게 된다면

 로마를 순례할 것을 맹세하였다고 한다

 1051년 그는 즉위 이후 서약을 지키기 위하여 로마 순례를 추진하였는데

 당시 정국이 안정되지 못했음을 들어 대부분의 귀족들이 이를 반대하게 되자

당시 교황 레오 9세에게 조언을 구하였다고 한다

교황은 에드워드에게 로마 순례 비용으로 수도원을 짓고

 빈민을 구제하는 것을 권하였다고 하며

 왕은 이에 따라 성당 부속으로 있던 수도원을 증축할 것을 지시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이다

 

런던의 랜드마크 국회의사당시계탑 '빅 벤(Big Ben)'이다

빅 벤은 ‘크다’라는 뜻을 지닌 ‘Big’과

1858년 시계탑을 설계 공사한 설계자 ‘벤자민 홀’ 이름에서 딴 ‘Ben’을 합친 말로

 처음엔 시계탑의 이름이 아니고

시계탑 안의 13.5톤에 달하는 종을 부르던 이름이었다고 한다 

높이 96m, 시계 문자판 지름 7m, 시침의 길이는 2.9m, 분침의 길이는 4.2m로

시계가 처음 작동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는 런던의 자부심의 상징이라고 한다

 

빅벤(Big Ben)과 남쪽의 빅토리아 타워(Victoria Tower)의 두개의 탑을 가진

'국회의사당(House of Parliament)'은

 네오고딕(Neogothic) 양식의 웅장한 건물로

총길이 265m, 방의 수가 1000개 이상으로 총 면적이 33,000㎡라고 한다

중앙 홀을 경계로 북쪽은 하원, 남쪽은 상원으로 나누어지며

회의장 외에 국왕을 위해 만든 대기실과 일반 방청석이 있다고 한다

서쪽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홀(Westminster Hall)은

11세기의 웨스터민스터 궁전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라 하며

이곳의 거대한 방은 법정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575년 7월 토머스 모어(Sir Thomas More)와

1649년 1월 찰스 1세(Charles I)의 사형 판결도 이곳에서 내려졌다고 한다

 

빅벤(Big Ben)의 시계탑은

최근에 조금 기울어진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한다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에서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으로 이동하던 중

우리의 삼성(Samsung) 간판이 보인다

 

오래 된 학교 건물이다

'이 학교는 1688년 설립했다(This school founded 1688)'라고

쓰여 있는데 무슨 학교인지는 모르곘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가 거주하고 있는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 입구에 도착한다

 

버킹엄 궁전 앞 빅토리아 기념비 광장의 도로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다

잠시 후면 버킹엄 궁전 위병 퍼레이드가 있다고 한다 

 

위병 교대식을 마치고

버킹엄 궁전에서 나와 빅토리아 기념비 광장을 지나

 스퍼 로드(Spur Road)를 걷는다고 하여

도로변 보기 좋은 자리를 확보하여 대기하고 있는데

아직 차량통제가 되지 않고 있다  

 

한참을 기다리고 서 대기하고 있으니

지나치는 차량이 보이지 않더니

말탄 근위병을 선두로 빨간 복장의 군악대 근위병들이 도열하여

군악을 울리며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버킹엄 궁전 근위병 교대식은

궁안에서 보통 오전 11시경부터 시작하여 12시경 교대식을 마치고

궁전 정문에 집결하여 궁전을 나와

퍼래이드를 시작한다고 한다

 

군악대 뒤로는

검은 옷을 입은 병사들이 따르고 있는데

그들이 근위병들이라고 한다

 

선두의 군악대는오늘처럼 빨간 옷에 검은 길죽한 모자를 쓴

잉글랜드 군악대가 퍼레이드를 할 때도 있지만

 군악대는 전국의 부대가 교대로 맡기 때문에

스콜틀랜드의 퀼트 복장의 군악대일 때도 있다고 한다

 

근위병 군악대 퍼레이드 선두가 저멀리 보이기 시작하여

스퍼 로드(Spur Road)에 서 있는

우리 앞을 스쳐지나 후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시간은

5분여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이다

1703년 버킹엄 공작이었던 존 셰필드(John Sheffield)가 지은 대저택이었으나

 1762년 조지 3세가 왕비와 아이들을 위해서 구입하면서

왕실의 건물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조지 4세가 개축을 시작했지만 궁전이 완성되기 전에 죽었고

1837년에 당시 18세였던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버킹엄 궁전으로 거주지를 이전해 오면서

 이후 역대 왕들의 거주지와 집무실이 되었다

 

버킹엄 궁전 앞 '빅토리아 기념비(Victoria Memorial) 광장'이다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1819~1901년)은

영국을 최고의 번영으로 이끈 여왕으로

1819년 5월 24일 조지 3세의 넷째 아들인 켄트공 에드워드 왕자와

 독일 하노버 왕가 출신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1837년 6월 22일 18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1901년 1월 22일 만 81세의 나이로 병사할 때까지 64년간 재임했다고 한다

빅토리아 여왕은

세계를 많이 정복함으로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이끌었으며

최장수 재위 기록을 가지고 있는 국왕이라고 한다

 

버킹엄 궁전 뒤편 버킹엄 궁전 가든과 담장 옆에 있는

웰링턴 아치(Wellington Arch)가 보인다

 웰릴턴(Wellington:1769~1852년)은

 웰링턴 공작 1세 아서 웰즐리(Arthur Wellesley, 1st duke of Wellington)로서

1815년 워털루 전투(Battle of Waterloo)에서

나폴레옹을 무찔러 세계의 정복자를 정복한 사람이 되었으며

후에 영국의 총리(1828~30)를 지낸 인물이라고 한다

 

점심 식사 장소로 이탈리안 식당인

벨라비스타(Bellavista)로 간다

 

로얄 앨버트 홀(Royal Albert Hall)은

1853년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앨버트(Albert) 공이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을 모방하여 돔(Dom) 형식으로 건설한 공연장이라고 한다

이 곳에서 매년 영국의 대표적인 음악 축제로 클래식 공연인

'프롬스(Proms)'가 공연하는데

프롬스(Proms)는 산책을 의미하는 프롬나드(Promenade)와

콘서트(Concerts)의 합성어라고 한다

 

앨버트 공 기념비(Albert Memorial)이다

1860년 빅토리아 여왕이 남편 앨버트 공이 사망하자

그를 기리기 위하여 네오 고딕으로

켄싱턴 가든(Kensington garden)에 세운 기념비라고 한다 

 

앨버트 기념비(Albert Memorial)에서

앨버트 공은 책자를 들고 있는데

1851년 영국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의 성공적인 진행을 격려하기 위하여 방문한

앨버트 공이 사용하였던 

당시 만국박랍회의 카탈로그를 기념비에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하이드 공원(Hyde Park)에서

대영 박물관(The British Museum)으로 이동하며 보는

런던 시내이다

 

대영 박물관(The British Museum)이다

정문 쪽으로 입장하지 않고 건물 옆문으로 입장한다

 

대영 박물관에 입장하여

제일 먼저 들린 곳에 우리 건축물 모형이 보였는데

이 곳에 한국관(韓國館)이 있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러웠다

 

18세기 조선시대 때의 백자청화운용문호(白磁靑畵雲龍紋壺)와

여러가지 백자가 보인다

용 무늬가 그려진 이러한 형태의 항아리를 용충이라고 하는데

조선 중기 이후에 많이 제작되어 전해내려 온다고 한다

 

불교 탱화다

조선시대 1796~1820년 사이의 작품으로 대구쪽에서 온 작품이라 한다

삼베 위에 광물색을 입혀 제작하였다고 하며

사천왕 중의  하나로 남쪽을 지키는 천왕이라고 한다  

 

우리의 한복도 전시되어 있다

두루마기와 색동옷이다

조선시대 후기의 옷으로 보인다

 

한국관은 2000년 11월에 신설되었으며 

신라시대 유물부터 조선시대 유물까지 있는데

대영박물관에서 유일하게

약탈이 아닌 기증으로 만들어진 전시관이라고 하니

더 자랑스럽고 뿌듯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집트 관으로 오니

많은 미이라들과 관이 전시되고 있었다

이집트에 있는 모든 미이라를 다 가지고 온 느낌이 들 정도였다

 

4000년 전 미이라들이 썩지 않고 보존되고 있는 것이

고대 이집트의 미이라 제조 기술이 대단함을 느끼는 곳이다

 

나무 관에 정교한 무늬를 안 밖으로 새겨 놓았다

 

관 모양을 보고 고인의 모습을 알 수 있도록

제작해 놓은 목관이다

 

 

 

 

이집트 신전에 있던 기둥들이다 

 

무덤에 있던 석관이다

시신을 미이라로 만들어 목관에 넣고

목관을 이 석관에 넣어 보관한다고 한다

 

숯양으로 상징되는 아문(Amun)신이다

이집트 룩소르에 있는 카르낙신전(Temples of Karnak)에

아문 대신전이 있다

 

고대 이집트의 주신으로서 아멘(Amen) 또는 아몬(Amon)이라고도 한다

고왕조 시대의 비문에는 아몬이라는 이름이 거의 나타나지 않아

초기에는 지방신에 불과했던 신이라고 한다

고대 이집트의 제 11왕조(BC2055~1985년) 시기로부터 

제 21왕조(BC1069~945년)의 1100년 사이에 수도인 테베에서 세력을 얻어

수호신의 지위에 올라 서며 막강한 힘을 가진 신으로

비문에 '아몬-라(Amon-Ra)'라고 하여

 태양신 라(Ra)와 결합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신이라고 한다

 

 

람세스 2세(RamessesⅡ)의 흉상이다

이집트 역사상 2번째로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으며

국가의 번영을 이룬 유능한 행정가로서 백성들에게 평판이 좋은 왕이었다고 한다

히타이트족·리비아족과의 전쟁 이외에도 방대한 건설사업과

이집트 곳곳에 거대한 자신의 조각상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파라오라고 한다

종교개혁을 실시한 아케나텐(아멘호테프 4세, BC 1353~1336)의 재위가 끝나고

몇십 년이 지난 뒤

 원래 왕족은 아니었지만 권력을 잡은 람세스 집안은

이집트 제18대 왕조(BC 1550~1295)때의

아케나텐과 그의 계승자 투탕카멘 시기에 약해진 아시아 지역에서의

 이집트 세력을 회복하는 일에 착수했다고 한다

이집트 제19대 왕조(BC 1295~1186)를 세운

람세스 2세(RamessesⅡ)는 아버지 세티 1세(SetiⅠ)의 명으로

불과 10세 때 군대 지휘관이 되어 상당한 군사 훈련을 받기도 하였다고 하며

 재위 4년째 원정을 시작 첫 목표로 카데시에 있는

히타이트족 요새를 격파하기 위하여 전투를 벌였으나

카데시를 함락하지 못하고 휴전했다고 한다

재위 10년째에는 히타이트의 수비를 뚫고 카트나와 투니프를 정복했다.

이후 16년 동안 히타이트족과 간간이 충돌하다가

BC 1258년에 상호 평화협정을 맺고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 왕의 맏딸과 결혼했다

 이집트에 크고 작은 신전을 많이 지었는데

 자신 조각상 4개를 세운 신전과 자신의 부인 네페르타리를 위해 세운 신전인 

아부 심벨 사원이 가장 웅장하며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람세스 2세가 너무 인기가 좋아

제20대 왕조(BC 1186~1069)로 넘어가서는

람세스(Ramesses)의 왕명을 사용한  파라오들이

람세스 3세부터 람세스 11세에 이르기까지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아멘호테프 3세(AmenhotepⅢ:재위 BC1390~1353)이다

이집트를 평화롭게 통치한 파라오로서

 평민 출신이지만 명석하고 능력 있는 여성인 티이와 혼인하여

 뒷날 개혁군주가 된 아케나텐(Akhenaten)의 아버지이다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미탄니(시리아 북부 유프라테스 강가에 있던 강력한 왕국) 및

 바빌로니아의 왕녀와 정략결혼을 했으며

히타이트 왕국의 공주와도 정략결혼을 시도했다고 한다

 

로제타석(Rosetta Stone) 진품이다

길이 114㎝, 폭 72㎝의 검은 현무암으로 되어 있는 비문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5세(BC 205~180년)의 은혜를 요약하고 있으며

그의 재위 9년째에 씌어졌다

이집트어와 그리스어의 2가지 언어와

상형문자·민용문자·그리스 알파벳의 3가지 필기방식으로 씌어져 있어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실마리가 되었다고 한다

 1799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근처에 있는 로제타 마을 부근에서 발견되었으며

 대영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것이 진품으로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에도 있는데 그것은 복제품이다

 

아시리아 관으로 넘어 가기 전에

고대 이집트 시대에 인기가 매우 좋았던

람세스 2세(RamessesⅡ) 흉상 앞에서 폼 한번 잡아 본다

 

아시리아 시대 아슈르나시르팔 2세(Ashurnasirpal II:BC 883~859년경) 때

'날개달린 소의 형상을 한 반인반수의 거상'이라는 조각품으로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궁전 입구에 보호를 의미하는 상징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1845년 이라크 북부 남루드의 북서쪽 궁에서

헨리 레이어드가 발굴하였다고 한다 

 

'영생의 열매를 받는 왕'이라는 부조이다

신이 영생의 나무에서 열매를 따서 왕에게 주는 것을 조각한 것이며

신과 왕의 손목에 팔찌를 차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오늘날 시계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 하는데

이 부조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왕의 고귀한 위엄을 나타내는 것이며

태음력을 이용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암시하고 있다고 한다

 

아시리아 시대 관의

'사자를 사냥하는 아슈르나시르팔 2세(Ashurnasirpal II:BC 883~859년경)'라는

 부조(浮彫)이다

사자 사냥은 매우 오래된 고대의 주제로 약 5000년 전부터라고 한다

사자(Lions)는

민중들에게 위협이 되는 불안한 문재로

안전을 위해서 큰 규모로 사람들이 모여 사냥을 하였다고 한다

아슈르나시르팔(Ashurnasirpal)의 기록에 의하면

450마리의 사자를 잡았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1845년이라크 북부 남루드의 북서쪽 궁에서

헨리 레이어드가 발굴하였다고 한다 

 

아시리아 시대 아슈르나시르팔 2세(Ashurnasirpal II:BC 883~859년경) 때

물 밑으로 침투하는 잠수부대를 조각해 놓은 장면으로

소나 양, 돼지의 내장으로 주부를 만들어 가슴에 안고 물속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1845년이라크 북부 남루드의 북서쪽 궁에서

헨리 레이어드가 발굴하였다고 한다

 

릴리의 비너스(Lely's Venus)로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프로디테(Aphrodite)라고도 한다

기원전 1~2세기 작품으로

욕 중 인기척에 몸을 돌리며 가리는 모습이라고 한다

 

로마시대의 사랑의 비너스 상이다

 

그리스관에 있는 네레이드 제전((Nereid Monuments)이다

네레이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요정으로

머리 없는 조각품들이 네레이드 요정들로 추정한다고 하며

기원전 390~380년 것이라 한다 

이 기념관은 터키 남서쪽 리키아 왕국에서 발견된 것으로

이 지역을 지배했던 리키아 군주들이 묻힌 최초의 신전 형식의 무덤의 일부라고 한다

 

그리스관 벽면의 전시물은

파르테논 신전 벽에 있던 것들을 재구성하여 전시하여 놓은 것이라고 한다

전면으로 세워져 있는 부조를 보면

가운데 부분은 서 있는 부조물이고 양쪽 사이드로 갈수록 낮아짐을 볼 수 있다

파르테논 신전 양쪽 처마 밑 양쪽을 장식하고 있던 조각상 임을 알 수 있다

 

여기 있는 파르테논의 유물들은

기원전 5세기경의 유물로

19세기에 영국으로 가져 왔다고 한다

 

파르테론 신전 벽면의 부조물에 있던 

신화에서 나오는 싸움들이 각기 묘사되어 있는 것을 전시하고 있다

 

대영박물관을 몇군대 관을 돌고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대영박물관을 끝으로

모든 일정을 마치고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하여

히드로 공항으로 향한다

 

런던 시내 중심가에서 히드로 공항까지는 걸리는 시간은

버스로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런던 시내 중심가 히드로 공항까지 거리는 서쪽으로 약 23Km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도로가 완전히 정체 상태로

매우 느리게 버스가 기어 간다

 

한참을 밀려 가다가 히드로 공항에 가까워지니

정체가 풀려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공항에 도착하면 엄청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다

 

우여 곡절 속에 히드로 공항으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출국장을 향해 바쁘게 향해 간다

히드로 공항은 타 공항 보다 게이트 찾아가는 길이

복잡하고 거리가 꽤 먼것 같다

 

히스로 공항(Heathrow Airport)은

1944년 영국 정부가 현재의 공항부지에 공군기지를 건설하면서 시작되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6년 5월31일 개보수를 거쳐 18개취항노선을 기반으로 개항하였다고 한다

2008년 5 터미널까지 개장하였으나 너무 혼잡하다는 불만이 폭주하였고

2013년 이용객 기준

미국의 하츠필드 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

중국의 베이징 수도 국제공항

다음으로 세계 3위로 이용객이 많은 공항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용객 수는 많은 반면 시설이 노후하고 이용료가 비싸서

이용객들이 가장 싫어하는 공항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런던 히드로 공항(Heathrow Airport)에서 비행거리 8869Km를

약 11시간를 날아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영국과 시차는 우리 대한민국 보다 영국이 8시간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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