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불가리아 여행

천황봉 2019. 1. 28. 12:11

루마니아(Romania) 지우르지우(Giurgiu)에서 도나우강을 건너

불가리아(Bulgaria) 루세(Ruse)의 국경 검문소로 향한다

 

루마니아 지우르지우(Giurgiu)에서 불가리아 루세(Ruse)로 건너는

도나우강(Donau River)에 있는 다리 위이다

이 다리는 루세-지우르지우 우정의 다리(Ruse-Giurgiu Friendship Bridge)로

1954년 개통되어 2013년 6월 14일까지 도나우강에서 공존하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와의 유일한 다리였던 다리 위에서

도나우강을 바라보며 건너고 있다 

 

도나우강 우정의 다리 위에서 보는

불가리아(Bulgaria) 루세(Ruse)의 항구 및 산업단지이다

 

루세(Ruse)는 산업도시로서

정유공장, 철도차량과 기관차 제작공장, 섬유공장 등이 있고

식품가공뿐만 아니라 농업기계·가죽제품·도자기 등과

그밖의 소비재도 생산된다고 한다

항만시설은 낮은 절벽 밑의 도나우 강 충적평야를 파서 설치하였다고 한다

 

루세(Ruse)에 거주하는 인구는

약 15만여 명이라고 하며

루세(Ruse)는 불가리아에서 5번째 큰 도시라고 한다

 

불가리아(Bulgaria)로 넘어와 루세(Ruse) 국경검문소 통과하니

서쪽 하늘에는 노을이 붉어지며

땅거미가 몰려오며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BC 1세기 로마의 요새항구로 시작되어 7세기에 이방인에게 파괴당하였고

그뒤 오스만족이 신도시를 세워 루스트추크라고 했고

계속해서 체르벤과 루세라고 하였다고 한다 

투르크인이 다스릴 때에는 요새가 있는 활기찬 군사기지이자 교역중심지였으며

1866년 오스만 제국에서 처음으로 건설한 루세-바르나 철도가

도시성장을 더욱 촉진시켰다고 한다

그뒤 러시아가 여러 차례의 오스만 제국을 공격으로 함락시킨 뒤 

1877년 불가리아에 넘겨주었다고 한다

 

버스로 루마니아 시나이아(Sinaia)에서 출발한지 4시간만에

불가리아로 넘어와

루세(Ruse)를 거쳐 벨리코투르노보(Veliko Turnovo)에 도착하여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벨리코투르노보(Veliko Turnovo) 부근의 언덕 위의 마을

아르바나시(Arbanassi)에 있는 파크 호텔(Park Hotel)에서 날이 밝아왔다

어제 저녁 어두운 길을 꼬불꼬불 언덕 길을 올라온 기억이 있다 

 

멀리 벨리코투르노보(Veliko Turnovo) 시내가 보인다

 

벨리코투르노보(Veliko Turnovo) 부근의 언덕 위

아르바나시(Arbanassi)에 있는 파크 호텔(Park Hotel)이다

 

아르바나시(Arbanassi)에 있는 호텔에서 벨리코투르노보(Veliko Turnovo)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언덕 위로

차레베츠(Tsarevets) 요새 성벽이 보인다

 

벨리코투르노보(Veliko Turnovo)는

얀트라 강(Yantra River)을 끼고 협곡에 거의 수직으로 솟아 있는 능선에

위치하고 도시이다

 

얀트라 강(Yantra River)은

불가리아 북쪽을 흘러 도나우 강으로 흘러드는 지류로서 

전체 길이는 285 km라고 한다 

 

차레베츠(Tsarevets) 요새 입구 쪽으로 버스로 오르면서 보는

'성 디미타르 교회(Sveti Chetirideset Machenitsi)'이다

제2 불가리아 제국의 차르인 이반 아센 2세(Ivan AssenⅡ:재위1218~1241년)가

1230년 비잔틴 제국과 싸운 클로코트니챠(Klokotnitsa)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이를 기념하고자 세운 교회라고 한다

이 교회는 한 때는 지진으로 상당 부분 파괴되기도 하였지만

복구 작업을 통해 2006년 박물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어 대중들에게 공개되고 있다고 한다

 

얀트라 강(Yantra River)은

해발 1,340m의 중앙 고원에서 발원하며

상류지역에서는 옛 이름인 에타르(Etar)라고 불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가장 아름다운 절경은 수많은 협곡 지대이며

전체적으로는 7km에 달한다고 한다

 

차레베츠(Tsarevets) 요새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차레베츠(Tsarevets) 요새로 들어가며

뒤 돌아 본 벨리코 투르노보 시가지에

연한 푸른색 돔의

로즈데스트보 보고로디치노 성당(Cathedral Rozhdestvo Bogorodichno)이

눈에 들어 온다

 

 

벨리코 투르노보(Veliko Turnovo)는

약 240m에 이르는 꾸불꾸불한 얀트라 강(Yantra River) 협곡에

거의 수직으로 솟아 있는 능선에 형성되어 도시이다

 

 

벨리코 투르노보(Veliko Turnovo)는

제2차 불가리아 제국(1185~1393년)의 수도(首都)로서

제3의 로마라고 부름며 번성하였으나

1393년 오스만 투르크의 침공으로 불타며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1911년에는 대지진으로 대부분의 유적들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차레베츠(Tsarevets) 요새는

5~7세기에 세워진 요새라고 하며

제2차 불가리아 제국(1185~1393년) 때에는

언덕 위 전체가 화려한 궁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다 무너지고

성터와 잔해만 나 뒹굴고 유적지로 남아 있는 곳이다

 

 

성벽 안으로 들어가는 중

언덕 위 정상부에 성모승천교회가 보인다

 

 

차레베츠 언덕은

트라키아인들과 로마인들이 정착하여 살던 곳이라고 한다

 

 

차레베츠 요새가

얀트라 강(Yantra River)이 삼면을 끼고 도는 협곡의 절벽 위에

두꺼운 성벽으로 형성되어 있어 도개교를 통해서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었던

자연적인 천혜의 요새였던 옛 조감도이다

 

 

벨리코 투르노보(Veliko Turnovo)는

불가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마을로서

기원전 3000년 경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12세기부터 14세기까지 이 곳에 차레베츠 요새가 견고하게 들어서면서

벨리코 투르노보(Veliko Turnovo)는 급속하게 발전하며

불가리아 제국의 수도(首都)가 되면서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의 중심지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벨리코 투르노보(Veliko Turnovo)는

14세기에 비잔틴 제국이 쇠퇴하면서부터

발칸 반도와 슬라브계 정교회의 중심지로 여겨지기도 하였으며

한때는 '제3의 로마'라고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차레베츠 성채 안의 언덕의 최정상에 있는 성모승천교회로 올라가는

길목에 종루가 있다

공산주의 시대에 자매 결연을 맺었던 프라하에서

차레베츠 요새 복원 기념으로 보내준 것이라고 한다

크기가 다른 종이 4개 설치되어 있는데

국가 행사시에는 4개의 종이 울리고

위급시에는 3개의 종을 울린다고 한다

 

 

얀트라강(Yantra River)에 조금 전 호텔을 떠나 건너 온 다리가 보이고

그 옆으로 오래된 작은 주교의 다리가 보인다

 

 

견고한 성벽과 성루가 보인다

제2차 불가리아 제국(1185~1393년)은 200년 동안 번영과 발전을 지속하다가

1393년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멸망하였는데

200여 명의 정교회를 믿는 군인들이 이 차레베츠 요새에서

수십만 이슬람의 오스만 투르크 군을 상대하여

3개월을 넘게 처절하게 죽음으로 저항하다가 결국 정복 당하므로

불가리아 제국은 패망하며

오스만 투르크에 500년이 넘는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벨리코 투르노보(Veliko Turnovo) 시내가 보인다

벨리코 투르노보에는 현재 약 6만8,5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1393년 오스만 제국이 불가리아 제국을 정복하면서

수도였던 벨리코 투르노보 마을과 요새의

대부분의 수도원과 교회들이 화제로 소실되었다고 하며

1598년과 1686년에는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는 무장 봉기가 일어났지만

모두 실패로 끝을 맺으며 식민지배는 계속되었다고 한다

19세기 오스만 지배 하에서 불가리아 민족 부흥운동 일어나

독립국가 건설과 정교회 재건의 열망이 강력한 저항 운동으로 이어져

1876년 4월 오스만 제국 식민지배를 종식을 선언하며

러시아-투르크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1877년 러시아의 장군 요시프 블라디미로비치 구르코가 해방시키며

480년 동안의 오스만 지배에서 벗어나며

1878년 베를린 조약에 따라 불가리아 공국의 수도를 투르노보로 정하였다

1879년 불가리아 의회가 이 곳에서 소집되어 최총의 헌법이 제정되며

불가리아 수도를 소피아(Sofia)로 이전하는 내용을 담아

지금까지 소피아(Sofia)가 불가리아 수도로 남아 있다고 한다

1908년 10월 5일 페르디난드 1세(Ferdinand I)가 이 곳 벨리코 투르노보에서

불가리아의 완전 동립을 선언하였다고 한다

 

 

 

차레베츠 성채 안의 언덕 정상부에 있는 '성모승천교회'이다

이 곳은 성모마리아의 유해가 묻혀있다는 확실하지 않는 논란이 있는 교회이다

무덤의 역사는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 자리에는 여러채의 교회가 세워졌다가 파괴되었다고 하는데

최초에 교회는 5세기 초반에 세워졌다고 한다

 

 

성모승천교회의 옛 모습으로

1597년 차레베츠 언덕 위에 처음 세워졌으며

1985년 2년 여의 대대적으로 보수 공사를 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림이라고 한다

성모승천교회 안에 있는 그려져 있는 여러 성화 중의 일부분으로

여기에 있는 성화들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부드럽고 온화한 성화들과는

아주 다르게

강렬한 느낌을 주는 성화들로 벽면과 천장을 채우고 있었다

 

 

성모승천교회에 그려진 성화들은

테오판 소케로브(Teofan Sokerov)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2년여 작업으로

1985년 기증한 성화들 이라고 한다

이 성화의 오른쪽에는 테오판 소케로브 자신도 그려 넣은

작품이라고 한다

 

 

 

그림들은 성경에 나오는 종교적인 성화 내용보다는

불가리아가 오스만 투르크에게

500년간 지배를 받던 고통스러운 과거의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제2차 불가리아 제국 당시에

왕이 전쟁으로 성을 비운 사이에 왕비가

성을 지키는 장군을 유혹하였는데 장군이 거절하자

오히려 장군이 자기를 유혹하였다고 음해하여

분노한 왕이 장군을 거꾸로 묶어 처형하는 장면이라고 한다

 

 

성모승천교회의

테오판 소케로브(Teofan Sokerov)가 그린 벽화들은

불가리아의 현대 종교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들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성모승천교회를 나오기 전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해 본다

 

 

성모승천교회를 나와 밑에서 바라 본 모습이다

이 전 사진의 조감도 모습에서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성채는 무너져 폐허된 모습이고

최근에 보수되어 세워진 예배당 건물이

옛 모습에 많은 상상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오스만 제국의 침공에 맞서 처절하게 싸웠을 성루와 성벽이 보이고

폐허가 된 건물 터만 보인다

지난 날 당시에 번성했던 차레베츠(Tsarevets) 성채 안에는

400채의 주택과 18개의 교회와

여러 채의 수도원 유적 터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차레베츠 요새가 있는 벨리코 투르노보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시대 때에는 이슬람 지배에 저항하는

무장봉기의 줄심지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반 파시즘의 최대 거점이었다고 한다

 

 

성채를 둘러보고 나오는 중에 뒤돌아 본 모습이다

유구한 세월에 폐허가 된 차레베츠 성채 안의 높은 곳에서

쓸쓸하게 홀로 성모승천교회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듯 하였다

 

 

이제 벨리코 투르노보에서 서쪽으로 240Km 떨어진

불가리아(Bulgaria)의 수도인 소피아(Sofia)를 향해 출발한다

 

 

벨리코 투르노보(veliko Turnovo)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며

구시가지는 아름다운 절벽의 얀트라강(Yantra River) 협곡을 끼고

스베타고라(Sveta Gora), 차레베츠(Tsarevets), 트라페지라(Trapezitsa)라는

3개의 언덕으로 나뉘어 형성하고 있고

불가리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꼭 방문하는 도시라고 한다

 

 

소피아를 향해 벨리코 투르노보 시내를 벗어나자

구릉지대의 야산만 보이는 평원이 펼쳐진다

 

 

벨리코 투르노브에서 출발할 때는

산악지형을 계속 지날 것으로 생각하고 탑승하였는데

끝없는 평원지대가 펼쳐지고 있다

 

 

불가리아(Bulgaria)의 지형은

북부, 중부, 남부로

3대 지리 지역으로 나뉘어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지나고 있는 지역은

불가리아 국가에서 북쪽 지역으로

도나우강(Donau River)에서 멀지 않은 '도나우 평원'의

국토 1/3을 차지하는 완만한 구릉지대인 비옥한 저지대로서

해발 210m 보다 낮은 곳이 대부분으로

전체적으로는 해발 600m가 넘는 곳이 없는 곳이라고 한다

 

 

도나우 평원의 바로 남쪽 부로는

불가리아 국토의 중앙부로서

발칸산맥이 동서 방향으로 가로 지르고 있는 곳이다

 

 

도나우 평원지역에서 가까운 발칸산맥에서 북쪽지역은

해발 평균 고도가

722m 정도의 산악지형이라고 한다

 

 

장작불을 지피우는지

농가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고

 

 

소 떼들이 풀을 뜯고 있고 모습이

한적하고 평화스럽게만 보이는 전원 풍경이다

 

발칸산맥에서 남쪽지역의 산들은 북쪽지역의 산 보다

더 높고 암석이 많은 지형이며

또한 설원과 빙성 호수들이 있으며

불가리아에서 최고봉은 무살라 봉(Musala: 2925m)이라 한다

 

 

그 외 불가리아의 흑해 연안지역은

이들 3대 지역보다 면적은 작지만 아름다운 넓은 해변 백사장과​

바르나(Varna)와 부르가스(Burgas) 항구가 있어​

동유럽에서 가장 인기있는 휴양지로 꼽히고 있다고 한다 ​

 

 

소피아(Sofia)로 향해 가는 동안 소피아에 살고 있다는 현지 가이드는

한국에서 불가리아로 와서 살게된 배경과

사업하면서 실행 착오로 실패를 경험했던 이야기와

현재는 두부 제조 납품사업을 하고 있으며

태양광 발전 설치공사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것에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 불가리아에 왔을 때는 직장에서 출장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출장으로 오가다 보니 불가리아에 대하여

조금씩 알게 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2000년대 초반에 이민을 결심하여 2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민 초창기에 사업 전시회에 한국의 뻥튀기 기계를 가지고 나가

뻥튀기를 튀기며 뻥소리에 눈길을 끌면서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어

계속 튀기는 뻥튀기의 새로운 맛을 무료로 먹는데만 그치고

사업이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현재는 불가리아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불가리아 사람들의 직장생활하는 모습에 대하여 설명하여 준다

불가리아 인들은 휴가를 굉장히 중요시 한다고 한다

 

 

우리 한국에서는 회사가 바쁘면 휴가를 미루던지

돈으로 보상을 받는 문화가 있는데

불가리아 사람들은 어떤 경우든

아무리 보상을 많이 해준다고 해도

휴가를 취소하지 않고

정해진 날짜에 휴가를 가야하는 문화라고 한다

 

 

그러면서 불가리아 인들은

휴가 스케줄을 년 초부터 준비하여

꼭 기간을 정하여

그 날짜부터 필히 휴가를 즐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어 현지 가이드는

자기 어머니가 가끔 아들을 찾아 불가리아로 오면서

겪는 일화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데

대범함에 많이 웃었다

 

 

타국의 불가리아에서 있는 아들이 좋아 하는 음식을 주려고

한국에서 순대, 김치 등과 밑 반찬을 잔뜩 만들어 싸들고

한국에서 불가리아 소피아로 오는 직항이 없으므로

러시아 모스크바 공항을 경유하여

불가리아 소피아 공항으로 오는 과정에서 일어난 좌충우돌 일화로서

 

 

모스크바 공항에서 환승할 때 화물검사에서 음식물들이 걸려

압수되어 폐기될 위기에 처했는데

노인 양반이 한국말로 큰소리 치며 '먹는 음식 가지고 왜 그러냐'고 따지며

계속 항의하며 물러설 기미가 안 보이자

모스크바 공항 세관원들이 물건을 돌려주며 가져가시라고 하자

나이 먹은 늙은이가 엉망인 이걸 어떻게 하냐고

풀어헤쳐 놓았으면 다시 가져갈 수 있도록 싸서 원위치 해서 달라고

막무가내로 큰소리쳐서

그들이 황당해하며 다시 싸서 돌려 주었다는

노인 양반이 홀로 불가리아로 오면서 겪는 좌충우돌 대범한 일화를 들으며

많이 웃는 시간이었다

 

 

또 가이드의 어머니가 팔십이 다되어

불가리아로 모시기 위하여 여러번 말씀드렸으나

안오시겠다는 답변만하시다가

타협안이 불가리아에서 사업자등록증 만들어 주면 오시겠다는 답변으로

사업자등록증을 만들어 주었는데

불가리아에는 없는 호떡장사라고 하여 많이 웃었지만

나이드신 분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벨리코 투르노보에서 출발한지 약 240Km를 달려

3시간 정도가 지나자

불가리아 수도인 소피아(Sofia) 외곽에 진입하기 시작한다​

 

 

소피아(Sofia)는

발칸 반도의 중앙 부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불가리아 서부에 있는 계곡인 소피아 분지에 안에 있는

불가리아 국가의 수도(首都)이다

 

 

소피아(Sofia)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식사부터 하기위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인 "윤​"이라는

한식집으로 간다

 

한국 식당이 있는 주변 마을이다

소피아 관광을 위해 식사를 하고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걸어 가며 보는 주택가 장면이다

 

소피아(Sofia)에서 첫번째 관광 코스로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Sveti Aleksandar Nevski)으로 간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Sveti Aleksandar Nevski) 앞 광장에서 보는

성 소피아 교회(St. Sofia Church)이다

성 소피아 교회(St. Sofia Church)는 5세기 콘스탄티노플 비잔틴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Justinian:재위 527~565년)​에 의해 공사가 시작되어

6세기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라고 한다

소피아 성녀를 위해 지어졌지만

오스만 투르크 시대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지진으로 건물이 파괴되기도 하였으나

1900년 이후에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하며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 이름도

성 소피아 교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Sveti Aleksandar Nevski) 앞에 선다

​대성당이 너무 커서 전체 구도를 잡기 위하여

대성당 광장에서 멀직이 떨어진 곳으로 가서 전체 구도를 잡아 본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Sveti Aleksandar Nevski)은

발칸 반도에서 두번째로 큰 대성당이라고 한다

사원의 이름은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AleksandarⅡ)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며

불가리아 독립의 계기가 된

러시아-오스만의 전쟁에서 전사했던 20만 명의 군인을 추모하기 위하여

1882년 착공하여 1912년 완공되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Sveti Aleksandar Nevski)의

높이는 60m 금색 돔을 비롯한 12개 돔으로 된

네오 비잔틴 양식 건축물이라고 한다

세르비아에 있는 세인트 사바 교회(Saint Sava Church)가 세워지기 전 까지는

발칸 반도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Sveti Aleksandar Nevski)이 있는

광장 주변에는

국회의사당(National Assembly of the Republic of Bugaria)이 있고​

 

 

국립 미술관(National Art Museum)도 있고

 

 

과학 학술원(Bugarian Academy of Science) 건물들이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을 둘러싸고 있는

광장 주변으로 위치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 광장에서

국회의사당과 과학 학술원 사이로 빠져 나오면

1907년에 세워진 국립집회 광장(National Assembly Square)의 중앙부에

차르 오스보보디텔(Tsar Osvoboditel) 동상이 서 있다

이탈리아 조각가 아놀도 초치(Arnoldo Zocchi)의 작품이라고 한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에서 세르디카 유적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던 길에

성 니콜라이 러시안 교회("Sveti Nikolay Mirlikiiki" Russian Church)가 보인다

러시아 사람들은 불가리아 사람들과 같이 정교회를 믿고 있지만

종파가 다르기 때문에

소피아에 사는 러시아인들의 정체성을 기리기 위하여

1913년 러시아 외교관이었던 세몬토프스키 크리스로의 명령으로

5개의 황금색 돔과 그린색 마즈리카 타일로

화려하게 장식하여 건축한 교회라고 한다

 

 

소피아(Sofia) 시내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는

고대 세르디카 유적지(Anient Serdica Arheological Complex)에 도착하니

유적지 터가 낮은 곳 지하 쪽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세르디카 유적지에는 지붕만 땅 위로 올라와

아담하게 보이는 성 페트카 지하 교회(Sveta Petka Church)가 있다

'성 페트카 지하 교회(Sveta Petka Church)'는

14세기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건축되었는데

투르크인들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지하에 지었다고 한다

 

 

세르디카 유적지 주변에

'바냐 바시 자미야(Banya Bashi Mosque)'라는 이슬람사원이 있다

1566년 오스만 투르크 지배 당시에 지어진 사원으로

오스만 투르크 왕조의 최고 건축가라는 불리는

미마르 시난(Mimar Sinan:1489~1588년)의 설계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예전에 소피아(Sofia)에는 이슬람 사원이 많이 있었다고 하나

공산주의 시대 때에 투르크계의 종교활동을 금지하여

현재는 이곳 이슬람 사원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라고 한다

바냐 바시(Banya Bashi)라는 이름은

공중 목욕탕을 의미하는 말로서

사원 동쪽에 대형 온천이 있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세르디카 유적지에서 길 건너 편으로

소피아 중앙 시장이었던

'센트럴 할리(Tsentralni Hali)'가 있다

1910년에 비잔틴 양식으로 건축된 중앙 시장이었다

1989년 이후 시장이 중단되었으나

2000년에 들어서며 현재의 쇼핑센터로 개관되었다고 한다

 

 

세르디카 유적지(Anient Serdica Arheological Complex)로

계단을 내려간다

기원전 7세기경 트라키아 세르디(Thrace Serdi) 부족이 정착하면서

세르디카(Serdica)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으며

14세기 이후에 소피아(Sofia)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세르디카 유적지는

지하철 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되어

유적지로 보호받고 있다고 한다

 

 

세르디카 유적지에서 보는

스베타 네델리아 광장(Sveta Nedelya Square)의

'소피아 여신상'이다

원래는 공산주의 상징인 붉은 별과 함께 레닌 동상이 있던 곳이라 한다

1990년 민주화 혁명 이후에 철거되고

소피아의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졌다고 한다

소피아 여신은 왼손에는 부엉이를 오른손 월계관을 들고 있는데

부엉이는 밤에도 어두운 곳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어

어둡고 보이지 않는 곳까지 볼 수 있음을 상징한 것이라고 한다

 

 

종합청사가 들어서 있는 건물이 길게 늘어서 있다

종합청사 건물(뒷쪽)은 국영백화점 건물(앞쪽)과 연결되어 있었다

 

 

뾰쪽한 첨탑을 가진 '의원회관'이 보인다

민주화 혁명 전에는 '공산당 본부' 건물이었다고 한다

공산당 본부로 사용될 때에는

첨탑 꼭대기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거대한 붉은 별이 위용을 떨치고 있었으나

1990년 민주화 시위 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의원회관 앞 쪽에서 대통령 궁 쪽으로 건너가는 지하도로 들어가니

세르디카 유적(Anient Serdica Arheological Complex)

지하도를 메우고 있었다

여기의 유적들은 2004년 정부청사에서 대통령 궁으로 넘어가는

지하도를 만들다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7세기경 트라키아 세르디(Thrace Serdi) 부족이 정착하면서

세르디카(Serdica) 문화가 생겨났으나

기원전 4세기경 이후부터는 마케도니아와 로마 문화에 흡수되었으며

로마 제13대 황제 트라야누스(Marcus Ulpis Trajanus:98~117년) 때에

전성기를 누리며 극장, 목욕탕, 사원, 광장 등과 같은

공공건물들이 세워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2세기 말부터 도시를 둘러싼 성벽도 세워지기 시작하였으며

현재 발견되는 대부분의 유적들이

로마시대 때에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한다

 

 

지하도를 빠져 나오니 "대통령 궁" 앞이다

우리나라 청와대처럼 삼엄하지도 않고 보초병 2명만 입구를 지키고 있다

이 건물의 반만 대통령 집무실로 쓰이고

반은 호텔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 궁을 바라보면서

불가리아의 국정운영이 부럽다고 느껴졌다

자세한 내막이야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처럼 국정운영이 매우 삼엄하고 권위적이 아니라

우리도 이처럼

소박한 국정을 운영을 하는 국가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 궁 앞에는 '고고학 박물관(National History Museum)'이

자리하고 있는데

불가리아의 고대 유물 및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대통령 궁의 보초병이 서 있는 곳의 옆으로 난 건물 통로 통과하여

안쪽 뜰 쪽으로 들어서면

성 게오르기 교회(St. George Rotunda Church)가 있다

 

 

성 게오르기 교회(St. George Rotunda Church)는

불가리아 대통령 궁과 소피아 호텔 발칸(Sofia Hotel Balkan)의

내부 정원에 위치하고 있는 적벽돌로 건축된 교회로

로마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ConstantinusⅠ:재위 306~337년) 때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소피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그 당시에 소피아에 로마시대 건축물이 많이 세워졌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축물은

성 게오르기 교회 하나 뿐이라고 한다

 

 

교회의 내부에는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으며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채색도 여러 번 되풀이 되었지만

로마 시대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건물이라고 한다

 

 

성 게오르기 교회를 둘러보고

소피아 호텔 발칸(Sofia Hotel Balkan) 쪽으로 빠져나와

대로 변에 서니

성 네델리아 교회(Sveta Nedelya Cathedral)가 눈에 들어온다

네델리아(Nedelya)라는 뜻은 "일요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1925년 높은 관직에 있던 장례식에 참석한

불가리아 황제인 보리스 3세(BorisⅢ:재위 1918년~1943년)를 시해하려는

공산주의자들의 의한 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12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역사가 있는 교회라고도 한다

 

 

성 네델리아 교회(Sveta Nedelya Cathedral)는

1856년~1863년에 된 것으로

처음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교회였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후에

주변의 여러 교회와 신학교들이 모여서

지금의 같은 모습으로 교회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비토사(Vitosha) 거리를 향해 걸어가는 길에 소피아 법원이 보인다

불가리아 대법원(Supreme Court of Bulgaria)이라고 하며

건물 앞에는 사자상 두 마리가 지키고 있는데

사자는 불가리아를 상징하는 동물로

불가리아 사람들은

자기의 국토 모양을 사자처럼 생겼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비토사(Vitosha) 거리'이다

소피아 구도심에서 남쪽으로 뻗은 도로이며

소피아(Sofia)의 최대 번화가로서

명품 상가들과 토산품가게, 카페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보행자 거리로 조성되어

저녁에는 많은 젊은이 몰려들어 생동감이 넘치는 거리라고 한다

 

 

멀리 비토사 산(Mt.Vitosha)이 보인다

해발 2290m라고 한다

 

 

비토사(Vitosha) 거리는

낮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뜸하여 한산한 모습이고

 

 

거리에는

대부분이 쇼핑객들과 관광객들로

주를 이루고 있었다

 

 

비토사(Vitosha) 거리에서 보는

불가리아 대법원(Supreme Court of Bulgaria) 하얀 건물과

구 시가지 쪽의

성 네델리아 교회(Sveta Nedelya Cathedral)이다

 

 

소피아(Sofia)를 떠나기전

비토사(Vitosha) 거리의 길거리 카페에 앉아

여행의 재충전을 갖는다

 

 

그리스로 출발한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바냐 바시 자미야(Banya Bashi Mosque)로 걷기 시작하는데

비토사(Vitosha) 거리가 시작되는 곳과

불가리아 대법원(Supreme Court of Bulgaria) 사이의 도로인

알 스탐볼리스키 대로(Al.Stamboliyski Blvd)에서

트램 열차가 나오고 있다

 

 

소피아 호텔 발칸(Sofia Hotel Balkan) 앞 쪽에 걸어 지나가는데

여기에도 세르디카(Serdica) 유적 발굴 현장이 있다

 

 

스베타 네델리아 광장(Sveta Nedelya Square)의 '소피아 여신상' 뒤로

​성 요셉 천주교 성당(Cathedral of Saint Joseph)이 보인다

 

 

이제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여행을 마치고

바냐 바시 자미야(Banya Bashi Mosque) 쪽에서 버스를 타고

그리스(Greece) 테살로니키(Thessaloniki)로

약 5시간 여정을 시작한다

 

 

불가리아(Bulgaria) 여행을 하면서 국가와

수도(首都)인 소피아(Sofia)에 대하여 이야기를 안하였는데

먼저 소피아(Sofia)부터 이야기한다

 

 

소피아(Sofia)는

인구 약 128만여 명이 사는 불가리아의 수도로서

기원전 8세기경 트라키아 부족인 세르디족이 이 곳에 처음 정착하였으며

기원전 29년에 로마인들이 정복하면서

세르디카(Serdica)라고 불렀다고 한다

 

 

소피아(Sofia)는

로마 황제인 트라야누스(Marcus Ulpis Trajanus:재위 98~117년) 때에

번성하기 시작하여

콘스탄티누스 1세(ConstantinusⅠ:재위 306~337년) 시대 때에

전성기를 누렸다고 한다

이로 인해 342/343년에는 그리스도교 주교들의 중요 회의체였던

'사르디카 공의회의 개최지'가 되었다고 한다

 

 

잠시 '사르디카 공의회(Council of Sardica)'에 대하여 알아보면

'사르디카 공의회(Council of Sardica)'는

지금의 불가리아 수도인 소피아(Sofia)에서 342/343년경

성부와 성자의 동등성을 주장하는 니케아(Nicaea)학파를 지지하는

콘스탄스 1세(ConstansⅠ:재위337~350년:서로마)와

'성자'인 '예수'는 영원한 존재가 아니지만 '성부'와 유사한 본질로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는 아리우스(Arius)학파를 지지하는

콘스탄니우스 2세(ConstantiusⅡ:재위337~361년:동로마)가

공동 주재로서 '아리우스 논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소집한 회의였다

 

 

그러나 이 공의회에서 논쟁이 해결되기는 커녕

두 파의 관계와 동·서 로마 제국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공의회가 되었다고 한다

이유는

동로마 측에서 추방한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였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가

공의회에 참석하자 동로마측 주교들의 극렬한 반발에도

서로마측 주교들이 그를 제외시키길 거부하자

동로마측 주교들이 공의회 참여를 거부하고 외부의 고위 성직자들에게

항의문서를 작성하였다고 한다

이에 불구하고 서로마측 주교들은 코르도바의 호시우스 주재 아래

아타나시우스의 복권을 확정하고

앙키라의 미르켈루스를 이단 혐의에서 면제시켰다

이 공의회에서 교회법도 다루었는데

제3~5조항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조항으로

로마 주교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로마 주교가 다른 주교관구들에 대하여도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최초의 법적 승인으로

이 조항은 로마 주교를 교황의 우위권으로 발전시키는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이 소피아의 옛 역사적인 사건이다

 

 

소피아(Sofia)에서 그리스(Greece)로 넘어가는

불가리아의 국경 도시 쿠라타(Kulata)를 향하여 남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사르디카 공의회에서 복권된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에 대하여

조금 더 알아보면

아타나시우스(Athanasius:293~373년)는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로 있으면서

5번의 총대주교직 박탈과 추방 그리고 복권을 반복하면서

평생을 아리우스(Arius) 주의를 이단으로 공격하며 투쟁한 인물이다

 

 

또한 아타나시우스(Athanasius:293~373년)는

​신약성서 27권 체제를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로 복귀한 후

367년 부활절에 그의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 발표하였다

​신약성서 27권의 목록은

383년 교황 다마소1세(Saint Damasus I)​의 주도로

로마 공의회에서 신약성서 정경(正經)으로 확정하였으며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공포하여

신약성서 27권이 정경(正經)으로 확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다시 소피아(Sofia)의 역사를 이어가면

소피아(Sofia)는

4세기 후반부터 비잔티움을 중심으로 한 로마 제국에 속하였으며

441~447년에 훈족의 왕 아틸라(Attila)가 이끄는 훈족의 침략 받았으며

6세기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Justinian:재위 527~565년) 시대 때

성 소피아 교회(St. Sofia Church)가 세워졌는데

후에 이 교회의 이름에서 소피아(Sofia)라는 도시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809년 불가리아 크롬 왕(Chrom)이 침공하여

소피아를 차지한 후 불가리아에 합병시키고

슬라브어로 스레데츠(Sredets)

그리스어로는 트리아디차(Triaditsa)라고 하였다고 한다

1018년부터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이 세워졌던 1185년까지는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1382년부터 오스만 투르크에게 지배를 받기 시작하여

1878년 초 러시아 군대에 의해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에서 해방되었다

 

 

1879년 4월 3일 소피아(Sofia)는

불가리아 수도(首都)로 정하여 졌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군에 점령 당하였으나

1944년 러시아 군대에 의해 해방되었으며

1947년 불가리아에 공산당 정부가 들어섰으며

1989년 12월 동유럽에 몰아닥친 민주화 물결에 휩싸여

소피아(Sofia)의 공산당 청사 첨탑에

붉은 별과 붉은 깃발이 내리어지며 공산당 치하에서 벗어 났다고 한다

 

 

 

소피아에서 그리스(Greece)로 넘어가는

불가리아의 국경도시 쿠리타(Kulata)까지 거리는 약 170Km 정도로

약 3시간 가까이 소요되는데

중간 위치에 있는 도시 블라고에브그라드(Blagoevgrad)를 지나치며

약 2시간 가까이 달리고 있다

 

국경을 향해 달려 가는 동안

휴계소는 없는 모양이다

한번도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다

 

 

 

불가리아(Bulgaria)는

인구 700여 만 명의 국민이 거주하는 국가로서

국토 면적은 111,002㎢로

우리 대한민국 남한 면적 100,364㎢ 보다 조금 넓다

 

 

민족구성으로는

불가리아인 84%, 터키인 12%로 구성되어 있으며

언어는 불가리어를 사용하고 있다

 

 

종교는

불가리아 정교 83%, 이슬람교 12%로 분류된다

 

 

정부와 의회 형태로는

중앙집권 공화제로서 다당제와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1989년 말 민주화 시위로 공산정권에서 벗어난 후

1991년 7월 불가리아 의회는 의회제도를 정립하고

대통령 직선제, 권력분립, 언론·출판·양심·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골자로 새 헌법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새 헌법에 의거하여

국민 투표에 5년 임기의 대통령은 국가 원수가 되고

국가 수반인 총리 천거권을 가지며

국민 총선에에 의해 4년 임기의 의원 다수당이 총리 임명권을 갖는다

의원은 240명으로 이루어진 입법기관의 활동을 한다

 

 

교육은 의무적 8년제 기초과정으로서 무상교육이라고 한다

기초교육을 받은 후

일반 중등학교 또는 직업학교로 진학하며

고등교육은 교사 양성을 위한 2~3년 과정과

4년제 대학교 학위를 주는 2가지 형태가 있다고 한다

 

 

주택 정책은

농촌을 떠나가는 현상으로 인해 도시집중 인구가 70%에 육박하여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도시 주택난은 심각하여

새로운 주택단지를 조성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완화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사회보장제도에 따라

병가, 출산, 은퇴, 출산 수당을 지급받으며

보건 상태로 진료혜택을 어디서나 쉽게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인종적으로 

불가르족이 전체의 약 85%를 차지하고 있는데

소수 민족인 마케도니아인들은 분류하지 않고 

불가리아 인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 불가리아인들의 출국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인종적으로 

불가르족이 전체의 약 85%를 차지하고 있는데

소수 민족인 마케도니아인들은 분류하지 않고 

불가리아 인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 불가리아인들의 출국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불가리아의

국가GDP는 약 662억5000만 달러(세계 74위)이며

1인당GDP는 9518달러(세계 73위)라고 한다

<2019년 한국 국가GDP: 1조6295억3200만 달러(세계12위), 1인당GDP: 31,430달러(세계30위)>

 

 

불가리아 여행이 끝나 간다

그리스(Greece) 국경이 거의 다와 가는 것 같고

소피아(Sofia)에서 출발한지 2시간 반이 지나고 있다

 

 

그리스(Greece)로 넘어가는

불가리아(Bulgaria)의 쿠라타(Kulata)의 국경 검문소에 도착한다

이 검문소를 통과하면

그리스(Greece)로 넘어가 남쪽으로 80Km 정도를 달려

에게 해(Aegean Sea)변에 있는

테살로니키(Thessaloniki)​로 달려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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