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그리스 여행

천황봉 2013. 4. 8. 09:14

 그리스와 터키를 7박 9일간 여행하기 위하여

저녁 20시 집을 나와 인천공항에서 21시에 가이드와 미팅 후

비행기 티켓팅을 하는데 다른 여행때 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

23시가 약간 지나 짐 부침을 완료하고

입국수속후 면세점 식당을 찾았으나 문을 닫은 후였다.

조그마한 간이 제과점에서 캔맥주 한 병을 마시고

비행기 탑승 후 이륙한 시간이 밤 12시50분.....

행기 식사를 마친후 잠이 들어 비행시간이 7시간이 지나 눈을 떳는데

아직도 중국땅 히말라야 산맥이 가까운 티벳고원 위를 날고 있었다

 

파키스탄 상공을 거쳐 호르무즈해협을 지나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후 그리스로 가는

환승공항인 카타르 도하공항에 도착한 현지 시각이 날이 새기전

새벽 5시05분(한국과 6시간차)이었다.

 

 

카타르 도하공항에서 내려

버스로 환승자들만 모이는 Transfer Airport로 가

도하공항 입국심사를 마치고 면세점을 통과하는데 양주코너가 보였다.

이럴수가 여기 공항 외부로 나가지 않고 통과만 하는데도

이 공항 입국시

타국 공항면세점에서 구입한 양주는

이슬람 국가라 압수한다고 하여 한국에서 안 사왔는데....

 

 

2층으로 올라가 식당에서

카타르맥주와 닭튀김과 야채를 주문하여 술한잔 하는데

맥주는 알콜도수가 없고 사이다 마시는 기분이랄까...

 

 

2시간50분이 지난 아침 7시55분 도하공항을 이륙하여

 

 

그리스 아테네로 가는 비행기에서 몇 시간 동안

내려다 보이는 광경은

 

 

황량한 사막이고 중간 중간 아주 조마한 오아시스가 보였다

 

 

도하에서 이륙하여 3시간 정도가 지나자

 

 

 파랗게 지중해가 보이기 시작하고

 

 

이제는 다 왔구나 하며

지루감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비행기에서 보는 지중해는 정말 아름답게 보인다.

 사막만 보다가 그래서 그런가!!!!!

 

 

비행기는 점점 고도를 낮추고 시작하고

밑을 내려다 보니

집들은 엄청나게 많은데

 

 

우리나라처럼 건물은 안보이고

전원주택들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스 아테네공항(엘렙테리오스 베니젤로스공항)에

도착한 시각이 13시10분(한국과 7시간차이나 썸머타임 적용)이었다

인천공항 이륙하여 20시간20분 소요되었으며

집나온지 24시간이 지난 시간이었다

 

 

공항 근처의 올림푸스식당에서

첫 식사로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는데

 

 

토마도, 치즈, 오이, 올리브와 올리브 기름에 딱딱한 빵을 찍어 먹는데

앞으로 적응하려면 애좀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의 인구는 1100만명 정도이고 종교는 그리스 정교라 한다.

 

가이드는 그리스와 이웃 나라인 터키와의 관계를 대한민국과 일본에 비유하였다

대한민국은 일본에 36년간 나라를 잃었는데

그리스는 터키에 약400년간을 지배하에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터키와의 운동경기나 무엇 등을 하면 굉장히 치열하다고 한다

 

 

아테네 시내로 가는 도중 많은 올리브 나무가 보였는데

수명이 2500년이고 사계절 푸르며 열매는 해갈이를 한다고 한다

그리스문명의 찬란함은 크레타문명에서 출발하고

크레타문명은 이집트문명과 오리엔트문명을 받아

꽃피운 종합 해양문명에서 출발하는데

크레타 문명이 그리스 본토로 흘러들어가 미케네 문명을 잉태하고

계속적인 자기화 과정을 거쳐

기원전 6세기경 화려한 그리스문화 전성기를 누렸으며

그 바탕 위에 로마가 세워졌다고 한다

 

 

그리스는 예부터 지진이 많은 나라이므로

높은 건물은 세우지 않는다고 한다

 

 

이 문은 하드리안 문으로

제우스 신전 바로 앞에 있으며 AD131년 아테네 문명을 본받자고

노력한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를 칭송하기 위하여

세운 문으로 신.구 아테네를 경계선을 겸한다.

신.구란 고대 아테네와 로마시대 아테네를 구분하는 개념이다.

개선문 형식의 이 문의 양면에는 두개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한면에는 '이것은 테세우스의 고대 도시인 아테네이다'

또 한면에는 '이것은 테세우스의 도시가 아닌 하드리아누스의 도시인

아테네이다'라고 써 있다고 한다

 

 

아크로폴리스 광장

고대 그리스 도시에서 방어를 목적으로 만든 중심지역으로

도시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있으며 주요 관공서나 종교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도시건설이 원래 종교적 행위였기 때문에

그리스의 도시 계획에서는 신들을 위한 집을 짓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요소였다.

또한 군사적 관점에서 보아도

언덕 위는 가장 바람직한 자리로서 아크로폴리스는 요새였으므로

군사적으로 유리했고

언덕은 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자연의 신비(동굴, 샘, 숲, 골짜기)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종교적으로도 적합했다.

아테네에서는 BC 5세기 후반에 세워진 가장 유명한 아크로폴리스가 있다.

성벽으로 둘러 싸인 바위투성이 언덕에 있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이 도시의 수호신인 아테나의 여신을 위해 지어졌다

 

 

지금까지 여기에 남아 있는 건축물은

성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프로필라이움, 아테나 여신을 모신 신전이며

텔로스 동맹의 보물 창고인 파르테론 신전,

농업의 신들(특히 에릭토니오스)의 신전인 에렉테움 신전,

그리고 도리스족과 이오니아족이 아테네 정부 치하에서 화목하게 사는 것을

상징한 건축물인 아테나 니케 신전등이 있다

 

 

아크로폴리스 광장에 올라 가는 중턱에서 언덕 아래로 음악당이 보이는데

이로드아티코스 극장이다.

161년에 아티카의 대부호 이로드아티코스가

그의 아내 아스파시아 안니아 레길라를 위해 건축하여

아테나에 기증한 것으로

 

 

지금도 각종 연극, 콘서트, 오페라, 그리스 고전극이 상영되고 있으며

6,000명의 관중을 수용할수 있다고 한다

 

 

이로드 아티코스 음악당(Herodes Atticus Odeum)에서

프로필라이움(Propylaeum)으로 오르면서 보는데

숲으로 우거진 필로파포스 언덕(Philopappos Hill)  정상부에

로마 집정관이었던

율리우스 안티오쿠스 필로파포스(Julius Antiochus Philpappos)의

송덕비가 보인다

고대에는 신과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여신 9명의 뮤즈에게 받쳐진 언덕이라고

'뮤즈의 언덕(Muse Hill)'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아크로폴리스(Acropolis)에서 정상부 가는 길목에는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고 감금되었던

소크라테스 감옥(Socrates Prison)이 있다

 

 

프로필라이움(Propylaeum)

고대 그리스에서 신전이나 성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운 문을 말하며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BC 437~432년에 건축가 무네시클레스가 건조한

아테네의 아 크로폴리스에 있는 것으로

두 개의 도리아 양식의 포르티코가 5개의 문으로 뚫 린 중앙벽 옆에 있다.

출입구가 2개 이상일때 주로 복수형‘Propylaea'을 쓴다

 

 

프로필라이움(Propylaeum)에서 서쪽으로 내려다 보았다

아레오파고스 언덕(Areopagos Hill)이 있는 숲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전쟁의 신 '아레스(Ares)'가 자신의 딸을 강간한

사촌형제 호티우스(Hotius)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신들이 모여 재판을 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고대 그리스에서 일어난

살인과 강간에 대한 재판과 고대 의회가 열렸던 곳으로

'아레오파고스(Areopagos)'는 '대법원'을 의미한다고 한다

 

 

 좌측의 바위 언덕인 아레오파고스 언덕(Areopagos Hill)이 보이고

숲속의 아고라(Agora)

우측에는 헤파이스토스 신전(Temple of Hephaestus)이 보인다

아레오파고스 언덕(Areopagos Hill)의 바위에는

성경구절 동판이 박혀져 있는데

사도바울이 2차 전도 여정 중 논쟁을 하였던 장소(행 17:16~34)라고 한다

이 장소는 기독교에서도 중요한 장소로서

매년 6월 29일 그리스 정교회에서 사도 바울 기념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아크로폴리스(Acropolis)의 니케 신전(Temple of Nike)에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장식되어 있다

 

- 이오니아 양식(Ionia Style) : 아테네 전성기때 이오니아 지방에서 발생하여

1세기 가량 성행하였는데

돌기둥을 우아하고 경쾌하게 한것이 특징으로

기둥머리에 소용돌이 원형조각을 하였다

 

 

아크로폴리스(Acropolis)의 프로필라이움(Propylaeum)은

도리아식 기둥으로 장식되어 있다

 

- 도리아 양식(Doria Style) : 그리스 양식 3가지중 가장 일찍 나타났으며

장식이 적고,

힘이 강한 형태로서 기둥의 아래부 또는 중앙부가 블록하고

모양 장식이나 기둥아래 주초를 두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아크로폴리스(Acropolis)의 프로필라이움(Propylaeum) 입구에는

코린트식 기둥도 보인다

 

- 코린트 양식(Corinth Style) : 기원전 6세기부터 5세기경 그리스에 발달한 건축 양식으로

화려하고 섬세하 며 기둥머리에 아칸서스 잎을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파르테논 신전(Parthenon)이 있는 정상에 올라와

이 곳으로 들어오기 위하여 통과하였던

뒤돌아 입구 문인 프로필라이움(Propylaeum)을 본 것이다

도리아식 기둥이 받치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Parthenon)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지시를 받은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감독하에

건축가 익티노스와 칼리크라테스가 지었으며

BC 447년 공사 시작으로 BC 438년 에 건물 자체가 완성 되었으며

같은해 페이디아스가 내부에 금과 상아로 만든 아테나 여신상을 받쳤으며

건물 외부 장식은 BC 432까지 계속되었다.

기단 규모는 높이 30.89m, 너비는 69.5m이고

그리스 건축양식 3가지 오더(도리아양식, 이오니아양식, 코린트양식)중

가장 단순한 도리아식 오더가 최고 반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파르테론이라는 이름은 처녀라는 뜻으로

이 신전과 관련있는 아네나 파르테노스 의식에서 비롯 되었다

 

 

- 아테나(Athena) 여신

그리스 신화에서 도시의 수호신이자 전쟁, 공예, 실천적 이성의 여신으로

로마의 신화에서 미네르바와 동일하다.

신들의 왕인 제우스가 전쟁의 신인 아테나와 아레나에게

전쟁을 할 영역을 정해 주었는데

아테나가 도덕적, 군사적 으로 아레스보다 우월했다.

이유는 아레스가 단순히 유혈의 욕망을 상징하는데 비해

아테나는 전쟁의 지적이고 문명화된 측면과

정의 및 기술의 덕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파르테논 신전 기둥에는 그녀의 탄생 과정인 어머니 없이

제우스 머리에서 태어남과 아테네 시의 종주권을 놓고

포세이돈과 싸운 결투 등이 새겨져 있다

 

 

에렉테움(Erechtheum) 신전

BC 421~405년에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세워졌으며

이오니아식 주두는 그리스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여상주가 받치고 있는 특색있는

포치와 상세부는 그 복잡함과 매우 세련된 완성도로 유명하다.

에렉테움의 구조가 복잡해진 것은

건물이 들어선 부지가 고르지 않은 탓도 있 었겠지만

아테나와 포세이돈 두 신의 전설적 갈등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전설의 내용

포세이돈과 아테나는 하나의 도시를 놓고 겨루었다고 한다

심판은 그 도시의 주민들이 결정하기로 하고

겨루는 내용은

주민들에게 얼마나 더 필요한 물건을 선물로 주느냐? 였는데

포세이돈은 말(馬)을 너무나 좋아하는 신답게 여기에서도 말을 꺼냈다고 한다

아테나는 올리브나무를 꺼냈는데

이 도시 사람들은 올리브가 말보다 훨씬 쓸모있다고 판단하여

아테나의 승리로 판정해줬다고 한다

이 도시는 아테나에게 봉헌되었고

도시 이름은 그녀의 이름을 따서 '아테네(Athens)'라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신전을 세우면서 영리한 아테네 사람들은

한 신전에

두 신을 위한 성소를 모두 마련했다고 한다

또 아테나 여신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이곳에 살았다는

설의 에렉테우스 왕을 신전의 이름으로 내걸어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오니아 양식으로 지어진

이 우아한 신전은

지대가 높은 동쪽은 아테나에게 바쳐졌고

낮은 뒷면 오른쪽은 포세이돈을 모셨다

 

 

 에렉테움신전 구조의 크기가

각각 다른 세개의 포르티코(현관)가 세 방향에서 튀어나와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것은

여섯 개의 소녀상인 카리아티드가 남쪽 현관이었다고 한다

 젊은 여자들의 입상이 아키트레이브를 받쳐주고

옷의 주름은 기둥의 세로홈 구실을 한다고 한다고 한다

 이들은 파르테논으로 가는 행렬처럼 모여 있는데

한쪽의 세 사람은 왼쪽 다리를 구부리고 있고

다른쪽의 세 사람은 오른쪽 다리를 구부리고 있어

마치 걸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르킨다

 왼쪽 귀퉁이에 있는 인물상의 오른편에 있는 카리아티드는

1806년 엘긴경이 그리스의 예술을 구제한다는 미심적은 이유에서

영국으로 가져간 것을 복제한 것이다고 한다 

얄궃게도 영국으로 가져간 상들은 다시 안전한 곳으로 옮겨졌고

일반인들에게는

파이버글래스로 만든 모조품만 전시되고 있다

 

 

포세이돈(그리스어: Ποσειδών)

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지진.돌풍의 신이다.

로마 신화의 넵투누스(라틴어: Neptūnus)에 해당한다.

크로노스와 레아 사이에 태어났으며, 제우스 및 하데스 등과는 형제지간이다.

올림포스의 12신의 첫 번째 세대에 하며

돌고래, 물고기, 말, 소가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주로 삼지창(트리아이나)을 들고 물고기나 돌고래 떼와 함께

긴 머리카락과 수염을 날리며 파도를 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성미가 급하고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툭하면 다른 신들이나 인간들과 다투었다.

탄생의 신화는

포세이돈의 아버지인 크로노스는 어느 날 불길한 불길한 예언을 들었다.

아버지 우라노스처럼 크로노스 자신도 아들에 의해 쫓겨난다는 것 이었다.

이 운명을 피하기 위해 크로노스는

아내인 레아에게서 자식들이 태어 나자마자 족족 삼켜버렸다.

그 중에는 포세이돈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식을 잃을 때마다 고통스러웠던 레아는 한 명이라도 구하고자

여섯 번째 아이인 제우스를 출산할 때 돌덩이를 강보에 싸서 남편에게 건넸다.

그리고 진짜 제우스는 아말테이아에게 맡겼다.

그렇게 제우스는 남매 중 유일하게 살아 남게 되었다.

제우스는 나중에 장성해서 크로노스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는 아버지가 삼킨 형제들과 누이들을 되찾고자 메티스로부터

구토제를 구해 어머니 레아에게 건네주었다.

레아에게서 받은 구토제를 마신 크로노스는

예전에 삼긴 모든 자식과 돌을 토해냈다.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이 그들이었다.

구출된 그들은 제우스와 힘을 합쳐

크로노스를 포함한 티탄 신들과 전쟁을 벌였다.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자식들인

퀴클롭스 형제와 헤카톤케이레스 형제의 도움까지 받은

올림포스 신들은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고

티탄 신들을

대지의 가장 깊은 곳인 타르타로스에 봉인하며 그들의 세계를 열었다

 

 

포세이돈과 아테나의 관계는 그들은 시종일관 싸웠다.

이유는

아테나가 포세이돈을 남편으로 삼고 싶어하는 반면

포세이돈은 아테나를 여자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대결은 최종적으로 포세이돈의 승리라 볼수 있다

 

 

포세이돈은 인간인 메두사와 서로 연인이었는데

포세이돈은 자신을 향한 아테나의 연정을 꺾어버리기 위해 고의로

메두사와의 사랑을 드러내놓고 다녔으며

심지어는 아테나의 신전까지 메두사를 데리고 가서 사랑을 나눴다.

이에 분노한 아테나는 메두사를 흉칙한 괴물로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아테나는 포세이돈을 굴복시키고

자신의 남편으로 만들기 위해 아폴론과 짜고

페르세우스를 이용하여 메두사를 죽여 버린다

 

 

그러나 메두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온

포세이돈은 메두사의 영혼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고

자신이 좋아하는 말의 형상을 한 천마(天馬) 페가수스로 만들고

훗날 아예 페가수스를 별자리에 올려놔 버린다.

결국 페가수스가 별자리에 올라감으로 인해 아테나는

메두사의 영혼에 더 이상 해를 입히지 못하게 된다

 

 

헤파이스토스 신전이 숲 속으로 보인다

고대 아고라 내에 있는 그리스에서 가장 원래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신전으로

건축 시기는 파르테논 신전이 세워졌던 시기와 비슷하다고 한다.

이 신전은 씨세이온 신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씨세이온은 아테네시의 종주였다.

발굴을 시작할때

사람들은 이 건물을 씨세이온 신전이라고 생각하고 발굴했는데

대장장이와 관계된 물건들이 많이 발굴되면서

헤파이스토스 신전이라고 바꾸어 부르게 되었으나

아직도 그리스인들은 씨세이온 신전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헤파이스토스

올림포스 신들중 하나로 '낮을 빛내는 사람'이란 뜻이며

화산의 신이자 대장장이 신으로

로마신화의 불카누스(불칸:Vulcan)에 해당하며

신들의 무기와 장신구, 신들의 궁전을 만들었다.

그는 제우스와 그의 아내 헤라와의 사이에 태어 났으나

절름발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머니 헤라는 그것이 싫어서

올림포스산에서 그를 천상 밑으로 떨어 뜨렸다고 한다.

그때 바다의 여신인 테티스가 구출하여 9년을 바다에서 길렀다고 하며

트로이 전쟁때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에게 무기를 만들어 준 것은

그 답례라는 설도 있다.

나중에 올림포스산으로 돌아가 살게 되었는데

제우스와 헤라가 다툴 때

헤라편을 들자

제우스가 노하여 그의 발을 들어 천상에서 떨어 뜨렸다.

그는 꼬박 하루 동안 낙하한 끝에 림노스섬에 떨어졌는데

이때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절름발이에다가 추남인 그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 아프로디테를 아내로 삼았는데

아프로디테는 모든 남신들이 욕심내는 최고의 여신이었는데

추남인 헤파이스토스의 아내가 되면서 분란이 없어 졌다고 한다.

 또한 아내와 그녀의 정부(情夫)인 군신(軍神) 아레스가 밀회하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을 만들어 사로잡았다는 설도 있다.

미술작품에서 헤파이스토스는 수염을 기른 건장한 중년남자로

손에는 쇠망치나 연장을 들고 있고 오른쪽

어깨는 옷을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신전 옆으로 원형의 디오니소스 극장이 위치해 있다.

이는 문명의 역사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극장은

옛날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BC 6세기경에 건설된 그리스 최고의 극장인데

현재 모습으로 된것은 AD 1세기 로마제국 네로황제 시대이다.

당시엔 1만7000여명을 수용하였다

극장은 아테네인들의 주 음악당으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고대부터 근래까지 드라마 예술의 요람이 되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곳에서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과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들이 시연되었다.

디오니소스 극장은

예술가이자 연설가, 동시에 집정관이기도 한 리코우르고스에 의해

복구가 이루어져

기원전 4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후 검투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로마인들에 의해 확장공사가 이루어졌다.

 

                       - 아이스킬로스 (Aeschylus : 그리스의 비극 시인, BC525~BC466)

                             - 소포클래스 (Sophocles : 그리스의 비극 시인, BC496~BC406)

                             - 에우리피데스 (Euripides : 그리스의 비극 시인, BC480~406)

                             - 아리스토파네스 (Aristophanes : 그리스의 시인, 희극작가 BC448~BC380)

                       - 리코우르고스 (Lykourgos : BC330~BC329년까지 복구공사)

 

 

아크로폴리스 언덕 남쪽 기슭에 있는 유적으로

숲의 신, 연극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모신 신전 2개와 극장이 있다

  디오니소스 신전은 기원전 5세기에 지어졌다.

현재 신전은 나무로 둘러 쌓이고 초석과 토대만 남아 있으나

신전에 사용된 직사각형의 초석의

그 위에는 아르카메니스(Alkamenis)에 의해

금과 상아로 만들어진 디오니소스 신상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제우스와 세멜레 사이에 태어난 디오니소스는

풍요의 신으로 원래는 12신의 자리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화덕의 여신 헤스티아에게 12신 자리를 물려 받았다.

디오니소스에 대한 가장 널리 퍼진 전설에 따르면

카드모스(테베의 왕)의 딸이지만

원래는 프리기아의 대지의 여신인 세멜레와 제우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디오니소스라고 알려져 있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세멜레를 질투한 나머지 세멜레를 부추겨

제우스가 참모습으로 나타나게 해달라고 소원하게 하여

그가 정말 신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도록 했다.

제우스는 그 요구에 순순히 응했으나, 인간인 세멜레가 견뎌내기에는

그의 힘이 너무 컸던 까닭에

세멜레는 제우스에게서 나온 번갯불에 타죽고 말았다.

하지만 제우스는 세멜레의 태내에 있던 아들은

자기 넓적다리 속에 집어넣어 달이 찰 때까지 키웠다.

이렇게 해서 디오니소스는 2번 태어나게 되었고,

그 뒤에는 헤르메스 신이

상상의 장소인 니사로 그를 데려가 바코스 숭배자들의 손에서 자라도록 했다.

디오니소스는

수액(樹液), 즙, 자연 속의 생명수를 상징하는 존재로 간주되었으므로

그를 기려 흥청망청 잔치를 벌이는 의식이 성행했다

이러한 디오니소스 축제(바코스 축제)는

미케네 문명 이후 여자들 사이에서 세력을 넓혀갔으나

남자들은 그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테베의 왕 펜테우스가

바코스 숭배자들의 행동을 염탐하려 하다 들켜 몸이 갈갈이 찢겼으며

아테네인들은 디오니소스 숭배를 멸시한 벌로 성불구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가정을 버린 채 언덕으로 모여들어,

사슴 가죽옷을 입고 담쟁이 덩굴관을 쓴 차림으로

제례 때 외치는 소리인 '에우오이!'(Euoi)를 질러댔다.

그들은 티아시(성스러운 무리)를 이루어

티르소이(회향나무 가지에 포도덩굴의 잎을 엮어 매고

끝을 담쟁이 덩굴로 장식한 것)를 흔들면서

피리와 팀파니의 반주에 맞추어 장작불 옆에서 춤을 추었다.

디오니소스 신의 영감을 받게 되면 이 바코스 숭배자들에게 신비한 힘이 생겨

뱀과 동물에게 마법을 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모파기아(omophagia:날고기먹기) 축제에 탐닉하기 전에

산 제물을 갈갈이 찢을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을 지니게 된다고 여겨졌다.

바코스 숭배자들은 이 신이 제물로 바치는 짐승의 몸으로 화한다는 믿음에서

그를 브로미오스(외치는 자), 타우로케로스(소의 뿔을 지닌 자),

타우로프로소포스(소의 얼굴을 한 자)라는 이름으로 찬양했다.

디오니소스 숭배는 소아시아, 특히 프리기아와 리디아에서 오랫동안 성행했으며

아시아의 여러 신에 대한 숭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디오니소스의 추종자들 가운데는 사티로스 같은 풍요의 정령도 있었으며,

의식에서는 자연의 생식력을 상징하는 남근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디오니소스는 가끔 짐승의 모습을 취했으며 여러 동물과 연관되었다.

그의 개인적인 상징물로는 담쟁이덩굴 화관, 티르소스(지팡이),

칸타로스(손잡이가 2개 달린 큰 술잔) 등이 있었다.

디오니소스는 초기 미술에서는 턱수염이 난 남자로 그려졌으나,

그뒤에는 연약한 청년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바코스 축제는 도자기 화가들이 즐겨 그린 주제였으나,

바코스의 비밀 집회장소는 BC 186년에 발표된 원로원의 칙령에 따라

이탈리아 전역에서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제우스 신전  은 아테네 중심지에 있는 거대한 신전 유적으로

신들의 왕인 제우스에게 바쳐졌던 신전이다.

BC 6세기에 아테네의 정치가인 페이시스트라토스(Peisistratos)가

짓기 시작했지만

자금 부족으로 중단되었고 이후 650여 년 후인

AD 2세기 로마제국 황제 하드리아누스(재위 117∼138) 때에야 완공되었다.

로마시대에 그리스에서 가장 큰 신전으로 유명했지만

4세기경 고트족의 침입으로 파괴되어 이후 복원되지 못했으며

로마시대가 끝난 후 수세기 동안 신전 석재가 파내져

아테네 밖의 다른 건물들을 짓는 데 사용되었다.

현재는 84개 돌기둥 가운데

현재는 15개만이 남아있는 코린트 양식의 건축물이다.

 

  제우스는 신과 인간의 아버지인 지배자이며 수호자이다.

제우스는 하늘의 기후 신으로 로마 신화의 주피트에 해당하며 

천둥, 번개, 비, 바람을

보내는 신으로 무기는 벼락을 사용한다. 

그리스 신화에 흡수된 크레타 신화의 제우스 탄생 신화에 의하면

티탄족 왕인 크노소스는

자식중의 1명이 그를 권좌에서 밀어 낼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을 듣게 되는데

그는 그 운명을 피하기 위해 그의 아내인 레아에게서

자식이 태어나자 마자 족족 삼켜 버렸다.

자식을 잃을때 마다 고통스러웠던 레아는

여섯 번째 아이인 제우스가 태어나자마자

돌맹이를 강보에 싸서 남편인 크노소스에게 전해 대신 삼키게 하고

진짜 아들 제우스는 크레타의 한 동굴에 숨겨놓았다.

그 동굴에서 제우스는 요정(또는 암염소) 아말테이아의 손에 키워졌으며

쿠레테(젊은 전사)들에 의해 보호되었다.

쿠레테들은 창검을 부딪치는 소리를 내어

제우스의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했다고 한다.

제우스는 나중에 장성해서 크로노스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는 아버지가 삼킨 형제들과 누이들을 되찾고자 메티스로부터 구토제를 구해

어머니 레아에게 건네주었다.

레아에게서 받은 구토제를 마신 크로노스는 예전에 삼긴

모든 자식과 돌을 토해냈다.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이 그들이었다.

구출된 그들은 제우스와 힘을 합쳐

아버지 크로노스를 포함한 티탄 신들과 전쟁을 벌였다.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자식들인 퀴클롭스 형제와 헤카톤케이레스 형제의

도움까지 받은

올림포스 신들은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고

티탄 신들을 대지의 가장 깊은 곳인 타르타로스에 봉인하며

그들의 세계를 열어 지배권을 나눠 가졌다.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에 따르면, 그리스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따라서 기후의 신이 살고 있는 집으로 생각되었던

올림포스 산의 최정상 하늘위에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른 신들도 그곳에서 제우스와 함께 살았으며

제우스의 뜻에 복종했다.

제우스는 바람둥이로 유명했고 이때문에 아내 헤라와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여신 또는 여인들을 가릴것 없이 수많은 정사를 가졌으며,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동물의 모습을 취하곤 했는데,

예를 들면 헤라를 범할 때에는 뻐꾸기로, 레다를 범할 때는 백조로,

그리고 에우로파를 범할 때에는 황소로 변신했다.

자녀로는 아내 헤라와의 사이에 헤파이스토스·헤베·아레스·에일레이티이아,

티탄족 여신 레토와의 사이에 쌍둥이 남매 아폴론아르테미스,

스파르타의 레다와의 사이에 헬레네디오스쿠오리,

여신 데메테르와의 사이에 페르세포네가 각각 태어났고,

티탄족의 메티스를 삼킨 제우스의 머리에서 아테나가 태어났다.

여신 세멜레와의 사이에 디오니소스가 태어났으며,

그밖에도 여러 아들과 딸이 있다.

올림포스의 신들 가운데도 그를 아버지로 하고 있는 신들이 많다.

예컨대, 음악·의술·궁술·예언의 신 아폴론,

전령(傳令)이며 나그네의 수호신인 헤르메스,

화산과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 군신(軍神) 아레스는 제우스의 아들이다.

또한 아이톨리아의 왕녀 레다에게 백조의 모습으로 접근하여

미녀 헬레네를 낳게 하고,

아르고스의 왕녀 다나에가 밀실에 갇혀 있을 때

황금의 비로 변신하여 내림으로써 영웅 페르세우스를 낳았다고 한다.

이 밖에 헤라클레스

안피트리온의 아내 알크메네와 제우스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라고 한다.

이같이 제우스를 아버지로 하는 자가 많은 것은

각지의 신화와 전설이 집대성된 결과이며,

제우스가 신들 가운데 최고신이었다는 사실의 증거로 볼 수 있다고 한다

 

 

프로피라이움에 있는 아테나 니케 신전(Naos tis Athinas Nikis) 작은 신전으로서

BC 427~424년에 페르시아를 물리친 아테네의 승리를 기념하 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고전 건축의 통일성을 구현한 아테나 니케의 신전은 대래 석으로 된 아담한 건물이다.

신전은 단순히 공간을 감쌀 뿐 아니라 채우기도 했는데

신전 프리즈에는 플라 타이아전투(BC479) 장면들이 그려져 있고

아테네를 떠나지 못하도록 날개 잘린 승리의 여신상이 들어서 있다.

이 신전이 완성된지 20년만에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함락당했고

그 후로 정치 적 군사적 주도권을 영영 회복하지 못했다.

칼리크라테스가 설계한 이 신전의 높이는 9.5m.

감시 초소 겸 승리의 여신 아테나 니케의 성소였다. 난간에 니케 여신상이 있다.

펜테리 대리석으로 지은 이 신전은

포르티코(지붕이 있는 현관)의 네 모서리마 다 높이 4m의 이오니아식 기둥이 있다.

이 신전은 1686년 투르크족에 의해 붕 괴된 후 1834~1838년에 재건축되었고

이후 1935년에 다시 부오기되어 치밀한 조사와 기록을 바탕으로 재건되었다.

 

 

 니케(Nike) 신전이 끝단으로 보인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인 니케는 로마 신화에 빅토리아에 해당하며

영어로 나이키라고 읽는다.

승리의 여신 니케는 날개가 달렸으며

왼손에는 승리의 상징인 월계관, 오른손 에는 밀다발을 들고 있다.

니케는 올림픽에서 승리를 안겨주는 축복의 여신으 로 섬겨 졌다.

‘승리의 여신이 미소 짓는다’는 바로 그 여신으로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Nike)의 어원이기도 하다.

티탄 신족의 하나인

팔라스와 저승에 흐르는 강의 여신 스틱스(Styx) 사이에 서 태어났으며

질투 또는 경쟁심을 뜻하는 젤로스와 힘을 뜻하는 크라스트와

폭력을 뜻하는 비아와의 남매이다.

파르테논 신전에서는 아테나가 팔에 니케를 올려 놓은 모습을 볼수 있다.

기간테스와 올림포스 신들의 전쟁인 기간토마키아에서

제우스 편에 선 탓에 종종 제우스 옆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나오기도 한다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하산하면 바로 푸닉스 언덕이 있는데

소크라테스 감옥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목이다.

이 언덕에 오르기전 사도바울이 이곳에서 말씀을 전하였다는 표식이 있었다

 

 

낮으막한 푸니스 언덕을 오르는 바위에 낸 돌계단은 반질 반질 엄청 미끈미끈하다.

 몇미터 되지않는 언덕에 오르니 아크로폴리스 광장이 한눈에 들어 온다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하산하여 푸닉스 언덕을 지나 10분정도 걸으면

파르테논 신전을 조망할수 있으며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았다고 하는 아레오파고스 언덕으로 가는 길목에

쓸쓸하게 보이는 소크라테스 감옥이 있었다.

산 속에 굴을 파고 돌과 쇠창살로 문을 만든 3개의 방이 보였는데.

열쇠가 무겁게 채워져 있는 침묵이 감도는 감옥이다.

그 당시에는 감옥이 컷을 것으로 표시되는 바위에 건축물 구멍들이 많이 있는데

현재는 일부만 남았다고 전하며 맨 오른쪽 방에 소크라테스가 갇혔다고 한다.

2개의 방은 서로 구멍이 뚫려 있어 다른방 죄수와 대화를 나눈수가 있으나

소크라테스가 갇친방은 구멍이 없었다.

대화를 나눌수 없게하기 위해서 란다.

여기에서 또 10분정도 걸어 숲을 나서면

아크로폴리스 언덕위 파르테론 신전을 조망할수 있는 아레오파고스 언덕이 나온다.

소크라테스는 집에서는 무능한 남편, 아이들 가르치러 갈 때

아내가 파와 마늘을 사오라고 하면 고개만 끄덕거리고 나갔다가 까맣게 잊어버리고

빈손으로 들어오며 아내가 바가지 긁으면

소크라테스는‘너는 해라. 나는 나다’라는 식이었다고 한다

이런 일상에서 열 받은 아내가 항아리 물을 얼굴에 끼얹어 버리자‘

천둥 번개가 치더니 기어코 비가 오는구나’하며 무심했던 남편이었다고 한다.

BC403년 소크라테스가 기소가 되었을 때

반혁명을 통해 복위한 권력자 아니토스에 였으며

명목상 기소자는 하찮은 멜레토스에 의해 기소되었다.

국가가 숭배하는 신에 불복종하고 기이한 종교의식을 숭배하며,

젊은이들을 정신적 윤리적으로 오염시키고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는 죄목의 이유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판신 즉 짐승의 신을 섬기며 문란해진 사회상을 비방하였기에

위정자들의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판결을 받고 30일 동안 이 감옥에 송치되었는데

판결을 받으면 3일 안에 형집행을 해야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30일이라는 긴날 동안 가두었다고 한다.

델로스로 신성한 배를 보내는 기간에는 형집행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한다

형집행 하기전 친구 크리톤이 탈출 계획을 세우고‘창문도 없는데 도망가자’했을 때‘판결이 사실에 어긋나더라도 그 판결은 법정의 판결이므로 지켜야한다’는 이유로

돌려보냈고, 부유한 자들이 돈을 주고라도 빼주려 했는데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고 하는데

그러나 지금의 이 말은‘악법도 법이다’라고 잘못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결국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서 사약을 받고 무명천에 덮혀 죽었다.

‘가난한 자, 닭 한 마리 신에게 바치라’는 유언하고 70평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가 남긴 명언은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다. 이왕이면 하고 후회하라’

‘인간은 벗과 적이 있어야 한다.

벗은 나에게 충고를 해주고 적은 나에게 경계하게 해준다’

‘인생은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는것이 중요하다’ 등등 많다.

우리가 사는 것은 열병이라 했다.

사는 날 동안 받는 스트레스를 열병이라 칭하며 그는 죽으면 열병이 낫는다고 했다.

그러나‘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한말이 아니고

당시 델포이신전 기둥에 써있던 글이라 한다.

 

  소크라테스는 글을 남기지 않았는데 그의 인격이나 이론은

기원전 339년 70세로 사망한 후

그 의 제자 플라톤의 ‘대화편’과 크세노폰의 ‘회고록’에 근거하여

그에 대한 것들을 세세히 전해 줌으로 우리는 오늘날 소크라테스를 이해한다.

감옥 창살을 붙들고 그가 웅크리고 앉았을 싸늘한 바닥을 응시했다.

울창한 숲 속, 소나무는 왜 이리도 아름다운가.

소크라테스의 무거운 침묵의 철학이 온 산을 휘적시고 있었다

 

 

아크폴리스광장 주차장에서 내려오는 골목길의 주차된 모습이.....

 

 

 아테네 거리에서는 신호 대기시

유리창을 일방적으로 닦아주고 팁을 요구 하나든지

 공연을 하고 팁을 요구하는 장면을 많이 볼수 있다고 한다

 

 

가이드가 설명시 신당마라고 들리는 신타그마 광장(Sintagma Square)은

요즘 TV에서 보면 그리스 군중 집회 장소로 자주 나오는 곳으로

국회의사당 앞 신타그마 광장의 경비병은

우리가 옆에 서서 촬영을 해도 관심이 없는 듯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이 곳에서 1834년 최초로 헌법이 선포되어

헌법의 광장(신타그마 광장)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광장의 중앙에는 분수가 있고 그 주위를 삼나무와 월계수들이 둘러싸고 있다.

아테네에서 그리스 각지의 거리는 모두 이 광장에서 측량이 되어

아테네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신타그마 광장(Sintagma Square)의 국회의사당 벽에 조각된

방패 위에 누워 있는 무명용사의 조각품은

1923년 약 400년 동안의 터키 지배에 종지부를 찍은 독립전쟁의 전사자와

그 후에 일어난 몇 차례의 전쟁에서

희생된 병사들의 영령을 달래주기 위해 만들어 졌다고 한다.

1시간 마다 위병이 교대를 하는데

재미있는 이 광경을 보기 위해 항상 관광객들로 붐빈다고 한다

아쉽게도 우리는 관광을 마치고 버스에서 신호 대기중

교대하러 가는 위병들 모습을 보니.....

 

 

아테네(Athens)를 소개하면

그리스(Greece) 국가의 수도(首都)로서

인구 315만 명 정도가 거주하는 도시이다

 

 

아테네(Athens)는

서구 문명의 발생지로서

고대 문명의 많은 지적. 예술적 사상이 비롯된 곳으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Polis) 국가 중 하나였다

기원전 800년경 그리스 지역에는

폴리스(Polis)라는 작은 국가들이 생겨났는데

대표적인 '폴리스(Polis)로는

아테네(Athens)와 스파르타(Sparta)였다고 한다

아테네(Athens)는 활발한 해상 활동으로 상공업과 무역이 발달하였으며

개방적인 성향의 문화가 성립되어 민주 정치가 발달하였다고 한다

왕정에서 귀족정,금권정에서 참주정을 거쳐

기원전 6세기 말

정치 참여에 재산 기준을 없애는 클레이스테네스(Cleisthenes)의 개혁으로

민주정치가 실시되었다고 한다

 

 

 

그리스에서 첫날을 묵게 된 엠만티나호텔은 엘리베이터가 특이 하였다

먼저 문 손잡이가 있어 열고 탄다는 점과

여행가방을 들고 2인이 타기에 너무 좁은것 같다

 

엠만티나호텔에서 모닝콜이 5시30분...

 

야채와 계란 1개에 수프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7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버스로 약10분정도 거리의

 

 

에기나섬으로 가는 페리보트를 탈수 있는

피레우스 항구로 이동하였다

 

 

에기나 섬은 아테네 피레우스항에서 약30Km 거리에 있으며

인구는 15000여명 정도이고

그 중 5000여명은 상업, 나머지는 농.어업에 종사한다고 한다.

고대에는 독립된 도시 국가였으며 아테네와는 라이벌 관계였다고 한다.

배로 약 1시간30분 정도 거리라고 하며

배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섬에 도착하였는데

섬에서 일정은 점심때까지 자유시간인데

지리를 모르는 우리는 40유로의 섬 일주 옵션을 선택 하여 관광하기로 하였다

 

 

 

그리스는 신화로 시작되는 나라다.

아테네의 앞에 있는 섬으로 울릉도 보다 조금 큰 에기나 섬에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화가 있다

아테네의 왕 에기우스는 델포이 신탁을 받고 돌아 오던 길에

이 섬 트로이젠(지금의 에기나 섬)에 들렸을때

트로이젠의 왕이였던 피데우스

몰래 자기 딸인 아이트라와 동침케 하여 임신하게 만들었다.

그는 정표를 남겨 두고 아테네로 돌아 왔는데

이 후 공주는 테세우스라 하는 아들을 출산하게 되었다.

16년후 공주는 테세우스에게 출생의 배경을 말하며

아테네 왕이 정표로 묻어 두고 간

황금의 칼과 장화를 가지고 이제 아버지를 찾으러 가라 하였다.

아테네로 간 테세우스는 왕에게 정표로 두고 간 황금검과 장화를 보이자

자기 아들임을 왕은 바로 알아 보았다.

이 시기 에기우스 왕에게는 늦도록 자식이 없었으며

그의 동생 팔라스와 50여명의 자식들이 왕좌를 노리고 암투가 심하였는데

이를 테세우스가 와서 일망타진 하였다.

크레타와 전쟁으로 아테네가 패하자

크레타에 14명의 남.여 젊은이들을 조공으로 바쳐야 하였다.

그래야 식민지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때 테세우스가 자원해서 자신을 조공으로 신청하였다.

살아온다는 보장이 없는 막막한 이별이었던 것이다

 

 

 

왕은 아들 테세우스에게 당부하였다

갈 때는 검은 깃발을 달고 가지만 만약 승리하여 살아서 올 때는

흰 깃발을 걸고 오라고 했다.

크레타로 간 아들은 무서운 미궁 에 제물로 들어가서

무시무시한 괴물 미노타브로스와 대결하여

당당히 황금검으로 쓰러뜨리고 제물에서 벗어나 살아나왔다.

이에 테세우스는 크레타의 왕으로부터 어여쁜 공주를 선사 받아

둘이서 같이 아테네로 돌아 오고 있었다.

공주를 데리고 아테네로 돌아가는 모습을 본 제우스가

그의 아들 디오니소스를 보내 공주를 빼앗아 오라 명했다.

올림푸스 산정의 제우스가 아릿따운 여인을 바라보면

그냥 둘 리가 없었다.

아들은 공주를 빼앗기고는 정신이 없는 상테에서

검은 깃발을 달고 아테네로 향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부탁을 잊은 것이다. 살았으니 흰 깃발로 바꿨어야 하는데....

아버지 에기우스 왕은 멀리 아들이 탓던 배에 검은 깃발이 보이자

남자 7명, 여자 7명이 제물이 되어 떠날 때부터

이미 죽음을 예견하고 깊은 낙망하던 중에.....

이를 본 아테네의 에기우스 왕은 아들이 죽어서 돌아오는 것으로 알고는

바다에 몸을 던져 목숨으로 슬픔과 한을 달랬다고 전한다.

그래서 이 바다를 왕의 이름을 따서 에게해,

이 섬을 에기나 섬이라고 부른다는 신화다

 

이 에기나섬에서 트로이젠 공주가 테세우스를 낳았으므로

현재도 많은 사랑하는 연인들이 이 섬으로 아이를 낳으러 오기 때문에

산부인과 병원이 많다 있다고 하는 말에...

아직도 생생하게 흐르는 신화가 이 에기나섬을 휘돌고 있는것 같다

 

 

이 조그마한 성당은 1000년이나 되었다고 하며

크리스마스 성당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이 아폴론 신전은 들르지 않고 지나쳐 간다.

아폴론 신전이라고 말만 하고....

에기나에 있는아폴론 신전은 현재 기둥 하나만 남아 있는데

현재 독일, 오스트리아 고고학팀들이 유적 발굴 작업중이라 하며

신전의 일부가 바다에 잠겨 있다고한다.

 

고대에 신탁을 받았던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

여기 에기나섬에 있는 아폴론 신전은 어떤 차이가 있는........??

 

아폴론(그리스어: Απόλλων)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과 예언 및 광명·의술·궁술·음악·시를 주관하는 신으로

로마 신화의 아폴로(라틴어: Apollo)와 동일시된다.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아르테미스와는 남매지간이며

올림포스의 12신의 두 번째 세대에 속한다.

월계수와 리라, 활과 화살, 백조, 돌고래가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제우스의 뜻을 알리는 아폴론의 신탁을 행하였으므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신전으로 가서

참배하고 아폴론의 신탁을 받고 따랐다고 한다

 

 

이 섬은 주로 어업이 주로 생계 수단으로

배 사고가 많이 나기에

무사고를 기원하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러한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이 곳은 섬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많은 해적이 수시로 침입하였다고 하며

이를 피해 높은 산으로 피신하였다고 한다

 

 

적인 교회를 세워 안전을 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의문점은 물이 있어야 먹고 사는데......

 

 

에기나 섬(Aegina Island)의 산악지대에 있는 올드 타운의

고개 길 정상을 넘어 내리막 길로 접어들면서 있는

현대식 그리스 정교회 성당이라고 한다

 

 

넥타리우스 성당

일명 산타 마리아성당이라 하는데

1968년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관광객 및 성금으로 지어지고 있는

형태의 비잔틴형식의 성당으로

그리스 정교회의 성당이다

 

 

이 성당은

성 넥타리우스 신부(St. Nectarios : 1846~1920년)

최근 마지막 성인으로 봉해진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졌으며

리자리온 대학장 재임중인 시기

에기나 섬에 수도원 재건 사업을 이룩한 뛰어난 인물이다

 

 

안수기도 방에 있는 성 넥타리우스 신부의 오른손이 들어 있다는 은관이다

성 넥타리우스 신부는 아픈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그의 오른손을 아픈 부위에 놓고 기도를 하며 낫게해 주었다고 한다

 

 

성 넥타리우스 신부는 죽으면서도

자신의 오른손을 아픈 사람들을 위해 놓고 간다는 유언을 남기므로 인하여

성당 안에 안치된 이곳에서는 지금도 많은 신도들과 관광객들이

여기에 두손을 대고

기도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으며 우리 일행들도 많이.... 

 

 

넥타리우스(Nectarios) 신부는

의사인 아버지를 둔 그리스 북부 출신으로서

의학을 전공하였으며

종교학, 철학을 배운 후에

이 에기나 섬(Aegina Island)으로 부임하였다고 한다

 

 

넥타리우스(Nectarios) 신부는

가난하였던 이 에기나 섬 주민들에게

중앙 서아시아가 원산지로 그린 아몬드로 별칭되는

피스타치오(Pistachio)를 처음 들려와

이 섬 주민들을 부유하게 만든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고 한다

 

 

성 넥타리오스 성당 앞 정원에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있다

수세미꽃이라고 하는데 ???

넥타리오스 신부가 이 섬에 들어와

의술로 많은 사람들을 보살피면서 과부, 고아들과

심약한 장애인들을 정성지극으로 도우며 교회당도 세웠다고 한다

 

 

넥타리오스(Nectarios) 신부가 유명하여진 계기는

불치병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며

매일 하루하루를 교회당에서 울며 간절하게 기도하는

어느 이름 모를 신도를 본 후 너무 안스럽게 여기며

그 신도가 기도하러 교회로 올 때마다

넥타리오스 신부가 그 신도의 아픈 곳을 오른손으로 쓰다듬으며 

정성어린 안수기도를 해주었는데

어느날 그 불치병의 신도가 깨끗하게 치유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소문이 온 사방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아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거부하지 않고

넥타리오스 신부는 모든 사람들을 오른손으로 그들의 환부에 대고

정성스러운 안수기도로서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였다고 한다

1920년 넥타리오스 신부는 그가 죽을 때도

많은 사람들의 아픈 곳을 치유했던

기적의 오른손을 놓고 간다는 유언을 남김으로

그의 오른손을 은관에 담아 보관하여 공개함으로서

성인 반열에 올랐으며

지금도 많은 환우들이 찾아와 은관 위에 손을 대고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에기나 섬에 있는 아페아 신전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수니온곳의 포세이돈 신전과 더불어

그리스의 3대 신전이라고 하며

서 있는 위치가 삼각형의 성소를 이루고 있으며

맑은 날은 바다건너

아테네의 파르테론 신전이 아득히 보인다고 한다

 

 

에기나 섬에서는

아파이아(아페아) 요정을 BC2000년경부터 숭배하여 왔고

그녀를 제우스의 딸로 여겨 왔으며 알테미스 처녀신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에기나 섬의 지역 신이었던 이 아페아 신에게 바쳐진 신전으로서

기원전 448년 도리아스식으로 세운 34개의 석회암 기둥 중

높이 5.27m 기둥 24개가 남아 있는 아름다운 신전이다

 

 

여기에 소나무는 우리나라 것과 틀리게 몽실몽실 하달까?

둥실둥실 하달까?

 

 

에기나섬 일주를 마치고

마리나 항구에서 에기나 항구로 돌아가는 길은

성낙타리오스 성당쪽으로 다시가서 섬 중앙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었다. 

올 때는 해안가로 돌아 왔는데.... 

그런데 지나치는 도로변 옆에는

개집 크기의 조그마한 성당들이 자주 눈에 띄었는데

가이드는 교통사고 당한 영혼들을 위한 성당이라고 한다

 

 

 옵션 관광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항구 근처의 노천에 마련된 식탁에서

현지식 스블라끼와 맥주로 여행의 묘미를.....

 

스블라끼그리스식 꼬치구이로

돼지고기, 양고기, 쇠고기등을 소금 간하여 숯불로 구운 것

 

 

식사를 마친 후

에기나 항구(Aegina Port)의 주변 거리를 산책으로 나선다

 

에기나 섬(Aegina Island)은

아테네(Athens)에서 27Km 떨어져 있는

인구 13,000여 명이 거주하는 섬으로

면적은 87.41㎢ 로서

우리나라 강화도 면적(301.75㎢)의 1/3정도 보다 작은 섬이고

완도 면적(88.75㎢) 보다 약간 작은 섬이다

 

 

에기나 섬(Aegina Island)은

동서로 15Km, 남북으로 10Km로 삼각형 구조의 섬으로서

최고봉은 531m의 오로스 산(Mt. Oros)이라고 한다

 

 

에기나 항구의 부둣가를 여기저기 거닐다가

다시 아테네(Athens)로 돌아가기 위해

페리가 있는 선착장으로 향한다

 

 

에기나 항구(Aegina Port)에서 아테네(Athens)로 가는

페리에 오르며 에기나 섬의 최고봉 오로스 산(Mt. Oros)을 바라다 본다

페리에 탑승하여 조금 있으니

페리는 에기나 항구를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한다

 

 

페리를 타고가며 그리스(Greece) 국가에 대하여 조금 설명하면

국토 면적은 131,957㎢ 로 우리 대한민국 남한 면적(100,210㎢) 보다

1.3배 정도 큰 국토 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인구는 1,037만여 명이며

민족 구성으로는 그리스인 98%, 기타 2% 정도이며

종교는 그리스 정교 98%. 이슬람교 1%, 기타로 믿음 생활을 하고 있다

 

 

정부 및 의회 형태로는 중앙집권 공화제로서 다당제와 단원제를 택하고 있으며

1975년  헌법은 300명으로 구성된 단원제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당의 당수가 수상이 되고

의회는 법률을 제정하고

형식적 의무를 가지는 대통령을 선출한다

대통령은 자문기관인 국가협의회의 동의를 얻어 내각을 해임하고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고 한다

국가GDP는 2140억 1200만 달러(세계 51위)이며

1인당GDP는 1만9974 달러(세계 41위)라고 한다

<2019년기준 대한민국 : 국가GDP 1조6295억3200만 달러(세계 12위), 1인당GDP 3만1431 달러(세계 28위)>

 

어제 버스로 지나쳐 갔던

아테네 근대올림픽 경기장으로 왔다

여기에서 2004년 아테네올림픽 양궁경기가 열렸었다고 한다

 

 

또한 1896년 제1회 근대 올림픽이 열렸던 곳이라고 한다

이 경기장은 알렉산드리아의 부호 아베로프의 후원을 받아

아테네 대축제 경기장이었던 것을

고대 경기장에 가까운 형태로 복원하였다고 하며

좌석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으며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문은 하드리안 문으로 제우스 신전 바로 앞에 있으며

AD131년 아테네 문명을 본받자고 노력한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를 칭송하기 위하여 세운 문으로

신.구 아테네를 경계선을 겸한다.

신.구란 고대 아테네와 로마시대 아테네를 구분하는 개념이다.

 

개선문 형식의

이 문의 양면에는 두 개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한면에는 '이것은 테세우스의 고대 도시인 아테네이다'

또 한면에는 '이것은 테세우스의 도시가 아닌

하드리아누스의 도시인 아테네이다'라고

써 있다고 한다

 

 

이 기념품 가게에서

한국어로 된 그리스 소개 책자를 한권 구매 했어야 하는데

얇아 보이는 책자가 4만원이라

너무 비싼것 같아 사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쉽긴.....

 

 

아테네 시내에서는

차도에 전철이 같이 달리는 모습을 자주 볼수가 있는데

차와 같이 신호를 지키는 모습이 새롭게 보였다

 

 

그리스 아테네 여행을 모두 마치고

터키 이스탄불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한다

 

 

아테네 공항으로 오후 4시에 이동하여

출국 수속 시간상 공항내 의자에서 김밥으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출국장으로 들어 갔는데

게이트 방향 표시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위치에 있어

A22 게이트 찾는데 한참을 왔다 갔다하다

겨우 2층에서 1층으로....

 

 

저녁 7시10분 그리스 항공기를 타고 터키 이스탄불 공항으로 이륙.....

 

 

저녁 8시30분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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