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알바니아 여행

천황봉 2019. 1. 25. 13:29

마케도니아 오흐리드에서

알바니아(Albania) 국가로 들어오는

국경 Qaf Thane 검문소를 통과한 버스는

수도인 티라나(Tirana)로 향한다

 

 

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 쪽과 국경인

알바니아(Albania)의 카프 단네(Qaf Thane)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여

버스가 출발하여 보는 배경이다

주위에 나무들이 없어 휑한 느낌이다 

 

 

 

국경에서 3Km 정도 지나와 Qafë Thanë 지역으로

호텔 오데사(Hotel Odessa)가 있는 지점이다

 

Qafë Thanë 지역의 이 지점이

알바니아(Albania) 쪽의 오흐리드 호수(Ohrid Lake)로 가는 분기점으로

오흐리드 호수로 가는 방향 쪽에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호텔 오데사(Hotel Odessa)가 있는 곳에서

찻길 건너편으로

군 진지인 참호(塹壕)들이 여러 군대 보인다​

마케도니아와 국경 지대라 그런지 몰라도

유럽 국경 지대를 여러 많은 나라를 통과해 보왔으나

군 진지가 이 처럼 설치되어 있는 곳은 처음으로 보는 광경이다 

수 천년간 주위의 열강들에게 시달려 온 알바니아는

이 처럼 참호들을 만들어

전국 곳곳에 75만 개가 넘는 벙커와 토치카로 무장하였다고 한다

 

 

마케도니아 쪽에서 알바니아로 국경을 넘어 올 때

고개 길을 넘어 온다는 느낌이 없이 평지로 느껴졌었는데

알바니아로 넘어와 국경을 통과한지 얼마 안되어

한참을 꼬불꼬불 밑으로 내려 간다

역시 조금 전까지 있던 마케도니아 국가는 해발 고도가 평균 700m로

산악 국가였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알바니아는 70%가 산악 고지대로서

대체로 동고서저(東高西低) 지형으로 형성되어 있어

지금 우리는 서쪽 방향을 향해 내려 가고 있는 중 이다

 

 

알바니아에서 고지대는

해발 2700m가 넘는 석회암 봉우리로 이루어진

북알바니아알프스 산맥으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코랍산(Mt.Korab:2751m)이며

동쪽 마케도니아와 국경을 이루며 험준하게 뻗어내리는 중부 산악지대와

그리고 북부 산악지대 보다는 낮으나

그리스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남부 고지대로 3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아드리아 해안을 끼고 있으나

내륙의 높은 산악지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알바니아 국토의 평균 해발 고도는 700m에 이른다고 한다

 

 

아드리아 바다가 있는 서부 해안 지대 쪽이 저지대로서

모든 농경지가 집중되어 있어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라고 한다

 

 

내리막 길을 지그재그로 꼬불꼬불 내려가는 중

플렌자스(Prrenjas) 지역과 페르렌자시트(Perrenjasit) 호수가

내려다 보인다

 

 

내리막 길은

꼬불꼬불 내려 가다보니 

급경사 및 급커브로 꺽어지는 곳이

종종 많이 나온다

 

 

알바니아는

오랫동안 가난과 전쟁 속에서 수 차례에 걸친 실패한 경제 정책으로 인해

고통을 많이 받은 나라라고 한다

 

 

동유럽 국가로 분류되는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공산 사회주의 독재 정권의 잔재로

국민들은 많은 고통을 받았는데

 

 

얼마 전에야 민주주의를 향한 정책을 펴기 시작하였으며

외국과의 관계 개선 및 여행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조금 전에 산을 꼬불꼬불 내려 올 때 보았던

플렌자스(Prrenjas) 지역의 페르렌자시트(Perrenjasit) 호수를

​지나쳐 간다

 

 

플렌자스(Prrenjas) 지역의 공장지대로 보인다

​내가 공단에서 사업을 하다 보니

이 처럼 해외에 나와 산업 단지를 보면 눈길이 많이 가는 편이다

 

 

그런데 대부분 공장들이 폐허가 된 것처럼

가동을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곳에서 보이는 공장들이 짓다가 오래 전에

중단된 것처럼 보인다

 

 

알바니아(Albania)는

국가 공식 명칭은 알바니아 공화국(Republic of Albania)으로

면적은

28,748㎢로 우리 대한민국 남한 면적(100,364㎢)의

1/3 정도의 크기의 작은 나라로

길이는 남북으로 약 340Km, 최대 동서 길이는 153Km라고 한다

 

 

북쪽으로 몬테네그로(Montenegro), 동북쪽에 세르비아(Serbia)

동쪽으로 마케도니아(Macedonia), 남쪽으로는 그리스(Greece)와

국경을 이루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아드리아 해(Adriatic Sea)와 접하고 있는 국가이다

 

 

알바니아(Albania)의

인구는 290만여 명이 살고 있으며

민족 구성으로는

알바니아인 95%, 그리스인 3%가 거주한다고 한다

 

 

언어는

1909년부터 표준어로 알바니아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알바니아어(Shquipja)'는

라틴, 슬라브어, 그리스어의 특성을 가지는

인도 유럽어에 속한다고 한다

 

 

알바니아어(Shquipja)에는

1천년 전에 서로 갈라져 나온 2개의 주요 방언이 있다고 하는데

알바니아 남부지역에 주로 사는 토스크족(Tosks) 방언과

알바니아 북부지역과 코소보(Kosovo)에 사는 게그족(Ghegs) 방언으로

1972년 철자법 회의에서 통합 문어체가 만들어져

현재 2개의 방언으로 하여 널리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종교는

1967년에서 1990년까지 알바니아는 공산체제 하에서 공식적으로

세계적으로 유일의 무신론 국가였는데

이로 인해 수 많은 교회 및 모스크들이 영화관 및 극장으로

바뀌기도 하였다고 한다

 

 

공산체제가 무너지자 미국 선교사들아 들어오면서

서서히 종교가 부활하기 시작하면서

교회와 이슬람 사원이 세워지기 시작하여

수니파 이슬람교가 70%, 로마 카톨릭이 10%, 알바니아 정교가 20%인데

유럽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슬람교가 절대 우위를 차지하는

국가라고 하는 한다

 

 

그 이유는 그리스와의 영토 분쟁의 앙금으로

터키와의 손을 잡으며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 하며

 

 

알바니아 음식도 터키(Turkey)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구운 고기인 쉬쉬케밥(Shish Qubap), 롬스테이크(동글 납작하게 구운 고기),

쿄프테(미트볼) 등이 주식이라고 한다

 

 

마케도니아에서 넘어와 알바니아의 국경 Qaf Thane 검문소에서 출발한지

​약 40분 정도 가까이 되었을까  버스가 정차 한다

 

 

네자 레스토랑(Nezha Restorant) 휴게소이다

티라나(Tirana)로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쉬었다 간다

휴게소는 작은 편의점이었으나

포도송이 한송이 사서 일행들과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여독을 푸는 시간을 가지다가 다시 출발한다

 

 

정부와 의회형태는

중앙집권공화제이며 다당제와 단원제를 택하고 있다

알바니아는

1944년부터 1990년까지 스탈린주의를 정치이념으로 표방한 1당제

공산주의 국가였으며

알바니아노동당이

인민회의의 승인 아래 모든 주요 정책을 결정하였다고 한다

 

 

1991년 이후에는 공산당원이 아닌 사람들도 인민의회에 진출할 수 있었고

이듬해 비공산계인 민주당이 140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완승를 거두었다고 하며

의회에서 선출한 대통령은

총리와 각료를 선정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다고 한다

 

 

알바니아(Albania)의 사회보장제도는

의료혜택이 무료이나

국민건강은 유럽의 다른 국가에 비교하여 조금 뒤떨어졌다고 하며

7~15세까지 의무교육이며 무상교육이라고 한다

 

 

우리가 현재 마케도니아에서 국경을 넘어와

알바니아의 수도인 티라나를 향해 국도를 편하게 달려가고 있지만

1945년 이전에는 간선도로나 표준 철도망이 전혀 없었다고 하며

1980년대 중엽에 이르러서

티라나에서 시작하여

국내 모든 도시들과 외진 산간 마을까지 도로망이 연결되었으며

몬테네그로 및 세르비아 등으로 이어지는 철로망이 완공되었다고 한다 

 

 

알바니아(Albania)에는

국립 산림지가 6곳, 자연 보호구역이 24곳,

천연 기념물이 2000여 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보호와 법체계는 서류상에 불과하고 관리가 소홀하여

대부분의 보호구역에서 불법 사냥과 벌채가 심각하다가

1994년 사냥 금지법이 제정되어 조금씩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알바니아(Albania)는 환경 오염이 심각하다고 한다

하수구는 거의 정화되지 않은 상태로 강물로 흘러들고 있는데

공장의 폐수나 화학물질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래서 현재 환경 오염 방지 대책이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알바니아(Albania) 국토에서

경작이 가능한 땅은 약 1/4 정도라고 하며

그 중에 1/2 가량에서 곡물을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곡물류는 옥수수, 보리, 귀리, 콩류 등이며

산악지대는 원유, 갈탄, 천연가스 등

에너지용 광물 자원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고 하며

금속성 광물로는 세계 최대 채굴량을 보이는 크롬철광을 비롯하여

니켈을 함유한 철광석과 동 등이 채굴된다고 한다

 

 

달리는 버스 좌측 창가로 큰 냇가로 보이는데

쉬쿰빈 강(Lumi Shkumbin)이라 한다

 

 

알바니아(Albania)의

국가GDP는 151억2100만 달러 (세계 122위)이며

1인당GDP는 13,350 달러(세계 86위)로

유럽 국가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고 한다

<2019년 한국 국가GDP: 1조6295억3200만 달러(세계12위), 1인당GDP: 31,430 달러(세계30위)>

 

 

마케도니아에서 알바니아로 국경을 넘어

출발한지 1시간 30분 정도 되었을까

티라나까지 중간지점 정도에 있는 도시 앨바산(Elbasan)에 진입한다

 

 

앨바산(Elbasan)은

인구 14만5천여 명이 거주하는 알바니아(Albania)에서 4번째로 큰 도시라고 하며

카운티(county) 도시이자 시정촌(市町村)이라고 한다

 

* County : 백작이 다스리는 영지. 즉 백작령 또는 백국, 일명 자치령

* 市町村: '기초적인 지방 공공단체'로 '시(市)제도와 정촌(町村)제도'

- 정촌(町村) : 1차 산업(농업)이 주를 이루는 마을

 

 

앨바산(Elbasan)은

기원전 2세기 로마에서 교역로 건설한 아드리아해안에서 비잔티움까지

연결하는 도로인 비아 에그나티아(Via Egnatia) 도로 상에 있는

중요한 경로 중에 한 곳이었다고 한다

 

 

앨바산(Albasan)은

서기 3~4세기에는 타워가 있는 실질적인 로마 요새가 있는

실제 도시로 성장하였다고 한다

비아 에그나티아(Via Egnatia) 상에 있어 외세 공격에 취약하였으나

기독교의 확산에 영향을 받은 곳으로

5세기 초에는 주교, 대성당, 바실리카가 세워지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앨바산(Albasan)은 오스만 지배 시대에

1466년 오스만 군대가 군사 캠프를 건설하고

술탄 메흐메트 2세(Sultan MehmetⅡ) 휘하의 도시 재건축이 뒤따를 때까지

앨바산(Albasan)은 버려진 곳이었다고 한다

 오스만은 깊은 해자(垓子)와 세 개의 문이 거대한 사면 성을 건설하였는데

현재 알바니아에서 영웅으로 존경받는

스칸테르베그 장군(Skanderbeg: 1405~1468년)과 맞서 싸우기 위해

술탄 메흐메트 2세의 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터키어로 '앨바산(Elbasan)'은 '정복된 나라'라는 뜻으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며 

지어진 이후 445년 동안 오스만 도시 문명의 중심지인

앨바산(Elbasan)의 산작(Sanjak)의 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 Sanjak : (터키의) 군, 현(Vilayet) 아래의 행정 구역.

 

 

1467년 스코페, 오히드, 세레스, 카스토리아 출신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앨바산(Elbasan)으로 강제 추방 당하여 왔다고 한다

17세기 후반 오스만의 여행자 에블리야 첼레비(Evliya Celebi)는

앨바산의 모든 주민들은 페르시아의 이슬람 성직자들이 사용하는 터키어를 

읽고 알바니아어로 구사하고 있다고 적었다고 한다

17세기 말까지 20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였다고 하며

1832년 요새는 레시트 파샤(Resit Pasya)에 의해 해체되었다고 한다

  

 

19세기 후기 앨바산(Albasan)에는 

3000여 명의 무슬림 가정과 280여 명의 정교회 기독교 가정이 

거주하였다고 하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15,0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고 한다

 


앨바산(Albasan)은 

제​1차 발칸 전쟁 때인 1912년11월29일 세르비아 군에 점령 당하였는데

영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최후 통첩에

1913년10월25일 앨바산에서 철수를 하였다고 하며

 1915년에서 1918년 사이에 

세르비아인, 불가리아인, 오스트리아인, 이탈리아인에 의해 

연속적으로 점령 당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공산주의 시대에 산업 발전의 집중적인 프로그램이 

앨바산(Albasan) 도시를 약 7만 5천 명의 주민으로 증원되었으며

 이 과정의 정점은 

1970년대 중국인의 도움을 받아 지어진 쉬쿰비니(Shkumbini) 계곡에 있는 

도시 외곽의 거대한 공산당의 

강철(알바니아어 : Celiku i Partise) 야금 단지 건설하면서

앨바산(Albasan)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엔버 호자(Enver Hoxha)는 "알바니아의 제2차 민족 해방"이라고 

단호하게 불렀다고 하나

이 공업단지로 인해 현재 인구는 14만5000여 명으로 증가하였으나

큰 환경 오염을 일으켰고 

엘바산(Albasan)은 

오늘날 알바니아에서 가장 오염된 도시 중 하나라고 한다

 

 

앨바산(Albasan)에서 알바니아(Albania)의 수도인

티라나(Tirana)까지 거리는 

북서쪽으로 약 54Km 정도 거리라고 한다

 

 

​티라나(Tirana)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한다

마케도니아에서 알바니아로 국경을 통과하여 약 2시30분만이며

앨바산에서 1시간 정도만에 티라나에 진입하고 있다​

 

 

티라나(Tirana)는

1920년 이후 알바니아(Albania)의 수도(首都)가 되었으며

기원전 2세기 로마에서 교역로로 만든 도로인 

비아 에그나티아(Via Egnatia)의

로마(Roma)와 이스탄불(Istanbul)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알바니아(Albania)에는

인류 문화가 고대 구석기 시대부터 존재하였다고 한다​

그 근거는 티라나에서 앨바스 방향으로 25Km 정도 거리에 있는

검은 동굴(The Black Cave)라고도 알려진

펠룸바스 동굴(Cave of Pellumbas)​에서 인간이 살던 흔적이 발견 되었는데

연구 결과 3만~5만년전 구석기 시대에 속한 것으로

알바니아에서는

인류가 아주 오래된 구석기 시대부터 존재하고 있었다는 근거라고 한다

유럽에서 이런 종류의 동굴 발견은 6번째라고 한다​

 

 

티라나(Tirana)는

철기 시대 때부터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하였다는데 일리리아인들의 거주지로

기원전 229년 일리리아 전쟁 이후

로마에 합병되어 로마 제국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고 한다

4세기 로마가 동.서로마로 분열되었을 때에

동로마의 후신인 비잔틴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1614년 오스만 시대에 도시로 번성하였지만

1912년 알바니아 독립선언 이후 수도(首都)로 선포하기 전까지는

주목을 받는 도시는 아니었다고 한다 

 

1912년 ​알바니아(Albania)가 독립한 이후

첫 수도는 항구 도시인 두러시(Durrësi)였다고 하며

1920년 루쉬냐(Lushnjë)에서 열린 의회에서

티라나(Tirana)가

새 수도로 결정되어 현재의 수도가 되었다고 한다​

 

 

​티라나(Tirana)에 거주하는 인구는

약 48만여 명이라고 하며

티라나 주변의 위성도시까지 합하면

약 100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티라나(Tirana)의 위치는

알바니아(Albania) 국토의 거의 중앙부에

분지 비슷한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을 받으며 여름은 덥고 건조하며

겨울은 춥지만 눈은 거의 오지않고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한다

 

 

알바니아에서 공산주의가 붕괴된 후

의무 교육 프로그램을 8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조직 개편 계획이

1990년에 발표되었다고 하는데

 이듬해 알바니아의 주요 경제 및 정치 위기와 그에 따른 공공질서의 붕괴로

학교 시스템이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그것은 광범위한 파괴 행위와 교과서와 물자의 극심한 부족으로 이어져 

학교 운영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쳐

이탈리아와 다른 나라들이 물질적인 지원을 하였었다고 한다

많은 교사들이 시골에서 도시 지역으로 이주하여

시골마을 학교의 교사들은 부족하여지고

이로인해 티라나에는 교사들의 실업자 수가 많이 증가하였다고 한다 

이때 약 2,000명의 교사가 해외로 도망하였다고 한다 

 

 

티라나(tirana)에 도착하여

알바니아 국립도서관이 있는 앞 도로에서 정차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시선을 사로잡는 고층 빌딩이 보인다 

 

 

'​플라자 빌딩(The Plaza)'으로

호텔과 쇼핑센터가 입점해 있는 높이 85m 건물로서

티라나(Tirana)의

랜드마크(Land Mark)에 버금가는 건물이라고 한다

 

 

 

시계탑이 보인다

에템 베이 모스크(Et'hem Bey Mosque) 옆에 위치한 시계탑으로

1822년 에템 장관(Et'hem Bey)에 의해 세워졌으며

1928년 높이 35m로 개조 하였으며

1981년, 1999년에 보수 작업을 하였다고 하며

시계탑 꼭대기로 오르는 나선형 90계단으로 올라가

주위 경관을 내려다 볼 수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시계탑의 그림자가

에템 베이 모스크에 닿는 것을 보고

근처 시장의 상인들은 폐장을 하였다고 한다

1970년대까지는 티라나(Tirana)에서 가장 높은 건축이었다고 하며

현재 티라나(Tirana)의 랜드마크(Land Mark)라고 한다

 

 

'에​템 베이 모스크(Et'hem Bey Mosque)'이다

티라나(tirana)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사원이라고 한다

이 모스크는 세워진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공산정권의 독재자 엔베르 호자(Enver Hoxha:1908~1985년)가​

1967년 중공의 문화 혁명의 영향을 받아

종교 탄압에 들어갔고 각종 종교시설을 파괴하거나 용도 변경을 시도하며

세계 최초로 종교가 없는 국가를 선포하면서 1개만 남겨둔 것으로

1991년 공산정권이 무너지며 민주화 사회가 되며

다시 이슬람 사원이 문을 열었다고 한다

'에템 베이 모스크(Et'hem Bey Mosque)'는

1789년 오스만 지배하에 몰라 장관(Molla Bey)​이 짓기 시작하여

아들​ 에템 군사령관(Et'hem Pasha)이 완공하였다고 한다

 

 

 

스칸데르베그 광장(Skanderbeg Square)의 한가운데

알바니아(Albania)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이순신 장군처럼 성웅으로 모시는

'스칸데르베그 장군(Skanderbeg: 1405~1468년)' 동상이 서 있다

'스칸데르베그 장군(Skanderbeg)'은 

알바니아(Albania)의 국토 회복을 위해

1444년~1466년까지 오스만 제국과 13차례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한 영웅으로

유럽 전체로 퍼져 나갈뻔 한 이슬람화를 막은 공으로 

로마 교황청으로 총사령관의 임명도 받은 인물이라고 한다

 

 

'스칸데르베그 장군(Skanderbeg)'은

본명이 제르지 카스트리오티(Gjergj​ Kastrioti)로서

중부 알바니아 지방의 영주인 지온 카스트리오티(Gjon Kastrioti)의

째 아들로 태어나

1423년경 부친이 오스만 제국의 종주권을 받아들였으므로

당시 관례에 따라

오스만 제국에 형제들과 같이 인질로 잡혀가 이슬람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에서 교육을 받으며

'이스칸데르(Iskander)'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알렉산더 대왕을 이슬람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스칸데르(Iskander)'는

군사적 재능이 뛰어남에 발탁되어

오스만 제국의 술탄​ 무라드 2세(MuradⅡ:1425~1451년)의해

군사령관(Beg)로 임명 받아 종군하게 되었다고 하며  

이때부터 '스칸데르베그(Skandebeg)'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1443년 오스만 군대가 세르비아​의 니슈(Nis)에서 헝가리 군에게 대패하자

​오스만 군을 버리고 조국 알바니아 사람들과 함께 독립을 요구하며 

오스만 군과 대항하여 싸워 이기고

자기 가문의 소유지를 되찾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고 한다

1444년 알바니아 제후들과 동맹을 결성하여

총사령관이 되어​

1444~1466년까지 13차례 싸워서 모두 승리하였으며

특히 1450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무라드 2세(MuradⅡ)의 군대를 막아내

서유럽 전역의 영웅​이 되었으며

교황 갈리스토 3세(CalixtusⅢ:1455~1458년)로부터

로마 교황청​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받았다고 한다

스칸데르베그는 죽을 때까지 오스만 군대를 막아 내었으나

1468년 그가 죽은 후 얼만되지 않아

1478년 그이 요새는 오스만 군대에 함락되어

알바니아인들은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500년의 식민 지배하에 있었다고 한다

 

 

 

스칸데르베그 광장(Skanderbeg Square)에서

동쪽에 있는

오페라 극장(Opera & Ballet Theatre)와 문화센터(Palace of Culture)로

사용되는 백색 건물이다

 

 

 

스칸데르베그 광장(Skanderbeg Square)의

남쪽에는

정부 청사 및 관공서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스칸데르베그 광장(Skanderbeg Square)의

북쪽에

알바니아 역사 박물관과

호텔 티라나 인터내셔널(Hotel Tirana International)이 자리하고 있는데

역사 박물관에는

기원전 2000년경 일리리인들이 이주하여 왕국을 구성하고 해양 민족으로 발전하며

고대 그리스와 교류와 로마 제국에 합병되고 비잔틴 제국이어져 

일리리아인으로 비잔틴 제국 황제가 되어

법전을 만들어 제정하고 여러 교회를 건축도 하였지만

하기야 소피아(Hagia Sophia)를 지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JustinianⅠ:527~565년)의 업적들도 전시되고 있다고 하며

이후 오스만 투르크의 식민지배와

제1차 대전 직전 독립하여 조구(Zogu)라는 지도자가 왕국을 세우고

공산혁명이 일어나

1941년 엔베르 호자(Enver Hoxha)의 공산당 정권 시대와

1991년 공산정권의 붕괴되고

민주화되어 현재 이르고 있는 것을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스칸데르베그 광장(Skanderbeg Square)에서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북쪽의 쉬코드라(Shkodra)로 향한다

 

 

알바니아(Albania) 국기에 그려져 있는

'검은 독수리' 조형물이다

'검은 독수리' 문양이 알바니아 국기에 그려져 있는 것은

알바니아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스칸데르베그 장군(Skanderbeg)의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이라고 한다

 

 

알바니아(Albania)의 역사는

알바니아인들의 조상인 일리리아인(illyrian)은

기원전 2000년 경 발칸반도 서쪽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는데

정착지 주위로는 호전적 성향의 부족들이 정착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7세기경 남쪽의 그리스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자치 정착지를 만들었고

기원전 4세기 경에는 일리리아인들이 부족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리스인들은 일리리아 국가와 평화적인 교역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리스는 알바니아 남부를 점령하였다고 하는데

그리스는 현재까지 이에 대한 영토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로마(Roma) 제국은

쉬코드라(Shkodra)를 중심으로 발전해 가던 일리리아 왕국을

넘보기 시작하였다고 하며 

기원전 228년에는 군함 200척을 앞 세워 침공하였다고 하며

 기원전 167년에 발칸 전역이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 가며

일리리아 왕국도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가

로마의 속주인 일리리쿰(illyricum)의 일부가 되었다고 한다

 

 

AD 5~6세기 사이 로마 제국이 쇠퇴기에 접어들자

서고트족과 훈족이 침략하여 왔고

AD 6~7세기 사이에는 슬라브족이 침략을 받았으나

발칸 반도의 타 민족과 달리

자신들의 언어와 관습을 지켜낸 민족이라고 한다

 

 

 

티라나(Tirana)에서 쉬코드라를 향해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돔제 티라나(Domje Tirana) 부근을 지나치는데

웅장한 궁전 같은 곳을 지나친다

'아마데우스 궁전 호텔(Hotel Amadeus Palace)'이라고 한다

 

 

 

알바니아 역사 이야기를 이어 가면

11세기 동로마, 불가리아, 노르만족들이

일리리아 북부 지역에 대한 주도권을 두고 서로 다투기도 하였으나

동로마 제국이 이 지역을 정복하기 이 전에

한 때 일리리아는 

다뉴브강 북부에까지 그 세력을 떨치기도 하였다고 한다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세력이 약화되며

세르비아(serbia), 오스만 왕조(Ottoman Empire), 베네치아(Venetians) 등도

알바니아 땅을 거쳐지나 갔는데

14세기 오스만 제국이 침공하여 일리리아의 지방 세력들이

이슬람교의 오스만 제국에 굴복하게 된다

이 때 알바니아의 영웅 '스칸데르베그' 이름이 나오게 되는 시기이다 

 

 

 

1423년경 부친이 오스만 제국의 종주권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아들들은 인질되어 강제로 오스만 제국으로 가게 되어

그 곳에서 4째 아들이었던 '제르지 카스트리오티(Gjergj​ Kastrioti)'를

이슬람교도로 개종시켜 교육을 받고

 무공이 출중하다고 하여 이슬람 군사령관이 되어 전투에 나갔으나

이슬람 군이 헝가리 군에 패하는 모습을 보고 

이슬람 군에서 이탈하여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스칸데르베그(Skanderbeg)'란 이름으로

일리리아 백성을 모아 이슬람​의 오스만 제국과 13번을 싸워

13전 전승을 거두었으며

특히 그 중에 1450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무라드 2세(MuradⅡ)가 이끄는

대군을 물리친 영웅이 활동하던 시기이다

 

 

1468년 스칸데르베그(Skanderbeg) 장군이 사망한 후

1479년 알바니아는 결국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에 합병되어

433년이란 세월을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몰락하여

1912년까지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 들어 갔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서

1878년 프리센(Prizen: 지금의 코소보) 지역의 알바니아 연맹이 창설되어

자치권을 얻기 위해 투쟁하였으나

오스만 제국은 이러한 투쟁을 무참히 짓밟았으며

21세기인 현재는 세르비아에 지배 하에 있어

코소보 지역의 자치권 독립을 염원하고 있다고 한다

 

 

1910년 독립을 선언하고

이즈마일 케말리(Ismail Qemali)가 이끄는 지방 정부를 세우자

오스만 제국의 탄압은 더욱 심하여졌으나

1912년 더욱 강한 저항으로 알바니아 독립을 쟁취하여

1913년 영국에서 '6개국 대사 회담'을 통해

알바니아 국토의 거의 절반 면적인 '코소보'지역을  

세르비아에 통째로 넘겨주며 독립국으로 승인을 받았는데

완전한 승인은 아니었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 발발로

그리스, 세르비아,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의

열강들에게 차례로 침략을 받으면서

완전한 독립을 위한 휴지기 시대를 갖다가

1921년 알바니아 자체 정부를 수립하여 국제사회로 독립국으로 승인되어 

아메드 조그(Ahmet Zogu)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며

1928년 스스로 국왕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과는

관계가 악화되어 갔는데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이 시작되자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1883~1945)가 이끄는 

이탈리아 군이 침략하여 왔으며

1943년 엔버 호자(Enver Hoxha)가 이끌던 공산당이

이탈리아에 저항운동을 하며

독일에 레지스탕스의 주역으로 활동하기도 하여

1944년 10월 무렵에는 소련의 지원을 받지 않고서

동유럽에서 유일하게 독일군을 격퇴시키는 공을 세웠다고 한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엔버 호자(Enver Hoxha: 1908~1985년)가 이끄는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하고

1946년 알바니아 공화국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2년 뒤에는 유고슬라비아와의 관계를 단절하였으며

스탈린이 이끄는 소련과 연합을 꾀하여

공산정권의 입지를 막으려는

미국과 영국에 의해 시도도 있었지만 막지는 못하였다고 한다

1960년에는 소련의 후르시초프(Khruschchev)가

알바니아에 잠수함 전진기지를 요구하자 소련과 단절하고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1966년에는 중국의 문화혁명에 동참하고

알바니아에는 종교가 없는 나라로 선포하였다고 한다

1968년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에 침공하자

바르샤바 조약에서도 탈퇴하였다고 한다

1977년에는 중국의 새로운 지도지들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3개의 세계' 이론을 내세우자

이를 비판하며 이듬해 중국과도 단절하였다고 한다

 

 

 

1985년 엔버 호자(Enver Hoxha)가 사망하자

그의 후임인 라미르 알리아(Ramir Alia)는

민주화 및 세계 각국과 외교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였다고 한다 

1990년 동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산 체재가 무너지면서

학생들의 시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야당의 존재를 인정하며

1991년에 총선에서 공산당이 승리하였지만 

계속된 경제 실패와 식량 파동으로 폭동까지 야기되어

1992년 선거를 통해 47년 동안의 공산체제는 종지부를 찍었다고 한다

 

 

창 밖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저녁 노을로 붉어지는 하늘에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황홀함에 빠져들게 하는

구름의 향연을 펼치고 있어

창 밖으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가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도시에서 바쁘게 생활해서 그런지 

하늘을 바라 볼 일이 많지 않아

이런 양털 모양의 작은 덩어리의 털쌘구름은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저녁 노을과 조화된 아름다운 하늘의 모습은 

환상적이다 못해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쉬코드라(Shkodra)에 근접하면서

서쪽 하늘은 더욱 붉은 노을로 물들이고 있다

 

 

쉬코드라(Shkodra)에 진입하기 시작한다

산 위로 성벽이 보인다

해발 130m의 발다누즈 언덕(Valdanuz Hill) 위의

로자파 성(Rozafa Castle)이다

 

 

로자파 성(Rozafa Castle)은 

기원전 3세기 일리리안 시대에 건축되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쉬코드라 성(Shkodra Castle)으로 이 곳이 수도(首都)였다고 한다

이 성은 로마에게 점령 당하였으며

베네치아에 점령 당하며 증축도 되었으나

오스만 제국의 공격에 마지막까지 견디다가 무너진 성이라고 한다

 

 

로자파 성(Rozafa Castle)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 옛적에 쉬코드라 성벽공사를 하던 삼형제가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성벽 쌓는 일을 하였는데

계속 이들이 낮에 정성껏 쌓아 올린 성벽이 

밤이면 무너지는 것이 반복되는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 형제들은 성벽 쌓기를 중단하고 고심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오랜 근심에 빠져 있을 때에

어느날 그들 형제들 앞에 웬 노인이 나타나 

여인을 제물로 성벽에 넣고 쌓아 올리면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하며

재물로 바칠 여인은 여기 삼형재 중에 단 한 명의 부인으로서

내일 점심을 준비해서 오는 여인을 재물로 바치라고 하며

이 모든 것은 부인들에게 비밀로 할 것을 당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날 저녁 집으로 그의 형제들  

첫째와 둘째는 아내들에게 이 모든 것을 말해 주며

내일 성벽 공사장으로 식사를 가지고 절대 오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막내는 그 비밀의 당부를 지켜 부인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날 점심에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 동생 부인인 '로자파(Rozafa)'가 

점심식사를 성벽 공사장으로 오는 바람에

제물로 받쳐지게 되었다고 한다 

 

 

로자파(Rozafa)는 성벽의 관한 이야기를 듣고서

성벽 공사의 성공을 위하여 

기꺼이 성벽 안에 갇혀지는 제물로 받쳐지며 

청언을 하였는데 

오른쪽 눈은 젖먹이 아들을 볼 수 있게,

오른쪽 가슴은 아기에게 젖을 물릴 수 있게,

오른손은 아이를 쓰다듬을 수 있게,

오른발은 아이의 요람을 흔들어 줄 수 있도록

성벽 밖으로 내밀 수 있도록 구멍을 내어 달라고 하며

성벽 안으로 들어가는 제물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아주 애닮픈 모정(母情)의 사랑이 전해지는 

'로자파 성(Rozafa Castle)의 전설'로 

 

 

 

오늘 날도 이 곳의 여성들은 성이 있는 발다누즈 언덕 아래 있는 

스카다르 호수(Skadar Lake)에서 가슴을 적신다고 한다  

 

 

샤미아 에 파루크 모스크(Xhamia e Parrucës Mosque)가 보인다

벽에 노란색으로 칠하여 놓은 것이 특이하였다

지금까지 보아 온 모스크들은 백색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쉬코드라(Shkodra)는 

알바니아(Albania) 국가에서 4번째로 큰 도시로

인구 약 20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쉬코드라(Shkodra)는

알바니아에서 BC1000년전 경부터인 가장 오래된 도시로

알바니아어로는 슈코더르(Shkodër)라고 하며

이탈리아어로는 수쿠타리(Scutari)라고 불렀다고 한다

 

 

 

쉬코드라(Shkodra)는

유럽에서도 유서 깊은 고도(古都)라고 하며

잔통적 게그족(Ghegs)들의 문화의 중심지라고 한다

쉬코드라 성벽에는 BC 1000년 경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BC 500년 경부터는 부나강(Buna River)과 드린강(Drin River)이 

만나는 합류지점에 있는 요새였던 쉬코드라 성이

도시 방위를 책임지고 있었다고 한다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Titus Livius: BC59~AD17)는

이 도시(Shkodra)는 

BC 168년 로마에 항복했던 일리리아의 마지막 왕이었던 

젠티우스(Gentius)가 수도로 삼은 곳이라 언급하였다고 한다

 

 

비잔틴인, 불가르족, 세르비아인, 투르크족이 차례로 

이 쉬코드라를 소유하였다가 

다시 일리리아족들이 되찾아 지배하였는데 

14세기 중후반에 세르비아의 발샤(Balsha) 가문이 차지했는데

 발샤 가문은 1396년 이 도시를 베네치아에 팔았다고 한다 

 

 

15세기에는 알바니아의 영웅인 스칸데르베그(Skanderbeg)의 

거점 도시였다고 한다

1468년 스칸데르베그(Skanderbeg)가 사망한 후 

이슬람의 오스만 제국은 

1473년에서 1479년 이 쉬코드라에 대해 포위 공격을 가하여 

마침내 1479년에 함락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1760년 이후 쉬코드라의 부호 부샤티(Bushati) 가문으로 통치권이 넘어가면서 

이 쉬코드라는 사실상 독립했지만 

1831년 오스만 제국은 이 시에 대한 자신들의 통치권을 다시 주장했고 

이곳을 한 주의 주도로 삼았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6~1918년에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다가 

이어서 연합군의 수중에 들어 갔다고 한다 

1921년 알바니아 다시 합쳐졌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대성당, 교황청 직속 대학 및 프란체스코 수도회 등이 있는 

알바니아 로마 가톨릭교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1944년 후 알바니아를 장악한 공산주의 정권에 저항했던 도시라고도 하며 

현재 소수의 열렬한 이슬람교도들과 약간의 동방정교도들이 있으나

주민의 절반 이상이 가톨릭교도들이라고 한다 

 

 

​이제 저녁 노을 잔치도 끝나 가고

오늘 저녁 묶을 숙소에 거의 도착하여 간다

 

 

티라나(Tirana)를 출발한지 2시간 30분쯤 지나

쉬코드라(Shkodra)에서 북쪽으로 10Km정도 떨어진

한적한 그리레(Grilë)라는 소읍에 있는

하바나 호텔(Havana Hotel)에 도착한다

 

 

날이 밝아 왔다

출발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호텔 마당을 물청소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가 하루 밤을 묶었던 

하바나 호텔(Havana Hotel)이다

룸(Room)에서 열리는 창문이 없어 공기 순환이 안되어 

좀 답답했던 호텔이다

 

 

내가 너무 일찍 밖으로 나왔나

호텔 주변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왔는데도

일행들이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안한다

호텔 룸에 있는 것이 답답했는데...

 

 

일행을 기다리며 

잠시 도로 변을 서성이는데

말이 뛰어 스쳐가고 

말 주인이 허겁지겁 자전거를 타고 뒤쫓는다

말이 마굿간에서 탈출한 모양이다 

 

 

이제 알바니아(Albania)에서 짧은 모든 일정을 마치고

북쪽에 있는

몬테네그로(Montenegro)와 국경을 향해 출발한다 

 

 

알바니아를 떠나가며 인사법이 재미 있어서 소개한다

남녀간에는 악수를 한다고 하며

동성간에는 키스를 한다고 한다

알바니아 북쪽 지방에서는 담배를 교환하는 것이

좋은 인사법이라고 여긴다고 한다

 

 

 

좋고 싫음의 표현 방법에서는

'좋다'는 표현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싫다'는 표현은 고개를 앞뒤로 흔든다고 한다

우리와는 완전 반대의 표현 방법으로

알바니아를 여행할 때는 주의할 점이다

 

 

알바니아에서는 대부분의 가사의 육체 노동은

여성들이 담당한다고 한다

가부장적인 나라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식사 후에 빵으로 접시를 닦으면 불만족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알바니아인들의 관습법인 카눈(Kanun)에서

원수라도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은 도와주도록 하고 있어

알바니아 인들은 일반적으로 손님에게 친절하다고 한다

그러나 코소보 사태나 난민들, 경제난 등을 겪으며 혼란도 있어

여행자들은 항상 조심하여야 한다고 한다

 

 

그리레(Grilë)에 있는 하바나 호텔(Havana Hotel)에서

출발한지 약 40분 정도 경과되어

스카다르 호수(Skadar Lake)의 동북쪽 끝에 있는

몬테네그로(Montenegro)로 넘어가는

알바니아(Albania)의 '하니 이 호티트(Hani i Hotit) 국경검문소'를 통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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