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마케도니아 여행

천황봉 2019. 1. 25. 14:10

그리스(Greece) 국경 Kato Klines 검문소를 통과한 버스는

마케도니아 Medzhitlija 국경 검문소로 와

오랜 시간을 지체하고 있다

 

검문소 주차장에는 차 한대 보이질 않고 한산한데

입국 심사를 받기 위해 대기시간은 길어지고

해는 기울어 산 뒤로 넘어가며 땅거미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그리스(Greece)에서 국경을 넘어와 마케도니아(Macedonia)의

메드쯔히틀리야(Medzhitlija) 국경 검문소에서 입국 수속으로

1시간 정도를 소요하여 마치고 

오흐리드(Ohrid)로 향한다

 

 

마케도니아(Macedonia)의 국가 공식 명칭은

북마케도니아공화국(The Republic of Northern Macedonia)이다

 

 

'마케도니아(Macedonia)' 국가 명칭을

'북마케도니아(Northern Macedonia)'라고 "북(Northern)"자를 붙이는 이유는

그리스(Greece) 국가에 마케도니아 주가 있기 때문으로

명칭을 두고

그리스(Greece) 국가와 많은 분쟁 중에 있다고 한다 

 

 

마케도니아(Macedonia) 국가의 지정학적 위치로는

발칸반도 남쪽의 내륙에 있는 국가로서

남쪽에는 그리스(Greece),

서쪽으로는 알바니아(Albania),

북쪽에는 코소보(Kosovo)와 세르비아(Serbia),

동쪽으로는 불가리아(Bulgaria)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이다

 

 

마케도니아(Macedonia)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 인물이 있는데

그리스, 페르시아, 이집트, 인도까지 광활한 제국을 건설하였던

알렉산더 대왕(Alexandros)으로

이 또한 태생을 두고 그리스(Greece)와 설전 중이라고 한다

 

 

비톨라(Bitola)라는 도시를 경유하기 위하여 진입한다

마케도니아에서 그리스에 가까운 최남단 도시로

인구 8만6000여 명이 거주하는

마케도니아에서 2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비톨라(Bitola)는

해발 615m 지점에 드라고르 강(Dragor River)을 끼고 있으며

비톨라 평야의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도사이다

 

 

비톨라(Bitola)의 역사는

그리스인이 세웠던 정착지 헤라클레 아린케스티스 부근으로

후에 로마 제국령이 되었으며

5, 6세기에 슬라브족의 침략을 받은 후 쇠퇴하기 시작하였다고 하며

당시에 건축되어 현재도 남아 있는 '오비텔리 수도원'은 

이 도시가 오스만 투르크족에 함락되어

상업 및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로 발전하였으며

당시 이곳에 이슬람 사원이 약 60개 정도가 건축되어질 정도로 

이슬람교가 번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비톨라(Bitola)는

1912년~1913년 발칸 전쟁으로 세르비아에 의해 정복됨으로서

500년의 이슬람교 위주의 역사에서 막을 내렸으며

현재는 이슬람 사원은 12개가 남아 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인구가 많이 감소되며 경제활동도 쇠퇴하였는데

유대인 부락은 완전히 없어졌다고 한다

1945년 이후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국토가 복속되면서

비톨라(Bitola)는 마케도니아 지방의 주요 중심지였으며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독립한 후에도

교통, 농업, 산업 등의 주요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비톨라(Bitola) 시내 서쪽 끝단 주유소가 있는 로타리로서

여기를 지나면 오흐리드(Ohrid)로 가는 산악지형이

시작되는 분기점이다

 

 

마케도니아(Macedonia)는

우리 남한 면적의 1/4 작은 면적인 25,713㎢로

인구가 208만여 명이 거주하는 국가로서

민족 구성은 마케도니아인 64%, 알바니아인 25%, 터키인으로 구성된다

언어는 마케도니아어를 사용하고

종교는 마케도니아정교 65%, 이슬람교 33%가 믿고 있다

 

 

 

마케도니아(Macedonia)의

정부는 중앙집권제이며 의회형태는 다당제와 단원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가 GDP는 126억7200만 달러 (세계 132위)

1인당 GDP는 15,670 달러(세계 79위)라고 한다

<2019년 한국 국가GDP: 1조6295억3200만 달러(세계12위), 1인당GDP: 31,430달러(세계30위)>

 

 

비톨라(Bitola)에서 오흐리드(Ohrid)로 가는 길목 중간 쯤에 있는

레센시(Resen City)이다

레센시(Resen City)는 인구 1만 8000여명 정도가 사는 작은 도시로

마케도니아 남부지방의 지방자치제로 행정 중심지라고 한다

 

 

레센(Resen)시를 지나며 너무 어두운 밤이라

배경사진 없이 오흐리드(Ohrid)에 있는

플라멩고 호텔(Flamengo Hotel)에 도착하여 식후 잠자리에 든다 

 

 

마케도니아(Macedonia) 오흐리드(Ohrid)에 있는 

플라멩고 호텔(Flamengo Hotel)에서 여는 아침의 주변 풍경이다 

 

 

호텔 앞에서 보니 언덕 위로

제1차 불가리아 제국시대(681~1018년) 말기에 세워진

사무일 요새(Samuil's Fortress)의 성벽이 보인다

 

 

오흐리드 호수(Lake Ohrid)를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있는

구시가인 바로시 올드 타운(Varosh old Town)으로 가기 위하여

버스 올라 찍은 플라멩고 호텔(Flamengo Hotel)이다

 

 

오흐리드(Ohrid)는

오흐리드 호수(Lake Ohrid)의 북동쪽 연안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이며

 

 

인구는 52,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구시가로 들어가는 들어가는 성벽 문이 있는 

 산 능선 위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한다

 

 

성벽 문을 통과하면

오흐리드(Ohrid)의 구시가지인

바로시 올드 타운(Varosh Old Town)으로 최근 발굴에 의하면

마케도니아의 필립 2세(PhilipⅡ: BC360~BC338) 시대보다 일찍 앞선

사무일 요새(Samuil's Fortress)라는 곳에 

기원전 4세기에 세워진 초기 요새 장소가 있다고 한다 

 

 

성벽 문을 통과하여 안쪽으로 들어오니

옛 모습의 구옥들 모습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현대식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 지역은 기원전 고대시대 때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하며

오흐리드(Ohrid)라는 이름은

불가리아가 840년경에 도시를 정복한 후

879년에 처음 등장하였으며

990년에서 1015년 사이에 오흐리드(Ohrid)는

불가리아(Bulgaria) 제국의 수도이자 거점 도시였다고 한다

 

 

성벽 문을 들어와 직진하여 50~60m 골목길을 걸으니

'고대 원형극장'이 나온다

 

 

'고대 원형극장(Ancient Theatre)'은

헬레니즘 시대인 

기원전 200년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는데

로마시대 때에는 검투장이나 기독교인 처형장으로 사용하면서

주민들이 외면하였기 때문에 크게 훼손되지 않고

현재 아랫 부분이 남아 있다고 하며

지금도 콘서트 및 극장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오흐리드(Ohrid)의 구시가지인 

'바로시 올드 타운(Varosh Old Town)'의 안내도이다

 

 

성벽 문쪽으로 다시 나와 위쪽 길로 향하는데

위쪽으로 '사무일 요새(Samuil's Fortress)'가 보인다

현재 보이는 성벽의 '사무일 요새(Samuil's Fortress)'는 

제1차 불가리아 제국 말기 시대인 

사무일(Samuil:재위980~1014년) 왕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성벽 문에서 위쪽 방향 길로

'성 판텔레이몬(Saint Panteleimon) 수도원'을 향해 가는데

길 아래로 조금 전에 갔었던 

고대 원형경기장이 보이고 그 뒤로 푸른 오흐리드 호수가 보인다

 

 

사무일(Samuil)은 인근 프릴레프의 대귀족집 아들로 태어나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후 불가리아의 실권을 장악하였다고 한다

980년 소피아 근처에서 

비잔틴 황제 바실리우스 2세(BasiliusⅡ:재위 976~1025년)를 격파한 후 

불가리아의 차르(tsar:왕)로 정식 등극하였다고 한다

 

 

사무일(Samuil) 왕은

마케도니아를 통치하면서 독립국 세르비아를 정복하고 

불가리아 북부, 알바니아, 그리스 북부까지 세력을 넓혀 나갔으며

오흐리드에 수도를 정하고 

불가리아 총대주교를 부활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1014년 비잔틴의 바실리우스 2세(BasiliusⅡ)와

 벨라시차 전투(Battle of Belasitsa)에서 완패하고

고향 프릴레프까지 도망하였는데

바실리우스 2세는 포로로 잡힌 불가리아인 15,000여 명을

장님으로 만들어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에 사무일 왕은 충격으로 죽었다는 설이 있으며

불가리아 제국은 4년 후에 비잔틴 제국에 병합되었다고 하며

바실리우스 2세는 

'불가록토누스(Bulgaroktonos: 불가르족 학살자)'라고 불렸다고 한다

 

 

골목길 끝에 다다르니

오흐리드(ohrid)의 수호 성인인 성 크레멘트(St.Clement)가 세운 

성 판텔레이몬(St.Panteleimon) 수도원이 나온다

 

 

성 판텔레이몬(St.Panteleimon) 수도원 자리는

슬라브(Slav) 민족 최초의 대학이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성 판텔레이몬(St.Panteleimon) 수도원은

수도원을 예배당으로 

그리고 제자들에게 '글라골 문자(Glagolitic Alphabet)를 

가르치는 학교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글라골 문자(Glagolitic Alphabet)'는 

마케도니아의 토어를 기초로 하여 만든 최초의 슬라브 문자로서

당시에 슬라브 민족은 언어는 있었지만

문자가 없어 라틴문자를 빌려 사용하였다고 한다

 

 

 

수도원 부근에 있는 주택 대문으로서

우리 나라 오래된 주택에서 볼 수 있는 대문으로

지금은 거의 볼 수 없지만

옛 나의 어린 시절 때 정겨웠던 생각으로 떠올라

사진으로 담아 보았다

 

 

오흐리드 호수를 향하여 

골목길 계단을 통하여 내려 간다

 

 

​오흐리드(Ohrid)는

오흐리드 호수(Ohrid Lake)에서 북동쪽 연안에 있으며

인구 약 52,000여 명이 거주하는 도시로서

마케도니아 국가의 주요 휴양지이며

교통 요충지이자

 

 

오흐리드 호수(Ohrid Lake) 주변에 있는 도시들 중에

가장 큰 도시라고 한다

 

 

오흐리드(Ohrid) 시내에는

365개의 교회가 세워져 있기 때문에

'마케도니아의 에루살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위를 쳐다보니

'빌라 소피아(Villa Sofija)'라는 하얀 건물이 보인다

​오흐리드 호수가 전망되는 숙박업소로  

분위기있는 테라스가 설치되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골목길을 내려가다 보면

신축 건물들 틈에

오래되어 낡은 건물들도 많이 눈에 띄는데

아주 역사적으로 오래된 건축으로는 보이질 않는다 

 

 

​언덕을 거의 다 내려오니

​'성 소피아(St.Sophia) 교회'가 나온다 

오흐리드(Ohrid)에서 

가장 규모가 큰 중세 건축물이라고 한다

 

 

성 소피아(St.Sophia) 교회는

​1035~1056년경 옛 바실리카식 교회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고 하며

오흐리드(Ohrid)의 종교 회의를 주관하는 등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교회라고 한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 시대(1398~1912년)에는 

모스크(Mosque)로 바뀌면서

교회 내부에 있던 '예수의 승천' '성모자 좌상'의 

프레스코 그림이 석고로 가려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레스코화를 복원하였는데

석고로 가려진 덕분에 프레스코화가 잘 보존되었다고 한다 

 

 

​성 소피아(St.Sophja) 교회에서 밖으로 나와 바라 보는 장면이다

이태리나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에서 보듯이

교회가 화려하고 장엄하고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1000년의 세월을 지나오며

교회에서 모스크로 또 교회로 변화되는 영욕의 세월을 거쳤다고 하니

다시 한번 뒤돌아 보게 한다

 

 

오흐리드 호수(Ohrid Lake) 쪽을 향해 골목길을 걷다보니

대문을 꽃다발과 함께 커튼형 천으로 장식하여 놓은 것이 새롭다

아마도 잘은 모르겠으나

신혼부부 집이거나 신생아가 탄생한 집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오흐리드 광장(City Square of Ohrid)으로 

골목길을 걸어 가는데 

아프리카 대륙 북서쪽 끝에 있는 국가인 

모로코의 페스(Fes)라는 도시의 메디나(Medina)라는 

골목길을 짧게나마 걷는듯한 느낌이었다

이슬람 시대의 서민들이 사는 건축 양식으로 보인다

 

 

성 소피아(St.Sophia) 교회에서 

콕타(Kocta) 골목길을 직진하여 걸어 나오니

오흐리드 호수(Ohrid Lake)가 보이는

호숫가의 변 도로가 나온다

 

 

오흐리드 광장(City Square of Ohrid)에 도착하여

성 클레멘트(St.Clement) 동상 앞에 선다

'성 클레멘트(St.Clement)'는

오흐리드(Ohrid)의 수호 성인으로서 

893년에 최초의 슬라브(Slav)계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였으며 

슬라브 문학의 초기 작품들을 집필하였으며

성 나음(St.Naum)과 함께 성경을 

그리스어에서 슬라브어로 번역하였다고 한다

 

 

오흐리드 광장(City Square of Ohrid)에서

구시가지 언덕을 올려다 본다

오흐리드(Ohrid)는

슬라브(Slav)어로 '깍아지른 바위'라는 뜻이며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이 거주하였다고 하며

고대 그리스인들은 

'리크니도스(Lychnidus:빛나는 도시'라고 불렀다고 한다 

 

 

'키릴로스(Kyrillos:826~869)와 메토디오스(Methodios:815~885)의

형제 동상'이다

이들은 그리스(Greece)의 테살로니키(Thessaloniki) 출신의 선교사로서

슬라브족에 대한 선교를 위하여 이곳으로 와

성경을 전달할 목적으로

형제가 함께 알파벳을 토대로 슬라브 언어로 만들었는데

글라골 문자(Glagolitic Alphabet)이다

'키릴(Cyrillic) 형제'가 죽자

그의 제자인 '성 클레멘트(St.Clement)와 여러 성인들이 과업을 

이어받아 글자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키릴 형제를 기리기 위해 

'키릴 문자(Cyrillic Alphabet)'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오흐리드 호수 변에 십자가를 들고 있는 동상이 있다

이 동상은 설명이 없는데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오랜 이슬람 통치에서

1912년도에 해방되었음을 기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오흐리드 호수(Ohrid Lake)이다

500만 년 전에 바다 밑이 솟구쳐 만들어진 호수라고 한다

오흐리드 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 가운데 하나라고 하며

해발 700m 고지대 있는 호수로서

깊이가 290m로 유럽에서는 가장 깊은 호수라고 한다 

 

 

오흐리드 호수(Ohrid Lake)에는

총 40개의 강 줄기와 샘물이 유입된다고 한다

 

 

오흐리드 호수(Ohrid Lake)의 넓이는 358㎢이며 

호수의 남북 최대 길이는 87.53Km 이고

동서 최대 길이는 30.4Km라고 한다

이 호수의 2/3는 마케도니아(Macedonia)에 속하며

1/3은 알바니아(Albania)에 속해 있는데

호수의 물은 알바니아를 지나 

아드리아 해(Adriatic Sea)로 흘러 들어간다고 한다

 

 

오흐리드 호숫가(Side of Ohrid Lake)를 거니는데

유람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호수를 유람하고 돌아오는 배라고 한다

 

 

오흐리드 광장(City Square of Ohrid)에서 

왔다갔다 기웃기웃 쉬기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사진 포인트를 찾아 조금이라도 더

오흐리드에서의 발자취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려

포즈를 잡아 본다

 

 

오흐리드를 떠나기 전에 환전소를 찾아 상가 골목길을 헤멘다

세계 여행을 하면서

세계 각 나라 지폐를 모으는 취미가 있어

환전소를 찾는다

 

 

오흐리드 광장(City Square of Ohrid)을 떠나가기 전

볼 일도 해결할 겸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 한잔을 시켜도 본다

 

 

베이커리, 카페, 레스토랑, 기념품샵, 수퍼 등이

몰려있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성 클레멘트(St.Clement) 거리이다

 

 

버스가 주차 되어 있는 

치나르 주차장(Parking Chinar)을 향해

성 클레멘트(St.Clement) 거리를 걸어 나간다

 

 

식료품 가게에 쌓여 있는 물건들이다

모든 식품들을 용기 포장하여 놓은 것이 특이하게 눈에 띄어

사진으로 담아 둔다

 

 

마케도니아에서 대표적인 휴양지이며 관광지라

카지노(Casino)도 보인다

 

 

오흐리드(Ohrid)의 관광을 마치고

다음의 발칸반도에 있는 알바니아(Albania) 국가로 가기 위하여

버스에 오른다

 

 

마케도니아(Macedonia)를 떠나며

마케도니아(macedonia)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면

 

 

마케도니아(Macedonia)는 

비잔티움(Byzantium)의 보고(寶庫)라고 하며

그리스, 페르시아, 이집트, 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대제국을 건설했던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대왕의 국가이다

현재는 우리 대한민국의 1/4 정도뿐이 안되는 작은 국가지만

한때는 

발칸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큰 나라였다고 한다

 

 

마케도니아(Macedonia) 지역에 촌락이 생긴 것은 

기원전 6200년 무렵이라고 한다

이 지역에 수천 년간 다양한 민족들이 거주하였는데

이 지역에 사는 민족을 '마케도네스(Macedones)'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리스(Greece)어로 '높은'이라는 뜻이라 한다

 

 

마케도니아(Macedonia)의 최초의 왕국은

기원전 650년 무렵에 들어 섰는데 페르디카스 1세(PerdiccasⅠ)가

그리스(Greece) 북부지역을 기반으로

아르게아드 왕조(Argead Dynasty)를 세웠다

 

 

기원전 338년 필리포스 2세(PhilipposⅡ)는 그리스 전역을 차지하며

아들 알렉산드로스(Alexandros)를 위하여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게 교육을 맡겼다고 한다

2년 뒤 필리포스 2세는 암살 당하여 

약관 20세에 알렉산드로스가 왕위를 물려 받았는데

아버지를 암살한 자식이라고 그가 죽을 때까지 낙인이 따라 다녔다고 한다

알렉산드로스가 왕위에 올라 그의 반대파를 모조리 제거하고

세계 정복에 나서

페르시아, 이집트, 인도에까지 정복하여 대제국을 건설하였으나

인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전쟁에 지친 부하 장수들이

전쟁을 이젠 그만두고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여 

바빌론으로 철수하였으나

323년 갑자기 열병에 걸린지 10일만에 33세살 나이에 사망하면서 

후계자는 지명하지 않고 

유언으로 후계자를 '가장 적당한 자'가 하라고 하여

그가 사망 후 

그가 세운 대제국은 그의 부하들이 3등분하여 나누어 가지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가족들은 모두 척살되었으며

기원전 140년경부터 마케도니아는 로마 속주가 되었다고 한다

 

 

기원후 395년에 동.서 로마로 분열되고

마케도니아는 동로마 제국의 지배로 넘어 갔으며

그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인들 되었다고 한다

6~7세기에는 동유럽의 슬라브(Slav)족이 여러 도시들릉 점령하여

결혼 정책을 펼치면서 원래는 그리스계 혈통이었으나

이때부터 마케도니아 인의 인종적 특성이 사라졌다고 한다

9세기 말에는 불가리아(Bulgaria)가

11세기에는 동로마 제국(Eastern Roman Empire)

14세기부터는 세르비아(Serbia)가 지배를 하였으며

15세기 이후부터 약 500년 간을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며

투르크인들이 이주해 오면서 이슬람교가 전파되었다고 한다

 

 

18세기 말 오스만 제국이 분열되면서

그리스(Greece)가 독립하고 

세르비아(Serbia), 몬테네그로(Montenegro), 불가리아(Bulgaria)가

독립하였으나

마케도니아(Macedonia)는 독립하지 못하자

마케도니아 땅을 나누어 갖기 위하여

그리스, 세르비아, 불가리아가 서로 전쟁까지 벌리면서

제1차, 제2차 발칸 전쟁 결과

세르비아가 동북부 지방을 차지하고

불가리아는 동부 지방을 

그리스는 남부 지방을 차지하며 나누어 가지며

마케도니아(Macedonia)라는 국가는 없었다고 한다

 

 

세르비아(Serbia)가 차지했던 동북부 지역은

1918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1946년 동북부 지방만으로 

유고슬라비아 연방 여섯 공화국의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1991년 공산 독재국가의 몰락으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가 독립하며

1991년 마케도니아도 독립하였으나 그리스의 반대로 

UN에 마케도니아라는 국호를 등록하지 못하고

'옛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의 마케도니아'라는 국호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리스의 반대 이유는

1912~1913년 발칸 전쟁 때 그리스가 차지한 

그리스의 마케도니아 지방을 되찾으려는 음모가 있는 것이며

또한 그리스에 있는 지방을 대표하는 주(州) 이름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국가 이름은 등록할 수 없었으나 

마케도니아 독립국가로 인정은 받으며 그리스와 분쟁은 계속되어

2019년 2월 북마케도니아 공화국(The Republic of Northern Macedonia)로 

그리스와 명칭에 합의하며 UN에 공식 변경하였다고 한다

 

 

마케도니아(macedonia)의 수도는 스코페(Skopje)로서

인구 약 59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마케도니아는 바다와 접하지 않는 내륙국가로서

국토 대부분이 

디나르 알프스와 핀두스 산맥의 해발고도 2500m의 산지와 

600~900m 고원지대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마케도니아 있는 산 중에 최고봉은 

알바니아(Albania)와 국경에 있는 코랍 산(Mt.Korab:2753m)이라고 한다

 

 

오흐리드(Ohrid)를 출발한지 약 30분 정도 경과하여

마케도니아(Macedonia)의 캬파산(Kjafasan) 국경 검문소에서 수속을 받고

알바니아(Albania)의 카프 단네(Qaf Thane) 국경 검문소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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